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127)
33. 일기투(一驥鬪, 맞짱)
낙양에서 오백여리 아래에 유사진이라는 나루가 있다. 폭이 삼십여장이나 되는 꽤 큰 물이 흐르고 그 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이용하여야 하였으니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건너기에는 문제가 있기에 몇 개의 말뚝을 박아 다리를 대신하여 건너고 있었다.
무림정의군은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성룡 일행과 합류하였다.
그 곳에 지성룡이 도착한 것은 사흘 전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지성룡이 낙양에 합류하여 출정식에 참여를 하였어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성룡은 출정식에 참여를 하지 않고 이곳에서 합류한 것은 출정식에 참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 출정식에 자신이 참여를 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참여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구백여명이 출발하였지만 행로에 합류한 자들도 있기에 천여명이 넘는 군세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육천의 무림정의군의 군세에 비하여는 작았지만 그리 초라해 보이지는 않는 행렬이었다.
“어서오십시오, 대사님. 못난 소생의 일로 인하여 청수에 들어야 할 대사님께서 이렇게 힘들게 된 것 같습니다.”
지성룡은 그렇게 무정선사를 맞이 하였다.
“아니오이다. 오히려 소승으로 인하여 천하신존께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겪게 되어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무정선사도 합장을 하여 지성룡의 말에 답하였다.
지성룡과 무정선사의 만남의 자리에는 각문파에서 참여한 수좌들이 같이 배석하였다.
그 면면을 본다면 소림의 청해선사, 무당의 태청도장, 아미의 복룡대사, 청성의 운류도장, 종남의 광정도장 등이 배석을 하였다.
지성룡이 무림정의군에서는 아무런 직책이 없지만 실질적으로 무정선사보다 위에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그 것은 지금의 출정은 지성룡에게 가해진 암수를 징벌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소생의 일로 이렇게 많으신 분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 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강호동도들이 나서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성룡은 일어나 포권을 하여 그들에게 예를 표하였다. 어찌 되었건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나섰건 고마운 일은 고마운 일이었다.
“아니오이다. 강호무림에 몸담고 있는 자들이라면 의당 떨치고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무당의 태청도장이 지성룡의 예를 그렇게 받아넘겼다.
“자, 잠시 자리에 좌정을 하여 향후의 일을 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장룡은 무림맹의 요인들과 뒤에 남아 출발 하기로 하였기에 그들과 이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서 오다 보니 합류하지 못한 자들을 기다려서 사흘 후에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의 일정은 사흘 후에 천지문의 경계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림맹의 천기각주가 일정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그 후에 어떻게 하실 것이오?”
지성룡은 그 후의 일정에 대하여 물었다.
“그 일은 일단 천하신존대협의 의견을 일차적으로 듣고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맹주님과 총사님의 의견에 따라 몇가지 복안을 준비하여 두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소이다.”
무정선사는 결정을 보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였다.
“그렇다면 복안을 듣고 싶소이다.”
태청도장이 그일에 대하여 말을 하였다.
천기각주는 품속에서 책자를 꺼내어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현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큰 불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복안은 도착하여 죄인들의 자진출두를 최후로 촉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흘이 지난 후에 행동에 들어가는데 그 방법이 두세 가지 있었다.
첫번째 방법은 처음부터 전면전을 치루어 속전속결을 하는 방안이었다. 하나 이 방법은 자칫 대량 살상이 벌어질 위험이 있고 돌발 상황이 벌어져 패하는 경우에 회복이 불가능한 치명적인 위험이 있었다.
두번째 방법은 일을 함에 있어 시간을 두고 부분적인 전투를 하면서 그들을 압박하여 봉쇄하는 방안이었다. 그 방법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들은 봉쇄되어 있기에 사기가 저하되고 내부에서 이탈자가 발생하거나 불만을 가지게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붕괴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세번째 방안은 두번째 방안을 기본적으로 취하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전면전에 준하는 공격을 하여 순식간에 무너뜨려 살상을 최소화 하는 방안이었다.
이렇게 대규모 군세가 이동하는 상황에서 취할 방안이라는 것이 뻔하기에 그 방법이라는 것이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음, 제 생각에는 첫번째를 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두번째 방안을 취하다가 대를 보아 세번째 방안으로 전환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죄를 진자들은 몇몇인데 그들로 인하여 우리측의 희생도 크고 그들 수하들도 크게 희생되는 사태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지성룡의 말에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일단 지성룡의 의견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처음부터 전면전을 주장하여 반대에 부딪칠 여지가 많은 상황에서 그렇게 주장을 하여 남의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들도 아직 자신이 없군. 내가 이런 선택을 하여도 나서지 않는 것은 결국 나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것보다 시간을 가지고 모색을 해보겠다는 것이군.’
지성룡은 사대문파의 인물들이 말이 없기에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있었다는데 출정식에 참여를 하지 않고 여기에 온 것은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오?”
사대문파의 장로들은 지성룡과의 대면을 마치고 물러나오면서 아까의 일을 언급하였다.
“그렇기도 하지요. 이일에 전면에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피한 것이지요.”
그렇게 말하였다.
“한데 인상이나 성품은 어떤 것 같소이까?”
태청도장에게 복룡대사가 조용히 물었다.
“관상을 그리 믿지 않지만 강한 성품이 드러나고 있었소이다. 또한 그 기도가 마치 다른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고 흘러 넘치기 직전의 물처럼 고요하되 안에서는 요동하고 있었소이다.”
“나도 그렇게 보았소이다. 한데 향후 무림의 앞날은 우리가 막던 막지 않던 간에 천하신존이 좌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소이다. 우리 제자들 중에 그에 필적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절감하였소이다. 지난 오년간 절치부심하여 이룩한 것들이 초라해 보였소이다.”
복룡대사는 마음 한구석에 패배감이 자리하는 것을 은연중에 표하고 말았다.
“당분간 우리 제자들 중에 그에게 필적할 인물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오. 아니 소림의 무정에 필적할 인물도 나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외다.”
태청도장도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가서 차나 한잔 합시다.”
그러면서 무당의 문도들이 머무는 막사로 그들을 이끌었다.
“한데 그가 전면전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소극적인 전술을 택한 것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전비는 그들이 전적으로 부담한다고 보았을 때에 그런 선택은 그들의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오?”
운류도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면전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기에 그들은 당시 의아하였던 것이다.
“그는 지략가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선택하여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가 피하려고 한다면 암습은 피할 수도 있는데 암습을 당하였습니다. 그 것은 이미 그의 계획 속에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태청도장은 자신의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그가 겁내는 것은 피입니다. 피를 흘리는 것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그 피를 흘림으로써 그에게 쏟아질 세간의 여론을 겁내는 것입니다. 그가 젊은 혈기에 원한에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자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무공 고수에 불과할 것이나 그가 두려운 존재라는 것은 그가 냉철한 계산을 하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태청도장은 탄식을 하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그들 문파 내부의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자리에 있던 자들이기에 이번 출정에서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 만난 지성룡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이었다.
무림맹에 와서 느낀 것도 무림맹이 천하문에 의하여 운영되는 볼품없는 조직으로 알았는데 철저하게 계획된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의 무림맹에 비하면 예전의 무림맹이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천하문의 세상이 오래갈 것이라는 느낌은 나만이 가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태청도장이 그렇게 말하자 삼인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현재 맹주님을 비롯한 무림맹의 수뇌부가 낙양에서 출발하였다 하옵니다.”
천기각주는 지성룡에게 찾아와서 그간의 상황을 별도로 보고하고 있었다.
“또한 병력은 천사백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에 그들을 모두 받아 들이기고 하였다고 합니다.”
천기각주는 인자기의 명을 받았기에 와서 연락 겸 소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데 맹주님이 오시는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인데 같이 오는 것이오?”
“예, 그렇게 연락이 왔습니다.”
“알았소. 계속 수고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천기각주가 물러가자 황영지는 지성룡의 앞에 앉았다.
“지금 악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용제가 도착하였다는 것인가?”
“예, 그러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정대로 기존에 있던 이천의 주둔군에 대한 지휘권을 명대로 인수하였다고 합니다.”
용소명의 보고를 먼저 본 듯 그렇게 말하며 서찰을 건네었다.
“음, 역시 예상대로 용제는 당가의 일을 조사하기 시작하였군.”
지성룡은 용소명이 당가의 일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 곳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지. 용제가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지.”
지성룡은 만족스러운 듯이 말을 하였다.
“상공, 이일을 일기투로 처리하실 것이라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하실 것이옵니까? 이만한 병력이 모였는데 일이 끝났으니 돌아가라고 하여 쉽게 돌아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후의 계획을 묻는 것이오?”
“그래요? 상공의 속을 요사이에는 알 수가 없어요. 상공이 천하를 제패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혈세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기도 해요.”
황영지는 말에 지성룡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상공이 하는 것은 천하에 적수를 모두 사라지게 만들어 버리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하려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지금 이일은 여러 가지 의미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고 많은 일들이 이루어 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종을 잡을 수가 없어요. 이제 이일이 끝나면 당가를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황영지의 질문은 지성룡이 결정하지 못한 일들을 묻고 있었다.
“지금의 상공은 계획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치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어요.”
황영지는 지성룡의 일에 강하게 불만을 표하였다.
“아직 모든 것을 말할 때가 아니오. 좀더 상황이 전개되면 말을 할 것이니 기다리시오.지금 고민하는 것은 천하제패가 아니오.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방법이 결정될 것이오.”
지성룡의 말에 황영지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천하제패가 아니라 그 이후라고요? 이미 그 방법은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가 결정되지 않았기에 고민한다면…….”
처음에는 지성룡을 보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혼자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죽였다.
그녀도 천하제패만 생각하였지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황영지는 지성룡의 고민을 듣자 같이 고민에 휩싸였다.
‘실로 이 문제는 천하제패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구나.’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하는지 막막한 일이었다.
권불십년이라고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천하제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영원히 권자에 군림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 방법에 대하여 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천하제패를 하되 제일 좋은 방법은 뒤에 조용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는 것은 고생만 하였지 실속이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방법은 무엇인가?’
그렇게 고민하며 앉아 있었다.
황영지의 뇌리에 해결방안이 쉽게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철권으로 강호를 휘어 잡는 것도 한동안이다. 그렇다면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것을 강압적으로 해서는 안되다. 그렇지 않다면 역공에 휘말려 종말이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결국 피를 흘리지 않는 천하제패를 하여야 한다. 그 것이 불행을 방지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반대파들이 나 피흘리기 싫다고 하여 알았습니다 하면서 굴복할 리가 없었다.
말로는 쉬운 일이나 힘으로 얻기보다 몇 배의 힘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상공이 이 것을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천하지주로서 거듭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의 상공이라면 무조건 힘으로 밀어 부쳐 굴복을 시키거나 없앴을 것이다.’
황영지는 그렇게 생각하자 지성룡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이후의 천하를 걱정하는 사람이 취할 길은 무력보다는 상술로서, 상술보다는 보이지 않는 인정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이후의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완벽한 상권과 소식망을 만들어두고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대하여 암중공략을 하면서 상공에게 적대 세력을 보이지 않게 압박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그러나 이 것은 적들의 완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가 있었다. 반항할 방법도 없이 암중으로 압박하는 것은 결국 완강한 반도을 수반하는 수가 있었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궁지에 놀린 그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길은 극렬한 파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천지문이나 만상문이 다른 수단이 없기에 암습이라는 수를 사용한 것처럼 그들도 그런 막다른 선택을 할 것이었다.
‘명분을 축적하여 그들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인가? 이는 오히려 힘으로 밀어부치는 것보다 더 지독한 방법이다. 상공의 선택이 이런 것인가?’
황영지는 지성룡이 하려는 방법이 철저한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여 알 수가 있었다.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물어보시구려.”
“상공은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상술이나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그들을 굴복시킬 셈이로군요.”
“그렇소이다. 힘을 사용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오.”
“하나 힘으로 하는 것보다 더 지독한 방법이 아닐 수가 없군요. 그렇게 된다면 다른 수단이 없는 적대 세력들은 결국 힘으로 들고 일어나서 파괴를 할 것이 틀림이 없어요. 그 것도 알고 있나요?”
“천지문이나 만상문이 사용하는 방법처럼 말이오?”
“그래요. 그들이 암습을 한 것은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 다면 존재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법을 쓴 그들이 잘못이지만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하도록 만든 상공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황영지의 말은 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게 만든 지성룡의 일 처리에 대하여 지적하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 하고 있다는 것이오?”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상공은 그들을 압박하여 말살하려고 하고 있고 최후에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결말이 난다는 것입니다.”
“하면 차라리 힘으로 하라는 것이오?”
“그 것이 아니라 그들과 공존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을 용납하고 있소이다. 단지 그들이 나를 용납하지 않는 것 뿐이오.”
지성룡은 황영지의 말에 방어적으로 변명을 하였다.
스스로 고민하면서 자문하여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었다.
“상공이 원하는 공존과 그들이 원하는 공존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나요? 상공은 그들이 상공이 이룩한 세상에서 수하로서 공존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반면 그들이 원하는 공존은 상공의 간섭이 없는 공존, 대등한 공존이란 말입니다. 이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성룡은 황영지의 말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결국 이말은 천하제패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천하제패를 하려고 하는 한 언제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상공에게 모두가 진정으로 굴복하여 따르지 않는 한 항상 그런 움직임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 것은 상공이 무력으로 하건 상술로 하건 다른 방법으로 하건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물론 지금처럼 몇 번 명분을 얻으면서 정벌을 한다면 가능할 것이나 천하의 패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무수히 반복되는 일입니다.”
“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오?”
“그들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도록 하세요. 한발 먼저 다가서서 그들의 마음을 얻도록 하세요. 그리고 대세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세를 한번 움직여 민심을 얻도록 하세요. 기교로 얻은 천하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대세로 민심을 움직여 천하를 발아래 스스로 엎드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황영지의 말에 지성룡은 고요히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둘이 마주앉은 군막은 적막하기마저 하였다.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저 시간이 가도록 기다리면 성취될 일을 서둘러 그르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후에는 기다리십시오.”
황영지의 말은 다소 모순이 있으나 타당하기도 하였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인가? 지난 오년을 기다린 것도 모자라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다시 한번 의문이 생겼다.
“하면 지난 반년간 한일이 모두 성급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시오?”
“아닙니다. 적절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적절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이번 일까지도 무리가 없는 것이라 생각이 들고 일기투로 마무리 지어 피를 흘리지 않는 것도 적절한 방책이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신다면 그 것은 무리한 일이라 생각하옵니다.”
“하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오?”
황영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되물었다.
“아니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일을 하게 맡겨두라는 것이옵니다. 그 것은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도 이루어질 것이 없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입니다. 상공은 시간이 흐르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상황인데 조급하게 열매를 찾지 말라는 것이옵니다.”
황영지의 말에 지성룡은 자신이 지난 반년간 급하게 움직인 것을 알았다.
“이제 상공은 한발 물러서서 열매가 익기를 기다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대문파, 당가, 소림, 기타 세력들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한비자의 투계(鬪鷄)에 대한 고사를 말하였다.
지성룡은 황영지의 말에 얼굴이 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신랄한 비판의 말이었다.
“허허, 정말 고약한 비유구려. 그럼 나는 어떤 싸움닭이요?”
“건들기만 하면 발끈하는 싸움닭이옵니다.”
황영지의 말은 신랄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차츰 지성룡은 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구료. 아직도 미성숙한 것 같구료. 부인의 말을 항상 염두에 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