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89)
제갈중명이 문앞에 나타나자 지성룡의 표정은 굳어지기 시작하였고 그와 마주할 때는 냉막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제갈가주님.”
지성룡이 냉랭한 목소리로 제갈중명을 마주하였다. 제갈중명은 지성룡의 표정이 굳어있자 그 표정에 들어 있는 의미를 읽으려고 하였지만 알 수가 없어 불안하였다.
“예, 그간 상주로서 모든 것을 처리하느라 힘이 드셨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일단 들어갑시다.”
지성룡이 제갈중명을 안으로 인도하였다.
제갈중명이 안으로 들어가자 지성룡이 따라서 들어오고 인자기와 용소명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이 닫히자 제갈중명은 표정에 놀람이 퍼졌다. 지성룡이 제갈중명을 여러 번 만났지만 이렇게 단둘이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자기나 용소명이 배석을 않는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다.
둘은 마주앉았다.
“제가 제갈가주를 청한 것은 몇가지 상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 이일에 앞서 한가지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성룡은 자리를 잡고 앉자 먼저 말을 꺼내었다.
지성룡이 몇가지 상의를 한다고 하자 그 말이 궁금하였지만 갑자기 한가지 깊어보고 넘어간다고 하자 그 일이 불안하였다.
“먼저 짚어보아야 할 것은 제갈가주가 한말입니다.”
지성룡이 그 말을 하고 다시 뜸을 들이자 제갈중명은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제갈중명이 보는 지성룡은 말이 없지만 필요하다면 언제건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삼년전에 제갈가주와 인총사와 내가 중양절날 같이 모였던 적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제갈가주는 나에게 군신의 간의 예로서 나를 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기억하십니까?”
지성룡의 말이 튀어 나오자 제갈중명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자 얼굴이 변하였다.
“그 때 했던 말은 진심이오이까?”
제갈중명은 지성룡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에 곤혹스러웠다.
“물론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지성룡의 멀굴이 부르르 떨리면서 기세가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제갈중명은 지성룡의 표정을 살피다가 그 표정이 너무나도 무서워 자신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진심이라는 것이오? 그런 사람이 그렇게 행동을 하는가? 내가 오라고 한 것이 어제인데 하루 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그 진심이오?”
지성룡의 말은 진기가 실려 제갈중명의 귀를 멍멍하게 만들고 있었고 몸에서 피어나는 기세도 처음 보는 가공한 것이기에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지성룡의 노기가 기세를 타고 그의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바르르 떨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 기세에 밀려 바짝 고개를 숙이니 마치 죄지은 사람이 용서를 비는 형상이 되었다.
“수하된 자로 그 주군을 와서 기다리지는 못할 망정 오라는 데도 하루 반을 미적거리다가 오는 것이 옳은 것이오?”
제갈중명은 정신이 아득하여 지고 있었다.
“아니옵니다. 어찌 제가 그럴 마음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하니 이번만은 내가 믿어주고 넘어갈 것이오. 하나 만일 추후에도 이런 일이 다시 한번만 발생한다면 그 죄를 반드시 물을 것이오.”
제갈중명은 지성룡의 말이 끝나도 한참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제갈중명은 지성룡의 이런 모습을 처음보기에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림맹주가 되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그런 결정은 누가 내린 것이오?”
지성룡이 부드럽지만 강하게 묻자 대답을 못하였다. 삼년전의 일을 긍정한다면 제갈중명이 하는 일은 지성룡의 허락을 얻고 추진해야 했다.
제갈중명은 이런 말을 듣자 사고하는 이성이 사라지고 오직 잘못했다는 두려움만이 뇌리를 지배하였다.
“제가 경솔하게 행동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 앞뒤 가리지 못하고 그런 행동을 하였습니다.”
제갈중명은 두려움에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쩔쩔매면서 말을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알았소이다. 내가 제갈가주가 결코 딴 뜻이 없음을 알았으니 되었습니다.”
지성룡은 끌어올렸던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말을 부드럽게 하였다.
그러자 제갈중명은 다소나마 편안해 지는 것을 느끼며 자세를 바로 하였다.
“내가 보자고 한 것은 검황어르신이 맹주로 계실 때 본문에서 모든 실무를 맡아서 처리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본문이 무림맹을 독단적으로 이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제갈중명은 지성룡이 말을 꺼내지 처음에 들어올 때 했던 생각을 함부로 말을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기탄없이 말을 해보시오.”
제갈중명은 다시 재촉을 받자 놀라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하였다.
“그런 말이 돌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것은 말그대로 무림맹의 일을 좌지우지했던 오대문파에 빌붙어 있던 자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하는 말이오니 개의치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제갈중명은 그렇게 말을 하여 자신의 본심을 속였다.
“무슨 말이오? 지금 제갈가주가 나선 것도 그런 무림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오?”
지성룡의 말은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부는 그렇습니다만 그것은 천하문에서 판단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천하문에서 필요하다면 맹주를 다시 맡으면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천하문에서 칼자루를 쥐고 잇습니다.”
“좋소이다. 그럼 천하문에서 이런 여론을 의식해 한발짝 물러서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오?”
지성룡이 다시 묻자 제갈중명은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칫 말을 잘못하여 지성룡의 심기를 거슬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제 생각에는 천하문에 우호적인 자가 맹주를 맡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림맹과 천하문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가 불필요한 분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제갈가주 같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구려. 좋소이다. 제갈가주를 맹주로 인총관을 대총사로 하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소이다.”
지성룡이 지금 자신을 부른 이유가 그 말을 하기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 나는 제갈가주가 무림맹의 맹주자리에 올라서도 일방적으로 천하문을 위한 일을 하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오. 어찌 보면 천하문에게 손해를 주는 일이 결국에는 천하문에게 이익을 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오.”
지성룡의 말은 천하문의 꼭두각시가 되어 천하문만을 위한 일을 하는 맹주가 되기를 원할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을 하지 않자 다소나마 걱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문제는 관외로 간 태을자의 소식이 아직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쪽에 대하여 경계를 해야 합니다. 그 점 많은 주의를 바랍니다.”
지성룡의 말에 제갈중명은 일방적으로 자신이 지시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심으로 불만이 오히려 생기지 않았다.
“사조님, 승천검황의 장례가 끝났습니다. 이제 사조님이 나서 무림맹을 정상적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운정도장은 정해도장이 아끼는 종남의 제자였다.
종남을 떠나올 때 데리고 온 유일한 제자였다.
“나도 요사이 그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하던 중이다. 무림맹에서는 아직도 본도에 대한 수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승천검황이 사라졌으니 이제 내가 나서 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사조님이 나선다면 사조님에게 대응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무림맹에서 천하문을 몰아내고 사조님이 다시 맹주로 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일거에 전세를 뒤집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운정도장의 말에 정해도장의 노안에 희망으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승천검황에게 밀려 오년동안 숨죽이던 세월을 일거에 뒤집어 버리는 쾌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 안된다는 말은 누구도 못할 것이고 반대를 하는자는 무림의 관례대로 비무를 통하여 굴복시키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하는데 참룡검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이다. 만일 참룡검객을 이기지 못한다면 언제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은밀히 나가 참룡검객에 대하여 알아보아라.”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일에 대하여는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그일을 위해서 무림맹에 가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무림맹의 맹주를 선임하는 회의가 승천검황의 사구제에 있기에 그리 시간이 많지 않기에 그들은 출발을 하기로 하였다. 더구나 이동을 하는 동안에 남의 이목을 피해야 하기에 그들은 먼저 출발을 하였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이 그간 제대로 외모에 신경을 쓰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산속의 조그만마한 움막은 동정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고 그 움막을 나서는 그는 검을 어느 순간에 뽑아들었는지 휘두르고 있었다.
그렇게 거의 한시진 가까이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는 바로 위지강천이었다.
한때 검룡이라는 명칭으로 천하의 부러울 것 없이 무명을 떨치던 그였다. 그러나 한순간 지옥과 같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단 한번의 패배로 그는 지난 세월 인공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오직 이 움막에서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면서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내려갈 것이다. 준비를 하여라.”
위지강천은 무구에게 하는 것인지 말을 던졌다. 그러자 십여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위지강천은 그 충격으로 한동안 폐인과 같은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나 이렇게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가전의 팔황검법을 극성에 이르도록 연마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지난 오년의 세월동안 이제 극성으로 터득은 한 것이다.
“문제는 이제 실전경험과 깨달음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내가 익힐 수 있는 것은 전부 익혔다. 이제 설욕을 하여야 한다.”
위지강천은 나직히 속삭이듯 말을 하였다.
그는 그동안 혼자 보내다 보니 독백을 하던 버릇이 들었다.
“돌아왔습니다.”
위지강천은 집 중앙에 위치한 대전으로 들어갔다.
“본가의 팔황검법을 극성까지 익혔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위지강천이 말하는데도 중앙에 앉아 있는 초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의 얼굴은 밝지가 않았다.
위지강천의 아버지인 위지검한이었다.
“알다시피 오년전에 참룡검객은 사마의 일인인 검마나 삼도의 일인인 태을자와 대등한 무위를 보였다. 이미 지난 오년간 그도 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니 이제는 그 경지를 벗어나 승천검황이 보인 무위에 거의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위지강천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는 패배를 하자마자 산으로 들어왔기에 그런 소식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몰랐다. 오는 도중에야 겨우 승천검황이 무림맹주가 되었다가 얼마 전에 타계한 것을 안 것이다.
“그간의 일들에 대하여 알려주겠다.”
그러면서 위지강천이 움막으로 폐관수련에 든 이후의 일들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무려 한시진에 걸쳐서 설명을 들은 위지강천의 얼굴은 실로 다시 일그러지고 말았다.
오년 전에 보인 신위도 지금의 자신으로는 요원한 일이었다.
“알다시피 너의 무재가 뛰어나다는 것은 안다만 걷는 자위에 뛰는 자가 있고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 그렇기에 네가 지금의 상태에서 그를 넘기란 실질적으로 요원하다. 이미 그는 승천검황의 전인으로서 지난 오년간 암중에서 천하에 대하여 준비를 해오고 있다. 누구도 그가 등장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그 예상을 깨고 개봉을 떠나지 않았다. 또한 이번 장례에 전격적으로 상주가 되어 나타남으로써 천하의 중심에 서고 말았다.”
위지검한은 말을 하다가 위지강천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자신도 마음이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문제는 그가 지금 다시 천하의 중심인물이 되어 승천검황의 타계로 생긴 공백을 한 순간에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즉, 승천검황의 타계로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가 웅크리기에 그를 잊고 승천검황 사후를 대비하던 자들에게 그가 나타난 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점은 위지강천도 듣는 순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제 너도 다시 세가의 일에 복귀를 하여라. 지금에 와서 그에게 패한 것으로 인하여 너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있어서는 팔서(八鼠)라는 명칭에서 팔웅(八雄)이라는 명칭으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예전의 팔용만은 못하나 다시 너희들의 명예가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위지검한도 우스운 일이라서 웃고 말았고 위지강천도 웃고 말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웃어라. 그는 당금의 최고 고수라고 어느 순간에 평가 받고 있다. 그런 그이기에 패배는 그리 너에게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제 그 일은 잊고 다시 시작하자.”
위지검한은 쥐지강천이 다시 폐관에 들까 겁이나 달랬다. 경쟁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일이었다.
“이제 너도 나이가 서른 다섯이다. 철부지 청년은 아니기에 매사에 신중히 하고 천하제일인이 되거나 천하를 장악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상 그리 무공이 크게 세상을 사는데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니 무공으로 천하제일이 되겠다는 것은 이제 포기를 하여라.”
위지검한은 이미 무공대결로 지성룡을 꺾는 것은 포기하라고 종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최후에 웃는 자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일단 그를 만나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무림맹에서 맹주를 선발하는 회의가 있다 하니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데 하자. 그를 만나 이제 그와 친목을 다질 때이다. 누가 뭐라고 하건 이제 천하문의 세상이다. 한때 오대문파가 천하무림을 좌지우지하였지만 지금은 천하문이다. 그들과 대립하여서는 어떤 것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지검한의 말에 세상이 바뀐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아버님의 나이는 이제 쉰 여섯에 불과하시다. 본가의 율법상 가주를 물려줄 나이는 예순 다섯은 넘어야 하니 근 십년 가까이나 남았다. 그 사이에 넓은 세상에서 경험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본가의 팔황검법을 다 터득한다는 것은 요원하다고 하는 일이다. 그일을 마치고서도 이렇게 초라해지기는 실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위지강천은 모처럼 돌아와 부인과의 회포를 풀고 나서도 잠이 오지를 않아 밖으로 나와 달빛아래 뜰을 거닐면서 명상에 잠기고 있었다.
‘내가 지난 오년간 산속에 틀어박혀서 한 무공수련이 모두 허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난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도전을 하고 싶다. 들리는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질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부딪쳐는 보고싶다. 무림맹에 가서 그에게 부딪치고 싶다.’
위지강천은 내내 마음이 허전하고 허무하였다. 이런 감정은 지고 돌아왔을 때보다도 더 충격이었다.
‘이렇게 물러서기에는 지나세월이 너무나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가서 만나보고 만난 다음에 결정을 하자 . 그동안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나처럼 패배감을 이기지못해 괴로워하며 절치부심하였을 텐데 그들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쯤 다시 한번 패배감에 실의에 잠겨 있을 것이 아닌가?’
위지강천은 차라리 산속에서 나오지 말 것을 하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중요한 것은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위지강천은 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을 올려보았다.
그에게 오히려 밝은 달빛과 별빛이 서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좋다. 이제 패배는 잊자.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방문을 열고 내일을 위한 휴식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갔다.
“아버님,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시옵니까?”
제갈휘미가 지성룡을 만나고 돌아와서 칩거하다시피 들어앉은 제갈중명이 걱정되는지 방안으로 들어와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저 조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참룡검객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고 받았는지요?”
제갈휘미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너는 사람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에 대하여 들어보았느냐?”
제갈중명의 질문에 제갈휘미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더 설명해달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오늘 참룡검객을 만나는 자리에서 두려움에 오금이 저리고 하마터면 옷에 실례를 할 만큼 두려움에 젖었다. 어찌 내가 그럴 수가 있을까 싶어 믿어지지도 않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제갈중명의 말에 제갈휘미는 다소간에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황영지에게서 느낀 것도 그런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것도 같아요. 저도 무상천녀가 노여워하는 순간 두려움에 떨었어요.”
그말에 제갈중명은 제갈휘미가 왜 그렇게 세뇌당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이 도늘 당한 공포를 느꼈다면 그녀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말로만 듣던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기세로 사람을 제압하는 경지였다. 실로 무서운 일이었다. 그의 앞에서 겪은 이 두려움은 나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공포를 주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에는 공포가 묻어나고 있었다.
“왜 그렇게 하였습니까? 그렇게 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제갈휘미가 묻자 제갈중명은 그 일이 떠오르는지 공포가 다시 나타났다.
“예전에 군신간의 예로서 대한다는 약조를 한적이 있었다. 그 말을 근거로 오라고 하였는데 하루나 기다리게 하였다는 것과 내가 맹주가 되려한 것을 누구의 허락을 받고 행하는지에 대하여 추궁한 것이다.”
제갈중명의 말에 제갈휘미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소녀의 생각에도 아버님이 조금은 경솔한 처사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주군된 자라면 당연히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갈휘미의 말에 제갈중명은 조금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딸 앞에서 못 보일 꼴을 보이는 것은 뭔가 위로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지성룡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일에 대하여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하나 소녀는 진심으로 아버님이 이제 승복을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이일은 소녀의 장래와도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제갈중명에게 있어 제갈휘미의 태도는 얄미울 만치 냉정한 것이었다.
“그렇다. 이제 길이 없다. 이미 군신지례를 확약한 이상 따르는 것이 사나이의 길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너에게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럴까요? 저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는데요.”
제갈휘미가 그렇게 말하자 제갈중명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실 전 어릴적부터 천하제일인의 아내가 되고 싶었어요. 열두살 때 제 외모가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천하제일인의 여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포기를 하였어요. 그러면서 본가에 소장된 책을 읽어가면서 다시 한가지 가능성을 발견하였어요. 바로 머리가 좋아도 천하제일인의 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제갈휘미가 말하자 제갈중명은 얼굴에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그런데 천하제일인이 될 남자가 이미 혼례를 치루고 애까지 있었어요. 그런 사실 때문에 다시 포기를 하였어요. 그러나 어제 무상천녀를 만나고 그 가능성을 보았어요.”
“무슨 말이냐?”
제갈휘미의 생각에 질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발상에 제갈중명은 놀라면서도 한쪽에서는 이일에 대하여 계산을 해보는 제갈중명이었다.
“제가 보기에 무상천녀의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에게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예요. 아버님이 굽힌 이상 저도 가서 시녀는 아니지만 무상천녀의 곁에 있을 생각입니다.”
제갈휘미의 말에 제갈중명은 그녀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았다. 제갈휘미가 그렇게 결심한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황영지가 그것을 거부하지 않은 이상 말릴 명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