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무공 - 의혹해소(2)
지성룡이 도착하여 행장을 풀기도 전에 용소명이 찾아왔다.
"오다가 천지문의 잔당들을 만나고 왔다고 들었습니다."
용소명은 이미 지성룡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기에 먼저 그 일을 물어
왔다.
"그들이 알려진다고 하였을 때에 들고 일어설 천하의 눈을 의식하여 그
렇게 한 것일세. 그들이 있다는 것을 천하인들이 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러기 전에 그들과 공존을 모색해 보고자 함이었네. 다행히
그들과 이야기가 그리 어렵게 되지는 않았네. 이후에 그들이 일으킬 분란
도 줄어들 것이네."
지성룡은 다소 착잡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그들에 대한 것을 듣기는 하였지만 직접 가서 만나는 것은 조금 성급한
감이 있습니다."
"아닐세.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죄를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일세. 율사청
이야 한 일이 있으니 그 죽음이 억울할 것도 없을 수 있지만 그들이야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일은 것이네. 그 것만으로 잘못을 하였다고 생
각하네."
지성룡의 말은 다소 감상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는 하나 다른 사람이 가서 하는 것이 그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
을 수도 있습니다."
용소명은 지성룡이 나서서 하는 것이 조금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어 재차 말하였다.
"다른 것보다 내가 힘이드네. 내가 편하자고 간 것이니 이일은 그만 말
하세. 갔다 오니 마음이 홀가분하네."
지성룡의 말에 용소명은 더 이상 말이 없이 한동안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들 소식을 들었을 때에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네. 그들은 항상
불안하였을 것이네. 그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더 불안하기가지 하
였네. 이제 그들도 완전히 불안감을 떨치지는 않았지만 그리 불안해 하지
는 않을 것이네."
용소명은 지성룡의 다른 모습에 약간은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만
히 있었다.
"내일쯤 이단현 장군이 온다고 하는데 자네가 나가서 맞이해 주게. 형님
이 도착하였는가?"
"예, 지금 악양 부중에 일이 있어 머물고 계십니다."
"가급적이면 형님과 위지단주랑 같이 나가는 것으로 해주게. 나는 나중
에 객관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네."
"그렇게 조치를 취해 놓겠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발기를 한 사람 선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으로 자네
가 유도를 해주게. 한데 소림의 무정선사는 도착하였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거기에나 다녀와야 하겠군. 모든 문파의 사람들은 네 사람이 알아
서 하는 것으로 해주었으면 하네. 가급적이면 나에 대한 부각은 피해
주게."
지성룡은 자신이 나서는 것을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하였다.
"한데 남경상림과 사마세가에서 시간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
다.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일단 오늘 밤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해주게. 그 일의 음식준비나 세세
한 준비는 휘매가 해주게."
지성룡은 한쪽에서 듣고 서 있던 제갈휘미에게 말하였다.
"예, 그렇게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 외에 말할 것이 있나? 없으면 무정선사에게 갔다 올 것이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럼 저녁 때 뵙겠습니다."
지성룡의 방문에 무정선사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천하군웅대회가 코앞인데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됩니까?"
무정선사는 지성룡에게 묘한 질문을 하였다.
"문제가 있을 리가 있습니까? 저야 이 대회에 주관하는 자도 아니고 참
석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바쁠 이유가 없지요."
지성룡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것 같소이다. 한데 방금 듣기에 천지문의 율시
주의 후예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보셨다고요."
지성룡은 어느새 그 이야기가 무정선사의 귀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자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보았다.
소문에 가장 무관할 것 같은 소림에서 그 것을 다 안다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잇다는 의미였다.
"그렇소이다. 아직 복중에 있지만 있는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하늘은 결국 율가의 맥을 끊지는 말라는 것인가? 시주는 어찌 처리할
것이오?"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인 것을 어찌 인력으로 막을 수 있겠소이까? 그저
그들이 한세상 분란 없이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지요."
지성룡은 사실 무정선사를 찾은 이유가 바로 이 말을 하기위해서였다.
"소승을 찾아온 것이 그 이유이오?"
"그렇습니다. 대사님이 그들에 대하여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를 청
합니다."
지성룡의 말에 무정선사는 불호만을 연신 외우고 있었다.
"소승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리다. 그들에게 호생지덕을
배풀어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닐 것이오. 그렇게 하
리다."
지성룡이 온 것이 그 문제를 말하고자 함이기에 그렇게 답했다.
"한데 천하군웅대회에서 비무대회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시는 것으로 보
이는데 이는 조금 무림에 분란을 남기는 화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됩
니다."
무정선사는 불필요한 과열로 인하여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 것도 문제가 되기에 제가 이렇게 온 것입니다. 무정선사님과 청해선
사님이 이번에 공증인이 되셔서 불상사를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지성룡의 말에 무정선사의 얼굴은 굳어졌다.
"천, 지, 인 삼급으로 나뉘어 진행이 되는데 천급은 왠만한 고수가 공증
인이 되어서는 자칫 동귀어진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것을
막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성룡의 설명은 그저 판정을 내리는 공증인이 아니라 중간에 적극적으
로 개입을 하는 공증인을 말하고 있었다.
"소승이 그 일을 맡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대사가 그 일을 맡아주지 않으신다면 수 많은 불상사가 속출할 것
이고 천하군웅대회는 비극으로 얼룩이 져 버릴 것입니다."
지성룡의 말에 무정선사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지성룡이 이렇게 찾
아올 때는 뭔가 긴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일을
맡기려고 온 것은 예상을 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공증인이 그저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역할을 하는 공증
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많은 불상사가 발생할 것은 뻔한 일
이기에 딱 잘라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겠지만 시주도 같이 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본승 혼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들 것이오."
지성룡은 무정선사의 말에 내심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성룡은 자신도 나서기로 하였다. 굳이 나서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자
칫 사망자나 중상자가 나온다면 그 일의 파장이 커질 수가 있었다.
예심의 내용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는데 여념이 없
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가를 은근히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물건을 드는 것
이었다. 두 가지는 상당히 고난도의 일이라 대부분은 철구를 드는 것에
몰리고 있었다.
물속에 있는 뗏목까지 뛰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조
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물속으로 첨벙 빠지기 일쑤였고 운 좋게 내려서
더라도 날아오던 힘에 의해 앞으로 나가 물속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반면 높이 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종을 손으로 가볍게 쳐서 종을 울리는 것인데 이
것도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정확성이 그만큼 요구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은 내공이 부족하여 철구를 들지 못하는 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들은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만 통과하여도 되기에 각자 시험 삼아 해보고 있었
다.
할일 없이 기다리다 보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런 소일거리가
생기자 그들은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심사가 이루어 지지
않지만 자신을 먼저 점검하여 보고 있는 것이다. 예심을 할 때 실패하
면 망신이라는 생각 때문에 곳곳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곳곳에는 순서를 기다리면서 연습을 하는 자들로 사람이 모여 있었다.
자신이 통과를 할 자신이 있는 자들은 물러나고 아슬아슬하게 하는 자
들은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
철구를 드는 일이야 내공만 밑받침 되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것은
가장 원초적인 일이었다. 즉 두 가지는 내공이 밑받침 되지 않아도 한
단계 위를 노릴 수가 있기에 한 단계라도 위를 가고자 차츰 멀리뛰기와
높이뛰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장 사람이 몰린 것이 철구 들기였지만 차츰 멀리 뛰기와 높
이뛰기로 사람이 몰리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천하군웅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참
으로 바람직한 일이었다.
젊은 혈기에 사람들이 할 일없이 며칠을 기다리다 보면 자칫 혈기를 못
이겨 싸움으로 번질 수가 있는데 그렇지가 않는 것이다.
"제가 두 분을 이렇게 뵙자고 한 것은 용총사에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
입니다."
지성룡은 사마웅휘와 유한열이 오자 말을 꺼내었다.
그들은 지성룡에게 최후의 확답을 받으러 온 것이기에 말이 없었다.
"소생이 생각하기에 강호라는 것은 무림과 상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림도 있지만 유림은 예외로 생각을 합니다."
지성룡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과 상계는 현 무림에서 뗄래야뗄 수가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두 곳에 천하문을 위시한 영웅성 구룡상단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지성룡은 그들 앞에서 자신의 우위를 인정하였다.
지성룡이 그 것을 직설적으로 인정하자 약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
다.
"내가 아니라고 하여도 현실이기에 굳이 부인은 하지 않겠습니다. 두 분
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 오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성룡의 직설적인 말에 그들은 약간 불쾌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것을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차라리 먼저 하는 것 자체가 대화를
하는데 편리하였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소생이 향후 무림을 일통하려한다. 천하를 제패하려 한다고 말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단언하기에 그러지는 않을 생각입
니다. 또한 그렇게 하려고 하여도 능력도 안되는 사람입니다."
지성룡은 직설적으로 계속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기에 현재의 상태에서 최선의 방법은 강호의 각 세력이 공존을 모
색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저에
게는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두 분도 현상유지에 그리 불만이 없다면 공존
을 하도록 서로 노력을 하였으면 합니다."
지성룡의 말에 그들 두 사람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너무나 직설적인 말이었다.
"소생은 어렵게 말하기보다 탁 터놓고 이야기를 해주시기를 바라기에
먼저 솔직히 말을 하였습니다. 두 분의 의중을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
십시오."
"좋습니다. 천하신존께서 하시는 말씀에 본가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본가는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라면 크게 불만이 없습니다. 그 것이 안되고
점점 위축되고 있기에 우리가 나선 것입니다."
사마웅휘는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인정하였다.
"본림도 그렇게 하기를 바랄뿐 더 이상 바라지는 않고 있소이다."
유한열도 그렇게 말하여 화답을 하였다.
"얼마 전에 사천의 당가 분들과도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지
금의 상태이상으로 천하문이나 영웅성이 더 확대되는 것은 득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강호무림을 위해서도 바람직
한 것이 아니고 천하상계를 생각하여도 그러합니다. 서로 공존을 할 수
있다면 그 것이 제일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 점을 아시고 서로 간에 적
대적인 행위를 최대한 중지하고 화합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지성룡은 자신이 천하제패를 포기한 이상 더 이상의 분란을 유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에 그렇게 말하여 상계의 분란을 중지시키기로
하였다.
지성룡은 구체적인 사안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만족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옆에 있는 용소명과 제갈휘미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이 나자 가볍게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였고 차츰
호의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그들과의 이런 좋은 분위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지성룡이 솔직하게 모든
것을 먼저 말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신을 마중하러 나온 자들 중에 지성룡이 없자 이단현은 내심으로 약
간 불쾌하였으나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소생은 천하문에서 소문주를 맡고 있는 지연룡이라 하옵니다."
"소생은 위지세가의 소가주를 맡고 있는 위지강천이라 하옵니다."
지연룡과 위치강천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단현을 맞이하였다.
이단현은 노장의 위엄을 과시하듯 고개를 들어 한동안 그들을 보았다.
"아, 요사이 강호에 이름이 쟁쟁한 천하문과 위지세가의 차대를 이끌 사
람이로군요."
이단현의 어투는 약간 거만함이 들어 있었다. 내용은 그러했지만 어투
는 벼슬아치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감사하옵니다. 저희들이 마련한 무림의 사소한 행사에 이렇게 불원천
리를 왕림하셔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기는 동창의 제독총감 유회일세."
이단현은 지연룡의 사의를 표하는 것을 무시하고 유회를 소개하였다.
유회는 자신을 그저 환관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꼈기에 마음이 좋지 않
다가 이단현이 소개를 하자 조금 마음이 풀렸기에 웃는 얼굴로 그들이
예를 표하자 같이 읍을 하였다.
"어디에서 묶으실 것이옵니까? 저희들이 거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지연룡은 그들이 객관에 머물기로 되어있는 것을 알면서도 숙소를 옮길
것을 청하였다.
"아닐세. 우리는 객관에서 머물기로 하였으니 걱정을 말게. 그전에 군웅
대회가 열리는 곳을 먼저 보고싶네."
"예, 저희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위지강천은 그렇게 말하고 행렬을 이끌었다.
이단현이 맨 먼저 대회 장소로 가자고 한 이유는 바로 대회규모를 보기
위해서 였다.
장소를 보면 결국 참가하는 사람의 규모가 예측되기에 그러한 것이다.
지연룡은 이단현이 묻기 전에 이것저것 먼저 설명을 해주었다. 이단현
은 아무말이 없이 지연룡의 설명을 듣고 가금씩 고개만을 끄덕였다. 이런
지연룡의 설명은 먼저 해달라고 하기 전에 해주는 것이기에 간단한
것이지만 이단현이나 다른 사람이 가지는 의구심을 풀어주는 효과를 보
이고 있었다.
한참 설명이 이어지고 행사가 예정된 곳으로 도달하자 장내에 준비된
것을 한번 돌아보았다. 수행원이 이단현 일행이라는 것을 나타내듯 큰
소리로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비킬 것을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리 무림인
이라도 조정의 대신이 그들의 행렬이기에 대부분 하던 것을 멈추고 예
를 표하였다. 그 것은 이미 이단현 일행이 온 이유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무림인들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한바퀴를 쓱 돌아본 이단현은 객관으로 가기위해 장내를 벗어났다.
사실 행사장에는 커다란 연단 하나와 네 개의 비무대만 있었고 간단한
예심을 보기위한 준비물들만이 존재하기에 볼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뭔가 색다른 것을 기대하던 이단현의 얼굴에는 약간의 실망의
빛이 보이고 있었다.
"한데 이번 군웅대회에서 어떤 조직 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 것이오?"
이단현은 지연룡이 그 일에 대하여는 설명이 없자 궁금해서 되물었다.
"예, 굳이 그런 것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군웅대회를
하는 것은 그저 후기지수들이 한번 자리에 모여 무림의 장래를 논해보고
가진바 재량을 한번 뽐내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니 무슨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지연룡은 딱 잡아떼었다. 조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문제가 지성룡을 중
심으로한 세력의 형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음, 그렇다면 이일은 이번 한번으로 끝난다는 것인가? 그런 취지라면
지속적으로 열기위해서라도 뭔가 모임이 필요하지 않겠소?"
이단현은 지연룡의 말을 믿지 않고 재차 유도심문을 하였다.
지연룡은 지금 대답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여기서
대답을 잘못한다면 커다란 분란의 빌미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에는 유회와 몇몇 조정의 중신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럴 필요가 있다면 향후에 무림맹에서 주관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
니다. 우리는 일단 이번 군웅대회를 주관하여 성사를 시키고 필요하다면
무림맹에 요청을 하여 추후에 개최를 하도록 요구를 할 생각입니다.
다행이라면 이번 대회에 무림맹의 맹주인 제갈맹주가 참석을 하시니 대
회가 끝난 후에 논의를 하여 이후의 일들에 대하여 정할 생각입니다."
지연룡의 말에 이단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렇다면 소문주는 이런 군웅대회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
각하는 것이오?"
이단현은 중요한 일이라는 판단이 들어 재차 질문을 하였다. 같이 따라
온 유회와 조정의 중신들이 의문을 가지지 않게 하기위해서도 명확한
문답이 이루어져야 했다.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참석을 하러 온 중인들의 여론도 그러합
니다. 매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삼년이나 오년에 한번씩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은 군웅대회를 하면서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저나 이 대회를 준비
하는 입장에서는 사년에 한번씩 무림맹에서 주관을 하여 하는 것이 바
람직랑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연룡은 준비한 바를 답하였다. 지연룡의 말에 그들의 얼굴에서 수긍
하는 빛이 보이기도 하였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의구심이 있던 자들이
기에 단 한마디 말로 수긍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알았소이다. 하면 이후의 일은 무림맹에 모든 것을 위임할 것이라고 하
는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시작부터 무림맹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 않소?"
유회는 자신이 수긍하지 못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묻고 들어왔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림맹에 이일을 시작하기에는 다소 문제
가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소생을 비롯한 이번 일을 준비한 자들은 무림
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나 배분이 그리 높지 못합니다. 일단 우리들이 일을
추진하고 나니 무림맹에서도 관심을 가졌고 이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위지강천은 그렇게 말을 하여 자신들이 이일을 하였던 불가피성을 설명
하였다. 유회는 그말도 일리가 있기에 말이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될 지성
룡을 중심으로한 세력화에 대하여는 교묘한 말로 피하여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듣기에 이일에는 천하신존 지성룡이 상당히 깊숙히 개입을 하였
으며 그의 의중에 따라 이 것이 열린다고 들었소이다. 세간에는 그가 무
림에서 제일가는 고수로 '맹까지 좌지우지할 능력이 있다는 말도 돌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이오?"
유회는 말장난을 하는 기분이 들어 핵심을 물어왔다. 이런 문답이 소용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일을 말하려고 한다면 얼마 전에 일어난 만천대전을 먼저 언급해야
합니다. 그 일의 당사자인 만상문주 이정발과 천지문주 율사청은 소림의
무정선사와 비무를 한 제 동생 천하신존을 암습하였습니다. 그 일을
징벌하기위해 비무당사자인 무정선사의 주도로 전 무림이 일어나 그들을
징벌하여 무림의 도의를 세웠습니다. 그 일에는 대부분 마흔 아래의 청
년 무사들이 주로 참석하였는데 천하신존은 그일에 참석한 자들에게 고
마움을 표할 방안을 찾았고 그 것이 바로 군웅대회입니다."
지연룡의 설명에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아는 천하군웅대회의 목적이 지성룡의 천하제패를 확인하는 자리로 인
식하여 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이일을 주관하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기에 나와 여기
있는 위지소가주, 그리고 무림맹에 있는 제 동생, 영웅성의 총사가 준비를
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고작 몇몇 후기지수들만 모이기로
하였던 것이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지금의 상태로 발전이
된 것입니다."
지연룡의 말은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말이었기에 그들은
혼란스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이런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고 이후의 대회
도 생각지 않았으며 한번 하고 말 것으로 생각하여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아 지금에는 이후의 일은
무림맹에서 주관을 하는 것이 바람직핟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위지강천이 재차 부연설명을 하였다.
유회는 그들이 재차 부연설명을 하여 자신이 중신들에게 선동해 놓은
사실이 뒤집혀 버리자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유회는 오는 동안 내내 중
신들에게 지성룡이 딴 뜻이 있으며 위험한 인물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던 것이다. 그 것이 실상은 그저 고맙다는 잔치에서 시작된 위로
연이었다는 말은 그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반면에 이단현은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유
회의 중신들에 대한 회유를 모른척한 이단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들의 말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떤 결과라는 것을 여실
히 보여주고 있었다.
"알았소이다. 우리가 온 것은 조정에 일고 있는 무림에 대한 우려 때문
에 우리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온 것이오. 아니라니 다행이 아닐 수가
없소이다. 하면 나는 유능한 인재를 군부에 등용할 생각이니 앞으로 그
런 인재나 보도록 하겠소이다."
이단현은 선언하듯이 의구심을 털어버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청년 인재
들을 군부에 끌여들이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밝혔다.
유회는 이단현의 선언과 어이없는 결과로 일이 진행되자 말도 못하고
있었다.
지성룡은 객관에 음식을 보내어 주도록 부탁을 하였고 저녁이 되자 객
관으로 향하여 갔다.
이미 이단현에게는 찾아가겠다는 통보를 하였기에 이단현과 유회는 기
다리고 있었다.
지성룡이 도착하자 중신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온
것은 바로 지성룡이 역모를 준비하는가 또는 역모를 꾸밀 가능성이 있
는가를 판정하는 일이기에 모두가 모여든 것이다.
지성룡은 이미 전에 일어난 일을 들었기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지 이미 정해 놓고 있었다.지성룡은 이런 것을 굳이 하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천하의 평안과 문파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다스리면서 자리에 임하였다.
"어서 오시오. 지대협을 보니 점점 풍채가 좋아지는 것 같소이다."
이단현은 그렇게 말하여 면식이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였다. 또한 이단
현이 지연룡이나 위지강천을 대할 때는 그저 공적인 관계 이상의 친밀
감을 표시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는데 지성룡에게는 호감을 보여 주고
있었다.
나이가 서른도 되지 않은 지성룡에게 대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상당
히 존중함을 표하였다.
"장군님계서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로 인하여 이렇게 원로에
노고를 하게 하여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송구할 것이 무에 있는가? 아직은 정정하네. 그간 격변이 있다고 들었
는데 무사한 것을 보니 그나마 다행일세."
"천우신조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지성룡은 그렇게 말하여 사의를 표하였다.
"일단 서로 얼굴이나 익혀두게."
그렇게 말하면서 유회부터 소개를 하여 주었다.
이단현도 상당히 말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유회를 비롯한 다른 사람
들도 이단현이 지성룡을 중시하기에 섣불리 말을 하지는 못하고 공손한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이단현과 지성룡의 이야기는 서로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듯하면서 자
연스럽게 진행이 되었다.
"소생이 이후의 일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둔 것은 이일이 무사히 마무리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울러서 본문이 그 동안 천시 받아 온 이유가
독문무공이 없다는 것이기에 독문무공을 확립하는 것이 작은 소망
입니다."
지성룡은 마침 이단현이 장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 묻기에 그렇게 답을
하였다.
"독문무공이라, 참으로 어려운 일이네. 본시 나도 무학을 익힌 사람으로
독문무공이라는 것이 무술이 아니라 그 예도를 갖춘 무학의 경지에 올
라야 한다고 들었네. 학문으로 말하면 일가를 이루는 것이오 무학으로
말하면 새로운 무공을 집대성하는 것이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네."
이단현은 감탄하는 빛을 보였다. 대부분은 학문이 상당한 경지이기에
이단현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 있었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 시간을 두고 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네. 욕속부달이라고 하듯이 조급
하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의 일이네."
이단현은 술을 연신 권하고 있었다.
"이번에 북방의 국방을 강화하기위해 새로운 인재들을 충원할 생각인데
이들에게 그일을 알려주시게나."
이단현의 말에 지성룡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러나 유회의 얼굴은 순
간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 것은 그들로서는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야 당연히 호응이 있을 것입니다. 능력 있는 젊은 사람들이
군에 투신하여 보국안민하는 것은 뜻 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이번에 장군님께서 그런 뜻을 밝혀주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마 청
년무사들에게는 청운의 꿈을 펼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단현의 욕심이 나타나자 유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신들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어리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에 이렇게 등용을 하고자
하는 이단현의 기도가 결국은 자신의 세불리기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인재는 말 그대로 장래를 보장하는 일이었다. 무사들이 대거 무장으로
발탁이 되는 것은 이대장군부의 앞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또한
이단현의 그런 태도는 아예 처음부터 지성룡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
지 않았고 밝힌대로 청년무장을 충원하기위한 구실로 온 것이라는 생각
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단현을 따라온 그들 모두는 쓸데 없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자
들이고 이단현의 숨은 속뜻을 달성하는데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성룡은 황촛불 아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들의 안색을 보면서 이단
현의 생각과 여러 중신들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을 파악하자 내심 쓴 웃음이 나왔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번 정리하여 군웅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방으로 붙이겠네. 그러면 되겠는가?"
"그렇게 해주시면 더욱 자리가 빛이 날 것입니다."
이단현의 말은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군웅대회를 인정해버리겠다는 것
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이 것을 제동을 걸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유회와 중신들이
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단현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문제는 동창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 무림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동창
이 내시들의 개라는 시각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무사들은 동창과
연관을 가지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있었다. 각 문파에서 반도로 찍힌 자가
아니고서는 올바른 무인들은 동창에 몸담기를 꺼려하는 실정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유회로서는 이단현의 세불리기가 위협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지성룡은 이단현의 언행이 던지는 파장을 바라보면서 일이 원만하게 수
습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조정과의 일이 무난하게 해결 되었
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