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141)-7권끝
차가운 공기를 받으면서 눈을 뜬 지성룡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확인하자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몸은 아직도 까맣지만 몸 곳곳에 드러난 하얀 살결을 보자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알았다. 단지 지금 몸이 전체적으로 검은 것은 전에 있던 검은 피부가 때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지성룡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자신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누가 뭐라하건 다행이었다. 몸이 하얗게 변화된 것은 그간 몸에 일어난 이상이 정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옷을 벗고 동굴밖에 있다는 것도 잊고 급히 계곡을 향하여 달려갔다.
계곡에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몸을 씻었다.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검은 허물이 마음먹은 대로 벗겨지지 않았지만 절반 정도는 하얀 살결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 빠졌던 머리카락도 이제는 어느새 꺼칠하게 다시 솟아 오르고 있었다.
“영락없는 스님의 형상이군.”
지성룡은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물에 비추어 보고 알았다. 외모에 대하여는 관심을 두지 않던 지성룡이기에 그런 형상에 미소를 짓고 말았다.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머리카락까지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며칠동안 있으면서 그 동안 마저 정리하지 못한 것을 정리해 보아야 하겠군.”
지성룡은 그렇게 말하고 물속에서 나와 동굴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동굴로 돌아가자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하여 안의 형상이 유난히 잘 보이고 있었다.
지성룡은 며칠이 지나서 안에 뭔가 썩는 냄새가 지독하게 난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이런 이무기가 썩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지.”
지성룡은 그렇게 말하고 동굴에서 옷을 챙겨 입고 검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저렇게 썩은 사체와 같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 예전에 머물던 모옥으로나 다시 가야 하겠군.”
지성룡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산을 내려와서 처음에 만들어둔 모옥으로 갔다. 모옥으로 돌아가서 옷을 벗고 운기조식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혹시나 하늘로 치솟아 그나마 있는 모옥도 다시 지어야 할지 몰라 밖으로 나가서 차가운 날씨아래 운기조식에 몰두를 하였다.
지성룡에게 일어난 변화는 바로 이독치독의 효과였다. 철갑묵독망의 독단이 터져 발생한 독기는 지성룡에게 흡수되었고 지성룡이 운기조식을 하자 결국 다 흡수가 되었다. 동굴 속이라 비산하지 못한 독은 생명이 깃든 지성룡에게 모여 들었다.
그 독은 지성룡의 몸을 중독시켜 마비증상을 일으켰지만 결국 지성룡의 몸에 깃든 흑혈시독에 의해 사라져간 것이다.
그러나 원체 독한 독이기에 흑혈시독만으로 제압을 못하고 한동안 지성룡의 몸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지성룡이 상승의 무공을 생각하자 그동안 잠복되어 있던 몸 자체의 진원이 깨워나기 시작하였고 결국 지성룡의 몸에 있는 독의 정화만을 내공으로 흡수하고 불순한 기운들을 모조리 배출해 버린 것이다.
그의 몸에 어린 광채는 그의 본신지기와 독기가 융합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의 막대한 내공과 독기의 상충이 해소되자 더 큰 깨달음을 밑바침하는 바탕이 되었고 승화가 일어난 것이다.
지성룡은 그 과정을 통하여 탈태환골하는 기연을 만나고 그의 몸에 잠재한 내상을 말끔히 해소하고 원영지체에 가까운 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성룡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것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운기조식을 하고 그동안 알고 있던 무공지식을 통하여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독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사라졌지만 언제건 내가 원한다면 일어나게 되었다. 필요하다면 공격에 독기를 함유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영원히 끄집어 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커다란 불행이다. 그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그렇게 홀로 다짐을 하였다.
“외공을 만들다 말았으니 여유를 마저 끝내고 가야 하겠다.”
지성룡은 두달 이상 몰두하던 외공을 정리하여 익히기 시작하였다.
외공은 입문편(入門編), 도약편(跳躍編), 신공편(神功編)으로 나뉘어진 것이었다.
외공은 그 자체로 외가무공이면서 지성룡이 정리한 천하문 무공의 튼튼한 기초무공이었다.
지성룡은 자신의 자라지 않는 머리를 개울가에 가서 몇번이나 비추어 보고 있었다.
지성룡은 자신의 무공이 말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것을 알았다.
‘초식이나 외공의 경지를 벗어났구나. 결국 내공마저도 의미가 없다. 이렇게 되면 독문무공이란 하나의 과정이 아닌가?’
지성룡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던 독문무공이란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한 기초이자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에는 만류귀종이라고 하였다. 결국 최후에 이르러서는 의미가 없다. 한데 왜 독문무공에 그리 매달렸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허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 의미는 있다. 효과적이고 빠른 길이 있다. 나의 경지는 이제야 검황어르신이 이르렀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검황어른이 결국 이른 경지는 오기조원의 경지를 벗어나 조화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하나의 체계적인 과정으로 정리한 것이 독문무공이다.’
지성룡은 그렇게 생각하자 궁극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독문무공이 중요하다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외공까지 정리를 하고 그 동안 신공(新功)상에서 발견된 오류를 바로 잡아 천하신공(天下神功)으로 정리를 다시 하여야 하겠다. 그런 연후에 천하관으로 돌아가 다시 천하문의 무공을 기초부터 다시 정비하여야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성룡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문이 독문무공이 없는 것이 맞다. 결국 그저 상인 집단이라고 하는 것도 맞다. 몇몇 명문정파나 역사가 깊은 세가를 제외하고 무공에 이러한 체계를 가지고 잇지를 못하다. 그런 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명문대파라 하지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천하문을 백안시한 것은 일견 당연한 것이다. 근본도 없이 돈을 벌은 장사꾼이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지 않겠다는 그들의 자존심을 천하문이 건든 것이다.’
지성룡은 구파일방이나 사대세가에서 천하문을 핍박한 내면의 생각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다.
‘천하문이 익힌 무공은 그저 싸우기 위해서 익힌 무공에 불과하였다. 즉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 그저 싸워서 이기기 위한 무공이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예전의 무림맹에서 우리를 배척하는데 모두가 나선 것이다.’
지성룡은 모두가 천하문을 핍박하는데 한통속이 된 이유가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결국은 이런 기본부터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 나도 예전에 바로 이점을 간과하였다. 독문무공이라고 남긴 것이 그저 형식만을 남기고 정신을 채우지 못하였다.’
지성룡은 자신이 한 것이 그저 형식만을 갖추고 만 것이다.
‘독문무공은 형식과 더불어 무(武)에 대한 기본이 확립되어 있어야 진정한 독문무공으로 바로설 것이다.’
지성룡의 머리에는 자신이 한 독문무공의 전수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흉내를 낸 것일 뿐 근본적인 접근은 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것은 천하문에 있는 수뇌부들이 무공의 진정한 대가가 없기에 그러한 것이다. 만일 승천검황이나 이기가 건재하였다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를 않았을 것이었다.
‘무에 대한 바른 생각을 문인들 모두에게 제대로 전파를 하고 무를 사용하는 것이 그저 힘의 사용이 아닌 협(俠)을 행하는 것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지성룡은 무도에 대하여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도(武道)를 이루고 그 것을 전해주어야 만이 진정한 독문무공이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무도에 이른 선각적인 대문파의 개파조사들이 우대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분들의 가르침이 있기에 그들은 무공만이 아닌 무도를 추구하고 있다. 일부는 변질이 되어 패도적인 무공을 추구하지만 실로 무도를 추구하는 자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천하문은 그저 힘으로 세속의 이를 추구하는 시정잡배일 뿐이다.’
지성룡은 자신도 그런 것에 일조를 하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저 강함만을 추구하여 근본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이다. 돌아가 제대로 된 독문무공을 확립하여야 한다. 이 것은 지금의 사람들이 아니라 자라나는 후생들에게 가르침을 주어 그들이 문파의 주역이 되었을 때에 독문무공은 확실히 생겼다고 할 수가 있다.’
옛 만상문의 터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저 주춧돌과 기왓장 같은 잔해가 뒹굴어 다니고 있었다.
그런 곳을 찾아 드는 노문사가 있었다.
그 노문사는 만상문의 터를 한바퀴 돌고 옛 정원의 터에 남아 있는 바위 앞에 섰다.
“아니, 최근에 만진 흔적이 있다. 정발이가 뭔가를 남겼는가?”
노문사는 바위로 다가가 바위를 만졌고 바위가 분리되었다.
안에는 서찰이 들어 있었다.
“결국 천하제패를 한다 하더니 이런 패망에 이르렀다는 것인가? 허허, 죽어가면서야 겨우 공존을 먼저 하여 천하에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더냐? 이런 깨우침을 먼저 얻었다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당하지 않았어도 될 것을……. 좋다 내가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산속에 있게 하지 않고 천하 속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세상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겠다.”
노인은 후기지수 몇을 데리고 떠난 만상천군이었다.
그는 세상의 소문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겨우 아들의 마지막을 장식한 곳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 곳에서 최후를 마쳤다는 것을 듣자 혹시나 해서 와본 것이다.
‘아이들에게 새로이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우선 세상과 공존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 후에 능력이 되어 천하를 도모한다면 조금 나을 것이지만 세상에 나가면서 바로 천하제패를 노리는 것은 결국 이런 실패를 당하고 참혹한 비극으로 결말로 마무리될 것이다.’
만상천군은 이정발이 말한 공존을 생각하자 자신이 다시 비극을 준비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그 애들을 키우면서 다시 이런 비극을 준비하고 있구나. 결국 그 애들이 자라고 훗날 힘을 가지게 된다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도 모르고 다시 잘못을 반복할 것이다.’
만상천군은 무림에서 은둔자로 있다가 세상에 나와 천하제패를 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또한 강한 힘을 가지고 등장을 한다면 아무리 공존을 하려고 하여도 배척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제패 이전에 먼저 천하인들과 공존하게 만들어야 한다. 애들을 데리고 심산유곡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정발의 글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던 의구심을 접고 새로운 방향을 찾기 시작하였고 한달 후에 장안 외곽에 한 장원에 노인하나와 십여명의 소년들이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지성룡은 날씨가 차가워져 서설이 내린 이후에 산을 떠나 다시 하산을 하였다.
알거지 신세이기에 사냥이나 하면서 그저 산속으로 이동을 하였다.
‘참으로 한심하구나. 천하의 지성룡이 이렇게 알거지 신세가 되어 사냥으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다니.’
지성룡은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여 미소가 절로 났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어도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당분간은 지매외 혜매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알리지 말고 강호정세를 관망하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의 머리가 자라지 않았기에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서기가 쑥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내가 이런 모습으로 나선다면 화상이 되었다고 놀림을 당할 것이 아닌가?’
지성룡은 그렇게 생각하고 최대한 은밀하게 개봉을 향하여 달려갔다. 황영지만을 은밀히 만나 무사함을 알리고 영웅성으로 가서 영소혜를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성룡은 야음을 틈타서 주로 이동을 하여 마침내 칠주야만에 개봉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자신의 장원은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 지고 있었고 삼경이 넘어서야 겨우 들어갈 수가 있었다.
“나요.”
지성룡은 황영지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황영지는 갑자기 지성룡의 전음이 들리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곧 지성룡이 전음으로 한 의도를 생각하였는지 손으로 입을 막아 놀람의 소리를 막았다.
지성룡은 황영지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황영지도 지성룡이 이렇게 은밀히 나타난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는지 전음으로 물어왔다.
“조금 외모가 이상하여 이렇게 나타난 것이오.”
황영지는 어둠 속에서 지성룡의 외모를 확인하고 입을 가로막았다.
지성룡의 모습은 머리가 이제 약간 자란 형상이었으니 우습기 그지 없었다.
“누가 보면 마치 절에서 금방 환속한 중으로 알겠어요.”
황영지는 지성룡이 다른 곳은 다른 때와 다름이 없고 머리만이 우스운 형상이라 그렇게 말을 건네었다. 전음이라도 웃음기가 들어 있었다.
“듣기에 검둥이가 되었다고 하던데 말짱하네요.”
황영지는 지성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농담할 여유가 생겼는지 그렇게 말하였다.
황영지는 막 지성룡이 치료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곳은 다 정상으로 들어왔소. 그 동안 연락도 못해 송구하구려.”
“아니에요. 이렇게 무사한 것으로 다행입니다.”
“나 없이 지매가 고생이 많았겠구려. 그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말을 해주시오.”
지성룡은 자신이 없는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하여 물었다.
황영지는 보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냥 말을 해도 상관없소. 내가 주변의 기파를 차단하였소.”
“네, 그럼 편하게 말을 하겠습니다.”
황영지는 전음으로 말하다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말을 하였다.
황영지의 보고를 듣고 지성룡은 자신이 예상한 상황과 큰 차이가 없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천에 진출하였는데 당가가 오히려 협조적이라는 것이오?”
“예, 그러합니다. 그들이 저항을 할 것으로 예상을 하였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크게 문제가 없는 실정입니다.”
“음, 그들이 실용적인 이익을 찾으려 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그들에 대하여는 경계를 늦추지 마시오.”
“물론 항상 만일을 대비하여 거래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데 상공은 천하에 나서지 않을 생각입니까?”
“일단 큰일을 혜매가 당하였으니 혜매나 만나볼 생각이오. 그런 연후에 이 기회에 강호나 유람할 생각이오.”
“설마 상공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노리는 것입니까?”
황영지는 지성룡이 뭔가를 노린다고 생각이 들어 확인을 하였다.
“노리는 것은 없소이다. 그저 내가 없는 천하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함이오. 이 기회에 사천부터 시작하여 구파일방을 한번 살펴보고자 하오. 내가 직접보고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지 판단하고자 하오.”
“하면 지금 떠나실 것입니까?”
“지금 떠나기를 바라시오?”
지성룡은 황영지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그렇게 물었다.
지성룡의 질문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며칠간 밤에 몰래 찾아오겠소.”
지성룡은 황영지의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편할대로 하세요.”
지성룡은 삼일간을 황영지와 남몰래 시간을 보내었다. 황영지는 지성룡에게 떠나기 전에 용돈을 듬뿍 주어야 했다.
돈 없는 서러움을 몸으로 체험한 지성룡이기에 여비만은 확실하게 챙겼다.
지성룡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등장을 말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고 길을 떠났다.
“그저 모처에서 요상을 위해 폐관중이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을 정 급한 상황이 되면 말하시오. 그 것도 정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말하지 마시오.”
“알았어요. 한데 이런 모습으로 밤에만 도둑처럼 다니실 것입니까?”
“아니오. 죽립을 쓰고 다닐 것이니 그리 걱정하시 마시오. 천하의 내가 이런 행색으로 다닐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모를 것이니 특별한 변장은 필요 없을 것이오.”
“잘 다녀오세요. 언제쯤 돌아올 것입니까?”
“한 세 달 정도 걸릴 것이오. 그때에는 필요할 지 모르니 가발하나를 준비해 두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다녀오리다. 문제가 커진다면 중간에라도 돌아올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영지의 얼굴은 사흘사이에 활짝 피어나 근심이 모두 사라져 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지성룡이 떠난다고 생각하자 다시 시무룩해지고 있었다.
지성룡은 개봉을 벗어나자 죽립을 준비하여 쓰고 여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혼자 조용히 걸어서 가고 있었다.
이렇게 백주에 활보를 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고 이렇게 부담 없이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다니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지성룡은 서둘지 않고 보름 만에 무창에 당도를 하였다. 가끔은 야간에 경공을 이용하여 달리기도 하였기에 그 시간에 당도한 것이다.
무창의 한 객잔에 잠자리를 잡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한번 가서 영웅성의 상태를 먼저 살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성룡은 영웅성으로 달려가서 야간의 경비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역시 용소제가 잘 훈련을 시킨 것 같군. 그러나 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군. 나를 막을 경비는 사실 불가능한 것이지.’
지성룡은 영웅성 곳곳을 한시진 동안 점검하고 영소혜의 처소로 들어갔다.
“상공.”
영소혜는 곤히 자고 있다가 지성룡의 소리에 깨어났다.
“역시 만삭이구려.”
“이렇게 돌아오시다니…… 상공이 거정이 되지 않은 때가 없었어요.”
“미안하오. 어르신이 타계하셨는데 와보지도 못하고…”
“개봉에서 오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미안하오. 당시 주화입마에 들었는지라 어쩔 수가 없었소.”
“이제 다 나은 것인가요.”
“확실히는 아니나 그런 것 같소.”
지성룡은 영소헤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 옆으로 파고 들어갔다.
“당분간 내가 돌아온 것은 용소제에게도 알리지 마시오. 오직 그대만 알고 있으시오.”
지성룡이 옆으로 들어와서 가볍게 껴안으며 말하자 영소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는 잘자라는 것 같군.”
“예, 그러해요. 제가 좀 힘든 일이 많아 걱정을 하였지만 다헹이예요.”
“다행이오. 한데 아이가 나면 팔삭동이라고 놀릴 것인데 어떻게 말할 것이오. 팔삭동이치고는 참 튼튼하다 그렇게 놀리기도 할 것이 아니오?”
지성룡은 짖궂게 영소혜를 놀렸다.
“다 말해 버릴까요? 상공이 혼사 전에 와서 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후후, 그렇게 하려면 하시오.”
그러면서 지성룡은 영소혜의 배에 손을 얹어 아이의 감촉을 느꼈다. 순간 영소혜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이의 발길질이 시작된 것이다.
“아빠가 이제야 나타났다고 발길질을 하는 것이예요.”
지성룡은 영소혜가 그렇게 말하자 말없이 배만을 쓰다듬으며 있었다. 영소혜는 서운함을 표시한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마무리 하는 것만 남았으니 걱정은 하지 마시오.”
“그렇게 되기를 바래요. 피는 더 이상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