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용유진이 허신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심한 데에는 동창, 그 안에
서도 나한당이라는 최악의 장소, 최악의 곤경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랬다는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사
실은 반 감금 상태로 동창에서 허송해야 하는 상황,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조비홍이라는 변태적 인간에게 성적 위협까지 당하는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기 때문에, 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유
일한 사람이 허신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실
을 말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더듬어야 하는, 어찌 보면 거짓과 감
춤이 습성처럼 된 인생 속에서 그에게만은 진실을 말하려고 더듬거
리는 수줍은 노인네의 모습이 그를 감동시켰다는 점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순간에는 가장 드러나지 않은 이유였지만 사실
은 가장 강한 원인이 되었던 것은 외롭다, 주위에 의지할 사람이라
고는 아무도 없다라는 이유였다. 월령은, 비록 그가 보내긴 했지만
어쨌든 떠나 버렸고, 공손조덕은 아직 가까이 느끼기에는 너무 먼
사람이었다. 그 외에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허신이 나타났고, 그의
상식으로는 아버지만큼이나 가까운 사람, 스승이 되기를 원하는 사
람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스승을 만났다는 것은 그에게는 중요한 전
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허신이 무공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는
이것이 잘못된 선택, 잘못된 전환점이 아니었나 의심하게 되었다.
"무공이라는 것이…."
허신은 처음으로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스승의 첫 마디를 감
개무량한 어조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보잘 것이 없었다.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예?"
정말로 용유진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무공이 뭔지 잘
모른다.' 스승이 한 이 첫 마디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허
신은 액면 그대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평생 구경만 했지 직접 익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럼…?"
그럼 도대체 왜 제자를 받아들였단 말인가.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허신은 무공을 모르는 엉터리 스승답지않게 자신감에 넘치
는 말을 했다.
"하지만 최고의 고수를 길러낼 자신은 있다. 나는 천하제일고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제자가 그럴 그릇만 된다면! 그리고…."
허신은 지긋이 용유진을 바라보았다. 잔뜩 기대하는 빛이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용유진은 허신의 말을 정말로 문자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도
대체 이 근거없는 낙관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그러나 저 기대
에 넘치는 눈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아닐 때 아니더라도 일단은 따
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자의 예의일 것이다.
"한 번 스승으로 모셨으니 모든 것을 맡길 따름입니다."
허신은 그 대답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무공도 모르는 스승인 주제
에.
"그렇게 주관없이 따르기만 해선 안된다. 공자님도 그렇게 말씀하
셨지. 한 끝을 들어보여 나머지 세 끝을 짐작할 수 없으면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를 가르쳐 열을 짐작하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는다. 모
르면서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말이야."
물론 옳은 말씀이었다. 그래서 공자님 말씀 아닌가. 용유진은 다
시 고개를 숙였다. 이왕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보는 것이 옳았
다.
"알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허신은 그제야 기꺼워했다. 그는 구배를 마치고 꿇어앉아 있는 용
유진의 어깨를 다정스럽게 토닥였다.
"우린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몰라. 시간이 가면서 모든 것을 배우
게 되는거지. 자, 이제 하나씩 시작해보자."
"그 전에…."
용유진은 아까전부터 걱정하던 문제를 먼저 꺼내었다.
"조비홍이 저를 가만 둘까요?"
"물론 가만두지 않겠지."
"그럼 어떻게 합니까?"
"혹시 여자 다루는 법을 아느냐?"
용유진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혹시 좋아하는 여잔 없느냐? 그러니까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느냐
는 말이다."
용유진은 얼굴을 붉혔다. 순간적으로 월령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
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거 곤란하구나. 그 방면으로는 나도 잘 모르는데다가 혹시 알
아도 네가 이해를 못하면 실패하기 쉬워."
허신은 머리를 긁적였다.
"조비홍을 다루는 비결은 그가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도록 만들어
야 한다는 거다."
"예?"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인가. 그러나 허신에게는 그렇게 말하는 타당
한 이유가 있었다.
"조비홍이 유혹하려다가 실패하고 죽인 소년이 벌써 여럿이다. 대
개는 나이 어린 위사들이었지. 그렇다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 발
바닥을 핥아준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죽은 소년은 거절했
다고 미워서 죽인 소년의 열 배는 된다. 처음 좋아했던 마음이 식으
면 자신의 수치가 알려질까봐 두려운 게지. 아니면 정말로 요부의
기질이 있어서 애정이 식으면 보기도 싫어져서 죽인 건지도 모르
고."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한단 말씀입니까?"
살기 위해 조비홍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도 싫지만, 만번
양보해서 그런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죽는단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진정한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그라도 죽이기야 하겠느냐."
"진정한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용유진은 더 말을 말기로 했다. 믿어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긴 했
지만 허신에 대한 신뢰감이 점점 더 엷어지기만 했다.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분명히 이 문제는 해결해 준다고 해 놓
고선….'
"진정한 사랑…, 어려운 얘기지. 하지만 꼭 그걸 얻어야 한다. 그
래야 그에게서 다른 것을 얻을 수가 있거든."
"그에게서 또 뭘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허신은 그를 보며 빙긋 웃고는 말을 돌렸다.
"당장은 별 문제 없을 것이다. 내가 그를 잘 알지. 네가 만약 누
구에게 구애를 했는데 그가 냉혹하게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용유진은 무뚝뚝하게 잘라 말했다.
"전 그런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허신이 표정을 굳혔다.
"내가 처음에 애기하지 않았느냐.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르면
서 알려고도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너는 방금 들은 이야기도
실천하지 않으려 하는구나.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른다고 덮어두면 아
무런 진보가 없지 않겠느냐."
"죄송합니다."
용유진은 진심으로 반성했다. 말하는 사이에 어느새 스승을 무시
하는 마음을 가져버린 것이다. 그래가지고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
다는 스승의 말이 진정 옳았다. 용유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는 그냥 깨끗이 포기하고 물러서겠습니다."
허신이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쩌면 그건 사랑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한 번 거절당했다고 그냥 물러서
겠느냐? 상대는 네가 자기를 진정 사랑해서 구애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로, 희롱하듯 구애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으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녀가 저를 진정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거절한 것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계
속 구애를 하면 그녀를 괴롭히는 일이 되겠지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이 깊어서…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소유욕이 강해서, 혹
은 집착이 강해서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허신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용유진의 대답을 흡족해 하고 있었
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조비홍은 네 말대로 하면 집착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포기하는 법이 없지. 그리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기도 하다. 한 번 거절 당하면 당분간은 얼굴도 보기 싫어한단 말이
지. 그러다가 몇 달이고 지나면 다시 찝쩍거린다. 그러니 너는 당분
간은 그의 손에서 안전할 수 있다는 거다. 그 여유시간 동안에 그의
진정(眞情)을 함락시키는 방법을 생각하기로 하자."
용유진은 그제야 허신이 이상한 질문을 한 까닭을 이해했다. 하지
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으면요?"
"그땐 도망가면 되지.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최
선이긴 하지만 일단 목숨은 건지고 봐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지 않
겠느냐."
허신의 명쾌한 대답이었다. 용유진은 그 말에야 비로소 안심을 했
다. 스승에 대한 신뢰감도 약간은 두터워진 것 같았다.
"하여간 며칠은 여기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엔 나보고 너를
적당한 곳에 보내서 고생 시키라고 하겠지. 그러면 내가 알아서 있
을 곳을 마련해 주마."
허신은 다시 미소를 흘렸다.
"나는 말하자면 조비홍의 수족(手足)과 같은 사람이다. 수족에게
는 수족의 힘이 있는 법이지. 예를 들면 그는 나를 통해서 여러 가
지 일을 처리하는데, 나는 그의 명령을 처리하는 와중에서 내가 원
하는대로 일을 이끌어갈 힘을 얻는 것이다. 대개의 관리들이 이와같
은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법이지."
용유진은 그 말로 허신의 위치와 능력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한 허신의 능력은 무공 전수에 대해서도 같이 통용된다
는 것도 이제 알았다.
"여기는 동창의 본영이자 위사들의 수련장이기도 하다. 강호에서
가장 비급이 많은 곳이 어디일까? 동창이다.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교두(敎頭)들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 동창이다. 강호에서 가장 수련
하기 좋은 수련장은 어디일까? 역시 동창이다. 바로 여기지."
허신의 낙관이 가능한 근거가 이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동창은 강
호에서 가장 비급이 많은 곳이며, 훌륭한 수련장이었다. 동창이 세
워지고 운영되어온 백여년의 세월동안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무
림고수의 초빙을 통해 모인 비급과 교두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
이다.
"나는 수십년간 위사들이 무공을 익히고 수련하는 모습들을 봤지.
그러면서 나 같으면 이렇게 할텐데, 나같으면 뭘 익히고 뭘 가르칠
텐데 하는 생각을 해왔다. 나름대로 무공관이 생긴 것이지. 네게 가
르쳐 줄 것은 바로 그거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무인, 그걸 네 몸
에 구현하는 것이지."
그 시작은 '몸'을 만드는 것부터였다.
"우선 생각해보자. 무공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허신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몸이다. 몸을 기르기 위해서는 뭘 하면 좋을까? 내공(內功)이다.
우리는 빠르기로는 개만도 못하고, 앞발의 강함으로는 곰만도 못하
다. 나무를 타는 데는 원숭이를 따를 수 없고, 물을 가르는 데에는
물고기만 못하다. 그런데도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세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원리 가운데 하나다. 이른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하나인 것이지. 사람은 우주 만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자
신의 몸안에 그것을 구현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소우주(小
宇宙)라 부르는 것이다. 이런 우주의 원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내공심법이다. 내공이란 자연을 거스려 초인적인 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우리 몸에 구현하여 원래 지닌바 인간의 잠재
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그래서 내공을 쌓는 방법을
생각하고, 구현하며, 그것을 익히고 발달시켜 왔다. 그래서 현세에
전해오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고 강한 아홉 개의 내가기공이 만들
어진 것이다. 천하 구대 극품기공이 그것이지."
이미 수차례 들은 구대극품기공의 이름이 허신에게서 다시 나왔
다.
"네가 이미 들은대로 사이는 각각 하나씩의 기공을 익히고 있다.
일승의 대력금황기, 월인의 고루마공, 명성의 천마불사공, 그리고
조홍의 태청강기가 그것이지. 그러고도 다섯 개가 남았지? 두 개는
소림과 무당에 있다. 바로 소림사 달마신공과 무당 선천태극공이지.
달마신공은 달마가 만들었다고 전설로 전해오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
라 그 진위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실제로는 천축에서부터 전해진
유가기공(瑜伽奇功)에 선불교(禪佛敎)의 이론을 도입해 성립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선천태극공은 훨씬 내력이 분명하지. 무홍(武洪)
20년에 동현진인(洞現眞人) 장삼풍(張三豊)이 달마의 역근경(易筋
經)에 전해지는 무공을 태극의 이치에 의거하여 해석했다고 한다.
이것이 선천태극공이라고 하지. 그렇게 치면 달마신공과 선천태극공
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가지라고 봐도 좋겠지. 나머지 셋
은 조금 다른데, 하나같이 실전되었다고 강호에 알려져 있다."
나머지 세 개, 소림, 무당, 그리고 사이가 익힌 여섯 개의 기공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는 옥로진기(玉露眞氣), 도반삼양공(道反三陽
功), 그리고 오행진독신공(五行鎭毒神功)이었다.
허신은 거기까지 얘기하고 문득 용유진을 향해 물었다.
"천마호심결을 전해 들었다고 했지? 그걸 아직도 외울 수 있느
냐?"
용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에 구결 전체가
뇌리를 스쳐갔던 것이다. 허신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혹시 익혔느냐?"
"그쪽으로 신경 쓸 틈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익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익히는지도 모르겠고…."
허신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그건 구결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수련을 하는 것으로 보인
다. 네가 전에 심장을 꿰뚫리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 증거지. 물
론 거기에다 생사판이 더 수작을 부려놓은 것 같고…. 방금 네가 그
구결 이야기를 할 때 잠깐동안 멍해 있었던 걸 알겠느냐?"
용유진은 진짜로 멍해졌다.
"제가 그랬다구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그랬다. 아무래도 그걸 넘겨준 건 생사판의 음모인 듯하다. 공손
조덕이 그걸 모를 리도 없었을텐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허신은 금방 표정을 풀고 다시 말했다.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구결 전체가 뇌리에 각인되고, 한 번 운
공한 효과를 내는 것이 그것인 듯싶다. 다행히 네가 다른 일로 바빠
서 그걸 자주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 페해가 심하진 않을 것같구나.
보통 무림인이었다면 죽자고 그것만 생각했겠지. 심장을 찔리고도
죽지 않았다는 것은 역천(逆天)의 일인데, 역천을 하면 반드시 하늘
의 응보가 뒤따르는 법이지. 그것으로 네 목숨을 한 번 구했으면 그
만한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생사판이 말씀입니까?"
"아니, 천마호심결이라는 무공 자체가…."
천마호심결이라는 이름을 말해놓고 허신은 아차하는 표정이 되었
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용유진이 또 다시 멍해졌기 때문이었다. 순
식간에 구결을 떠올리고, 운기를 한 것이다.
허신은 손을 저었다.
"하여간 그건 나중에 자연히 드러날 일이니 넘어가자."
그는 이번에는 팔찌들을 가리켰다.
"강호에 알려진 소문으로는 일승 고목대사가 젊어서 얻은 기연이
란 바로 그 네 개의 팔찌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돌려 말하자면 그
팔찌를 얻음으로서 무공을 익히게 되었단 말이지. 결국 무공비결은
그 팔찌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 귀한걸 왜 제게 줬을까요?"
"네게 넘겨주지 않은 두 개의 팔찌에 비결이 있거나…, 아니면 생
사판과 마찬가지로 음모가 있는 것이겠지. 혹시 나중에 팔찌의 비밀
을 풀게 되더라도 신중히 생각하고 익혀야 할 것 같다. 월인이 전해
줬다는 고루마공에야 별 음모가 없겠지만…."
자상하게 경고를 하고난 후에야 허신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미 얘기한 것처럼 네 몸에는 이미 천마… 그것과 고루마공, 대
력금황기의 씨가 뿌려져 있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네 것은 아니
다. 나는 네가 가장 기본이 되는 무공을 하나 얻기를 원한다. 다행
히 우리 손 닿는 곳에 그게 있지. 옥로진기다."
천하 구대 극품기공의 하나인 옥로진기가 손 닿는 곳에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그것은 멀리도 아닌 바로 허신의 머리 속에 있었다.
"옥로진기는 원래 방중술(房中術)에서 나온 거다. 황제의 방중술
이랄까…. 후궁과 시녀들, 그리고 우리 환관들 사이에서 몰래몰래
돌고 있지. 그걸 아침저녁으로 익히면 청춘이 연장되고 수명 또한
길어진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걸 네게 알려주마."
용유진은 의아해서 물었다.
"사소한 일입니다만, 아까 하신 말씀으로는 무공을 익히지 않으셨
다고…?"
"익히지 않았지. 내가 익힌 옥로진기는 무공이 아니다. 그냥 호흡
법이고 방중술이지."
점점 더 모르게 된 용유진이었.
"그런 것이 어떻게 구대극품기공에 속하게 되었습니까?"
"내가 아는 옥로진기는 분명 무공이 아니지. 왜냐하면 완전한 옥
로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옥로진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심법
일 따름이야. 그게 완전한 옥로진기가 되려면 운용법을 알아야 하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른다."
"아…, 원래 완전한 것이 아니었군요. 그럼 익혀봐야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운용법도 같이 익히면 되지."
"그건 모르신다고…."
"아는 사람이 있다. 조비홍이지."
"아…!"
용유진은 그제야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비홍에게 얻어내
야 하는 것이 바로 운용법이었던 것이다.
"산길을 알려면 다녀본 사람에게 물으라고 그랬지. 무공은 익혀본
사람에게 배울 수밖에 없는거야. 나는 단지 그게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일밖에 할 수 없다."
그것이 허신의 무공전수법이었다.
"우선 내게 옥로진기의 기본구결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조비홍에게 운용법을 알아내는 겁니까?"
"아니."
허신은 고개를 저었다.
"먼저 천마호심결을…! 에구, 말을 않는다는 것이…, 하여간 그걸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리고 귀로 소리를 듣지않고, 눈
으로 만물을 보지 않는 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