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96)
“우리가 먼저 돌아간다는 것입니까?”
“녜,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주공은 아마도 바로 개봉으로 오실 것이라 사료됩니다.”
용소명은 황영지에게 천하문 일행들과 같이 떠나자고 말을 하였다.
“하나 오히려 지금 떠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내상으로 폐관을 한다고 하였는데요.”
“그 점은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누구도 크게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무시하면 됩니다.”
황영지는 용소명이 그렇게 말하자 의아하였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저 모처에서 치료를 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가 말 것입니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해야 할 일을 못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황영지는 용소명의 말에 결국 짐을 챙겨서 천하문 일행과 같이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특이한 것은 그 일행에 제갈휘미가 같이 동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동행은 황영지가 같이 간다고 하여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천하문에서는 지일광과 지청현을 필두로 무림척살대에서 나온 천하칠걸과 무사들까지 합하여 거의 오백에 육박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내가 듣기에 구룡상단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들었어요. 인총관이 빠지고 나면 그 일은 누가 담당하나요?”
황영지는 궁금하여 용소명에게 물었다.
“제가 주로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의형이 지금쯤 개봉에 도착하여 있을 것입니다.”
“아, 송장주님이시라는 분 말이죠. 그 분이 오신다면 다행입니다. 한데 상단의 운영을 잘 모른데 제가 단주를 맡아야 한다니 걱정이 앞서네요.”
“뭐 문제가 있겠습니까? 가는대로 주공이 이번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이일을 마무리 지으면 될 것입니다.”
황영지는 이런 책임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걱정이 앞서는 것 같았다.
“저도 잘은 모르지마 언니를 도울께요.”
제갈휘미가 듣고 있다가 안심을 시켰다.
“구룡상단이라니 정말 이름이 멋져요. 구룡상단이 되면 천하문과는 어떻게 되는 것이죠?”
“지금과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서로 협조는 하되 독립적인 관계입니다.”
용소명의 말에 제갈휘미는 그런 관계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많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부탁을 드립니다. 제갈소저.”
용소명은 제갈휘미가 동행을 하자 내심으로 꺼림칙하였다.
무슨 생각으로 동행하여 오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순수하게 인질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밝았다. 제갈휘미는 여자이기에 꼭 인질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분위기상 그저 황영지를 따라오는 것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황영지와 어느 사이에 의기투합하였는지 지금의 분위기상으로는 돌아가서도 당연히 황영지가 하는 일에 같이 참여할 것이 뻔하였다.
“구룡상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가시는 동안 상단에 대하여 좀 알려주면 안되나요?”
제갈휘미의 요청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황영지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해주세요. 나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부분은 잘 모르니 나에게 말해주면 되겠어요. 같이 들으면 되겠네요.”
황영지의 말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칠주야에 이르는 동안 내내 구룡상단에 대하여 말을 해야 했다.
“아버님. 성룡이가 다시 돌아오면 뭔가 변화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연룡은 지유성에게 천하문 일행이 무림맹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물었다.
“뭔가 바뀌어야 할 것인데 그 방향이나 방법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아직 모르겠구나. 그애에게 직접 들어야 하는데 그 방안이 전례에 없던 것이면 다른 가문뿐만 아니라 본가에서도 반발이 생길 것이니 그 것이 걱정이다.”
지성룡에게 천하문에서 베푼 특혜만 가지고서도 말이 많은 현실이었다.
“이미 시작된 일입니다. 성룡이가 보낸 서신을 어제 받았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바로 돌아오지 못하면 처리 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지성룡이 연경으로 출발하기 전에 용소명에게 남긴 서찰이었다.
“음, 천하문의 무력을 총관장하는 자리를 만들어달라. 명분은 독문무공을 전수하여야 한다. 천하오단과 천하관을 관장하게 해달라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이 것은 그 아이 밑에 있는 용소명이라는 아이가 보내온 서찰입니다.”
지연룡은 품에서 한장의 서찰을 꺼내었다.
그 서찰을 지유성에게 건네었다.
“음, 구룡상단을 만들어 며늘아기에게 관장하도록 한다. 영웅성과 혼사를 추진한 후에 태상호법이 된다. 또한 본문의 무력을 통합하여 천하경영의 기반을 마련한다.”
지유성이 글을 읽다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이 일중에서 안된 것은 본문의 무력만이 남았다는 것이냐?”
“예, 이일은 너무나도 민감한 사안이라 말을 꺼내기가 주저스럽습니다. 지금도 타 가문에서 불만인데 무력을 성룡이에게 넘긴다는 것은 반대가 워낙 심할 것입니다. 단지 독문무공을 전수하기 위해서라는 것에 오태상어른과 오원주어른의 결단을 이끌어 내는 것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이일은 그 아이가 돌아온 이후에 공식적으로 언급을 하자. 그 아이도 없는 상황에서 말을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늘 중으로 아버님을 찾아뵙고 의논을 해볼 것이다.”
지유성은 터무니없는 지성룡의 요구에 골치가 아파왔다.
지금까지 오대 가문이 공동으로 천하문을 운영해오던 것을 뒤집는 처사나 다름이 없었다.
이 말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네 가문의 반대에 직면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런 일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천하문 무력을 총괄하는 자리는 문주에 버금가는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최소한 천하상단이나 천하표국, 천하전장을 맡고 있는 부문주의 권한과 맞먹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를 내어달라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아이의 요구가 천하문의 무력을 총관장하는 자리란 말이냐?”
지용운은 지유성이 밤에 찾아와서 건네는 말에 어이없는 표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실로 대담하고 무서운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야 좋겠지만 다른 네 가문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한 일이다.”
지용운도 이말을 듣자 역시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목적이 천하제패가 아니옵니까? 이미 영웅성의 여아와는 조부님이 혼사를 정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은 그 아이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발벗고 나서시는 분이니 그 것은 당연하다만 지금은 어른들의 말씀도 잘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지용운의 반응은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아버님이나 조부님이 돌아오시면 내가 상의를 해보마. 천하제패를 한다고 이왕에 목표를 정하였다면 본문의 벽도 뛰어 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 아이가 돌아온 후에 구체적으로 움직이도록 하자.”
“예, 그럼 이일은 그때까지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가문에서 성룡이를 보는 눈이 곱지를 않으니 걱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일단은 밀어부쳐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차라리 연룡이가 그렇다면 문제는 크게 없을 것인데…..”
“본가의 오대(五代)가 다 알고 추진하는 일입니다. 지금에 와서 본다면 오년 전에 차라리 공개를 하여 내부적으로 공감을 얻었어야 할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해도장을 어린아이 다루듯이 제압하였으니 그 아이가 돌아온 이후에는 대놓고 반대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용운이나 지유성이나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안고서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타 가문을 설득할지에 대하여 머리를 맞대고 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정면 돌파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해도장이 그렇게 맥없이 성룡이에게 제압이 되어 버리다니?”
사태상과 사원주는 모처럼 청명원에 모였다.
모임을 제안한 종수사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그 아이가 돌아온다면 지가는 이번에 무력을 내놓으라고 할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종수사는 지청현과 지일광이 돌아온다면 결국 지성룡의 천하제패를 위해 천하문의 무력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 당연해 보였기에 그들이 오기 전에 입장을 정하려고 모인 것이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지성룡을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 천하제패를 하려 한다는 것은 다른 네 가문에서도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오년 전 그 아이가 천하제패를 추진하다가 승천검황어르신의 제재로 뜻을 접고 오년간 자중하였지만 이제 그 어른마저 사라진 마당이니 누가 있어 그 아이를 막을 수 있습니까?”
단목영의 자조적인 말에 모두가 서로의 얼굴만을 보고 있었다.
“영웅성도 오년전에 이미 그 아이의 수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혼사마저 발표된 마당입니다. 거기에 그 아이가 지난 오년간 암중으로 닦아 놓은 상권만도 본문의 삼할은 될 것입니다.”
양조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네었다.
그들이 몰라서 지성룡의 일을 모른 척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것을 거론 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서로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 아이의 천하제패를 우리도 바란다는 것이오.”
종수사의 말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우리도 암중으로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이 본문에 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오. 그런데 문제는 본문의 오대가문이 공동으로 가지고 있던 권리를 지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오.”
선언적인 종수사의 말에 모두는 얼굴이 굳어졌다.
“이번에 우리가 동의를 한다면 당분간 우리 네 가문은 지가의 속가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오.”
종수사의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네 원주의 표정이 마침내 굳어졌다.
“물론 우리가 반대한다고 하여 그 아이가 천하제패를 못할 것도 없소이다. 단지 그렇게 되면 도왔을 때보다 좋지 않은 결과는 분명한 것이오.”
소양기의 말이 종수사의 말에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내어주느냐 아니면 못내주느냐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이 종수사의 입에서 떨어지자 모두 침통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아버님, 그리고 어르신들, 제 생각에는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아래 애들은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아이만이 현재의 본문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기반을 튼튼히 할 것입니다.”
종유명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그 이유를 말해 보아라.”
“그 아이와 우리와는 모두 인연이 깊습니다. 누구보다 그 아이를 많이 접한 것도 우리들입니다. 그 아이가 그리 욕심이 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젊은 사람답지 않게 생각이 깊다는 것입니다. 그 속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다소 염려스러운 점이지만 한번쯤 운명을 맡겨도 될 아이라는 것입니다. 모른 척 따라주십시다.”
종유명이 좌중의 동의를 구하였다.
종유명의 말에 모두들 대안이 없었다.
“그 아이를 부정하는 순간 천하문은 큰 혼란에 휩싸일 것입니다. 따르십시다.”
소유현마저 동의를 하였다.
“결국 그들에게 주자는 것인가?”
양조휘가 탄식하듯이 말하였다.
“아버님, 대세이옵니다. 따라야 합니다. 따르기로 하였다면 차라리 지태상과 지원주와 더불어 협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양광령이 협상에 대하여 말을 꺼내었다.
“협상이라, 무엇을 협상한다는 것인가?”
종수가가 되물었다. 협상을 하고 말 것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네 가문의 권리에 대하여 보장해준다는 것을 확약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무력까지 차지하고 난다면 본문에서 거칠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반대는 그저 반대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겠다고 맘 먹은 이상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확약을 지가의 핵심인물에게 약속 받아야 할 것입니다.”
“문주와 세 아들을 말함인가?”
“그렇사옵니다. 그들에게 다짐을 받아야 합니다. 설사 지켜지지 않을 지라도 나중을 위해서는 다짐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세.”
지성룡은 새벽에 양진충의 저택에 잠입해 들어갔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자신이 직접 잠입하여 확인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었다.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지성룡의 눈에는 그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사람을 도열해 놓은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지성룡은 벽호공을 사용하여 어둠을 이용하여 담을 소리없이 넘었다. 지난 오년간 개봉과 천하문을 밤만되면 염탐하고 다닌 그의 실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그는 한번 보자 어디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 거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 것은 남의 집을 수도 없이 밤에 방문해본 감이었다.
지성룡은 양진충의 처소로 생각되는 곳으로 잠입해 갔다. 그러나 아직 야음이 전부 가시지 않았기에 들키지 않고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성룡은 일각의 시간을 소요하여서야 그 곳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물론 더 빨리 갈 수도 있지만 굳이 흔적을 남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막 새벽을 맞고 있는 대갓집은 종노와 아랫사람의 부지런함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성룡은 처마아래 빈 공간에 올라서서 조심스럽게 불이 밝혀지지 않은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냉기가 감도는 것으로 보아 광이나 빈방으로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간 후에 창문을 닫았다. 바닥이 마루였다.
지성룡은 천지지청술을 이용하여 인기척을 살폈다. 바로 옆방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지성룡은 어둠 속에서 경물들을 살폈다.
각종 함들이 놓여 있는 것이 귀중품을 모아놓은 비고로 파악이 되었다.
한쪽에는 잘 보지 않는 책인지 책도 책장에 꽂혀있고 검이나 활 같은 무기도 몇 개 보였다.
그리 중하지는 않되 귀중하여 보관할 가치가 있는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룡은 한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등청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때에는 안에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상태가 될 것이다. 그 때에 이 곳을 뒤지면 뭔가 도움이 될 것이 있을 것이 자명하였다.
‘만일 태을자의 잔당이라면 그 순간 너는 죽음이다. 또한 천지문이나 만상문의 끄나풀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숙조부님을 지켜 줄 것이다. 일단은 너의 진정한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성룡이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일각여가 지나자 마침내 인기척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양진충이 깨어난 것이다.
양진충은 깨어나자 자리에서 조금 움직이다가 소리가 잦아 들었다.
아마 운기조식을 하는 것 같았다.
숨소리가 점점 가늘어 지고 있었다.
지성룡은 진기의 흐름을 감지하였다.
‘아 이 기운은 익숙하다. 만상문의 문도들에게서 느낀 기운이다.’
지성룡은 그 하나로 양진충의 정체에 대하여 알 수가 있었다.
지성룡은 암세, 비세, 양세라고 태을자, 만상문, 천지문을 마음속에 분류하고 있었다.
‘음, 지난 오년간 궁금하게 생각하였던 만상문의 흔적이 이런 곳에서 발견되다니…’
지성룡은 양대장군부의 급속한 부상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을 알았다. 만상문이 뒤에서 비호를 해주었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성룡은 인내심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기척을 남겨 경계심을 줄 필요는 없었다.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증거는 있기 마련이었다.
반시진 정도가 흐르자 기척이 커졌다.
곧 이어 밖으로 나갔다 조금 지나서 안으로 들어왔다. 세안을 하고 오는 것 같았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의관을 정제하는 것 같았다.
조금 지나자 적막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성룡은 반시진 이상을 더 기다렸다.
그리고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방 이십여장 이내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진기로 음파를 차단하여 자신의 기척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움직여 문을 움직여 열어 보았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안에서 잠근 것 같았다.
지성룡은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안에 있는 물건을 먼저 수색하기로 하였다.
눈에 뜨이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놓여진 위치를 확인한 후에 열어보았다. 다행히 자물쇠는 잠겨 있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서류를 꺼내자 시시콜콜한 재산에 관련된 서류가 있었다. 각 곳에 있는 재산에 대하여 정리한 서적부터 각종 매매 서류들이 있었다.
그 것을 보자 숨겨둔 재산이 엄청남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원하는 서류가 아니었다.
조용히 다시 한바퀴 둘러보았다. 바닥이 마루였다.
‘분명 뭔가 바닥이나 벽에 비밀이 한두개 있기 마련인데.’
지성룡은 그 것을 찾기로 하였다.
‘여기다.’
뒤주가 놓여진 곳이 이상하였다.
무거운 뒤주가 자주 옮겨진 것인지 바닥이 긁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뒤주를 움직였다. 마치 뒤주를 이동시키기 위해서인지 빈공간이 있었다.
뒤주를 이동시키자 네모난 돌판이 놓여 있었다. 지성룡은 조심스럽게 돌판을 이동시켰다. 돌판을 들어 내자 사방 한자의 공간이 나왔고 그 안에 서찰과 책한권이 보였다.
우선 서찰을 읽었다.
‘만운이라는 자가 누구지?’
대부분은 만운이라는 자에게서 온 것들이었다.
시시콜콜한 무공 진도를 묻는 것에서 황궁의 동향이나 금위위 위사로 누구를 받아들이라는 것까지 다양하였다.
그 것을 읽자 만운이 양진충의 사부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또한 군산이라는 표현을 보자 동정호 군산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종이의 재질이 강남에서 주로 사용하는 종이와 비슷하였다.
마지막으로 책을 보았다.
< 만상요결(萬象要結)>이라고 적혀있었다. 다른 무엇에 비추어 만상문의 제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틀림이 없었다.
궁금하여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본인지 최근에 제작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무공에 대하여는 워낙 관심이 많기에 한순간에 다 읽고 말았다. 만상문의 무공에 대한 요결을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이라 대부분 이해가 되었다.
지성룡은 자신이 지금 염탐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 원래 있던 대로 서찰을 놓아 두고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에 놓아 두었다.
‘만상요결은 삼화취정의 단계를 다루는 무공이다. 만일 팔성 이상만 터득하였다면 숙조부는 십초지적이 되지 못한다. 그가 아까 다룬 기의 단계로 보면 팔성 수준이 분명하다.’
지성룡은 지청운을 보지 못했기에 단계를 잘 모르지만 천하문의 그만한 연배의 사람을 생각하자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진충이 최선을 다한다면 십초지적이 못된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이 이렇게 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룡은 모든 것을 정리하자 다시 자리에 은신하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양진충이 만상문의 제자라면 이곳에 다른 만상문의 제자가 있을 수도 있었고 그들에게 자칫 들키는 날에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었다.
그저 야음이 내리도록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성룡은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만상요결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것은 그가 무인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