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2장 장미의 죽음 (84/87)

제32장 장미의 죽음 

잠산(潛山)은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산이다. 

지리적으로는 장강(長江)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소호 

(巢湖)를 접하고 있어 유람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장미림(薔薇林)은 잠산 기슭에 있었다. 

십여 리에 걸쳐 온통 장미가 숲을 이룬 가운데 몇 채의 모옥이 그림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다. 

마치 핏방울이 떨어지는 듯 붉다. 

수천 수만 송이를 헤아리는 장미가 만개한 숲. 보기만 해도 현란할 정도로 화려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코를 찌르는 정열적인 장미의 향기를 맡으면 세상 어느 누구라도 

황홀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화려한 장미의 숲에 싸여 있는 몇 채의 모옥은 너무도 아름다워 마치 장미의 요 

정(妖精)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모옥 앞에서 한 여인이 꽃바구니를 들고 있다. 

싹둑! 

은빛 전지 가위가 여인 장미 줄기를 잘랐다. 희고 매끄러운 손이 조심스럽게 장미 

송이를 잡아 꽃바구니에 담는다. 

꽃바구니에는 전지한 이십여 송이의 장미들이 제각기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인의 옷차림은 검박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더 화려한 장미림과 조화를 이루고 있 

었다. 

여인의 얼굴은 청초했다. 주위의 화사한 장미 숲과 대비되는 그녀의 청초함은 신선 

한 감동을 줄 정도였다. 

표상아였다. 

그녀는 과거 산혜(珊慧)란 이름으로 대막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황태극에게 쫓기던 

여인이었다. 여진의 귀족 여리표의 양녀였던 그녀는 부금진의 지혜로 인해 황태극의 

추격에서 목숨을 부지한 바 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어김이 없는 법이다. 

표상아는 일개 미소녀에서 만개한 장미처럼 화려하고 완숙한 여인으로 자라 있었다. 

"랄라......." 

표상아는 나직이 콧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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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미로 주방과 옥령의 방을 치장해야지, 옥령이 돌아오면 깜짝 놀라게 말이 

야. 

표상아는 장미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장 예쁘고 탐스럽게 자란 꽃송이만을 잘라 

내었다. 

꽃바구니가 거의 찼을 때였다. 

스스스! 

문득 장미 숲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한 쌍의 남녀가 미풍을 탄 듯 장미림 사이에 떨 

어져 내렸다. 

여인은 표상아 보다 한두 살 정도 위로 보였다. 

궁장으로 틀어 올린 머리칼에는 봉황잠을 꽂았고, 선이 또렷한 얼굴은 조형적인 미 

가 넘쳐흘렀다. 단지 흠이라면 지나치게 단아하여 인상이 얼음처럼 차갑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풍만한 몸매가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몸에 꼭 맞는 궁장 차림이었다. 여인은 

차가운 눈길로 장미림을 둘러보았다. 

남자의 모습은 기이했다. 

반미반추(半美半醜). 

얼굴의 반쪽은 불에 탄 듯 시커멓게 변색된 채 이지러져 있었으며 반대쪽 얼굴은 투 

명할 정도로 흰 얼굴에 극미(極美)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남자의 모습은 양면성을 띤 듯 괴이하게 느껴졌다. 

"......!" 

표상아는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서다 흠칫 굳어버렸다. 

누굴까? 누구이기에 장미림을 찾아온 걸까?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전율처럼 그녀를 스쳐갔다. 그녀는 불청객 남녀를 향해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궁장여인이 얼음처럼 찬 음성으로 반문했다. 

"이곳이 장미림 맞나요?" 

"그래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면서도 표상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흥!" 

궁장여인은 냉소하더니 대뜸 반말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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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사는 안에 있느냐?" 

궁장여인의 태도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표상아는 아미를 찡그리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희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상대 쪽이 오만하면 이쪽도 오만하게 나오는 법이다. 표상아는 야무지게 다시 물었 

다. 

"장미림에 온 용건을 물었어요." 

궁장여인은 의외인 듯 그녀를 쏘아보다 갑자기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호홋! 생긴 것은 제법 야무진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군?" 

표상아는 자존심이 상했다. 

누구에게도 이런 모욕을 받아보지 못했던 그녀가 막 입을 여는 순간 궁장여인의 쌀 

쌀한 음성이 떨어졌다. 

"희사에게 전해라. 신녀궁(神女宮)에서 왔다고." 

'신녀궁!' 

표상아는 목구멍까지 밀려온 말을 꿀꺽 삼키며 안색이 변했다. 

강호에 출현하자마자 전 무림에 숱한 파문을 일으켰던 신비의 세력 신녀궁! 더구나 

신녀궁은 무영과 신산의 세력만을 골라 척살하는 의문의 여인들이 아닌가? 

표상아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그럼... 당신이 옥녀(玉女) 구양소저인가요?" 

궁장여인은 내뱉듯 말했다. 

"이제야 알아보는군." 

그때였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스러우냐?" 

모옥 쪽으로부터 부드러운 중년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궁장여인과 반미반추의 사내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옥 안으로부터 중년미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장미림의 주인이었다. 장미로 

둘러싸인 가운데 사뿐사뿐 걸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농밀하게 만개한 장미의 화신 

(化身) 그 자체였다. 

성숙할 대로 성숙한 아름다움. 장미의 요염함과 백합의 고결함이 함께 어우러진 듯 

한 뇌쇄적인 미모였다. 

중년미부의 뒤로는 두 여인이 따르고 있었다. 청색과 홍색의 경장을 입은 여인이었 

다. 그 중 홍색 경장을 입은 소녀는 요지선자 감운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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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장여인은 미묘한 눈빛을 발했다. 

"그대가 희사인가?" 

여전히 오만한 말투였다. 

중년미부는 안색이 가볍게 변했으나 여전히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소저는?" 

"신녀궁에서 왔다." 

중년미부, 즉 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신녀궁의 옥녀 구양영봉이군요?" 

구양영봉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온 목적은 무영, 신산과 원한이 있기 때문이다." 

희사의 고운 미간이 살짝 접혀졌다. 

"희사, 네가 무영 고검령의 아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죽어줘야겠다." 

희사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죽어줘야겠다고 했다." 

희사는 콧등을 살짝 접으며 말했다. 

"내가 무영 고검령의 아내라니... 내 남편은 부씨 성을 가지고 있어요." 

구양영봉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희사의 말을 변명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때 반미반추의 남자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음침하게 말했다. 

"나는 숙야천릉이다. 우리 가문은 신산에 의해 참혹하게 멸문 당했다. 그러니 내가 

겪은 것을 너도 똑같이 겪어야 한다." 

희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무영 고검령을 몰라요." 

구양영봉은 야멸차게 내뱉었다. 

"나는 네가 고검령의 아내라는 사실을 확신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한쪽은 부정하고 한쪽은 부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 이때 희사의 우측에 있던 청의여인이 교구를 날리며 앙칼지게 외쳤다. 

"감히 장미림에 와서 시비를 하다니......." 

그녀는 비연처럼 쏘아나가며 구양영봉을 덮쳐갔다. 그야말로 비쾌무비한 신법이었다 

"캬아악!" 

청의여인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목을 움켜쥐고 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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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손가락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꾸역꾸역 밀려나오고 있었다. 

목을 감싼 그녀의 손이 떨어졌다. 그녀의 손에는 구양영봉이 머리에 꽂고 있던 봉황 

잠이 쥐어져 있었다. 청의여인은 전신을 바르르 떨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광경에 표상아는 치를 떨며 구양영봉을 덮쳐갔다. 

"악독한 계집!" 

스윽! 

문득 표상아의 앞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싶더니 숙야천릉이 그녀의 맥문을 낚아 

챘다. 그는 표상아를 바닥에 팽개쳤다. 

"아악!" 

표상아는 혈도가 짚인 채 장미넝쿨 사이로 나뒹굴었다. 

휙! 

숙야천릉의 신형이 다시 움직였다. 그는 불가사의한 수법으로 홍의여인, 즉 요지선 

자 감운경마저 혈도를 제압해 버렸다. 감운경은 눈앞에 인영이 어른거리자 반사적으 

로 뒤로 물러났으나 채 반 걸음도 움직이기 전에 제압되고 만 것이다. 

"......!" 

희사의 표정은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숙야천릉은 느릿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흐흐흐! 장미림의 첩자 활동은 이미 알고 있었지. 첩자 활동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무공으로는 어림없다." 

"왜... 왜......?" 

희사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그만 숙야천릉에 

게 제압되고 말았다. 숙야천릉은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희사. 무영에게 받은 고통을 똑같이 돌려주려는 것뿐이다." 

그의 아름다운 반쪽 얼굴은 잔인해 보였고 추악한 쪽의 얼굴은 공포스러워 보였다. 

숙야천릉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희사를 필두로 표상아와 감운경의 순서로 장미나무에 묶었다. 장미의 예리한 

가시가 그녀들의 연하디 연한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자 의복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흐흐흐......." 

숙야천릉은 괴소를 흘리며 일을 진행했고, 구양영봉은 곁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 

볼 뿐이었다. 

세 여인이 장미나무에 다 묶이자 숙야천릉은 검을 뽑아 희사의 턱을 받쳐들었다. 

"그래도 아름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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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사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무영 고검령을 몰라요......." 

"그럴까?" 

숙야천릉은 기이한 눈빛을 발하더니 검 끝을 내려 희사의 앞가슴을 베었다. 

사악....... 

검의 예기만으로 의복이 갈라지며 희사의 풍만한 육체가 훤히 드러났다. 희사의 아 

름다운 얼굴에 공포의 빛이 드러났다. 

"제발......." 

"후후훗......." 

숙야천릉은 야수처럼 웃으며 검극(劍極)을 가볍게 흔들었다. 

투툭....... 

이번에는 젖가슴을 동여매고 있던 얇은 젖가리개가 떨어져 나가고 치마마저 일직선 

으로 베어지더니 적나라한 육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희사의 은밀한 부위를 가리고 

있던 마지막 천조각도 나풀거리는 꽃잎처럼 발치께로 떨어져 내렸다. 

장미나무에 묶인 채 희사는 전라가 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오들오들 떨었다. 

"후후훗! 아름다운 몸이야, 고검령은 이 육체를 사랑했겠지?" 

숙야천릉은 표상아가 떨어뜨린 꽃바구니에서 장미 한 송이를 집더니 희사의 왼쪽 젖 

가슴을 향해 던졌다. 

"으윽......." 

희사는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전신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장미 송이는 그녀의 젖가 

슴을 뚫고 심장에 박혀버렸다. 붉은 선혈이 끄트머리만 남은 장미송이의 가지를 타 

고 똑똑 떨어져 내렸다. 

"크핫핫핫핫......!" 

숙야천릉은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그는 표상아와 감운경을 향해 검을 휘둘렀 

다. 

파앗! 

현란한 검광이 무지개처럼 두 여인의 몸을 휘감았다 싶은 순간, 그녀들이 걸치고 있 

던 의복이 조각조각 잘려 눈발처럼 떨어져 내렸다. 

알몸이 된 두 여인의 왼쪽 젖가슴에 장미꽃이 박힌 것은 의복 조각이 땅에 채 떨어 

지기도 전이었다. 

"......." 

그때까지도 구양영봉은 여전히 차디찬 눈빛으로 두 여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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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령. 

장미림의 인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손거울을 

사기 위해 장미림을 떠났다. 

테두리를 옥으로 조각해 붙인 자그마한 동경을 구한 그녀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 

래서 그녀는 표상아에게 줄 몇 가지 화장품을 산 후 장미림으로 돌아왔다. 

장미림에 도착한 그녀는 세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악몽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세 

여인의 젖가슴에 깊숙이 박혀있는 장미 송이는 그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 

을 주었다. 

"으으......." 

그녀는 뒷걸음질쳤다. 

바로 그때 차가운 쇠붙이가 그녀의 목덜미를 찔렀다. 

"네가 조옥령이냐?" 

음산한 사내의 음성이 고막을 울렸다. 

"그... 그래요......." 

공포에 질린 나머지 그녀는 발성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검령은 어디 있느냐?" 

조옥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내의 음성이 다시 고막을 파고들었다. 

"다시 묻겠다. 무영은 어디 있느냐?" 

"모... 몰라요......."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는 어디 있느냐?" 

사내가 세 번째 물었을 때 조옥령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강남... 만금장원......." 

순간 뒷목이 화끈한 느낌에 그녀는 신음을 발했다. 전갈의 독침처럼 날카로운 검날 

이 그녀의 목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장미림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오직 한 사람, 부금진만 빼놓고는. 

신안수사(神眼秀士) 여문송은 이른 아침 수하로부터 한 통의 서찰을 전해 받고 곧바 

로 제오신마전을 나섰다. 

그는 천군낙일루로 향했다. 

천군낙일루에는 아침이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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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송은 주루 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석진 창가에 흑의를 걸친 중년인이 소채 한 접시를 놓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여문송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친구가 내게 서찰을 보냈소?" 

"그렇소." 

흑의 중년인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여문송은 한동안 싸늘한 시선으로 흑의인을 노려보다 물었다. 

"형님은 어디 계시오?" 

흑의인은 나직한 음성으로 답했다. 

"천화루에 계시오." 

여문송은 잠시 입을 닫았다. 한참 후에야 그는 가느다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 

다. 

"당신들은 정말 대단하군. 이 조화성을 마치 안방인 듯 착각하고 들어오다니 말이오 

." 

흑의인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그려졌다. 

"낙형은 여형을 매우 만나보고 싶어하시오." 

"갑시다." 

여문송은 몸을 돌려 먼저 주루를 나섰다. 흑의인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 

이 향하는 곳은 천화원이었다. 

천화원의 후원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기방(妓房)에 중년인이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 

었다. 그는 다름 아닌 낙수범이었다. 

문이 열리며 흑의 중년인과 여문송이 함께 들어섰다. 

낙수범은 반갑게 몸을 일으키며 양손을 벌렸다. 

"어서 오게, 매제." 

여문송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동안 낙수범을 응시했다. 잠시 후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랑이 입 속으로 스스로 들어오다니... 너무 대담하군요, 형님!" 

"하하! 나 낙수범이 두려움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무림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을 것 

이네." 

낙수범은 대소를 터뜨리며 여문송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게." 

그도 여문송의 맞은편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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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송을 데려온 흑의 중년인도 한쪽에 자리잡고 앉았다. 여문송은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분은 누구신지......?" 

"아! 인사하게, 담형이라고 나와는 아주 친한 분일세." 

"담오라 합니다." 

중년인 담오는 가볍게 몸을 일으키며 포권했다. 여문송의 안색이 더럭 굳어졌다. 

'요북사도가 아닌가!'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담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요북 

사도 담오는 대막제일도라 불리는 흑사도법(黑 刀法)의 달인이 아니던가! 

여문송은 급히 마주 포권했다. 

"여문송이외다." 

대충 수인사가 끝나자 장내에는 잠시 침묵이 깔렸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여문송이 

었다. 그는 낙수범을 바라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형님을 만난 것은 반갑지만... 형님께서 단순한 일로 날 찾은 것 같지는 않군요." 

"아! 너무 경계하지 말게." 

낙수범은 손을 내저으며 미소지었다. 그는 생각난 듯 물었다. 

"소취는 잘 있나?" 

소취는 낙수범의 누이이자 여문송의 아내였다. 

여문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낙수범은 나직이 헛기침한 후 서두를 꺼냈다. 

"내가 아우를 찾아온 것은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서네." 

그는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여문송에게 하나의 두루말이를 내밀었다. 

"우선 이것부터 읽어보게. 우리의 계획서일세." 

"......?" 

여문송은 의혹의 표정으로 두루말이를 받아 펼쳐보았다. 

두루말이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의 안색은 눈에 띄게 경직되어 갔다. 잠시 후 그 

는 두루말이를 접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이... 이제 보니... 형님은 정도 연합맹의 일원이시군요?" 

그의 안면은 무섭게 굳어져 있었다. 

낙수범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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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네." 

여문송은 그를 주시하며 경직된 음성으로 물었다. 

"나보고... 조화성을 배신하라는 것입니까?" 

"정의를 위한 길일세." 

여문송은 참지 못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용인할 수 없습니다. 조화성은 내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곳입니다." 

"하나 악한 곳일세." 

낙수범은 여전히 담담한 모습이었다. 

여문송의 안면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도저히 낙수범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 

었다. 간신히 분노를 억제한 채 그는 냉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형님, 소취를 봐서 형님을 그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서 이곳에서 나가십시오!" 

그때였다. 문득 등뒤가 뜨끔해지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요북사도 담오의 칼이 닿아 

있었다. 

담오의 음산한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함부로 떠들지 마라. 여문송." 

여문송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분노와 불신이 찬 그의 눈은 낙수범을 무섭 

게 노려보고 있었다. 

낙수범은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문송, 대계를 위한 일이라 어쩔 수가 없네." 

"날 죽이겠단 말입니까?" 

여문송의 눈 꼬리가 파르르 경련했다. 참담한 배신감이 그의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 

다. 

이때 한 가닥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수범을 봐서라도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당신을 이용해야만 하오." 

방 안에 한 인물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여문송은 그를 보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말 

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인물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이 아닌가! 그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이... 이럴 수가......?" 

그는 분노로 범벅이 된 음성으로 여문송을 향해 물었다. 

"저... 저 자는 또 누구요?" 

낙수범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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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 저 분이 바로 정도 연합맹주시네." 

여문송의 안색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는 이것으로써 상대가 무엇을 획책하려는 

지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로 변장하여... 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이오?" 

여문송으로 변장한 정도 연합맹주, 즉 장천린은 여전히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형이 읽은 계획서대로 추진할 것이오." 

"으......." 

여문송의 안면이 경련을 일으켰다. 

"여형의 부친이 아무리 마교의 장로라 해도 이번 일이 진행되면 여형을 용납하지 않 

으실 것이오." 

여문송의 눈에 언뜻 공포가 어렸다. 

"날... 매장해 버리겠다는 것이오?" 

"아니오. 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려는 것이오." 

여문송은 질끈 입술을 악물더니 당치 않다는 듯이 외쳤다. 

"그 계획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오!" 

장천린은 자신감 넘치는 음성으로 말했다. 

"난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할 것이오." 

여문송은 다시 반박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사방의 벽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믿 

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벽면이 마치 껍질처럼 벗겨져 나가고 그 속에서 백의 

를 입은 복면인들이 걸어나왔다. 

한 명, 두 명... 복면인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 수십 명으로 불어났다. 

장천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소문을 들어 알는지 모르겠소. 여형, 이 분들은 천인(天忍)의 고수들이오." 

여문송은 놀란 나머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연속되는 충격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깨가 뜨끔해 지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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