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행표-18화 (18/37)

제9장; 용유진, 몸을 만들다.

1.

용유진은 나한당에서 사흘을 갇혀있다가  석방되었다. 허송세월은

아니었다. 오히려 동창에 들어와서 보낸 세월중에 가장 알찬 시간이

었다. 그 사흘동안 허신이 알려준 옥로진기의 기본구결을 외우고 익

혔으니 말이다.

조비홍은 과연 그를 찾지도 않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단단히 고생을 하게 만드라고 허신에게 지시를 했다고 하는데,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강도높게 말했다는 것으로  조비홍이 그를 생각하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뿐이었다.

지시에 따라, 사실은 허신이 원한 바에 따라 간 곳은 강복사 대웅

전(大雄殿)이었다. 거기 강복사에 단 하나뿐인 중이 있었다. 해룡선

사(海龍禪師)라 불리는 승려였다. 강복사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든지 모두 향객(香客)처럼 꾸미고 들어와야 했다. 그 출입문 격

인 대웅전을 지키는 사람은 당연히 중이어야 하고,  그 사람이 바로

이 해룡선사였다. 강복사의 드러난 부분을 관리하는 사람이 그였다.

해룡선사는 그를 보자마자 가사자락 속에서 칼 한  자루를 꺼내었

다. 소매 속에 칼을 숨겨두고 있는 중, 게다가 처음 보는 그를 향해

칼을 꺼내든 것이다.

"목을 내밀어라!"

용유진은 해룡선사를 미친 놈 보듯 쳐다 보았다. 나이는 오십줄을

넘어선 것 같은데 비대한 몸매에 퉁퉁한 얼굴을  하고, 그 얼굴에는

개기름이 번질거리고 있었다.  가사장삼을 단정히 걸쳤지만  얼굴은

영낙없는 파계승의 그것이었다. 그런 중이 목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

이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망설이고 있는데  해룡선사는 꼴같지 않게

성질도 급한지 칼을 집어넣고 돌아 앉아 버렸다.

"싫으면 가라!"

용유진은 그 뒤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도대체 사전 설명  한 마

디도 않고 이리로 보낸 스승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

서 물어볼 수도 없지 않은가. 스승이 먼저 그를 찾기 전에는 만나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용유진은 해룡선사의 뒤에 꿇어앉아 목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해룡선사가 돌아앉았다. 어느새 꺼냈는지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시퍼렇게 날이 서서  옛 고사대로 공중에  날린 머리카락을

자르고 물에 띄운 종이를 가를 수 있을  것처럼 날카로워 보이는 그

런 칼이었다. 그 칼이 들어올려지는 것을 보자  절로 심장이 내려앉

았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럴 이유란 아무리 생각해

도 찾아지지 않았지만 단칼에 목을 베어버릴  것같은 살기가 온몸을

파고드는 것은 또 웬일이란 말인가.

해룡선사가 그의 귓전에 대고 물었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되나?"

용유진은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그러십시오."

"후회 없겠지?"

차가운 칼날이 목덜미에 닿았다. 소름이 끼쳤다. 용유진은  온 몸

이 냉굴에 들어간 것같은 공포를 느끼고 몸을  움추렸다. 그러나 입

은 얼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더 떨 것은 없었다.

"없습니다."

"그럼 하지."

목덜미에 붙은 칼날이 목덜미의  선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도대체 뭘 하는거지?'

의문은 금방 풀렸다. 해룡선사는  그의 머리를 삭발하고  있었다.

여태 그를 위협한 것은 그럼 장난이었던 셈이다.

"왜…? 뭘 하는 겁니까?"

"어허, 다칠라! 움직이지 마라!"

해룡선사의 칼놀림에는 뛰어난  바가 있었다. 용유진은  순식간에

민대머리가 되어버렸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해룡

은 다시 한 벌의 가사를 소매에서 꺼내 그에게 던져 주었다.

"입어라!"

용유진은 자기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가짜

중 노릇을 하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삭발까지 하고  망설일 것은 없

었다. 용유진은 원래 입었던  옷 위에 가사를 걸쳤다.  제법 이쁘게

생긴 사미승 하나가 만들어졌다. 해룡은 그런 그를  보고 고개를 끄

덕이더니 다시 소매 속에서 목탁을 꺼내 내밀었다. 보물창고같은 소

매였다. 그렇게 넓어 보이지도 않는데 온갖 물건을 끄집어내는 것이

다.

"쳐라!"

용유진이 어이가 없어 물었다.

"염불은 안 시키십니까?"

해룡선사가 빙긋이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파악되기도 전에 용

유진은 이마에 강한 통증을 느끼고 뒤로 넘어갔다.  해룡의 소매 속

에서 염주알이 튀어 나와 명중된 것이다. 눈앞에  불똥이 튀고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다. 그렇게 반쯤 정신이 나가있는

데 해룡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파고 들었다.

"규칙 하나다. 여기 있는 동안은 단 한 마디도 하지  말 것. 규칙

둘이다. 내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

규칙은 둘뿐이었고, 무척 간단했지만 그걸 지키는 것은 전혀 쉽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해룡이  염불하는 동안에는 목

탁을 치며, 낮에는 산문에서 대웅전까지 청소를 하고, 밤에 다시 염

불하는 동안 목탁을 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이것뿐이라면 어렵지

않았겠지만 그 나머지의 시간, 즉 밥을 먹고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계속 좌선을 해야했다. 잠도 자게 두지 않았다. 그리고 소위 무념무

상(無念無想)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죽비(竹 )로 끝없이 두들겨 패

는 것이었다. 신음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하면 더 큰  일이 났

다. 그땐 정말로 혼절할  때까지 패지 않으면 그치지  않았다. 말을

않는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 정원 구석에서 무실결에 혼잣말이

라도 하면 어느새 보고  있었는지 염주알이 날아왔다.  역시 혼절할

정도로 아프게 만드는 물건들이었다. 용유진은  사흘도 지나기 전에

해룡을 선승이 아니라 지옥의  야차(夜叉)로 보게 되었다.  항상 웃

는, 장난치듯 사람을 때려 죽일 수 있는 그런 야차였다.

한 달이 지났다. 해룡은 야차에서 아수라(阿修羅)로 변했다. 그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용유진을 괴롭혔다. 용유진은 항상 잠이 부족해

비틀거렸고, 항상 두들겨 맞아 빈사지경으로 청소를 하고 목탁을 두

들겨야 했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해룡은 아수라에서 염라대왕(閻羅大王)으로

승격되었다. 용유진은 하루 열두 시진 전부를 해룡을 죽이는 상상을

하며 지냈다.

석달째가 되었을 때, 해룡은 다시 선승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는

용유진을 전혀 괴롭히지 않았다. 일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석달

전이나 지금이나 용유진의 일과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규칙을 포기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용유진이 규칙을  어기지 않았을뿐이었다.

그는 이제 무념무상에 빠져들 수 있었고, 그 상태로 지내며 잠을 자

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는 해룡이 요구한 것들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도망갈 생각을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망가서는 안되었다. 이제와서 도망을 간다면  차라리 처음에 오지

않음만 못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용유진은

차라리 해룡의 요구에 완벽하게 맞추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 즈음에 그는 다시 허신을 만났다.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용유진은 청소하던 손을 멈추었다.

"이곳 규칙도 더 이상 네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니 말을  해도

괜찮아."

용유진은 그 말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해룡을 보았다. 그리

고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해룡의 소매에서 나온  염주알이 그의

옆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해룡이 빙긋이 웃었다.

"그놈 말이 맞아."

용유진은 입을 벌렸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석달동안 아

무 말도 않았더니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같았다.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할  말도 없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스승이 말해줄 테니까.

그러나 허신은 질문부터 던졌다.

"네가 왜 해룡의 염주를 완전히 못 피하는지 아느냐?"

용유진은 고민하다가 입을 벌려 대답했다. 자기 목소리가 자기 귀

에 들리는 생경한 느낌이 어색했다.

"반응이 늦어서죠."

"틀렸어."

허신은 고개를 저었다.

"감각은 빠른데 몸이 못 따라가는 것이다."

용유진은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확실히 지난  석달간의 수

행으로 그의 감각은 대단히  발달했다. 말을 않고  지냄으로서 그는

듣는 것, 그 이전에 느끼는 것을 배운  것이다. 단지 암기가 날아오

는 것을 느껴도 피할 수가 없을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허신은 이번에도 대답대신 질문을 던졌다.

"네 그 손으로 무공을 연마할 수 있나?"

용유진의 손, 손톱 빠진 손가락을 말하는 것이었다.  허신이 계속

말했다.

"손톱이 없으면 손에 힘을 줄  수가 없지. 예를 들어 검을  쥘 때

우린 손바닥으로 쥐는 게 아니지. 손가락으로 전체를 감아쥐고 손가

락 마지막 마디로 누르지 않나.  근데 손톱이 없으면 거기  힘이 안

들어가지."

용유진은 손가락을 내려다 보다가 다시 허신을 보았다. 그러니 어

쩌란 얘긴가.

"여기 의원도 있겠죠? 어딘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의원에는 갈 필요가 없어."

"전 정식 위사가 아니라 안 고쳐준단 말입니까?"

"아니."

허신은 고개를 저었다.

"못 고친단 얘기지. 생으로 잡아 뽑은 데다가 불로 지졌으니 손톱

이 다시 나는 법은 없을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허신은 이번에도 대답대신 질문을 던졌다.

"콩은 잡을 수 있겠지?"

허신의 마지막 질문이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용유진의

다음 일은 곳간에서 썩은 콩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편했다. 용유진을 감독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무도

오지않는 곳간 앞에 앉아 콩이 가득 담긴  가마니를 열고 그 중에서

썩은 콩을 골라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가 해본 일중에 가

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허신이 오기만

을 절절히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허신은 한 달을 꽉 채워서야 그

를 찾아왔다.

"어떻더냐?"

"좋지 않습니다."

"뭐가 좋지 않더냐?"

"이젠 더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긴 싫다는 말씀입니다."

"왜 허송세월이라고 생각하지?"

"가짜 중 노릇을 하고, 곳간지기나 하는 것이 어찌 허송세월이 아

니겠습니까?"

허신은 고개를 저었다.

"난 너를 해룡과 만나게 해주고, 그 덕에 마음의  눈을 뜨도록 해

주었지. 네가 몸을  단련시키도록 가능한 장소로  옮겨주었다. 그게

왜 허송세월일까? 난 모르겠는걸."

용유진은 입을 딱 벌렸다.  허신의 말이 너무 의외였기  때문이었

다.

"그럼 여태까지의 일이 다 수련이란 말씀입니까?"

허신은 그렇다고 말했다.

"웃통을 벗고, 봉을 휘둘러야 수련인 것은 아니지.  내가 본 바로

는 진정한 수련이란 말이다. 생활중에 있는거야. 먹고 자고 걷는 그

와중에 수련이 있다는 거지.  옥로진기를 익히려면 그  구결대로 자

고, 그 구결대로 먹고, 그 구결대로 싸야 하지 않을까? 그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해룡에게 너를 보낸 것이다."

"해룡선사가 도대체 누굽니까?"

허신은 씁쓸하게 웃었다.

"오십 년 전의 네 아이 중 하나다. 그리고 네게 암기 피하는 법을

가르쳤고, 나중에는 암기 던지는 법을 가르칠 사람이지. 그 놈이 생

긴 건 멧돼지같아도 의외로 성격이 세심하지. 암기따위 작은 것이나

만지고 산단다. 그래도 과거에는 황궁 제일 암기 고수였지."

용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

지만 황궁 제일 암기 고수라고까지 불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의문을 허신은 한 마디로 풀어주었다.

"무공을 전페 당했는데도 그 정도면 대단한 것 아니겠느냐?"

"누가 그런 짓을…?"

"누구겠느냐?"

용유진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았다.

"왜 살려두었을까요?"

"암기 정도로는 위협이 안되기 때문이지.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렇군요."

"그래서 널 키우는  거다. 다행히 해룡에게는  합격한 것  같더구

나."

용유진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배우는 것만이  목적이 아

니고 시험도 받았던 것이다.

"우리에겐 두 번의 기회는 없거든.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자연 신중을 기하게 되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기로 보내신 이유는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군요. 손을 단련하라 하셨습니다만 콩을 고르는 것으로는 어렵지 않

겠습니까?"

"손을 단련하려면 적당한 방법을  써야지. 콩을 고르는  것만으로

되겠나. 지금까지는 몸을 풀었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몸을 풀었다는 겁니까?"

"이젠 콩을 잡을  수 있게  되었잖아. 전에는  그것도 안  되었을

걸?"

용유진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손톱이 뽑힌 후로 손가락  끝을 사

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있었는데, 콩을 고르느라 그 공포심을 극복하

게 된 것이다. 이젠 정상적인 사람정도로 사용할 수는 있었다. 하지

만 손을 더 단련하려면 다른 방법이 더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젠 손을 어떻게 단련하란 말씀입니까?"

허신은 용유진의 귀를 잡아당기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대룡이라는 당두가 있지? 그 돌머리 말이다."

물론 아는 사람이었다. 허신이 계속 말했다.

"그놈 스스로 철두당(鐵頭堂)을 만들고 자기가 당주니  어쩌니 농

담을 하는 걸 들어봤나?"

"예."

오대룡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그리곤 동료 위사들에

게 당원으로 가입하라고 조르곤 했었는데, 그게 지금  일과 무슨 상

관이란 말인가.

"근데 실제로 그놈은 한 문파의 문주인 것이 맞아. 단지 철두당이

아니라 철혈문(鐵血門)이지."

철혈문은 이미 멸문했고, 예전에도 그다지 유명한  문파는 아니었

다. 그러나 그곳의 외가기공(外家奇功), 특히 단혈철수(丹血鐵手)라

불리는 기공만은 대단한 면이 있어서 산서  일대에서는 꽤 알아주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철혈문의 마지막  후계자가 오대룡이라는 것이

었다.

"그에게 손을 단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봐라."

허신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뒤에서 멍하니 있던  용유진이

외쳐 물었다.

"그런 걸 제게 가르쳐 줄까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울린다는 말

이 꼭 복을 빌 때 쓰는 말인 것은 아니지."

허신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떠나고 한달이 지나서야 용유진은 허신을 다시 만날 수 있

었다. 그때, 용유진은 곳간  앞에 주저앉아 콩 가마니를  풀고 있었

다. 허신이 물었다.

"오대룡은 만나봤느냐?"

용유진은 심통난 어린애처럼 뒤도 안 돌아 보고 대꾸했다.

"예."

"뭐라더냐?"

"콩이나 까라는군요."

허신이 히죽 웃었다. 과연 용유진은 손가락으로 콩을 잡아 비비는

방법으로 콩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 엄지와 중지, 엄지

와 무명지, 심지어 엄지와 약지로도 콩을 까고, 그것을 양손으로 동

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콩은 열심히 까고 있나?"

"예!"

용유진의 대답이 대단히 퉁명스러웠지만 허신은  빙글빙글 웃으며

가버렸다.

다시 한달 후 허신이 왔을 때, 용유진은 콩 가마니를 손으로 찌르

고 있었다.

"수련에 진전이 있었나 보군."

"약간 나아졌지요."

용유진의 어조는 한달 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한없이 지겹던 콩

까기가 의외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손가락 끝의  힘이 몰라볼 정

도로 강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 오대룡이 알려준 수련방법도

효과가 있었다. 지금 용유진의 손은 두부에 칼이 들어가듯 가마니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런대로 괜찮군."

"아직 멀었지요."

용유진은 가마니를 찌르던 것을 멈추었다. 품속에서 병 하나를 꺼

내 그 안에 담겨진 액체를 손에 붓고 비볐다.

"오대룡이 준 약인가보군."

"비전의 처방이라고 하더군요."

외가기공을 익히는 데에는 수련법도 중요하지만 수련 후에 바르는

약물이 훨씬 더 중요했다. 무공에 따라서, 그리고 문파에 따라서 약

도 다르고, 그 효과도 다른 것이다.

"오대룡이 단혈철수를 아까워하지도 않고 준 걸 보니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얼마나 익혔느냐?"

"오성(五成) 정도요. 아직 한참 멀었죠."

수련 두 달만에 오성이면  대단한 성취를 보인 셈이었다.  허신은

만족스러운 빛으로 말했다.

"멀었으니 다행이다. 그 수련은 이제 그만하자."

허신의 그 말이 용유진을 다시 어리둥절하게 했다.

"완전히 익히지도 않고 그만두는 겁니까?"

"그거 완전히 익혀봤자 손만 굳어지지. 그런 손을 어디다 쓰겠나?

단혈철수 따위로는 그를 이길 수 없어. 그건  손을 단련시켜준 정도

로 임무가 끝났다."

"그럼 이젠 새로운 장소로 가는 겁니까?"

노상 곳간 앞에서만 지내서 지겨운 마음이 없지  않았던 용유진은

자리를 옮길 것같아 좋아했다. 그러나 허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능하면 계속 여기에 있는 게 좋지. 남 눈치  안 보고 몸

을 만들 수 있으니까."

용유진이 약간은 실망하면서도 스승의 말이 옳다고 긍정하고 있는

데 허신이 귀가 번쩍 뜨일 얘기를 했다.

"대신 이젠 하루 한 번씩 밖으로 나갔다 오너라."

용유진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정말입니까?"

허신은 싱글싱글 웃었다.

"물론 정말이지. 내가 네게 식언을 하겠느냐?"

갑자기 닥쳐온 기쁨에 어리둥절해  있는 용유진에게 허신은  동전

한닢을 건네 주었다.

"이걸로 맛있는 거라도 사 먹고 오너라."

용유진은 동전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뭘 하라는 겁니까? 요즘은  만두 하나도 이걸론 못  살걸

요?"

"좋은 곳을 알려주지. 백리제일루에 가면 그걸로 술 한 잔은 얻어

마실 수 있을게다."

"저는 술도 안 좋아합니다."

"저런, 저런…."

허신은 큰일날 소리라는 듯 손을 저었다.

"거기 주인놈 앞에서는 절대 그런  소릴 말아라.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사람으로 치지도 않으니까. 술 안 좋아한다고 했다가는 그놈

에겐 아무 것도 못 배울거란 말이다."

"그럼 그분도?"

"넷중 하나지."

용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턱 긴 사람도 환관이었구나…!'

"그 분에게 뭘 배우란 말씀입니까?"

"물론 손을 단련하는 법이지."

허신은 돌아섰다. 용유진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 분이 절 가르쳐 줄까요?"

그도 해룡처럼 시험을 하겠다고 달려들면 또 죽을 고생을 하지 않

겠는가. 뭔가 도움이 될 말을 원한 것인데 허신은 이번에도 한 마디

만 남기고 가버렸다.

"술을 좋아하도록 노력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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