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123)
조용한 삼경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그런 시간에 객지의 객잔에서 잠 못 이루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의 삶도 참으로 고단하기 그지없구나.’
지성료이었다. 지성룡은 요사이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운기조식으로 피로를 풀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항상 깨어있기에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무슨 운명이기에 객지를 이리 헤매고 다닌단 말인가? 무엇을 바란다고 이런 고생을 하는가?’
스스로 회의가 들고 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 살벌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슨 세력을 제거하고 어디를 공략하고 또 누구를 제거하는 등의 생각을 해보지 않고 지나간 적이 얼마나 되는가?’
지성룡의 뇌리에는 회의와 아쉬움과 안타까운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어떤 악인도 나처럼 매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무수한 죄악을 범하고 사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도 죄라고 하지 않던가?’
“어떻게 결정을 해야 합니까?”
이성량은 지청운이 물러가자 이단현에게 다시 물었다.
“이미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느냐? 그자를 제거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어떤 방법으로 제거하느냐 그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단현의 말은 제거를 하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왕진으로서는 그자를 제거한 연후에 일어날 사태를 생각한다면 인정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이런 일은 한번 시작하면 어느 한쪽이 무너질 때까지 그칠 수가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성량도 권력의 속성이라는 것이 한번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치고 싶다고 하여 그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민하는 것이다. 이일로 왕진을 제거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고작 그자만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이후에 이루어질 집요한 역공을 생각한다면 그 이후에 일어날 승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자칫 그자의 역공에 휘말린다면 우리들도 멸문을 당할 소지가 있다.”
이단현이 두려워 하는 것은 왕진을 제거하지 못한 이후에 일어날 이후의 싸움이었다.
만일 황제가 이번 기회에 왕진을 제거하지 않고 살려준다면 오히려 그 일은 왕진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아 장기적으로는 열세에 처할 수도 있었다.
“결국 왕진에게 오히려 우리가 한수를 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옵니까?”
이성량은 이단현의 복안을 읽자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야 하옵니까?”
“그래야 할 것 같다. 이 문제는 우리가 거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진이 거론하게 만들어 다른 사안으로 매듭을 짓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오면 방법이 있사옵니까?”
“그 것은 왕진이 생각하여야지. 내가 할 문제가 아니다. 그와 나는 애증이 있지만 벌서 이십년 이상을 부딪쳐 왔다. 이 한수로 그를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국 내일 만나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전에 내일 은밀히 지영반과 참룡검객을 만나도록 하자.”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이옵니까?”
이성량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물었다.
이자홍은 평상시대로 말이 없이 그대로 있었다.
“그저 본다고 하여야 하겠지. 하나 듣기에 그자는 천하에 뜻이 있다고 들었다. 그 천하는 조정과 다른 것이라고 들었으니 경계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나 천하를 생각하는 자이기에 보고 판단은 해보아야 하겠지.”
이단현의 말에 이성량은 부친의 흉중에 들어 있는 생각을 짐작하였다.
“하오면 그자를 야인으로 대하실 것이옵니까?”
강호인들이 조정대신을 만나기를 꺼려하였다. 그것은 상호간의 예우 때문이었다.
조정 대신들의 입장에서 강호의 쟁쟁한 인물들이나 촌에서 농사짓는 자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하찮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런 대접을 하는 일이 많았다. 면전에서야 그런 대접을 참더라도 이후의 일은 불상사가 많았다. 어느 날 그런 대신이 급사하는 일도 있었다. 그 무인이 모욕을 참지 못하여 손을 쓴 것이었다. 하나 물증이 없기에 소문만 무성하지 그 일로 처벌된 무인은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강호무인과 조정대신들은 서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럴 경우에 중간에 사람을 내세워 왕래를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성량의 질문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었다.
자칫 그런 문제로 악감정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 왔기에 그런 문제가 생기면 만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하를 생각하는 사람을 야인 취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에 걸 맞는 대우는 합당하다. 그자가 진정으로 천하를 생각한다면 그런 취급을 당한다고 하여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이단현의 말에 이성량은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건 중요한 것은 이일을 잘못 처리하여 강호에서 소문으로 조정에 흘러 들어온다면 조정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단현은 노회한 정치가답게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일단 이야기는 했지만 생각을 하여 보겠다는 말로 확답은 피하였다.”
지청운은 지성룡이 찾아가자 그렇게 말하였다.
“아마 이대장군부로서는 다소 부담이 될 것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왕진과 유리한 입장에서 타협을 할 것입니다. 하나 그런 타협을 왕진이 선뜻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양진충이나 양사청에게는 무력이 있습니다. 그 무력을 움직여 저항한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것을 알기에 왕진으로서도 거래에 함부로 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그 사실을 이대장군부도 알고 있습니다.”
지성룡의 말에 지청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대장군부에서도 이런 모든 것을 밤새 검토하였을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거시적인 면이나 더 중요한 것은 왕진이라는 자이다. 왕진이 생각하는 것을 보다보면 그자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하나 의아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즉, 그자는 황제를 위해서는 정적에 대한 감정을 접을 줄도 안다는 것이다. 이대장군부나 양대장군부나 동등하게 생각하고 자신은 그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하는 일면까지 보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과감한 숙청도 할 수가 있다.”
지청운의 이야기에 지성룡은 새로운 사실을 들은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오면 이 거래를 받아 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하나 그자가 독한맘 먹고 오히려 역으로 숙조부나 저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이대장군부에 제의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성룡의 말에 지청운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그럴 수도 있는 인간이다. 너를 경계하는 조정의 여론도 일부는 있는데 이 기회에 아예 우리를 제거할 도박을 벌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가 살기위해서는 조정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사태도 일어날 수가 있다.”
지성룡은 그말에 다소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느꼈다. 혹여 그런 사태가 벌어질 뻔한 오년전의 일을 생각하자 불안해졌다.
“그런 위험이 있기에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 양대장군부가 더 융성해지고 양진충이 득세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더욱 어려워 질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지성룡은 오년전의 일을 생각하자 강하게 주장을 하였다.
“하나 이일은 밀어 부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조정의 권력을 쥐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강하게 밀어부쳐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 손으로 조정을 좌지우지는 못할 망정 적대적인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렇기는 하다만 너무나 위험하기도 하다.”
지청운은 자신의 처지에서 어떻게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 탄식을 하고 말았다.
“무슨 일인가?”
지청운은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밖에 소리를 하면서 나갔다.
“이 것을 전해드리라고 하옵니다.”
총관이 전하는 서찰을 조용히 받아 봉함을 뜯어 읽어 보았다.
“알았네. 가져온 자에게 그렇게 한다고 전해주게.”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지청운은 방으로 들어왔다.
“자네를 이대장군부에서 보고자 하네. 지금 은밀히 들어오라고 하네. 방법은 나랑 같이 들어가는 방안이 있고 아니면 은밀히 찾아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네.”
“먼저 들어가십시오. 저는 은밀히 그 곳에 잠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네. 은밀히 들어오라고 하였으니 그 것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네.”
지청운은 지성룡의 의중을 알기에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
“지영반이 들어왔는데 혼자라고 합니다.”
이성량은 지청운이 혼자 들어온다는 보고를 받자 이단현에게 먼저 와서 고하였다.
“그렇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상하구나. 그자가 말을 전해 듣고 거절을 한 것이 아니냐?”
이단현은 자신이 공연히 일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다. 사정이 있어 나중에 올 수도 있으니 일단 내색을 하지 말아라.”
그들의 대화가 막 끝났을 때 지청운이 들어 왔다.
“자네를 보자고 한 것은 이일에 대하여 좀더 상의를 하기 위해서 였네. 한데 참룡검객은 아직 오지 않았는가?”
이단현은 지청운에게 말하였다.
그 때 지청운의 귀로 전음이 들려왔다.
“지금 병풍 뒤에 있으니 들어왔다고 답해주십시오.”
“은밀히 뵙자고 하온지라 은밀히 먼저 당도하여 있사옵니다.”
지청운의 말에 이단현과 이성량은 얼굴이 빨갛게 변하였다. 자신들이 나눈 대화를 모조리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지성룡은 지청운과 나란히 서 있었다.
“문후 올립니다. 소생 지성룡이라 하옵니다.”
지성룡은 이단현의 나이가 많기에 존장의 예로 일배를 하려고 하였다.
“아니오. 멈추시오. 어찌 강호제일인에게 예를 받을 수가 있는가?”
이단현은 말렸지만 지성룡은 예를 표하였다.
지성룡이 일배를 하자 이단현은 받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지성룡은 일어서서 마주섰다.
“말로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알겠소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듣기가 민망하옵니다. 제가 한참 어린 후배이오니 말씀을 편히 하십시오.”
지성룡은 그렇게 말을 하였다.
“아닐세. 내가 자네를 보자고 한 것은 강호제일인인 자네이지 한참어린 후배를 보자고 한 것이 아닐세.”
이단현은 처음에 당황하였지만 곧 평정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지성룡이 굽히고 들어오면 못이기는 척 받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그 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배운 경륜이었다.
그들은 몇 마디의 의례적인 말을 더 주고 받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만났으면 한 것은 이일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 심대하기에 좀더 알아볼 것이 있기에 청한 것이오.”
이단현의 말투는 반공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말투는 조정의 몇몇 중신을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는 어투였다.
“하문하십시오.”
지성룡은 상대가 아무리 반공대를 한다고 자신마저 반공대를 할 수는 없기에 공대를 하였다.
이단현도 지성룡이 공대를 하는 것 까지는 막지 않았다.
“귀공이 생각하는 처리는 그자들의 처단이오 아니면 단순한 조정에서의 축출이오?”
이단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소생이 바라는 것은 그자들이 강호인이기에 강호인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지성룡은 이단현의 표현을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였다.
“알았소이다. 하면 강호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것인지 답해줄 수 있소이까?”
“그자들이 촌부로 살아간다면 무림의 혈사에 관여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 관여를 한다면 그 것은 강호의 법도에 따라 처리를 할까합니다.”
“어려운 결정을 하였소이다. 귀공의 뜻에 따라 처리를 하겠소이다.”
이단현은 그렇게 말하였다.
“하나 이 것은 이대장군부에서 단독으로 하는 일이 아니기에 다소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가 안될 수도 있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귀공은 이 문제에 관하여는 최대한 양보를 해주시기를 청하오이다.”
이단현의 말에 들어 있는 의미에 지성룡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예’라고 답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들어 있는 말이었다.
“어찌 양보라 할 수 있습니까? 경륜이 많으신 분들이 하시는 일이니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처리를 하시겠지요.”
지성룡의 말에 이단현의 얼굴에는 다소 흠칫하는 기색이 어렸다.
“이런 볼품없는 노인의 청을 따라주어 고맙소이다.’
“소생의 이런 청을 가납하여 주시니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니오이다. 아니오.”
“이대장군이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왕진은 제독총감 유희가 직접 들어와 전하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섰다.
이단현이 이곳까지 발걸음을 하는 것은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기에 왕진은 맞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 궁금하고 한편으로 불안하였다.
“너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여라.”
대동하고 오던 이자홍과 이성량에게 문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 말은 그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지만 왕진과 수하들에게도 단둘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는 의사표시였다.
“들어가십시다.”
왕진은 말없이 이단현을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를 하였다.
둘은 탁자에 서로 마주 앉을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 노인이 입조하여 왕제독을 찾아온 것은 조정의 환란을 막고자 함이오.”
이단현의 말에 왕진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조정은 본시 강호의 일에 대하여 크게 관여를 하지 않고 있소이다. 그 죄상이 극악하거나 황조의 안위를 위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단현이 갑자기 강호무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왕진의 마음 한구석에는 내심 걱정하던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강호에서는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변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일로 현재 커다란 풍파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일은 왕제독께서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단현이 말하는 것이 명확해지자 왕진은 놀라는 표정을 감추고 조용히 있었다.
“한데 이 일에는 만상문이라는 강호세력이 개입하였습니다. 현재 무림공적으로 지목될 것이 확실한 실정입니다. 한데 조정에 그 비밀제자들이 암약을 하고 있습니다.”
이단현의 말에 왕진은 진짜로 놀라고 말았다. 다행히 그 것을 표하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이순간 왕진의 머리는 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내용을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평지풍파를 일으키게 된다.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일은 단순히 개입하였다고 하여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일에 개입한 것과 제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개입하였을 경우 적당히 ‘백성의 안위와 황제를 위하여’라는 말로 덮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비밀제자라는 것은 그런 명분으로 미화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모른다고 하기에는 동창의 수장인 나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확증이 어느 정도 있기에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왕진이 말이 없자 이단현도 말을 멈추고 가만히 왕진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찾아온 것은 이 문제를 나와 타협하자는 것인데 무엇을 원하는가? 일을 키우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인데.’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십시오.”
왕진은 그렇게 요구사항을 정하였다.
‘왕제독도 뭔가 낌새를 알고 있었던가? 어디까지 알고 있다는 것인가?’
이단현도 왕진이 아예 모르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어 보였기에 선뜻 말하기도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그자들을 조용히 물러나게 하였으면 하오이다. 그 일을 조정에서 따지면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 예상됩니다.”
“양대장군과 좌영반을 파직하라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자들을 파직하던 낙향을 시키던 그 것은 왕제독게서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단현의 말은 왕진에게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자가 원하는 것이 단순한 이들의 제거만인가?’
그렇게 보이기도 하나 그 깊은 속을 알 수가 없어 왕진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온 것은 실로 폐하와 조정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뿐이니 이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단현은 왕진이 자신의 내심을 재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왕진은 이단현을 알기에 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위여부를 좀더 파악한 연후에 조치를 취하오리다.”
“그럼.”
그렇게 말하고 이단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하였다.
왕진은 어떻게 배웅한지도 모르게 이단현을 배웅하였고 정신을 차린 것은 자리에 앉아서 였다.
‘그자가 고강한 무술을 지닌 것을 간과하였다. 그저 강호의 숨겨진 문파려니 하였지 삼비문의 하나인 만상문의 비밀제자라고 생각치 못한 나의 불찰이다.’
왕진은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이일을 어떻게 처리한다는 것인가? 낙향을 권유하여 조용히 마무리를 지어? 하나 낙향을 한다는 것은 그나마 있던 보호장치마저 사라지기에 그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 이일을 조용히 해결하지 않고 밝힌다면 결국 저번 왕대장군부에 버금가는 혈사를 동반할 수가 있다.’
아직도 그 일로 인한 후유증을 회복하지 못한 실정에서 다시 그런 혈사를 일으키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었다.
‘무고한 자들이 그 밑에 있다는 죄로 수천이나 죽어나갈 수가 있다. 그것을 다시 한다면…..’
생각만하여도 그 이후의 일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이대장군도 이 것을 알기에 타협을 청한 것이다. 공멸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다. 하나 그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힘으로 평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반시진 이상 동안 고민하는데 다시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대장군부에서 이성량장군이 다시 왔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여라.”
이성량은 들어오자 한장의 서찰을 건네었다.
“아버님게서 마저 하시지 못한 일이 있다고 전해드리라고 하여 이렇게 왔사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이성량은 들어오자 말자 한장의 서찰만을 전하고 떠나갔다.
< 강호에 돌아가 초야에 묻히면 안빈할 것이나 강호사에 뛰어들면 그 끝이 좋지 못할 것입니다.>
이단현의 글귀를 보다가 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일은 지영반을 통하여 천하문에서 꺼낸 것이 맞군. 조정에서 떠나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것이군.’
왕진은 생각을 정리되는지 몇 번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