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믐밤의 도성 거리는 숲보다도 어둡다. 사람의 거리라는 것은 별
빛조차 새어들지 않게 삭막한 것이다. 처마에 처마를 이은 지붕들이
안개 속에 가라앉은 밤, 지붕 위로는 그림자가 달리고 그늘 아래로
는 핏방울이 떨어졌다. 소리 없이 그림자가 스치고, 칼날이 오가고,
누군가의 생명이 이슬처럼 스러져 갔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끊어져 천공에 오르고 백(魄)은 흩어져
대지에 뿌려진다지? 저 지붕 위로 떠오르는 하얀 것들이 보이나? 저
게 아마 혼인 모양이야."
양평중은 그의 상관을 모시고 사방이 트인 한 누각의 지붕 위에
서 있었는데, 살벌한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상관의 이 엉뚱한 말에
기분이 상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제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내겐 보여. 슬프다, 슬프다 하는 탄식 소리까지 들리는 걸."
"당두님은 눈도 밝고 귀도 예민하시니 그런 모양입니다만…, 제
눈에는 비린내 나는 시체밖에 안 보이는군요."
"사람이 죽어 남기는게 비린내 나는 시체 뿐이라면 생선보다 나을
게 뭔가. 나는 차라리 미쳤다는 소릴 들어도 좋으니 혼백을 믿겠네.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워 하는 순수한 열망의 덩어리들, 육체의 속
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를 얻은 순수한 무의식들, 살아 생전
아웅다웅 싸우고 기어다니다가 죽어서야 비로소 보편적 이(理)와 기
(氣)의 이치에 하나 되는 이름들이 사람이고, 죽음이라고 보겠네."
"보시는 거야 당두님 소관입니다만…. 이렇게 놀고만 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다른 조에서는 지금 걸음마다 공(功)을 세우고 있
는데 말입니다."
당두, 지금 천자조 조장을 맡고있는 삼급 당두 용유진은 한때의
선배요, 가장 친숙한 한 방 친구 양평중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
다.
"자네 말대로 비린내 나는 시체에 불과한 것을 목을 자르면 뭘하
고 귀를 자르면 뭘 하겠나. 그런 걸 공이라고 다투고 있으면 마치
호랑이가 버리고 간 시체를 뜯는 들개가 된 것같아 처량해 진단 말
이야. 다른 조 애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우린 그냥 이렇게 구경
이나 하다가 가면 좋지 않겠나. 게다가 난 저 비린내만 맡으면 속이
뒤집어져."
양평중은 용유진의 뒤쪽에 서서 눈을 까뒤집었다. 이 직속상관이
동창에 들어올 때부터 같은 방에서 지낸 사이지만 그 변모하는 모습
은 양평중의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같이 쓸데 없는 소리만 할 때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모르는 사람은
거드름을 피운다고 생각할 것을 양평중이나 되니까 달리 생각이 있
나보다 할 뿐이었다. 하여간 그는 또 나름대로 일을 해야 할 때였
다.
"어쨌든 우리 애들이라도 제대로 일을 하고 있나 둘러 봐야겠습니
다. 여기 계속 계실거면 하나 불러서 호위를 맡길까요?"
"아니야. 그냥 자네 편할대로 하게. 호위같은 건 귀찮으니까 부르
지 말고."
양평중이 돌아서서 몸을 날리려 하자 용유진이 불쑥 말했다.
"아, 애들 쓸데 없이 돌아다니게 하지 말고, 저기를 지키라고 해.
저기 귀문방(鬼門方; 동북방)이랑 그 옆에 골목 있지? 거기."
"거긴 황자조가 맡은 구역 밖인데요. 누가 거기까지 오겠습니까."
"황자조 따위도 못 뚫는 자들을 우리가 상대할 가치가 있을까? 오
대룡 전조장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요즘 황자조는 너무 약해. 분명
거기로 빠져나오는 자들이 있을거야."
"알겠습니다."
돌아서는 양평중을 용유진이 다시 불러 세웠다.
"무리해서 막으려 하지 말고 견제만 하라고 해."
"알았습니다. 또 달리 지시하실 내용은?"
"없네. 가보게."
양평중은 속으로 적잖게 투덜거리면서 몸을 날렸다. 어느날 갑자
기 그 자신보다도 무공이 강해져서 그를 놀라게 하더니 위류향 전조
장 아래에서 가장 일처리가 낫다는 그보다도 오히려 일을 잘해 탄복
시켰다. 그래서 동창 역사상 가장 빠른 승진을 보일 때도 그러려니
했는데, 일 처리하는 방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과는 항상
좋았지만 그 과정이 통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
었다. '저기를 지켜' 그러면 미친 놈들이 꼭 그리로 오는 것은 뭔
가. '저기를 파봐' 그러면 또 미친 놈들이 하필 거기다가 증거물을
묻어두는 것은 또 뭔가. 마치 용유진과 범인들이 짜고 그러는 것처
럼 일이 진행된다는 것은 감탄 이전에 불신부터 불러일으키는 것이
다. 요술을 볼 때 느끼는 그 불신의 감정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용유진을 믿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는 그
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상관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상관의 재능이 미처 보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들을 메워주려고 노
력하는 것이다. 천재의 눈이 별을 바라볼 때, 그가 딛는 땅바닥의
요철을 살피는 것이 그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조원들을 찾아서 용유진이 지시한 곳에 잠복
시켜 놓고 다시 돌아왔을 때, 용유진은 원래 있던 장소에 없었다.
"항상 이런다니까!"
양평중은 다시 투덜대며 용유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럴리는 없겠
지만 혹시라도 적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적잖게 불안했다. 그런게 아니더라도 혹시 어슬렁거리다가
적들 틈으로 혼자 들어가는 꼴이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쪽
도 아니었다. 용유진은 혹시나 하고 가 본 마지막 장소, 즉 천자조
조원들을 매복 시켜 놓은 곳이 보이는 어느 집 지붕 용두 위에 편히
걸터앉아 있었다.
"여기 계셨습니까?"
"내가 달리 어디 있겠나?"
양평중은 말문이 막혀 씨근덕 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같았
다. 조장이 조원 있는 곳 말고 어디에 있을 것이냐. 맞는 말이지만
지금까지 미친년처럼 싸돌아 다닌 그의 다리품은 누가 계산해 줄 것
인가. 양평중은 한동안은 용유진과 말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용유
진이 먼저 말을 건네자 곧 눈을 반짝이며 다가 앉았다. 용유진이 골
목 저쪽을 손짓하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보게. 저기 오잖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 더욱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오는 몇 개의 인
영을 양평중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야안(夜眼)을 수련한 덕에 그들이
몇 명의 무사이며, 그중 둘은 사람을 하나씩 업고 있다는 것, 그러
니 절대로 동창의 위사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를
포함한 동창의 위사들은 목을 잘라 허리춤에 매달고는 다녀도 저렇
게 사람을 통째로 업고다니지는 않는다.
"낚아챌까요?"
"아니, 좀 더 구경하세. 뒤에 황자조 애들이 쫓아오고 있잖아."
"그러니까 황자조 애들에게 넘겨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왜 그러나? 자넨 점점 돌머리가 되는 것 같아. 황자조 애들이 잡
을 수 있는 적이었으면 애초에 통과시키지도 않았겠지? 그냥 좀더
놔두고 구경이나 하세."
양평중의 통통한 볼이 더욱 튀어나왔다. 그의 생각에는 아무리 강
한 적이라도 동창 선위대 황자조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리라
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순간 운이 좋아 포위망은 뚫는다 해도 결국
엔 잡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황자조는 도망자들을 추격해
잡았다…가 다시 놓쳤다. 도망자 중 하나가 뒤로 처져서 휘두른 검
에 황자조는 두 명을 잃고 추격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용유진이 양평중의 어깨를 쳤다.
"봤지. 무당파(武當派)의 검객이다! 그것도 상당한 실력이야!"
양평중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쓴 초식은 무당파의 구궁검법(九宮劍法) 같지만 사실은 화
산파(華山派)의 것인데요? 구궁검법 흉내를 냈지만 검을 잡는 법이
나 마무리하는 법이나를 보면 그 이름도 유명한 역벽화산(力劈華山)
초식 아닙니까!"
용유진은 혀를 찼다.
"그래서 자넨 진보가 없는거야. 항상 한 꺼풀 안만 본단 말이야.
진리는…."
"두 꺼풀 안에 있습니까?"
용유진은 놀리듯 웃었다.
"아니, 겉에 드러나 있지. 우리 눈에 닿는 곳에 진리가 있다네.
보이는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는 황자조와 대치하고 있는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식은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 것은 저 검객이 사용한 초식은 화
산파가 아니라 무당파의 이념(理念)을 구현하고 있다는거야. 같은
도교 문파라도 무당과 화산 사이에는 장강과 황하만큼의 거리가 있
다네."
양평중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의 그 이념이 뭔지 저한테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나중에 한가해지면 가르쳐 주지. 그런데 사실은 그런건 말로 표
현할 수도 없는 거라네. 자네 눈이 그렇게 낮으면 개똥밖에 못 보는
거지."
용유진은 한 마디로 양평중의 눈을 개의 눈으로 맞춰놓고는 자리
에서 일어났다.
"더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간 조비홍에게 혼나겠지? 자넨 애들 시
켜서 앞서 도망간 사람들을 잡게. 난 저 무시무시한 검객의 손에서
황자조 애들을 구해야 겠군."
양평중은 더 토를 달지않고 호각을 꺼내 불었다. 골목에 매복해
있던 천자조의 조원들이 달려나와 앞서 도망쳐온 사람들을 나포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저 무당, 혹은 화산파의 검객과 같은 고수는 없
었기 때문에 손쉬운 일이었다. 양평중은 가까이 다가가서 도망자 중
누군가의 등에 업힌 사람이 오늘밤의 주 목표, 바로 오늘 낮에 실각
한 내각수보 동습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꺼운 마음이 되었다. 그들
의 오늘 임무는 결국 이 사람을 잡는 것이 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조가 싸울동안 내내 빈둥거리다가 막판에 알짜배
기를 낚아챈 것이다. 용유진과 천자조는 오늘도 성공을 했다.
양평중은 시선을 돌려 문제의 검객과 용유진이 어떻게 싸우고 있
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용유진이 먼
저 예를 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속세의 진창에서 선인(仙人)의 검을 구경할 수 있는 영
광을 허락해 주실 수 있을지요."
검객은 급히 만든 듯 천을 감은 것이나 다름 없는 허술한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 복면 아래로 길게 뻗어나온 수염으로 보아서는
상당한 연령의 인물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수염이 흔들렸다.
"노부를 놀리는 것인가? 동창의 개들이 검을 겨루는데 예를 차린
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개떼처럼 덤벼들어 목을 물어뜯
는 것이 그대들의 무도(武道)가 아니었던가?"
"개들 중에도 하늘을 보고 짖는 개가 있지요. 부끄럽습니다만 제
가 그렇습니다. 이제 겨우 검을 제대로 쥘까 말까 합니다만 고명하
신 검객을 보면 한 수 배우고 싶어지거든요. 좋은 자리는 아닙니다
만 더 말을 늘이는 것보다는 검을 드는 것이 낫겠군요."
용유진의 허리춤에서 번쩍 빛이 났다. 검을 뽑아든 것이다. 복면
검객의 눈빛이 잠시 번뜩였다.
"발검 하는 것을 보니 하수는 아니군. 누군가? 그대와 같은 자가
동창에 있다는 것을 일찍이 들은 적이 없었다."
"용씨 성을 쓰는 일개 당두에 불과하지요."
"얼굴을 보니 나이도 얼마 먹지 않은 듯한데 조홍의 개노릇을 하
는가? 속히 손을 씻고 정도(正道)로 돌아서는 것이 좋을 듯하군."
"사람마다 따로 사정이 있는 것이니 그런 말씀은 더 하실 필요가
없겠군요. 후배된 예로 제가 먼저 손을 쓰겠습니다."
용유진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허공에 세 번의 칼질을 했다. 검
객의 눈이 다시 빛났다. 방금의 칼질이 그냥 휘두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허공을 상대로 검을 휘둘러 빠르기와 예리함,
무엇보다 그의 검에 숨겨진 기품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다른 놈들처럼 흉내는 아니군. 정말 아깝다. 자네와 같은 검객이
어찌 조홍의 개노릇을…! 내가 그 치욕적인 숨통을 끊어주마!"
그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자세를 취했다. 용유진의 말대로 그
는 무당파의 검객이었던 모양, 구궁영(九宮影), 무당 정통검법의 기
수식을 완벽히 보여주고 있었다. 용유진이 마주 검을 내밀었다. 그
역시 구궁영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도 이미 그 검법을 알고있다는
의미였다. 상대의 초식을 미리 알면 백 배는 유리한 법, 바꿀 수 있
을 때 바꾸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검객은 고개를 저었다.
"진짜를 보여주마!"
검끝이 살짝 움직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현란하게 신형(身
形)이 움직이고, 서로 교차해 지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 선 자리를
바꾸어 다시 대치했다. 검객의 복면이 잘려져 나비처럼 나풀대며 떨
어졌다. 용유진의 소맷자락도 한 자락 떨어졌다. 검객은 오십줄에
들어선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인물이었는데 입술을 바르르 떨며 말
했다.
"사정을 봐준 것인가? 내게 그런 치욕을 주다니."
용유진은 검을 바로 세워 포권했다.
"제 나이가 어리고, 몸 담은 곳이 무공을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곳
이라고 생각들을 하셔서 얕보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셔야 할 것은 오늘 제 임무가 선배의 목을 노리는 것이라는 점입
니다. 이제부터는 최선을 다할 것이니 조심하시길…."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용유진의 검이 정면을 향했다. 독사의
머리같이 바르르 떨리는 검극(劍極)이 금방이라도 검객의 목줄을 물
어뜯으러 뛰쳐나올 것 같았다. 검객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순간
적으로 냉정을 찾았다. 검객다운 기도(氣度), 이제야 말로 제대로
겨룰 마음의 자세가 된 듯했다.
호흡이 멈춘 듯 잦아들고, 바람도 숨을 죽였다. 늘어진 처마, 어
긋나게 쌓아 올려진 담장의 벽돌들 위로 흐르던 시간의 흐름도 잠시
멈추어 섰다. 터질 것같은 긴장감으로 양평중의 가슴조차 터질 것같
은 한 순간 두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검이 스쳤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스치고 지나갔다.
검객의 검이 용유진의 목줄기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조금만 더
내밀면 피맛을 볼 수 있을 거리였다. 용유진은 검을 들고 있지 않았
다. 그의 검은 검객의 가슴팍을 관통해 등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
다.
검객이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 마지막 초식을 반만 썼지? 가슴을 찌르고 목을 벤다는 초식
아니었나?"
용유진은 난처한 듯 손을 들어올렸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초식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즘은 어
째 검을 쓰면 쓸수록 초식을 잊어서요."
"그런…, 놀라운…."
검객의 검이 천천히 아래로 기울었다. 검객의 몸도 같이 기울었
다. 일장의 격돌이 끝나고 서있는 것은 용유진 혼자뿐이었다.
"돌아가자."
용유진의 목소리가 어쩐지 쓸쓸하다고 생각하며 양평중은 물었다.
"검을 회수하셔야죠?"
"묘비 대신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냥 둬라."
용유진은 이기고도 기쁘지 않은지 어두운 골목 사이로 쓸쓸히 사
라져 갔다.
비린내 나는 시체들이 골목을 채운 날 밤, 젖빛 혼백들이 별처럼
천공에 흩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