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장 화공(火攻) (35/87)

제11장 화공(火攻) 

참담했다. 

"으으!" 

옥류향은 입술을 씹었다. 비릿한 혈향(血香)이 그의 비감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 이제 그의 주위에는 불과 삼십여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많던 황성마건이 몰 

살하다시피 한 것이다. 연이어 터진 화포 탓이었다. 

옥류향은 퇴각명령을 내렸다. 한 시라도 빨리 금월산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자의무사들이 그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그들은 죽여도 죽여도 한없이 나타났 

다. 

어디 그 뿐인가? 숲 곳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고, 악랄한 기관매복이 발목을 잡 

아당겼다. 이제 살아남은 것은 고작 이십여 명 뿐이었다. 

옥류향은 탈진상태였다. 나머지 이십여 명도 성한 자라곤 한 명도 없었다. 황성마건 

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역시 인간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살아있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옥류향은 퇴로를 가로막는 자의무사들을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조화성에서 자의를 

입는 무사는 오직 제삼신마전 뿐이었다. 그는 이를 갈았다. 

'태사독, 무서운 놈! 놈의 계획에 말려들었다!' 

옥류향은 자신을 저주했다. 

'바보같이 놈에게 걸려들다니!' 

그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문제는 내가 아니다. 그 분마저 태사독의 계략에 걸려들면... 큰일이다.' 

이때 육자경이 옆으로 다가오며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인! 놈들의 숫자를 추측할 수가 없습니다. 금월산 일대에 천라지망이 펼쳐진 것 

같습니다." 

또다른 무사가 이를 갈며 말했다. 

"대충 잡아도 천 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옥류향은 입술을 깨물었다. 

'태사독, 날 죽일 테면 어디 해봐라. 나도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무사들을 둘러보았다. 황성마건은 하나같이 극심한 피로에 젖어 있었다. 성한 

자라곤 거의 없어 보였다. 모두가 화상을 입거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 상태로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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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향은 다시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밤하늘에 불화살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육 

자경이 치를 떨며 말했다. 

"저 놈의 불화살이 계속 우리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옥류향의 안색이 기이하게 변했다. 문득 바닥의 흙을 한 줌 움켜쥐었다. 

"......?" 

무사들이 의아해 하는 사이 그는 흙을 허공에 뿌렸다. 흙먼지가 강한 바람을 타고 

한쪽으로 날아갔다. 

"남서풍(南西風)이 분다." 

옥류향은 남아있는 황성마건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화섭자에 불을 붙여라."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육자경이 반대했다. 

"대인, 그렇게 되면 우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노출시킨다. 놈들이 불빛을 보고 따라 오도록." 

"무모한 짓입니다!" 

옥류향의 입에서 처음으로 거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닥쳐! 어서 행하라!" 

무사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그들은 체념했다.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다. 

황성마건은 화섭자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이십여 개의 화섭자가 밝혀지자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일렬로 늘어서라. 그리고 남서쪽으로 가며 간격을 넓힌다. 모양은 반월형이다." 

옥류향의 명령에 육자경은 머뭇거렸다. 

"놈들이 따라올 것입니다." 

"따라오라고 해라. 제발 말이다." 

옥류향의 입가에 칙칙한 미소가 어렸다. 

육자경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있다. 대인께서는 허튼 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들었느냐? 전진한다!" 

스스슥! 

이십삼인의 황성마건대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걸어가면서 서로의 간격을 넓 

혔다. 잠시 후에는 반월형의 진세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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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향은 황성마건대의 간격이 상당히 벌어진 것을 보자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띄었 

다. 

"흐흐! 태사독. 네가 금월산에 천라지망을 구축했다면 나는 이곳을 초열지옥(焦熱地

獄)으로 만들겠다!" 

그는 곧 음성을 높여 명령했다. 

"남서풍이 분다! 우리는 지금 바람을 등지고 있다. 이 정도 강풍이면 불길은 걷잡을 

수 없게 번질 것이다. 불을 놓아라!" 

비로소 무사들은 옥류향의 의도를 깨달았다. 

'역시 대인이시다!' 

그들은 두말 없이 화섭자를 바닥에 갖다댔다. 숲속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더구나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됐기 때문에 불이 붙자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 

했다. 

화르르륵!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마침 불어오는 남서풍이 불길을 놀라운 기세로 

확산시켰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옥류향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태사독, 네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다!" 

바람. 남서풍. 그리고....... 

밤이 깊었다. 

그러나 주당(酒黨)들에게 밤이란 없다.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문도와 단위제의 주위에는 술병이 수도 없이 늘어져 있다. 

술병을 나르던 점원은 지친 나머지 아예 술항아리를 들고 탁자 옆에 앉아 버렸다. 

그는 술병이 비면 채워주고 다시 비면 채워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술 

귀신을 만난 셈이었다. 

어느덧 사문도는 취기가 올라 있었다. 반면 단위제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과연 

술고래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헛헛! 자네 꽤 취했군. 얼굴이 마치 기생이 화장한 것처럼 보이는군." 

사문도는 히죽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어르신. 아직 백 병은 더 마실 자신 있습니다." 

"쯧! 자네가 아무리 많이 마신다해도 날 이길 순 없네. 내게는 수십 년 주당의 관록 

이 있거든. 헛헛헛!" 

술병이 빈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점원이 술항아리 곁에서 끄덕끄덕 졸 

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봐, 점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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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은 술항아리를 껴안고 오리무중이었다. 

"이놈아!" 

뻑! 

술병이 점원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옛, 어서 옵쇼!" 

점원은 벌떡 일어서더니 꾸벅 절을 했다. 

"어서 오기는 뭘 어서 와! 술병이나 채워라!" 

잠시 어리둥절하던 점원은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내심 투덜거렸다. 

'이 술귀신들은 잠도 없나? 아이고 졸려!' 

물론 감히 입밖에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다시 술병을 채워주었다. 

"끄윽! 정말 기분이 좋군." 

단위제는 트림을 했다. 그의 얼굴에는 흥이 잔뜩 올라 있었다. 

"헛헛! 이럴 때 용대인이 있으면 더욱 기분이 좋을 텐데." 

"용대인은 누구입니까?" 

단위제는 엄지손가락을 내세웠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지. 헛헛! 자네보다 고작 한두 살 많지만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네." 

사문도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젊은 사람이란 말인가? 이 노인이 존경을 품고 있는 대상이?' 

그는 불현듯 금월사에서 만난 장천린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도 젊은 사람이었는데.......' 

사문도는 자신이 만난 장천린이 단위제가 말하고 있는 용대인과 동일한 사람이란 사 

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사문도는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아니, 입안에 털어 넣은 후 단위제를 향해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단위제는 히죽 웃었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고름을 짜는 일이지." 

"예?" 

사문도는 어리둥절했다. 

"하하핫! 흉악범을 체포하는 일을 한다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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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도는 탄성을 발했다. 그는 곧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 

갑자기 단위제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문도의 질문으로 영원히 잊고만 싶었던 

서글픈 과거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술병을 잡더니 목울대를 움직이며 단 

숨에 비워버렸다. 

탕! 

소리나게 술병을 내려놓은 그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게도 부모님이 계셨지. 누이동생도 하나 있었다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어 

." 

단위제의 얼굴에 회한의 표정이 어렸다 그는 시선을 허공으로 던지며 말을 이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지.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바보 같은 분이었네. 도망도 안 가고 

의젓하게 있다 그만 참수형을 받고 효수되어 버렸네. 어머님은 그 충격으로 자살하 

셨고 누이동생은 실종되었다네." 

"......!" 

사문도는 그만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난 달랐지. 눈치가 빨라 재빨리 도망쳐 살아남을 수 있었지. 으하하하하!" 

단위제는 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슬에 젖어 있었다. 

"만일 누이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사십이 넘었을 거네." 

단위제의 음성은 가라앉고 있었다. 

"매우 총명하고 아름다웠는데 말이야." 

그는 말끝을 흐리며 새 술병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술병을 내리며 갑자기 

주먹을 내밀었다. 

"이봐, 사가(射哥) 아이야, 이걸 봐라." 

주먹이 펼쳐졌다. 그의 손바닥에는 주사위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단위제는 다시 주 

먹을 움켜쥐었다. 

"몇 개냐?" 

사문도는 의아했으나 담담히 말했다. 

"한 개요." 

"틀렸다. 두 개다." 

단위제는 주먹을 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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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도는 흠칫했다. 과연 그의 손바닥에는 주사위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따르르륵! 

단위제는 두 개의 주사위를 탁자 위에 굴렸다. 그런데 굴러가던 주사위가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난 것이 아닌가! 

"......." 

사문도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단위제의 동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단위제는 

세 개의 주사위를 하나씩 쌓았다. 분명 세 개에 불과했던 주사위가 탑이 되었을 때 

네 개로 늘어나 있었다. 

단위제는 탑을 허물었다. 바닥에 흩어진 주사위는 다섯 개가 되었다. 

'......!' 

사문도는 눈을 크게 떴다. 문득 단위제가 버럭 외쳤다. 

"에이, 빌어먹을! 모두 사라져라." 

탁! 

단위제는 주사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사문도는 그의 손을 주시했다. 단위제의 손바닥이 들어 올려졌다. 그런데 탁자 위에 

분명 있어야 할 주사위가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가! 

사문도는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도저히 

속임수를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감탄하며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단위제는 히죽 웃었다. 

"이 빠른 손으로 나는 관리가 되었지. 잘못된 세상을 고쳐 보려고 말일세." 

"......." 

단위제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평생 두 번째로 자네에게 과거지사를 털어놓은 것이네." 

그는 사문도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너는 듣기만 하고 네 이야기는 안 할 셈이냐?" 

사문도는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에 곤고한 빛이 서리고 있었다. 

"단도독님, 부모 없이 태어난 인간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냐?" 

"후후후......." 

사문도의 얼굴에 짙은 고독이 깔렸다. 단위제는 내심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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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군.' 

"좋다. 그만해라. 서글픈 이야기를 하면 술맛이 떨어진다." 

단위제는 손을 휘휘 저으며 빈 술병으로 졸고 있는 점원의 이마를 때렸다. 

"야 임마, 여기 술 더!" 

"아이쿠!" 

점원은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죽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르신, 제 머리가 무슨 동네북인 줄 아십니까? 아이구!" 

"음?" 

단위제는 무의식중에 한 짓이었으므로 그의 항의(?)에 멈칫하더니 너털웃음을 터뜨 

렸다. 

"헛헛! 미안하네. 앞으로는 때리지 않겠네. 대신 코를 비틀어주지." 

"......!" 

점원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그는 내심 온갖 욕설을 다 퍼붓고 있었다. 그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 이었다. 

'젠장! 이 술귀신들을 잡아가는 염라대왕은 없나?' 

그는 고개를 술항아리에 처박고 술을 퍼냈다. 

이때였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던 사문도의 안색이 변했다. 

"저 곳은!" 

불이었다. 

성밖의 산에서 시뻘건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사문도는 탁자를 치며 물었다. 

"점소이, 저 산은 무슨 산인가?" 

점원은 술항아리에서 고개를 들다 깜짝 놀라 외쳤다. 

"금월산... 억! 불이 났군요!" 

이때 단위제도 그 불을 보았다. 그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굉장한 불이군. 산을 온통 다 태울 것 같은데?" 

사문도는 벌떡 일어섰다. 그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저 곳에 양부님의 유골이 있지 않은가!' 

그는 단위제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단도독님, 저 산에 다녀와야겠습니다." 

획! 

그는 신형을 날려 창밖으로 뛰어 내렸다. 너무나 갑작스런 행동이었으므로 단위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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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말도 붙이지 못했다. 그는 화염에 싸여 있는 금월산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 

렸다. 

'자연적인 산불이 아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불을 냈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명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갑자기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점소이, 저 산이 무슨 산이라고 했지?" 

점원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금월산입니다요." 

"금월산이라고!" 

단위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아뿔싸! 저 산에 용대인이 있지 않은가?'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원노제가 내일 저곳에서 용대인을 만난다고 했었다.' 

그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탁자를 내리 친 순간 이미 쏜살처럼 창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점원은 깜짝 놀라 외쳤다. 

"나으리, 술값을......." 

딱! 

무엇인가 날아와 이마를 때리는 바람에 그는 벌렁 넘어갔다. 

"아이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점원은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알고 울상을 지었다. 그런데 

이마를 때린 것은 다름 아닌 은덩어리가 아닌가? 그것도 술값을 열 번은 치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점원의 입이 죽 찢어졌다. 

'아이고, 수난을 당했지만 보람있는 수난이로고!' 

휘이이잉! 

강풍이 불고 있었다. 강풍을 타고 한번 붙은 불길은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었다. 

금월산은 삽시에 화간지옥(火間地獄)이 되고 말았다. 

엄청난 불기둥이 수십 장씩 치솟아 오르며 금월산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금월산 동쪽에 있는 아담한 산장(山莊). 

그 곳에도 화마(火魔)가 밀려들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으로 미루어 불길이 산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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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이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했다. 

지금 산장 앞에는 수십 명의 인영이 서있었다. 

선두에 서있는 인물은 조화성 제삼신마전의 전주 태사독이었다. 그는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불길을 바라보며 만면에 분노의 빛을 띄고 있었다. 

"옥류향... 이놈." 

그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금월산은 이제 불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사방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불길이 번지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였다. 불길로 인해 열풍(熱風)이 회오리치고 있어 벌써부터 옷 

이 눌고 있었고, 피부에 뜨거운 통증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영구살의 우두머리인 탁무종이 다급하게 말했다. 

"전주님, 수하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남서풍이 불고 있습니다. 잠시 후면 북동 방향에 배치된 수백 명의 수하들이 몰살 

할 것입니다." 

태사독의 수염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가? 평 

생을 통하여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던가? 

"이미 그쪽에 배치했던 포대(砲隊)는 오천 근의 화약이 터지는 바람에 이백 명 이상 

이 죽었다는 보고입니다." 

태사독의 눈에서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는 칼칼한 음성으로 말했다. 

"철수시켜라." 

"예!" 

탁무종은 황급히 돌아서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수하는 즉시 철궁(鐵弓) 

을 당겨 밤하늘을 향해 쏘았다. 

슈우우욱! 

밤하늘에 불화살이 날아가더니 터졌다. 불꽃이 폭죽처럼 터졌다. 그것은 철수하라는 

신호였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태사독의 안면은 연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잠시 후 산장으로부터 한 명의 자의무사가 달려와 다급한 음성으로 보고했다. 

"전주님! 상관수아가... 탈출했습니다." 

태사독의 안면이 굳어졌다. 

"뭣이? 무슨 소리냐?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몸이거늘?" 

자의무사는 사색이 된 채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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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무종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급히 물었다. 

"용대인은 지금 어디 있느냐?" 

무사는 즉시 대답했다. 

"지하실로 옮겼습니다. 그곳에 있습니다." 

태사독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없어진 사람은 또 누가 있느냐?" 

"요지선자 감운경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탁무종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 계집이었구나!" 

비로소 그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영구살에게 명령했다. 

"여섯째! 너는 여덟째와 아홉째를 데리고 그 계집을 추적해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 

다!" 

"옛!" 

자영구살 중 삼인이 일제히 대답한 후 신형을 날렸다. 태사독은 고개 돌려 무섭게 

번져오는 불길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정면으로 놈들을 격멸 해야겠다.' 

그는 시선을 금월사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제갈사는 금월사 쪽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놈을 폭약과 함께 날려버려야겠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탁무종." 

"옛!" 

"너는 자영구살의 나머지 인원과 수하들을 대동하여 옥류향을 추적해라." 

태사독은 음침한 음성으로 못박듯이 말했다. 

"반드시 옥류향의 목을 가져와야 한다." 

탁무종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였다. 그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주님께서는?" 

"금월사로 가겠다. 그곳에서 제갈사의 최후를 구경하겠다." 

탁무종은 산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산장 지하실에 쌓아놓은 화약은 어떻게 합니까?" 

"놓고 떠난다." 

"그럼... 용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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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독의 안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탁무종." 

"예......?" 

"어리석구나.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감운경이 상관수아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안단 

말이냐? 그 계집에게 위치를 알려준 것은 용백군이다." 

"......!" 

탁무종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전주님......." 

탁무종은 가슴을 치고 싶었다. 그는 비로소 용백군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어리석 

게도 그의 연기에 놀아난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었다. 

태사독은 음산하게 말했다. 

"곧 불길이 산장에 붙을 것이다. 용백군은 폭약과 함께 날아갈 것이다. 이건 그가 

내 성의를 무시한 결과니 누구도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떠나라, 탁무종." 

"예!" 

탁무종은 고개를 들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 더 이상 태사독 

앞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즉시 수하들과 함께 출발했다. 

태사독은 금월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갈사, 옥류향. 금월산은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산장 내의 지하실.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장천린과 한 명의 자의무사였다. 

자의무사는 삼십 세 가량 되어 보였는데 날카롭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허리에 

한 자루의 판관필(判官筆)을 차고 있었다. 

그는 낙수범(駱秀凡)이란 자로 자영구살의 세 번째 서열이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는데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그것은 낙수범이 워 

낙 과묵한 성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천린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날 이곳으로 옮긴 것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변수는 조화성에 불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어떤 변수가 일어났단 말인가?' 

그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낙수범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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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는 아까부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낙수범을 바라보며 물었다. 

"낙형, 태전주는 어디 있소?" 

낙수범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장천린은 무뚝뚝한 그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다시 물었다. 

"보아하니 산장의 사람들이 모두 떠난 듯한데 어째서 낙향과 나만 이곳에 남은 것이 

오?" 

낙수범은 눈살을 찌푸렸다. 

"용대인, 나는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전주께 

직접 물어보시오." 

장천린은 입맛을 다셨다. 

'무척이나 무뚝뚝한 친구로군.' 

잠시 후 그는 다시 물었다. 

"낙형은 언제 조화성에 가입하였소?" 

"삼 년 전." 

장천린은 탄성을 발했다. 

"삼년 만에 제삼신마전의 자영구살 중 서열 삼위가 되었다면 대단하구려! 그럼 전에 

는 무얼 했었소? 조화성에 몸담기 전 말이오." 

낙수범의 입가에 고소가 어렸다. 

"용대인은 생각보다 말씀이 많군요." 

"하하, 같이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있겠소? 더욱이 당신은 매우 매 

력이 있는데 말이오." 

낙수범은 잠시 그를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어렸다. 

"우리 집은 조상 대대로 목장을 경영해 왔소이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호남의 

기전령에서 아버님을 도와 목장을 경영했었소." 

장천린은 뜻밖이란 느낌이 들었다. 

"십 년 전, 호남 지방을 휩쓴 돌림병으로 인해 수천 마리의 우마가 몰살해 버렸소. 

그때 아버님께서는 낙심한 나머지 자살하고 말았소." 

"......!" 

"당시 나는 어린 누이동생을 데리고 중원을 떠돌며 온갖 고생을 경험하였소. 그러던 

중 삼 년 전 조화성에 가입하게 되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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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린은 점점 그에게 흥미를 느꼈다. 

"흠, 굳이 조화성에 가입한 이유가 있소?" 

낙수범은 힐끗 그를 응시했다. 

"누이동생 때문이었소."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누이가 사랑한 남자가 조화성에 있었소. 지금은 나의 매제로 신안수사(神眼秀士) 

여문송(如文松)이라 하지요. 그의 설득으로 가입하게 되었소." 

"음." 

장천린은 신음을 발했다. 그는 조화성에 대해 인식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조화성은 단순한 악의 단체만은 아닌 것 같구나. 다만 조직을 악용하는 자가 있을 

뿐... 조직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이 악인은 아니다. 개중에는 정말 악인도 있겠지만 

호걸풍의 인물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탁무종이나 이 자만 해도 악인이라 할 수 없 

지 않는가?' 

장천린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는 새로운 느낌으로 조화성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는 조화성으로 인해 

무수한 고초를 겪었다. 따라서 조화성에 대해 강한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은 향후 조화성과의 관계에서 일대 전기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천린은 몹시 더운 느낌이 들었다. 옷속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그는 

이마를 문지르다 손등에 땀방울이 묻어난 것을 보고 가슴이 섬뜩해 졌다. 

'......!' 

그는 낙수범을 바라보았다. 

"낙형, 공기가 더워지는 것 같지 않소?" 

낙수범도 이미 그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장천린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 냄새!' 

무엇인가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났다. 그는 지하실을 둘러보다 흠칫했다. 지하실 

의 유일한 출입구 쪽으로부터 연기가 조금씩 밀려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낙수범도 그것을 보았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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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벌떡 일어서며 위쪽을 향해 고함쳤다. 

"위에 누구 없느냐!" 

"......." 

위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낙수범은 진기를 돋궈 다시 고함쳤다. 

그러나 역시 아무도 화답을 보내지 않았다. 

장천린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낙형." 

낙수범은 그를 돌아보았다. 

"아마도 이 산장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을 것이오." 

장천린은 그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하는 것을 보며 계속 말했다. 

"잘은 몰라도 큰 일이 벌어진 것 같소. 산장은 현재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 같소. 

저 연기가 사태를 증명하고 있소." 

"......!"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소." 

장천린은 출입구로 통하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막 계단에 발을 내딛는 순간 

등뒤에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 

판관필이 그의 등에 닿아 있었다. 

"움직이지 마시오, 용대인. 함부로 행동하면 그냥 두지 않겠소." 

장천린은 씁쓸히 웃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어쩌겠다는 것이오?" 

"전주의 명이 없는 한 당신은 이곳을 나갈 수 없소. 또한 당신을 지키는 것이 내 임 

무요." 

장천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다시피 산장은 불길에 휩싸였소. 그리고 우릴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소?" 

아닌게 아니라 지하실 내부는 이제 뜨거운 열기가 확연히 느껴지고 있었다. 더구나 

연기가 계속 흘러들어 숨이 턱턱 막히고 있었다. 마치 뜨거운 욕조 속에 들어가 있 

는 느낌이었다. 

낙수범은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지시가 있을 것이오." 

장천린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 어리석소. 이 지하실이 이 정도로 뜨거워진 걸 보면 주변은 온통 불바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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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오." 

"......!" 

낙수범은 입을 다물었다. 

"태전주의 의도를 모른단 말이오? 그는 날 죽도록 내버려두고 떠난 것이오. 낙형은 

내 동반자로 가엾은 희생양이 된 것이오." 

장천린은 말을 마치고 계단 위로 발을 옮겨 놓았다. 

"움직이지 마시오!" 

등뒤가 화끈했다. 

판관필이 살을 파고든 것이다. 그 바람에 선혈이 흘러내렸다. 장천린은 차갑게 말했 

다. 

"아직도 깨닫지 못했소?" 

장천린은 몸을 돌려 지하실의 한쪽 문을 가리켰다. 그곳은 창고로 통하는 문이었다. 

"저 곳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 모르오?" 

"......?" 

낙수범의 얼굴에 의혹이 어렸다. 지하창고로 쓰이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통하는 문 

에는 자물쇠가 잠겨있었다. 장천린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이곳의 공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이오." 

장천린은 콧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화약냄새가 나고 있소.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저 문 안쪽에 다량의 화약이 쌓여있을 

것이오." 

"......!" 

낙수범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는 문을 노려보며 안면을 경련했다. 

'그렇다. 신산을 상대하기 위해 본성에서 오만 근이 넘는 화약을 가져왔다고 들었다 

. 그 중에 오천 근이 이곳에 남아있다. 그럼 저 곳에 있단 말인가?' 

낙수범은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코끝으로 찌르는 듯한 화약 냄새가 풍 

겼다. 

'틀림없구나!' 

장천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 지체하면 타죽기 전에 화약이 폭발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 나게 되오." 

"......!" 

낙수범의 얼굴이 굳어졌다. 장천린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낙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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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그를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장천린은 계단 위에서 천장에 막혀있는 철판을 밀었다. 

"엇!" 

그는 황급히 손을 떼었다. 출입구를 막은 철문은 벌써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 

바닥이 닿는 순간 달라붙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철문을 여는 것만이 유일한 생 

로였다. 그는 뜨거움을 참으며 힘껏 철문을 밀었다. 

"음!" 

절로 신음이 나왔다. 철문은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그 문은 특수하게 제작되었소. 오직 밖에서만 열 수 있소." 

낙수범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그는 양손을 철문에 대고 밀었다. 혼신의 힘을 쏟 

는 듯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치지직! 

그의 손바닥에서 연기가 났다. 열기로 인해 손바닥이 타 들어간 것이다. 

우지지직....... 

잠시 후 굉음이 일며 철판이 밀려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장천린은 황급히 부르짖었 

다. 

"조심하시오!" 

그 순간 철판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퉁겨 올라갔다. 

화르르르릉! 

출입구가 열리는 순간 시뻘건 불길이 무서운 속도로 밀려 들어왔다. 낙수범은 황급 

히 몸을 뒤로 뺐다. 

한 차례 불길이 밀려든 후에야 희미하게 밖이 보였다. 입구 위쪽은 온통 불지옥이었 

다. 시뻘건 화염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낙수범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용대인, 나가는 지리를 알고 있소?" 

장천린은 고소 지었다. 

"내가 알 리가 있겠소?" 

낙수범은 침중하게 말했다. 

"이곳에서 산장 밖으로 나가기까지는 이십여 장 정도 거리요. 하지만 저 불지옥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장천린은 지하실 내의 공기가 더욱 뜨거워진 것을 느끼며 말했다. 

"어쨌든 더 이상 버틸 수 없소. 잠시 후면 화약이 폭발할 것이오." 

낙수범은 결심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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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소생을 따라오시오." 

낙수범은 천장에 뚫린 구멍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이글거리는 듯했다. 

장천린은 선 채 구전신공을 운기했다. 순식간에 진기가 혈맥을 타고 돌았다. 그는 

진기가 충만해진 것을 느끼며 구멍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 화염 속을 통과할 수 있을까?' 

별로 자신이 없었다. 이때 낙수범의 입에서 호통이 터졌다. 

"타!" 

낙수범은 구멍을 통과해 불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장천린도 망설일 여유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도 즉시 신형을 날렸다. 

'억!' 

장천린은 불지옥 속으로 들어선 순간 엄청난 열기를 느꼈다. 숨이 꽉 막히는 것은 

물론 전신이 통째로 익어버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앞을 보았다 

회오리치는 불덩이 속에서 날려나가는 낙수범의 뒷모습이 보였다. 장천린은 뒤따라 

신형을 날렸다. 

화염이 전신을 휘감았다. 구전신공을 운기한 탓인지 그의 몸에서 한 치 이내로는 화 

염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온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뜨거웠다. 

이십여 장의 거리가 이토록 길게 느낀 적이 없었다. 눈앞이 온통 시뻘건 화염덩어리 

였다. 화염 속을 달리는 사이 점차 시야가 흐려졌으며 의식이 혼미해졌다. 

장천린은 자신이 달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 속에 쓰러져 있는 것인지조차 구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눈앞에 환해졌다. 마침내 불길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화염에서 탈출한 순 

간 지축이 흔들렸다. 

우르르르릉......! 

장천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약!'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십여 장 밖에 인공연못이 들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낙수범의 팔을 움켜잡고 사력을 다해 연못으로 질주했다. 두 사람이 연못에 뛰어든 

순간. 

꽈르르르... 릉! 

폭발음이 울렸다. 가공할 불의 폭풍이 일어났다. 화염이 수십 장을 휩쓸더니 눈 깜 

짝할 사이에 장원을 날려버렸다. 

금월산 기슭. 

주위가 온통 화염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자의무사 이십여 명이 한 명의 청년을 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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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었다. 청년은 바로 사문도였다. 

빗자루 눈썹의 자의무사가 음침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놈은 누구기에 본성의 수하를 해치고 산에 오르려는 것이냐?" 

사문도는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금월사로 가는 중이오. 이곳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관계치 않겠 

소. 아까 일은 그들이 다짜고짜 공격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방어했을 뿐이오." 

자의무사는 살기를 일으켰다. 

"거짓말 마라! 보아하니 네놈은 신산의 졸개인 것 같은데 살려둘 수 없지!" 

"신산?" 

사문도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신산 제갈사가 이곳에 있단 말이오?" 

"미친 놈, 수작 떨지 마라! 조화성을 건드린 이상 살 생각은 포기해라." 

'조화성이라고!' 

사문도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는 음산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놈들은 조화성의 수하들이냐?"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흐흐! 그럼 염무의 수하들이란 말이지?" 

사문도의 눈에서 가공할 살광이 흘러나왔다. 자의무사는 그만 가슴이 섬뜩해지고 말 

았다. 그러나 그는 숫자의 우세함을 믿었다. 

"쳐라!" 

그는 고함을 치며 신형을 날렸다. 사문도의 얼굴에 칙칙한 기운이 어렸다. 

"너희들이 조화성 놈들이라면 나도 부담을 갖지 않겠다." 

그는 등뒤에 멘 삼첨극(三尖戟)을 꺼냈다. 그것은 개봉부의 천기병점에서 산 병기였 

다.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삼첨극을 움켜쥐었다. 

"죽어라!" 

세 명의 자의무사가 동시에 덮쳐왔다. 사문도는 발을 옮겨 간단히 공격을 피하며 삼 

첨극을 움직였다. 

"크아악!" 

참혹한 비명이 터졌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첨극에 다섯 명의 

자의무사가 가슴이 갈라진 채 날아갔다. 

"으하하하핫!" 

사문도의 입에서 앙천대소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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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괴이한 경풍소리와 함께 삼첨극이 빙글 돌아갔다. 삼첨극은 중병(重兵)이었으나 그 

의 손에서는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다시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처참한 비명 

이 울렸다. 

무려 일곱 명의 목이 삼첨극에 닿기도 전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으으으......!" 

자의무사는 이제 여덟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뒷걸음질쳤다. 설마 상대가 이렇 

게 가공할 무예를 지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양 

사문도를 바라보며 후들후들 떨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실력을 자부하는 조화성 제삼신마전 소속의 일급무사들이었다. 그 

런데 단 이 초만에 십이인이 즉사하다니.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문도의 손에서 삼첨극이 번뜩였다. 혈광이 치뻗었다. 모두 일곱 줄기였다. 

"크아악!" 

일곱 명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명뿐이었다. 그는 공포 

에 질린 나머지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 

'이... 인간이 아니다! 악마(惡魔)다.' 

그 자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어느새 삼첨 

극이 목에 닿아있는 것이다. 

"으으......."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등이 나무에 부딪쳤다. 

사문도는 삭막한 음성으로 물었다. 

"묻겠다. 네놈은 조화성의 어느 소속이냐?" 

"제... 삼... 신마전......." 

"몇 명이 이곳에 와 있느냐?" 

"천 명......." 

사문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 명이라고?" 

그는 짧게 물었다. 

"무슨 일로 이곳에 몰려왔지?" 

무사는 체념한 듯 순순히 대답했다. 

"신산 제갈사를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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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도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그는 삼첨극을 약간 밀며 물었다. 

"이곳의 수뇌는 누구냐?" 

"천황... 태사독 어른이십니다." 

사문도의 얼굴에 재차 경악이 떠올랐다. 

'조화성의 제 이인자인 태사독이 직접 이곳에 왔단 말인가?' 

그는 더 물을 것이 없다고 느꼈다. 

"고맙다. 친구." 

"으악!"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사문도는 돌아섰다. 그의 등뒤로 무엇인가 굴러 떨어졌다. 자 

의무사의 잘려진 머리통이었다. 그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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