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84)
영소혜는 자신이 머무는 처소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면전에서 그렇게 박대를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황영지가 그런 식으로 모멸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화가 나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을 할 곳은 지성룡이지만 오년만에 겨우 코빼기 한번 보고 말았다. 그러니 입이 있어도 할말을 못할 것 같았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끙끙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였다.
‘당분간은 내가 참는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 언젠가는 너도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도 그렇게 오만한지 두고 볼 것이다.’
영소혜의 뇌리에는 황영지에 대한 반감이 새록새록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에서 감수해야 할 문제이지만 오늘의 태도는 실로 영소혜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었다.
지성룡에게 당하였던 것은 이미 잊어버렸다. 한데 다시 그와 같은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것은 영소혜에게 있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되어 피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돌려준다. 그때에 사정을 하게 만들 것이다. 오늘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든다.’
영소혜의 움켜진 손등에서는 핏줄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었다.
황영지는 영소혜를 보내고 나서 자신이 너무 모멸차게 영소혜에게 대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그녀로 인하여 한 마음 고생을 생각하면 오늘의 일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 앞에서 쉬쉬하며 영소혜의 이야기를 하는 용소명과 인자기의 태도는 그녀를 언제나 분노하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였지만 그때마다 끓어오르는 노화를 참을 길이 없었다.
‘하나 영소저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오늘 일로 인하여 원한을 가지면 안되는데….’
황영지는 영소혜를 그렇게 돌려보낸 것이 내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느낄 모멸감을 생각하자 마음이 불편하였다.
이왕에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면 자신이 넓은 마음으로 웃으면서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다고 하여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미 일은 돌이킬 수가 없는데….. 상공에 대한 불만을 영소저에게 푼 것 밖에는 아니지 않는가? 화를 내야 하는 것은 상공한테인데….. 그저 시간이 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공이 잘못이지.’
황영지는 그렇게 생각하자 지성룡도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일을 저질렀으면 자신이 해결하지 힘없는 영소저가 나에게 와서 수모를 당하게 하다니?’
황영지는 일으 이렇게 만들어 자신만 나쁜 여자로 만들은 지성룡에게 분노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영소저가 무슨 죄인가?’
지금의 마음같아서는 지성룡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해서 되냐고 묻고 싶었다. 천하태평하게 일을 이렇게 만들은 지성룡의 얼굴이라도 긁어놓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저 나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자 아장아장 걷는 애까지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두 아이를 꼬옥 껴안고 말았다. 한 순간이라도 그런 마음을 가진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듯이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
빈소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지성룡은 사마와 영소혜가 다녀간 후 내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사마가 이 먼곳까지 온 것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더구나 그들이 승천검황이 죽자마자 온 것은 이미 이일을 예상하고 오래전에 출발하였다는 증거였다.
아마 이번 일이 없었다면 개봉으로라도 찾아올 것이 분명하였다. 그 먼곳에서 온 것은 바로 이일을 해결하려는 사마의 의지라는 것을 읽었기에 더욱 불안한 것이다.
괜히 사마가 황영지의 심기를 자극하여 그 화가 자신과 영소혜에게 돌아가게 만들어 버리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잘 해결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 외에 길이 없었다.
황영지에게도 미안하지만 영소혜에게는 더 미안하였다.
자신이 책임 지지도 못하고 오년동안 노처녀로 방치하여 처녀의 몸으로 직접 나서게 만들어 버린 것이 미안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하나 일이란 때가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이고 지금가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문제는 지매를 다독여야 할 것이다. 한데 내가 어르신의 빈소에서 무슨 불경한 생각이란 말인가?’
자신이 승천검황의 빈소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세를 바로하였다.
“저녁은 손님을 불러올 것이니 준비를 좀 해주세요.”
황영지는 영소혜에게 한 일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총관을 들라고 해주세요.”
황영지는 내내 미안하여 영소혜를 다시 부르기로 하였다. 이대로 영소혜가 돌아간다면 서로가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용소명이 황영지가 찾는다는 전갈을 들었는지 나타났다.
마루에 서있는 황영지를 보자 마루아래 서서 무슨 일로 불렀는지 물었다.
“영웅성의 영소저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말해주세요.”
용소명은 영소혜가 오늘 왔다가 굳은 얼굴로 돌아가기에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궁금하였던 참이었다. 영소혜의 얼굴이 굳어있었기에 아는 체도 못하였다. 이런 일에는 모른척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인자기의 말도 있고 자신이 생각하여도 남녀간의 애정문제는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용소명은 황영지가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는 것을 보자 다소 안심이 되었다. 눈치가 밝은 용소명은 아까 만남에서 분위기가 조금 좋지 않았는데 황영지가 지금 다시 부르는 것은 뭔가 해법을 모색한다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용소명이 사마와 영소혜가 머무는 거처에 당도하자 분위기가 상당히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용소명을 알아보고 영웅성의 인물이 다가와서 맞이 하였다.
“소성주님에게 전할 말씀이 있는데 소성주님에게 일러주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용소명은 일단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용소명이 왔다는 말에 영소혜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영소혜는 지성룡의 심부름으로 온 줄 알고 물어보았다.
“저희 주모님이 소성주님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시고 싶다고 하옵니다.”
용소명은 남의 이목이 있기에 최대한 공대를 하였다.
용소명이 전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초대하는 말로 들렸지만 영소혜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호출이었다.
“알겠어요. 언제 가면 되나요.”
“적당한 때에 오시면 될 것입니다.”
“알았어요. 준비되는 대로 갈 것이니 그리 전해드리십시오.”
“예, 그러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용소명은 최대한 공손하게 말하여 다른 사람의 이목을 속이고 물러났다.
영소혜는 황영지가 저녁을 같이 하자는 전갈을 받자 준비를 하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래도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 것은 무엇인가 더 할 말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무슨 할말이 더 있어서 나에게 또 오라고 한 것인가? 아까 준 모욕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자 갑자기 가고 싶은 생각이 달아났다.
그러나 가겠다고 말하고 다시 안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서 간단하게 외출준비를 하여 일각만에 처소에서 나와 아까 갔던 길을 다시 가기 시작하였다.
영소혜가 도착하자 황영지가 밖으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와요.”
황영지의 얼굴이 아까에 비하여 많이 부드러워 졌기에 영소혜도 굳은 얼굴을 지우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들어가요.”
영소혜는 황영지가 갑자기 살랑거리면서 말을 하자 한편으로 더 불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보냈는지 없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여 자리에 앉았다.
“아까는 내가 좀 심하였어요. 죄송해요.”
황영지는 아까의 일을 사과하였다.
“생각해보면 영소저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가 조금 화가나서 무고한 영소저에게 심하게 대했어요. 다시 한번 사과드릴께요.”
황영지가 웃으면서 사과를 하자 영소혜는 서러워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모든 것은 상공이 저지른 일인데 영소저에게 심하게 대한 것 같아요. 아까의 말은 제 실수였으니 잊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황영지의 말에 영소혜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말았다.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여자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천하경영이니 천하제패니 하는 것을 보면 상공도 한심한 사람이에요.”
황영지의 말에 영소혜는 결국 울다가 웃고 말았다.
“그 동안 힘들었죠?”
황영지도 먼저 사과하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이렇게 하고 나자 후련하였다. 마음을 열자 영소혜가 그 동안 했을 마음고생을 생각할 여유도 생겨났다.
“아니예요.”
영소혜는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부정을 하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어요.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황영지가 이렇게 변한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아 오히려 어색하였다.
황영지를 생각하면 싸늘하고 냉정한 모습뿐이었기에 이런 황영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영소혜의 마음속에 두려운 존재로 황영지가 그 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쉽게 변하지 못하기에 영소혜는 혼란스러운 것이다.
돌아가는 영소혜는 변한 황영지와의 저녁식사를 생각하자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처럼 편안한 것을 느꼈다. 자신이 황영지의 태도 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였지만 황영지가 그렇게 변한 것은 다행이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황영진의 태도는 영소혜를 위로하고 포용하는 듯한 것이었다. 황영지에 대한 반감이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진짜로 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는 것인가? 허나 이 모든 것을 계산하여 행동한 것이라면 황영지야 말로 실로 무서운 여자이다. 일단은 나에게 대하여 호의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대단한 여자라는 것은 좋은 일이지. 일단 정실이라는 것은 인정해 주겠다.’
영소혜는 자신이 황영지의 말에 눈물을 보인 것이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황영지가 풀어진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인정은 해야겠지. 이기의 전인이라면 그 정도의 기개는 있어야 하겠지.’
영소혜는 조금 따뜻하게 변하였다고 하여 아까의 분노를 잊어버리는 것이 싫었지만 이미 마음 한구석에서는 분노가 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래도 변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용소명과 인자기는 영소혜가 다시 불려와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되자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두 여자 사이에 벌어질 일에 대하여 논의를 하고 있었다.
적게는 두 여자 사이의 일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천하대계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처럼 가정이 평안해야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영웅성은 그들이 구상하는 천하대계의 한 축이었다.
“일단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보건데 주모님도 상당히 수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용소명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되기에 그렇게 말하였다.
“물론이네. 한번 기강을 잡고 다시 불러 위로를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 같네.”
그들은 황영지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그렇게 밖에는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건 당면한 문제는 해결을 하였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누가 맹주를 하고 총사를 하느냐만 남은 것 같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야 그렇지만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네.”
인자기는 용소명이 너무 낙관적으로 말하자 그렇지가 않다는 뜻으로 말을 하였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천하문이 아무리 본가라고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많고 외부적으로 주공에게 가장 큰 적이 될 율사청이라는 존재가 천지문을 이끌고 있으며 관외로 사라진 태을자가 무슨 일을 도모하는 지도 모르고 또한 주공이 언뜻 말한 만상문이라는 문파도 사라져서 뭔가를 노리고 있습니다.”
태을자의 종적은 무림맹에서 종적을 추적하자 태원에서 관외로 사라진 것이 확인되고 그 후에는 아무런 종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승천검황은 더 이상의 태을자에 대한 추적을 포기하고 관외에 대한 경계만을 강화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관외로 사라진 태을자를 찾기위해 새외를 뒤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정리를 하여야 하네. 태을자의 후예나 만상문의 후예들은 사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네. 가장 큰 문제는 눈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천지문이나 사대문파일세. 그들은 결코 명분 없는 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명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기 대문이네. 암중에 웅크리고 있는 자들은 힘으로 막아야 하고 겉으로 드러난 그들은 심기로서 제압해야 하네. 그래서 일이 어려운 것일세.”
용소명은 인자기의 말에 한번 더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인자기의 안목은 감탄할 만큼 정확하였다.
“자네가 내일쯤에 가서 영소저를, 아니 이제는 작은 주모라고 해야하겠지, 만나보게. 이후의 일에 대하여 상의를 해주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갈가주를 내가 다시 내일 만나볼 것이네. 그렇게 하여 확실하게 매듭을 짓도록 할 것이네.”
“물론입니다. 한번쯤 총사어른을 뵙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 문제는 나보다는 주공이 더 나을 것이네. 장례가 끝난 후에 그 일을 하여도 문제는 없을 것이네. 그보다는 예전에 내 밑에 있던 자들을 다시 모아야 할 것 같으니 그들도 몇을 만날 생각이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제갈중명은 우연히 소림의 청수선사를 만났다. 아니 사실은 우연을 가장하여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청수선사를 만난 것이다.
“제갈가주가 아니오? 한동안 두문불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뵙는구려.”
청수선사는 제갈중명을 만나자 아는 척을 하였다.
어찌 되었건 그들은 승천검황에 의해 무림맹에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방에 맹주와 총사라는 직책을 빼앗기고 무림맹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자, 이럴 것이 아니라 같이 가서 차나 한잔 하면서 그 동안의 소회를 이야기해봅시다. 제갈시주.”
청수선사도 뭔가 제갈중명이 할 말이 있어 온 것을 알기에 자신이 배정받은 거처로 제갈중명을 이끌었다.
“무림맹에 와본지 오년만입니다.”
제갈중명이 모호한 말로 운을 떼었다.
“그렇소이다. 나도 오년만이오.”
청수선사도 제갈중명이 말하는 것을 안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제갈시주도 이후의 일을 걱정하고 있소이까?”
“제가 무슨 걱정할 처지라도 됩니까? 그저 흘러가는대로 지켜볼 뿐입니다.”
제갈중명은 자신의 속내를 숨기면서 말을 하였다.
청수선사는 제갈중명이 능청을 떨자 어이가 없으면서도 모른척하였다.
현재 가장 유력한 맹주후보로 부상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게 지난 오년간 천하문, 특히 지성룡과 친분을 돈독히 다져온 제갈중명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우연히 가장하여 만나러 온 것은 그 일에 대하여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산속에 있는 청수선사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이오? 차기 맹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제갈시주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누가 이후의 일을 논한다는 말이오?”
청수선사는 알면서 모른척 반문을 하였다.
“하하, 그런 말이 있다니 영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부족한 소생을 그렇게 봐준다니 고맙습니다.”
“뜻이 있다면 뜻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외다.”
청수선사는 그렇게 부추겼다. 이미 오기 전에 문내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제갈중명이 무난하다는 것으로 중론이 모아졌다.
제갈중명은 생각보다 청수선사가 호의적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소생을 그렇게 생각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도 제갈시주를 힘 닿는 데까지 도와줄 것이니 잘 해보시게.”
청수선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미 대세가 제갈중명으로 기울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문제라면 이일에 대하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천하문에서 그들 선택하느냐가 문제였다. 천하문이 의외의 인물을 천거한다면 그 때는 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하문에서도 오년동안 제갈중명이 쏟은 공을 본다면 외면은 못할 것이었다.
“감사하옵니다.”
“무에 감사할 것이 있겠소. 다 부처님의 뜻인 것을, 아미타불.”
청수선사는 제갈중명이 좋아하자 명예를 탐하는 제갈중명이 약간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날을 위해 오년간 공을 들인 제갈중명의 정성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