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문무공-92화 (92/149)

제  목: [연재] 독문무공(92)

장안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무림맹의 맹주를 선출하기 위한 회합은 무림맹에 가입한 모든 문파의 대표가 참석하는 대 회합이 되었기에 각 문파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각 문파의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는 드물기에 이런 자리에 모여 서로간에 친분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각 문파는 후기지수들을 대동하여 강호 견문을 넓혀주고 있었고 보통은 최소 이삼십명씩 모여서 오는 것이 관례였다. 더구나 농번기도 아니기에 최대한 인원을 동원하여 참석하였다.

장광루(長廣樓)는 무림맹의 일로 머무는 사람들로 하나 둘 차기 시작하다 보니 이제는 빈방이 없이 가득차게 되었다.

그런 장광루의 후원 한쪽 광한전(廣漢展)에는 지금 청년과 중년인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고 마치 결전을 앞둔 용사들처럼 비장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탁자앞에 아무런 말이 없이 조용히 앉았다. 그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들과 간간히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지만 그리 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 이제 사람들이 모인 것 같으니 우리가 모인 목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도록하세.”

당한영이 앞으로 나섰다.

“그 전에 불초가 전에 경거망동을 하여 군웅회의 앞날에 커다란 누를 끼친 점에 대하여 사과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오년간은 불초에게 있어 참으로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초래한 것이 불초이기에 더욱 괴롭습니다. 또한 그 일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회한의 나날을 보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당사자 중에 팽형은 아직도 어디에 갔는지 연락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한영의 자기 비판이 이어지는 동안 누구도 말이 없었다.

“불초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하여 일을 그르쳤기에 이렇게 다시 모이시게 하는 것 자체가 실로 염치가 없는 일이지만 불초가 이렇게 다시 모이시게 하는 것이 순리일 것 같아 불초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뻔뻔스럽게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당한영의 한마디 한마디는 신중하였고 그 내용이 논리적이었기에 모두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석년 우리가 경솔히 천하문에 비무를 신청하여 개망신을 자초하였습니다. 그 점을 돌이켜 보면 우리들은 어두운 음지에서 오년간 피땀을 흘리며 절치부심하였습니다. 그런 지난 세월의 덕분에 우리들은 강해졌습니다.”

당한영이 하는 말은 약간의 문제가 있기에 사람들중에는 못마땅한 표정이 있었지만 당한영은 그것을 무시하고 마저 말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들을 이긴 참룡검객에게 설욕하기에는 우리들의 능력이 아직도 미미합니다. 또한 설사 능력이 되어도 석년의 승부를 가지고 어떤 설욕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한 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패배에 좌절을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젊은 것도 사실입니다.”

당한영이 이말을 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팽효중이 벌떡 일어섰다. 이제 그도 나이 서른을 넘어 가고 있었다. 군웅회의 이기이지만 이제는 그런 기수 같은 것은 별로 구애됨이 없기에 약간은 무례하지만 벌떡 일어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모이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당사자이기에 연락을 받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형님의 말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실로 예전이나 다름이 없기에 듣다가 일어났습니다.”

팽효중이 말을 하자 군웅회의 모임을 주도한 앞쪽에 읹은 팔룡들의 얼굴이 다소 상기되었다.

“현재 무림맹은 이미 천하문의 독주체제로 형성이 되었고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하문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에 모여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우리가 모이는 자체도 집안 어른들은 불안한 눈초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최소한 스물 다섯이 넘었고 이제는 가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가져서 알 것이지만 무림은 힘만으로 살 수가 없고 뒤에는 바로 먹고 살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 먹고 사는 문제를 천하문에게 얼마나 붙잡혀 있는지도 잘 아는 상황에서 사천에 있어 크게 영향이 없는 당형과 여기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과는 다른 것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팽효중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흔들렸다. 당한영이 군웅회를 다시 모아서 천하문에 대립하는 세력으로 만들려 한다면 참여가 곤란하다는 선을 긋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네. 현실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네. 단지 어떻게는 다시 무림의 일에 참여를 해야 할 시점에서 우리가 뭔가 같이 모여서 예전의 오명을 정리하고 새로이 시작하자는 것일 뿐이네.”

그때 밖에서 황급히 한 인물이 들어왔다.

말을 들은 당한영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었다.

“제가 미처 연락이 닿지 않아 연락을 못드린 전의 형제들 십여명이 더 참석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당한영이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곧 십여명이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은 들어오는 순간 험악한 표정을 짓고 당한영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노려보았다.

“당형, 우리는 사람이 아니오? 이런 일을 하면서 연락도 하지 않다니? 실로 당형의 행동은 졸렬하기 짝이 없구려?"

산서성의 묵가장의 소장주인 묵도형이 들어오자 마자 큰소리를 외쳤다.

그 곳은 이미 천하문의 영향권에 완전히 들어버렸기에 군웅회의 핵심은 아니지만 일기였던 자인데도 제외를 시켰다.

그 말에 당한영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 말에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닿지 않아 연락을 못했다는 핑계는 진짜로 핑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곤혹스러운 얼굴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 가만히 옆에 있던 위지강천이 일어났다.

위지강천이 일어나자 모두의 시선은 위지강천에게 쏠렸다.

“연락을 하지 않았던 점은 사과하네. 그러나 우리의 처지에서 연락을 하지 못한 점도 이해를 해주게. 현실적으로 우리가 모이면 결국 천하문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아마 모든 사람에게 연락을 하였다면 이 자리가 성립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네. 일단 왔으니 자리에 앉도록 하게.”

위지강천의 말은 잘못은 인정하되 그 잘못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하기에 더 이상의 분란은 없이 넘어갈 수가 있었다.

누가 뭐라하건 위지강천은 실질적인 군웅회의 회주 역할을 하였던 사람이었다.

위지강천이 그들이 앉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리에 서서 장내의 사람들을 바라보자 누구도 말이 없이 자연스럽게 위지강천에게 주목을 하였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여러분들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야 당형에게 연락을 받았고 단지 예전에 잘못한 당사자로서 이일을 외면하여 다른 형제들까지 똑같이 취급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왔습니다.”

위지강천의 말에 대부분은 자신들의 생각에 이일의 주동자가 위지강천으로 알다가 아니라고 하자 당한영이 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 우리가 오년전에 한 실수는 컸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잘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여 어떤 무례를 범하였을지 눈에 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 일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지강천의 말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면이 있고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의 세월을 말하기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처지이기에 그들은 집안이나 산속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무공을 닦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오년 수련한 그들은 예전에 비하여는 엄청 강하여 졌다.

“하나 문제는 무공을 익힐수록 더한 절망에 빠져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무공의 대단함을 더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고 나서 그저 운이 없어 졌다는 생각이 절반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지금도 그 때 상대를 하였던 참룡검객의 무위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온 것은 세상에 무공이 전부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공에서 졌다고 하여 은둔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지강천이 말을 하자 어떻게 하면 천하문에 설욕을 할 것인가를 말하는가 궁금해 하던 자들의 얼굴에는 실망이 어렸고 어떤 이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렸다.

“내가 이렇게 모인 마당이니 현실적으로 석년의 일을 정리하고 새로이 무림의 일에 참여할 길을 모색해 보았으면 합니다.”

위지강천의 말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꼬리를 내리자는 말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위지형의 말처럼 현실적으로 이제 무림의 일에 참여를 하자는 것입니다.”

당한영이 다시 일어나서 첨언을 하였다.

하나 일부는 그 말에 불만이 있는 듯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이왕에 온 것이니 나도 한마디 해야 겠소이다.”

묵도형이 일어나서 말을 꺼내었다.

“위지형의 말은 실로 뭔가 착각을 한 듯 합니다. 예전의 군웅회의 일원이었던 자들이 무림의 활동을 하기에는 여건이 아직 좋지 못합니다. 활동을 한다는 것은 천하문과 충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인데 그 점을 교묘히 덮어가는 것 같습니다.”

묵도형의 말은 당한영과 위지강천의 내심 한구석에 있는 약점을 통렬히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집단적인 활동재개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천하문에게는 대립적인 행위로 보일 것은 뻔하였다. 그 것을 교묘한 말로 피하면서 세력을 결집하는 것이었다.

모두는 묵도형의 말에 위지강천과 당한영의 말속에 들어있는 헛점을 파악하고 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대결을 포기하고 세력대결로 방향을 선회하자는 이야기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예전에 오대문파가 돌아가신 맹주님에게 등격리에서 했던 일이나 천하문에게 했던 일들이 그런 일들인데 우리도 무리를 지어 그런 짓을 하자는 말이 아니오?”

묵도형이 반발하여 외치자 장내는 수근 거림의 강도가 커졌다.

위지강천은 그렇게 직시를 당하자 내심으로 당황스러웠다.

“묵형,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묵형의 지적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묵형의 말대로 하기에는 우리는 현실적으로 약합니다. 그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대문파처럼 무림맹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소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현실적인 무림맹의 참여를 말하는 것입니다.”

위지강천의 말에 묵도형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양보를 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들은 그런 힘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왈가왈부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았다.

“내 생각은 무림맹의 일에 우리가 참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여를 하지 않고 은둔만을 한다면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 예전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서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무림맹에서 백의 종군이라고 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위지강천의 말에 묵도형은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용소명을 만나서 이일에 대하여 협의를 하였다.

“묵형의 말씀 고맙습니다.”

묵도형은 용소명을 만나자 군웅회의 일에 대하여 말을 먼저하였다. 묵가장은 용소명에게 잘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용소명에게 아부하는 심정으로 이일에 대하여 말을 한 것이다.

용소명이 건방지지도 않고 항상 먼저 묵가장을 배려하기에 묵도형은 군웅회의 일을 잊고 지금은 충심으로 용소명을 대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신경을 써주시니 저희 주인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 일에 대하여는 듣고 있지만 모이는 것에 대하여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데 묵형은 그곳에 가실 것입니까?”

“가보아야 하는데 오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을 딴 데서 듣고 화가 나서 이렇게 몇몇 친하던 자들과 같이 모이기로 하고 왔습니다만……”

묵도형은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서 용소명에게 말끝을 흐렸다.

“이해합니다. 아마 묵형이 우리와 친한 것 때문에 초대를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가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만 마침 저도 부탁을 하나  드리려고 하는데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묵도형은 용소명이 부탁이라고 하자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용소명의 기색을 보자 어떤 목적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말씀을 해보시오.”

“묵형이 그곳에 다녀오면서 가급적이면 중심인 인물들에게 공개적으로 저나 인총관님이 한번 만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묵도형은 용소명의 말에서 군웅회와 현실적으로 타협을 원한다는 것을 읽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마침 그런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내내 친하던 자들이 나를 따돌림하자 맘이 편치 않았습니다. 용형이 그렇게 해주시니 오히려 마음이 놓입니다.”

묵도형은 용소명의 당부가 떠오르자 아직은 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러섰다. 천하문과 군웅회가 대립구조가 되는 것은 묵도형이나 많은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괴로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다. 서로 공존을 모색해 보는 것도 필요하였다.

용소명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천하문의 뜻으로 파악하여도 무방하였고 그런 생각을 천하문이 한다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대립보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타협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다.

“위지형의 말은 무림맹에 참여를 하자는 말이구려. 그렇다면 어떻게 참여를 한다는 것입니까?”

팽효중이 그렇게 따지듯이 말을 하자 당한영이나 위지강천은 막상 대답이 마땅치가 않았다. 현실적으로 천하문에서 모든 자리를 독점하다시피한 무림맹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다고 말 그대로 무림맹에 백의 종군한다고 하급무사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좀더 생각을 하고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으니 회포나 풀어봅시다.”

묵도형이 분위기를 녹이기 위해 그렇게 말하였다.

하나 시기적절한 이말이 못마땅하기는 팽효중이나 위지강천 모두 마찬가지였다.

내내 벼르던 팽효중은 선배들에게 할말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한 것이 불만이었고 위지강천과 당한영은 막 분위기가 자신들이 원하는 분위기로 가는데 김을 빼버리기 때문이다.

묵도형의 말에 모두는 더 이상의 논의를 접고 서로 인사나 안부를 묻기 시작하였다.

“잘들 지내었소?”

위지강천과 당한영을 비롯한 대부분의 일기들은 묵도형이 다가와서 말을 걸자 그저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 것으로 상대를 하고 말았다. 묵도형은 그들의 냉랭한 태도에 예상을 했다는 듯이 당한영과 위지강천의 맞은편에 좌정을 하였다.

“당형은 내가 맘에 안드나 봅니다.”

당한영은 묵도형이 마주 앉아 말을 걸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형에게 한마디 전할 것이 있소이다. 이번 무림맹의 맹주는 제갈세가의 제갈가주로 결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당한영은 묵도형의 그 말을 굳이 전할 가치가 있냐는 표정으로 보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말이 아니라 이 말이오. 그런데 그 것을 천하문에서 누가 결정하였다고 생각하시오?”

묵도형의 말은 당한영에게 은밀한 음모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말을 지금 하는 이유는 당한영을 시험하는 의미와 은밀한 거래를 청하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은 그 진실을 받아들이라는 강요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천하문에서 이일을 주도한 사람이 참룡검객이라는 것이오.”

당한영은 묵도형이 말을 하자 이미 대답을 예상하였지만 막상 입으로 그렇게 말하자 그 말을 하는 의도가 더욱 미심쩍었다.

그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문과 이 자리에서 제일 밀접하다고 할 수 있는 묵도형이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하라고 지시를 받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즉 그 말은 자신이 천하문에서 어떤 역할을 지시 받았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었다.

“천하문에서 나나 위지형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까?”

당한영도 대놓고 물었다.

군웅회의 일기들은 이미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기에 옆 사람들과 대화를 멈추고 그들을 주시하였다.

“맞소이다. 우리들과 참룡검객이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기꺼이 승낙을 하였습니다.”

당한영과 위지강천은 공공연하게 묵도형이 일을 꺼내자 대답을 하기가 곤란하였다. 이런 일이라면 마땅히 막후에서 은밀히 이야기를 건네야 했다. 그런데 묵도형은 공개적으로 천하문과 군웅회의 협력을 타진하는 것이다.

“내가 이일을 비밀리에 말해야 할까도 생각을 하였지만 언제건 알려질 것이 뻔하기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묵도형은 용소명에게 이일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들었기에 그렇게 말하였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 이일은 금방 소문이 되어 돌 것이었다. 차라리 비밀리에 추진하여 야합이라는 의혹을 받을 바에는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공론화 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그 것도 좋은 방법이오. 그러면 누구를 만나는 것이오?”

위지강천이 분쟁을 피하듯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직 맹주님과 대총사가 선출이 되지 않았기에 만나는 것은 시기상조이고 맹주가 선출된 후에 대총사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묵도형의 말에 당한영이나 모두는 갑자기 대총사를 말하는 것에 의아하였다. 그들에게 대총사는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천기각주와 부총사를 지내었던 인자기 어른이 다시 대총사로 복귀하는 것이 유력한 상태입니다.”

묵도형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면 충분히 대총사의 자격이 있었다.

“아마 이렇게 되면 무림맹은 젊은 사람들로 교체가 될 것이고 우리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 생각이 되네. 현실적으로 대립보다는 참여를 원한다면 이 방법도 좋을 것이네. 이제 우리들도 삼십대 중반이고 대부분이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가 되었고 현실을 보아야 할 것이오.”

묵도형의 말은 실로 예전이었다면 몇 사람이 칼부림을 할 내용이었지만 이제 그러기에는 그들은 현실의 냉엄함을 잘 알고 있었다.

독불장군처럼 여기서 설쳐 보았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다행한 일이네. 그러나, 우리들에게 남겨진 오명은 문제가 아닌가?”

당한영은 묵도형의 말속에 들어있는 독을 알기에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 독은 그들에게 투항이라는 또 다른 오명을 남길 것이었다.

“양보를 할 것이니 그리 걱정은 안될 것이네. 지금에서 군서회라고 놀리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라도 비무를 한 우리들에게 차라리 용감하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한번은 생각해보게.”

묵도형의 말에 그들의 얼굴은 화도 못내고 꾹 눌러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오년전 검마나 태을자에 필적하는 무위를 보인 것은 무구나 아는 사실인데 그런 그와 싸워서 진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한다면 천하인 모두가 다 똑같아 진다고 생각하네.”

묵도형의 말은 아전인수격의 억지이지만 그들에게 그런 말이라도 듣고 싶은 유혹이 있기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

위지강천도 묵도형이 말하는 것이 궤변이지만 그 또한 현실이기에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오세요.”

용소명은 묵도형이 찾아오자 귀추가 궁금하던 참이라 반갑게 맞았다.

“일단 부탁한 대로 말을 던져놓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반발이 없었소이다.”

묵도형은 용소명이 궁금해 할 내용을 먼저 말하였다.

“어찌 되었건 수고하셨습니다. 오명을 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나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오. 내가 생각해도 필요한 일이기에 아선 것이오.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묵도형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오히려 적극적이 되어 말을 건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뭐 특별히 논의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모두가 소외되어 오년간 있다 보니 뭔가 해보고 싶다는 것이 역력하였습니다. 한때 화려했던 영화를 생각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아마 그들에게 무림맹에서 현실적인 일자리를 제의하면 모두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알겠소이다. 무림맹주의 선출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주공에게 묵형을 만날 자리를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묵형도 그 동안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묵형이 보기에 능력이 출중하신 분들에 대하여 저에게 추천을 해주시면 적극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무림맹뿐이 아니라 상단에도 많은 분들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묵도형은 용소명이 미미한 부총관의 자리에 있지만 실세라는 것을 알기에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하면서 배려를 하였다.

“군웅회와의 일에 대하여 용부총관의 배려가 절실합니다. 자칫 대립하는 일이 발생하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묵도형은 자신이 돕는 것이 아무로 비칠 수가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나름대로 대의를 강조하고 있었다.

용소명은 그렇게 묵도형이 합리화를 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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