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신산(神算)의 고뇌 (58/87)

제6장 신산(神算)의 고뇌 

연회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웃음소리와 유쾌한 환담, 술 취해 내지르는 고함 등이 어우러져 사태청은 밤새 소란 

스러웠다. 

사태청의 후계자 숙야천릉. 

중인들이 너나할 것없이 술을 권하는 바람에 연거푸 수십 잔을 마시게 되었다. 그는 

평소 술이 센 편이었으나 서서히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종래에는 중심을 잡기 힘 

들 정도로 발걸음이 비틀거렸다. 

취옥교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살며시 부축했다. 

"천릉, 많이 취한 듯 하군요." 

"하하! 오늘 같은 날이야 취해도 관계가 없지 않소?" 

숙야천릉은 사랑스러운 듯 슬며시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취옥교는 그를 끌고 대 

청 밖으로 향했다. 

"그만 마시고 우리 밖으로 나가요." 

숙야천릉은 그녀의 팔에 의지한 채 대청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옥교, 나는 오늘 무척 행복하오." 

취옥교는 얼굴을 살짝 붉힐 뿐이었다. 

"핫핫! 그대가 내 마음을 받아들인 날 말이오. 난 꼭 천하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소. 

숙야천릉은 대소를 터뜨리며 취옥교의 가는 허리를 안았다. 취옥교는 피하지 않은 

채 가볍게 한숨 쉬었다. 

"당신은 너무나 맹목적이에요. 어째서 저 같은 계집에게......." 

숙야천릉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요?" 

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옥교, 당신은 모르오. 옛날부터 당신은 내게 있어 꿈이자 빛이었소." 

"......." 

"지난 수년 간 당신 마음이 내게로 돌아서기를 기다렸으나... 결코 지루해 한 적이 

없었소. 왜냐면 나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오." 

숙야천릉은 취옥교의 나긋한 허리를 힘주어 끌어당겼다. 

"옥교......." 

두 남녀의 눈빛이 부딪쳤다. 숙야천릉의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취옥 

바로북 99 78

교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기분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소?" 

취옥교는 살풋이 눈을 감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뇌리에 떠오 

르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나이였다. 

'천린.......' 

그녀의 청춘을 온통 지배했던 사나이.......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존재는 뇌리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기만 했다. 

세월은 사랑의 쓰라린 상처를 치료하는 가장 큰 약이라 했던가? 너무나 긴 세월이었 

다. 긴 세월의 공백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첫사랑의 추억을 희미하게 지워가고 있었 

다. 

취옥교는 눈을 떴다. 바로 코앞에 활활 타오르는 숙야천릉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녀 

는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옥교는... 당신이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해요." 

"바보 같은 소리!" 

숙야천릉은 가볍게 일축하며 그녀의 섬섬옥수를 끌어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우린 반드시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오, 옥교." 

취옥교는 그의 넓은 품에 안겼다. 두 사람 사이에는 틈이라고 없었다. 든든한 사나 

이의 품에서 그녀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숙야천릉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취옥교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그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숙야천릉은 그녀의 향기로운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달콤한 향기가 그의 후각을 자 

극했다. 그는 혈관의 피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더욱 강하게 입술을 눌렀다. 그때 

였다. 뺨에 물기가 감촉 되었다. 

"우는 것이오?" 

그는 놀라 입술을 떼었다. 

"아... 아니에요. 기뻐서... 기뻐서 그래요." 

취옥교는 도리질하며 그의 목을 껴안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그의 입술을 

찾았다. 입술이 맞닿자 그녀는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듯이 가볍게 입을 벌렸다. 

숙야천릉은 젊은 사내였다. 여인의 입술의 열리자 전신의 피가 끓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거칠게 입술을 탐하며 그녀의 달콤한 설육(舌肉)을 찾았다. 처음에는 

달아날 듯하던 취옥교의 혀가 드디어 그에게 화답해왔다. 두 사람은 금세 한 덩이로 

엉긴 채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 아래 열렬한 입맞춤은 오래도록 계속 되었다. 화원의 꽃나무에서는 진한 꽃향

79 바로북 99

기가 풍기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만은 못했다. 

취옥교도 젊은 여인이었다. 입맞춤이 점점 더 격렬해지자 그녀의 몸도 뜨겁게 달아 

올랐다. 

"사랑하오, 옥교......." 

그녀의 귓전에 뜨거운 입김과 함께 사랑의 고백이 울려왔다. 취옥교의 눈꼬리에 다 

시금 눈물이 맺혔다. 

'안녕... 천린. 이제는 영원히 당신을 잊어야 하는군요.......' 

숙야천릉은 더욱 강하게 그녀를 껴안고 있었다. 

금불 숭의겸은 창문을 열어놓은 채 뒷짐 지고 서있었다. 그의 모습은 산처럼 묵중해 

보였다. 

그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번져 있다. 소리장도로 알려진 무서운 웃음이다. 그 

의 이런 웃음에 쓰러져간 무림인들이 그 얼마인가? 

숭의겸의 두툼한 입술이 움직였다. 

"살다보면 인생이란 희극이란 생각에 우스워질 때가 있지." 

그의 가느다란 눈이 춤추고 있었다. 

"아무리 튼튼히 지은 집도 조그만 불씨 하나에 소멸되는 수가 있거든." 

입가에 어린 미소는 점점 더 짙어져 갔다. 그러다 문득 눈빛이 침잠해졌다. 눈을 반 

개한 채 상념에 잠겼다. 

'언제부터인가? 성주는 원대한 야망을 뒤로 미뤄둔 채 복수의 칼만 세우고 있었다.' 

숭의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태사독이 죽은 지금 하늘 아래 적수는 오직 사인뿐 

이다. 무영과 신산, 그리고 숙야염과 당선종.......' 

그의 눈에서 괴이한 광채가 번뜩였다. 

그때였다. 휙! 하고 창밖으로 무엇인가 스쳐갔다. 숭의겸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저 멀리 암천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인영이 작은 점으로 보였다. 

숭의겸은 손바닥을 펼쳤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쪽지가 놓여 있었다. 

<묘시(卯時)> 

쪽지에 쓰여진 글자는 단 두 자였다. 

"묘시라......." 

숭의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연기가 나며 쪽지가 타버렸다. 그의 눈에 은은한 

금광이 어렸다. 나타났다 사라진 정체불명의 인영과 그가 남긴 쪽지는 대체 무엇을

80 바로북 99

의미하는 것인가? 

무림(武林)에 몸담은 자 아무에게나 물어 보라! 

과연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단체는 누구인지? 

-조화성(造化城). 

가장 강한 고수들의 집합체는? 

-오성단(五星團). 

조화성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지상최대의 단체다. 조화성의 영향력은 전무림을 짓 

누르고 있으며 아무도 감히 그들의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성단은 무엇인가? 

황성마건(黃星魔巾). 

야우혈성(夜雨血星). 

태극검상(太極劍霜). 

유성잠(流星潛). 

호면백수(虎面百獸). 

오성단은 이들 다섯 개의 특수한 집단을 말한다. 

그들은 지난날 무영(無影) 고검령이 친히 키운 단체였다. 특이한 것은 단체에 속한 

개개인의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조직이 만든 힘은 상 

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지난 이십여 년 간 신산 제갈사가 조화성과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오성 

단의 힘 때문이었다. 신산의 힘의 원천 중 칠 할은 오성단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휘이이이잉!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해의 벌판. 

벌판 위에 육인이 우뚝 서있다. 백극빙모산의 웅장한 자태가 눈보라 저편으로 검은 

장벽처럼 보이는 언덕이었다. 

중앙에는 오순 가량으로 보이는 노인이 서있었다. 반백의 머리칼을 단정히 묶은 청 

수한 용모였다. 그의 두 눈은 깊이를 모르는 지혜의 샘처럼 보였다. 

그가 바로 천하제일뇌(天下第一腦)로 불리는 신산 제갈사였다. 

지금 그의 주위에 우뚝우뚝 서있는 오인은 오성단의 황성마건 단주 육자경을 위시하 

여 야우혈성의 광무염, 유성잠의 신창(神槍) 단천굉, 태극검상의 흑묵룡(黑墨龍), 

호면백수의 수뇌 뇌호(雷虎) 대독관(垈獨官) 등이었다. 

놀라운 일이다. 

81 바로북 99

오성단의 단주가 빠짐없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신창 단천굉은 구레나룻을 기른 기골이 장대한 청년으로 등에 세 자루의 단창을 교 

차하여 메고 있었다. 과거 그는 만가산에서 장천린을 마차에 태워 절벽에 떨어뜨리 

려 한 적이 있었다. 

그가 바로 오성단 중 유성잠의 단주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얼굴이 숯처럼 검은 청년은 어울리지 않게 백의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 태극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그가 바로 태극검상의 수뇌 흑묵룡이었다. 

키가 팔 척에 가까운 거인. 

얼굴에는 호면구(虎面具)를 썼으며 이마에 왕(王)자가 쓰여진 인물은 호면백수의 수 

뇌 뇌호 대독관이란 사나이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해의 오지에 오성단의 수뇌와 신산 제갈사 

가 한꺼번에 나타나다니? 

"......." 

제갈사는 지혜로운 눈으로 맞은편에 거대한 장벽처럼 버티고 서있는 백극빙모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침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준비는?" 

뒤에 서있던 신창 단천굉이 대답했다. 

"완료됐습니다. 영주님의 명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갈사의 입가에 신비한 웃음이 어렸다. 그는 광무염을 돌아보았다. 

"무염." 

"넷!" 

"네가 맡은 일은?" 

광무염은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금불은 제가 배신했음을 완전히 믿고 있습니다." 

제갈사는 나직이 웃었다. 

"금불은 그렇게 경솔한 자가 아니다. 하나 그가 널 믿든 안 믿든 관계가 없다." 

무슨 소리인가? 제갈사의 말과 행동은 도무지 범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숙야염에게 경쟁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늘밤 묘시에 우리가 

쳐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는 슬쩍 빠져줄 것이다." 

제갈사의 말에는 현기가 담겨져 있었다. 

"그는 숙야염을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에 최대한의 타격을 입게 되 

기를 바랄 것이다. 후후! 만일 숙야염이 죽는다면 강력한 경쟁자 한 명이 사라짐으

82 바로북 99

로 그는 대단히 좋아할 것이다." 

제갈사의 말은 차분하게 이어졌다. 

"이번 싸움에서 그를 비롯한 조화성 고수들이 불참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네 임무는 

성공한 것이다." 

제갈사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불렀다. 

"천굉." 

"넷." 

"다시 한 번 모든 상황을 점검해 보아라." 

단천굉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다음 순간 그의 모습은 눈보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저 어깨를 슬쩍 흔들었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제갈사는 그칠 줄 모르고 휘날리는 눈보라를 응시했다. 지금 그의 심중에는 여러 가 

지 생각이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큰 모험을 무릅쓰고 숙야염을 치려는 이유는 숙야염이 사라짐으로써 염 

무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 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제갈사의 깊고 깊은 책략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한 목적? 그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제갈사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최종 목적은 무영 고검령을 끌어내기 위함이지. 지난 십 년간 그와 나는 소식이 단 

절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서로를 너무 믿어왔다. 아니 무영... 그는 날 너무 믿었 

다.' 

제갈사의 눈에 그늘이 어렸다. 

'하지만 이제 내 힘도 벽에 부딪쳤다. 머리 하나만으로는 수백 배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조화성을 더 이상 상대하기가 벅차다.' 

제갈사의 고뇌는 바로 이것이었던가. 

'천하에서 오직 고검령만이 염무를 꺾을 수 있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나만이 안다. 

이십 년 전 그의 능력은 염무와 백중지세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느낄 수 있다. 고검령의 자질로 보아 그는 분명 염무의 위에 

있을 수 있다.' 

제갈사는 휘날리는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성단을 동원한 것은 고검령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오성단을 키운 것은 무영이다. 

83 바로북 99

이번 싸움에서 숙야염을 꺾는다 해도 적어도 오성단의 반 이상은 희생될 것이기 때 

문이다.' 

제갈사는 눈을 감았다. 

'최후의 고육지계다. 무영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제갈사의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무영.......' 

제갈사는 내심 중얼거렸다. 

정말 묘한 느낌이었다. 그는 정작 염무에게는 그다지 경쟁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한 

데 유독 무영 고검령에게는 강한 경쟁심리를 느껴왔다. 그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 

는 일이었다. 

염무가 무(武)의 천재라면 그는 문(文)의 천재다. 

그런데 무영은 문무를 겸비한 천재였다. 놀랍게도 그는 염무의 무와 신산의 문을 함 

께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천하인들은 항시 무영과 신산을 한데 묶어 말한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을 

사귀었으면서도 정작 무영에 대해 그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토록 알아내 

려 머리를 써봤지만 결국 아무 것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종국에 이르러 그는 무영의 이름이 고검령이란 사실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무영, 당신이 나와 십 년 이상 헤어져 있지만 않았더라면 염무와의 싸움은 벌써 결 

론이 났을 지도 모르오.' 

제갈사의 희고 부드러운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분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느끼지 못할 괴이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 이곳은 북해였다. 

여인은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의 두 눈은 사슴을 닮아 있었다. 그런 여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두 눈은 뜨거웠 

다. 

여인 취옥교,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숙야천릉의 시선에 방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 

꼈다. 뿐만 아니라 한없이 그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감정이 그녀를 수줍 

게 만들었다. 

노을 빛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이 아래로 떨어졌다. 숙야천릉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 

게 끌어당겼다. 

취옥교는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겼다. 숙야천릉의 손은 뻗어와 그녀의 달아오른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 

84 바로북 99

취옥교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사내의 손길이 닿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떨려 

왔다. 숙야천릉은 다른 손을 뻗어 그녀의 상의 단추를 끌렀다. 

단추가 두 개째 열리자 앞섶이 살며시 벌어졌다. 

옷자락 사이로 뽀얀 젖가슴의 일부분이 보였다. 터질 듯 무르익은 젖가슴이 비단천 

으로 소중히 감싸여져 있었다. 

"갖고 싶소." 

숙야천릉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는 더운 입김을 뿜으며 용기를 낸 듯 손을 움직였다. 취옥교는 온몸이 굳어버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스르르....... 

상의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렸다. 

취옥교는 흠칫 몸을 떨었다. 아직까지 그에게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몸이었다. 

그녀는 거절하려는 듯 아미를 치켜올렸다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아버렸다. 

숙야천릉의 손이 앞가슴에 닿았다. 잠시 후 비단천이 당겨졌다. 약간은 거친 동작이 

었으나 취옥교는 왠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그가 하는 대로 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다만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을 뿐이다. 

숙야천릉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은 충혈 되어 보였다. 그는 뚫어져라 취옥교의 

젖가슴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모습이었다. 

조금도 처지지 않았을 뿐더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유방이었다. 숙야천릉은 떨리는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취옥교는 몸을 가늘게 떨었으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손가락 끝에서 작은 돌기가 만 

져졌다. 그는 그것을 꼬집어 비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참고 가볍게 어루만졌다.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취옥교는 형언할 수 없는 전류와 같은 느낌이 돌기를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느 

끼며 신음을 발했다. 갑자기 뜨거운 입김이 돌기에 느껴졌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숙야천릉의 입이 그녀의 돌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꼭 다문 취옥교의 입술이 벌 

어지며 안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숙야천릉은 돌기를 입에 넣는데 성공했다. 그는 힘껏 돌기를 품었다. 

"아......." 

여인의 동체는 활처럼 꺾였다. 여인의 팔이 허공을 몇 번인가 젓다가 사내의 목을 

85 바로북 99

힘차게 휘감았다. 

남과 여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었다. 

숙야천릉은 취옥교를 번쩍 안아 침상으로 걸어가 그녀를 내려놓았다. 잠시 취옥교를 

내려다보던 그는 서서히 옷을 벗었다.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조각한 듯 훌륭하게 발달된 남성적인 근육이 드러났다. 취옥 

교는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할딱일 뿐이었다. 

숙야천릉은 취옥교의 옷을 벗겨냈다. 취옥교는 거부하지 않고 그의 손길을 도왔다. 

이윽고 그녀는 전라가 되었다. 

눈을 꼭 감은 채 상기된 얼굴로 가슴을 들먹이는 여인. 숙야천릉은 세상 모두를 얻 

은 것 같은 기분으로 침상 위로 올랐다.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조각배는 파도에 따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파도는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조각배를 

흔들어 댔다. 파도는 여인의 가슴을 수없이 간지럽혔으며 여체의 민감한 모든 부분 

을 적시고 또 적셨다. 

여체는 경련을 일으키며 흐느낌을 터뜨렸다. 

여체는 무르익어 있었다. 사 년 이상이나 억제해왔던 난숙한 여체의 정염은 화려한 

불꽃을 일으키며 타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파도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무섭게 조각배를 덮쳤다. 

"아......." 

합일(合一). 완전한 합일은 영과 육을 하나로 만들었다. 

절정. 해일이 조각배를 정상으로 밀어 올렸을 때 절정을 느낀 듯 여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바로 그때였다. 

쾅... 꽈르르르릉!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이 울렸다. 동시에 바닥과 천장, 사면의 벽이 무너질 듯 진동 

했다. 

우르르르... 릉! 

"헉!" 

숙야천릉은 대경하여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보라! 창문에 시뻘건 화광(火光)이 비치는 것이 아닌가! 

숙야천릉은 땀에 젖은 몸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으켰다. 그 바람에 그의 밑에 깔 

려있는 취옥교도 화들짝 놀라 얼른 가슴을 가리며 일어나 앉았다. 

숙야천릉은 뛰다시피 창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86 바로북 99

"아......!" 

그는 넋을 잃고 말았다. 

화광충천(火光沖天)! 

사태청이 있는 빙양곡 전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이럴 수가!" 

숙야천릉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화르르르릉! 

북해 사태청은 불바다였다. 

화염이 천지를 삼키려는 듯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으며 그 가운데 전각과 대전, 화려 

한 건축물들이 굉음을 내며 쓰러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불의 지옥이었다. 

펑! 퍼펑! 

밤하늘에서 길게 꼬리를 끌며 날아온 화탄(火彈)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며 사태청 

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오성단 야우혈성의 화기(火器) 전문가들이 특별 

히 제조한 비화탄(飛火彈)이었다. 

타오른다. 천지가 미친 듯이 불타오른다. 

비명! 비명! 

"크아아악!" 

"아아악!" 

심혼을 찢어발기는 듯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사방에서 꼬리를 물었다. 

비화탄의 위력은 실로 가공했다. 수십 장을 날아와 떨어지는 순간 삽시에 주위를 불 

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비화탄이 터지며 사방으로 날아간 불똥은 북해 사태 

청의 고수들을 숯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화르르르르... 타다닥! 

아비규환! 

엄청난 불이 북해 사태청을 참혹하게 휩쓸어 갔다. 엎친 데 덮쳤다고나 할까! 화공( 

火攻)에 이어 물밀 듯이 쳐들어 온 수백 명의 오성단 고수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태청의 고수들을 무차별로 도살하고 있었다. 

"크아악!" 

맹렬히 타오르는 불의 광란 속에서 사태청의 고수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어찌 이런 날을 꿈엔들 짐작했겠는가? 북해의 제왕이라던 사태청은 오성단에 의해 

처절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87 바로북 99

"......!" 

숙야염은 차갑게 얼어붙은 눈에서 새파란 광망을 뿜으며 장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사태청의 최고고수들이 일사불란한 자세로 시립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신산 제갈사와 오성단의 다섯 수뇌가 우뚝 선 채 그를 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냉철하고 이지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숙야염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를 억 

제하기 힘든 듯 입술을 경련하고 있었다. 

"제갈사... 네가!" 

음성은 차가웠으나 격분이 가득 실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갈사의 청수한 얼굴 

에 습관적인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십 년 만인가? 숙야염." 

그의 음성은 부드럽기만 했다. 

"네가 감히 사태청에 쳐들어오다니......." 

제갈사는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삼 년 전부터 자네는 자네의 영역을 떠나 중원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늘 

의 결과를 불러 일으켰지. 다시 말하면 염무와 관계를 맺은 것이 첫 번째 실수이고, 

두 번째는 중원을 넘본 것이 화근이었다." 

숙야염의 백미가 눈에 띌 정도로 흔들렸다. 

"신산, 네가 북해에 들어선 이상... 나 숙야염은 명예를 걸고 널 돌려보내지 않겠다 

." 

그는 돌연 옷자락을 떨치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위이잉! 

그는 허공 중에서 가공할 장력을 뻗었다. 그의 장력에는 뼈를 엘 듯한 한기(寒氣)가 

내포된 채 회오리치며 날아왔다. 

제갈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광무염과 단천굉이 대갈을 터뜨리며 허공으로 신형 

을 솟구쳤다. 

"차앗!" 

삼인의 공격이 허공에서 격돌하는 순간 천번지복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가공할 

반탄력에 땅가죽이 뒤집히고 주위의 공기가 회오리쳤다. 

숙야염은 신음을 터뜨리며 일 장 가량 퉁겨나갔다가 지면에 떨어졌다.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져 있었다. 

단천굉은 득의의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후후! 숙야청주. 당신의 무공은 개인적으로는 적수가 없을지 몰라도 우리 오성단 

수뇌 중 두 명이면 능히 당신을 꺾을 수 있소." 

88 바로북 99

숙야염의 안면이 무섭게 굳어졌다. 동시에 그의 두 눈은 투명한 얼음처럼 변했다. 

"훗훗... 훗......." 

그의 얄팍한 입술 사이로 괴소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 

해질 만큼 섬뜩한 느낌이 들게 했다. 

"과연 그런지 두고 보겠다." 

파라라라락! 

그의 장포가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동시에 서릿발같은 기운이 그의 전 

신으로부터 시퍼런 날을 세우고 뻗쳐올랐다. 실로 으스스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단천굉과 광무염은 섬뜩한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물 

론 그렇다고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숙야천릉은 앞을 가로막는 오성단의 고수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며 부친이 있는 

빙백전을 향하고 있었다. 

꽈르릉! 

폭음이 잇달아 터져 오르는 격전장을 가로지르며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를 가로막는 오성단 고수들의 무공은 상상 밖이었다. 

'이놈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하나같이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다.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쐐액! 

옆구리로 검이 파고들었다. 그는 호흡을 들이마셔 복부를 응축시켜 검을 피한 후 소 

매를 휘둘렀다. 

싹! 

소맷자락은 강철처럼 빳빳해져 오성단 고수의 목을 쳤다. 

촤아악!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지며 오성단의 고수는 목이 잘린 채 벌렁 넘어갔다. 비명조차 

지를 틈이 없었다. 한 명이 쓰러졌으나 달려드는 자들은 점점 더 수효가 늘어나기만 

했다. 

"비켜라! 막는 자는 죽는다!" 

펑! 

"크으윽!" 

쌍장을 부챗살처럼 뻗어내자 다시 두 명의 고수가 가슴을 움켜쥐며 날아갔다. 그러 

나 오성단의 고수들은 그 자리를 메우며 쉴 새 없이 공격해왔다. 

숙야천릉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오성단의 고수들을 밀어 

붙이며 빙백전을 향해 전진했다. 

89 바로북 99

그러나 그것은 바램에 불과했다. 오성단은 빈틈없는 그물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어 

포위망을 뚫기는 좀처럼 용이하지가 않았다. 

이때 누군가가 기세 등등한 음성으로 외쳤다. 

"저 자가 숙야천릉이다! 숙야염의 자식이다!" 

"죽여라! 놈이 죽으면 사태청은 사기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와아!" 

오성단의 고수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더욱 무시무시한 공격을 가했다. 숙야천릉 

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어림없는 소리!" 

슈슈슉! 

그는 기쾌무비하게 양손을 뻗었다. 

"크아악!" 

한 명의 고수가 복부가 터지며 날아갔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오 

성단의 고수들은 조금도 기세를 늦추지 않고 덤벼들었다. 

장내는 그야말로 지옥도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콰콰쾅! 

빙백전에서 폭음이 잇따라 울렸다. 

숙야염과 오성단의 수뇌인 광무염과 단천굉 삼인의 싸움은 이미 수십 초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세는 숙야염의 우세였다. 

그는 얼음장같이 냉혹한 눈빛으로 광무염과 단천굉을 노려보며 극음(極陰)의 기공으 

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쩌쩌쩡! 

그의 투명한 양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가공할 신위가 뿜어졌다. 

한편 사태의 추이를 바라보고 있던 흑묵룡이 검을 뽑아 전장에 가세했다. 이제 싸움 

은 삼 대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야염은 조금도 밀리는 기미가 없었다. 

결국 눈짓을 주고받은 육자경과 태독관이 다시 가세했다. 오성단의 수뇌 오인이 동 

시에 숙야염을 공격하게 되었다. 

우르르르릉! 

빙백전을 뒤흔드는 굉음과 병장기에서 뿜어지는 불꽃이 회오리쳤다. 싸움은 점입가 

경이었다. 

제갈사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상외로구나. 오성단의 수뇌 다섯 명의 합공에도 밀리지 않다니.......' 

90 바로북 99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성단과 사태청의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서로간에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전세는 팽팽한 것 같았다. 

제갈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일 숭의겸이 이 싸움에 빠지고 야우혈성의 비화탄이 아니었다면 승부는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 숙야염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여유 있는 모습이었으나 점차 피로한 기색 

을 드러내고 있었다. 

91 바로북 9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