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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4화 (14/200)

# 14

14화

“제길!”

갈지혁은 찾는 약재가 보이지 않자 욕을 내뱉었다.

그는 일악천에게 다가가 등에 손을 대고 진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혈도는 문제가 없다. 독에 중독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일악천을 중독시킬 만한 독은 무림에 몇 없다.

‘풍토병(風土病)……인가.’

흉악한 얼굴을 한 일악천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누워 있다. 처음엔 상당히 혐오스러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얼굴……. 그렇지만 이제는 소중한 사람이다. 어머니 이후로 받아본 적이 없던 정을 준 사람. 죽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한 약재를 꼽았다.

목통(木通), 작약(芍藥), 우각(牛角) 등…….

갈지혁은 집안 곳곳을 뒤지면서 필요한 약재들을 찾아냈다. 그렇지만 안을 뒤지는 갈지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풍토병은 무섭다. 독이 아니라 병이기에 문제다. 차라리 독이라면 일악천이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약재를 찾아냈지만 갈지혁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져 버렸다.

예상했지만 가장 중요한 약재 하나가 없다.

‘대황(大黃)이 없어.’

대황은 평범한 약재다. 그렇지만 대황의 특징상 이곳 사독문에서는 결코 자랄 수 없다.

대황이 없다면 다른 뭘 해도 안 된다. 갈지혁은 일악천의 옆에 주저앉아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이대로 간다면 죽을 게 분명하지만 갈지혁은 아무런 것도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젊다면 버텨보라며 최대한 기운을 돋워 주는 약재를 먹여서 반 정도로 살 확률이라도 있다. 그렇지만 일악천은 나이를 먹었다.

기력으로 버티는 것은 무리다.

어느새 소매에서 나온 사황이 갈지혁의 어깨에 올라서 있다. 사황 또한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평소에 자주 하던 장난도 치지 않았다.

갈지혁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침상에 누워 있는 일악천을 바라보던 갈지혁은 무엇인가 결심을 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로에 가자.”

사황은 그저 갈지혁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녹색 뱀이 천천히 모습을 감추었다. 갈지혁은 누워 있는 일악천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르신.”

갈지혁은 마음을 먹은 것이다. 사로를 건너 사독문의 밖으로 나가기로.

얼마 전 일악천에게 갈지혁이 물었다. 지금의 자신은 사로를 건널 수 있냐고.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일악천이 결국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무리라는 말이다. 갈지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오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이 년만 흐르면 사로를 걷는 것도 가능해 질 것만 같았다.

일이 년 후에나 갈 줄 알았던 사로를 갈지혁은 걷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가야만 한다. 일악천이 없다면 갈지혁은 독왕이 될 수 없다. 적어도 그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이곳까지 올 수도 없었다. 갈지혁은 일악천에게 목숨을 구제 받았다.

지금은 갈지혁의 차례다.

마음을 준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갈지혁의 다리가 사로를 향하기 시작했다.

사로는 사독문의 북쪽 끝에 있다.

사산을 넘고, 반 시진 정도를 더 가면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다. 그곳의 물은 지독한 독이다. 수많은 놈들이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물웅덩이 옆에 조그만 소로가 있다. 그곳이 바로 사로다.

뱀의 길이라고 해서 사로(巳路)지만, 다른 의미로는 죽음의 길이라 사로(死路)라고 불리기도 한다. 진법조차도 이 웅덩이는 범접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사로는 유일한 생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수많은 독물들이 있는 길을 그 누가 걷는단 말인가.

더군다나 사독문에 갇히는 그 순간 이미 배속에는 회생충을 안게 된다. 내공을 운기 못 하는 자가 사로에 들어서면? 답은 하나다.

일악천이 없었다면 갈지혁은 백 년이 지났다고 해도 이 길을 걸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웅덩이에서부터 소로에 이르기까지 독 기운이 상당했다. 더군다나 커다란 물웅덩이 주변에는 독무가 펼쳐져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 된 독 안개로 그 안에는 풀조차 자라지 못한다.

갈지혁은 독무를 뚫고 사로의 앞에 섰다.

사로의 앞에 선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일악천이 가그쳐 줬던 호흡법은 독기가 강한 곳에서 상당히 효용적이었다.

너무나도 지독한 독기. 평생 이만한 독기를 뿜어대는 장소는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사황 또한 고개를 내밀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사황도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엔 사황의 독성에 버금갈 정도의 독사와 독충들이 있다고 했다.

“가만히 있거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을 성공한다면 이제 갈지혁은 언제든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실패하면 그대로 죽음을 면치 못한다.

잠시 멈칫했지만 갈지혁은 소로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스무 발자국 정도를 걷자 그때부터 뱀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연 사로라는 이름에 어울릴 정도로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뱀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그 색도 각양각색이다. 흰색, 검은색, 붉은색……. 어떻게 본다면 그 화려한 색에 아름답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지닌 독을 생각하면 결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일전에 일악천이 말했던 홍사가 눈에 들어왔다. 저놈에게 물리면 일곱 발자국을 걷지 못하고 죽는다 했다.

지금은…… 버틸 수 있다.

갈지혁은 수라독공을 펼쳐 몸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주변에 있는 뱀들을 물러나게 했다. 일악천에게 들은 바로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독한 놈들이 있다고 했다.

예상대로 뱀들도 물론이거니와 벌들도 갈지혁의 주변에 다가오지 않았다. 태연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바짝 타버렸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도 땀 때문에 젖기 시작했다.

‘망설이면 죽어. 약해 보이면 달려든다.’

동물은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것이 영역을 침범하면 달려들기 마련이다. 강하게 나가거나 부드럽게 포용해야 한다. 당황이라도 한다면 기회를 엿보고 달려들려고 한다.

뱀이 스르륵 발등 위를 타고 지나간다. 소름이 오싹 돋지만 몸은 부드럽게 이완시켰다. 땅 아래 지네들도 슬쩍슬쩍 피해 가면서 갈지혁은 계속해서 걸었다.

땅도 독기에 너무 오래 노출된 탓이지 걸을 때마다 머리를 어지럽게 할 정도의 독을 뿜어댔다. 이곳은 모두 독이다. 나무도, 공기도, 땅까지도. 여러 가지 독이 중첩되었다. 합성독(合成毒)이다. 여러 가지가 섞인 탓에 당하면 해독하기가 극히 까다롭다.

대자연 자체가 독이 된 것은 갈지혁도 처음 본다. 사로가 왜 죽음의 길인지 이해가 간다. 예전의 갈지혁이었다면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호흡도 고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일악천의 가르침 덕분에 독기가 가득한 이런 곳에서도 호흡이 가능하고, 또한 내성도 생겼기에 버틸 수 있는 거다.

땅까지 녹색 빛을 띨 정도로 중독되어 버린 곳이다.

터벅터벅.

어깨에 매달려 있는 사황은 연신 고개를 움직였다. 지독한 독기도 사황을 움츠려들게 하지 못했다. 긴 혀를 연신 흔들며 사황은 혹 있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는 듯했다.

일악천은 가지 못한다 했다. 사로를 걷기엔 아직 다소 이르다 했다. 지금 갈지혁은 목숨을 걸었다. 수라독공을 익히지 못했다면 지금쯤 뱀들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수라독공은 생명이 있는 생물들의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만한 독기에 몸을 움츠리지 않을 동물은 몇 없다.

점점 다리 위로 지나가는 독사와 독충들의 숫자가 많아졌다. 이제는 서서히 걷기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리며 한 발을 내딛지만 그 움직임이 사뭇 조심스럽다. 다리를 들어 올릴 때, 내릴 때마다 수명이 일 년씩 줄어드는 기분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바로 공격해 올 독물들이 갈지혁의 주변을 아예 에워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계속해서 걸었다.

일악천은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밖이었다면 그리 쉽게 구했을 대황을 구하기 위해 갈지혁은 사로를 걷고 있다.

이 길을 걷기 위해 일악천에게 무공을 배웠다.

붉은 몸에 검은 반점이 가득한 뱀이 양다리 사이를 연신 꿈틀거리면서 지나다녔다. 이놈은 아까부터 기회를 노리고 있다. 뭔가 판단을 하는 듯하다. 판단이 내려진다면…… 물러나거나 물기 위해 달려들 게다.

죽이자니 주변의 다른 놈들을 자극할 위험이 있어 지금은 참고 있지만 결국 결단을 내려야 한다.

꿈틀거리는 뱀들, 다리는 이미 뱀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종종 지네 같은 벌레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타고 기어 다녀도 갈지혁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사황이 처리해 줬다.

갈지혁의 몸에 기어오르는 독충들은 사황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 덕분에 갈지혁은 최소의 움직임으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무거워지는 다리만큼 긴장감도 더해간다.

‘조금만 더…….’

일악천에게 들었던 사로의 길이. 그가 판단하건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문제는 서서히 따라붙기 시작한 뱀 몇 마리다. 그놈들은 이제는 거의 이빨을 들이밀다시피 해서 뒤를 쫓고 있다. 어떤 놈은 다리를 기어오르기도 한다. 계속해서 신경이 쓰인다. 갑작스럽게 물려고 달려들면 그때는 무조건 베어야 한다.

바짝 긴장한 채로 뱀들의 행보를 보던 갈지혁은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고개를 들었다. 사로의 끝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기까지만 가면 성공이다!’

거리는 오 장 정도. 마음만 먹고 도약하면 단숨에 갈 수도 있는 거리다.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서 도약을 하면 바로 뱀들의 표적이 된다. 힘들지만 걸어야 한다.

갈지혁의 손이 슬그머니 아래로 향했다.

검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이다.’

뱀들도 이제 결단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답은 내려졌을 게다. 놈들은 분명히 달려든다. 검을 사용해 베려고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나 아니다. 검으로 날아드는 뱀들을 모두 베어 낼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독이다. 독사들에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목숨을 걸 것은 역시 독뿐이다.

‘난 독인이야. 독을 써야 돼. 검으로는 절대 못 이겨.’

손가락에는 다섯 개의 나무토막이 기이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다. 독단을 발사하기 위해 갈지혁이 만든 장치다. 양손에 걸려 있으니 사용할 수 있는 수는 정확하게 열 번.

뱀에게 일일이 독장을 휘두를 수도, 결을 이용할 수도 없다. 가장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손에 걸려 있는 독단이다.

손가락을 꿈틀거리던 갈지혁이 마침내 움직였다.

수라독공의 기운이 갑작스럽게 강하게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갈지혁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치익!

몇 명의 독사들이 고개를 내밀며 갈지혁을 노렸다.

‘지금!’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독단들이 터져 나가면서 그대로 뱀들의 몸에 적중했다. 동시에 주변으로 암기들이 쏟아져 나갔다.

퍼퍼퍽!

뱀들의 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개중에서는 아예 몸이 산산조각이 나는 놈도 있었다. 더불어 퍼지는 독무로 인해 뱀들이 사방으로 나누어졌다. 갈지혁의 다리가 땅에 닿았다.

그 순간,

“카악!”

갑작스러운 소리와 함께 어깨에 있던 사황이 뒤를 향해 날아올랐다. 갈지혁은 사황의 입에 물린 뱀을 봤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놈인 모양이다. 뒤늦게 날아들어 갈지혁의 독단과 암기를 피해 낸 놈이다.

그 뱀은 단숨에 숨이 끊어졌는지 사황의 입에 대롱대롱 물려 있었다.

갈지혁은 숨을 몰아쉬었다. 공중에서 등을 잡혔다. 잘못했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사황이 목숨을 구해 줬다.

“고맙다.”

갈지혁은 사황을 쓰다듬었다. 사황은 죽어 버린 뱀을 땅에 놓고는 다시금 갈지혁의 어깨로 올라갔다.

죽어 버린 뱀을 바라보던 갈지혁은 사황을 바라봤다.

몸집은 작지만 다시금 그 위력에 놀라 버리고 말았다. 물린 주변부터 해서 뱀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다. 엄청난 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었다고 해도 물린다면 뼈까지 모두 녹아내릴 게다.

사황이 듬직해 보였다. 어떻게 본다면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녹아내린 뱀을 바라보던 갈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공기부터가 다르고 주변의 나무들도 싱싱하다. 그는 크게 숨을 쉬었다.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갈지혁은 사로를 건넜다. 독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그 길을 본인의 재능과 최고의 조력자의 도움으로.

갈지혁은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이 근처에 사람들이 살지는 않는다. 비록 사로의 밖이라고는 해도 주변에 독기가 흘러 웬만한 사람은 이 근방에서 살기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독황독립문의 구역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혹여나 갈지혁을 아는 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갈지혁이 사독문을 나왔다는 것을 독황독립문에서 알아서는 안 된다. 아는 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괜히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다.

대황을 구하려면 근처 마을까지 가야 한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삼십 리 길이다. 지금 움직인다 해도 밤이나 돼야지 가능할 게다. 이미 서서히 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마을에 가면 대황이야 있겠지만…… 과연 그들과 아무런 마찰도 없이 받아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부족이 바로 연족(淵族)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을 끼고 생활하는 남만의 부족 중 하나다. 강을 지배하는 부족답게 상당히 호전적이고 사납다. 그들에게 중원인인 갈지혁이 무엇을 부탁하냔 말이다.

그리고 과연 연족이 그런 갈지혁의 부탁을 들어줄지도 의문이다.

다행인 것은 연족이 독황독립문과는 전혀 연이 없다는 것인데…….

그래도 연족이 있는 곳을 지나면 그 후부터는 백 리 이상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긴 시간을 소모하면 기껏 대황을 구해간다고 해도 일악천의 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반드시 연족을 설득해서 대황을 구해야 한다.

갈지혁의 다리가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중원에는 수많은 경공들이 있다. 갈지혁이 지금 펼치는 경공이 독황독립문에서 배운 독황군림계(毒皇君臨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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