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70)
“뭐라고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이냐?”
왕유상은 갑자기 이상한 소문이 황실과 조정에 돈다는 보고를 듣자 그 진상을 파악하였고 그 말에 진위를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제서야 영웅부주라고 나타난 진유량의 정체를 알게되었다.
소문은 태을자가 군부와 황실에 숨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황실의 힘을 움직여서 승천검황과 천하문, 사황성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제남에도 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승천검황을 벌하라고 상소를 처음 올렸던 유강이라는 문사가 오히려 태을자의 끄나풀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이런 소문으로 그가 하려한 강남암흑가의 토벌과 승천검황에 대한 공격은 황실에서 보류가 되어버렸다.
왕유상과 오군도독부도 순식간에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이 이렇게 된다면 동창이나 도찰원에서도 이일에 대하여 간섭을 하고 오히려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소지가 있었다.
이미 소문이 돌기 시작한 이상 이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어렵게 되어 버렸다.
“허허, 이런 고이얀 소문이 돌다니. 실로 북원의 무리가 이상한 수를 써서 방해를 하는구나.”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보고하는 부장의 의구심을 일축하였다.
‘강남의 암흑가에 대한 토벌은 해야한다. 설사 승천검황에 대한 공격은 어렵지만 이일은 명분이 될 수가 있다. 이 일 마저 포기한다면 오히려 탄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왕유상은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일단 황궁에 들어야 하겠다. 이일을 그대로 둔다면 북원의 첩자들의 농간에 놀아날 것이다.”
그렇게 왕유상은 말을 하고 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이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왕유상이 들어가자 태을자도 이미 소문을 들었기에 상황을 알았다.
“예상대로 내가 태을자이다.”
태을자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저들이 황궁과 조정까지 주시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생각치 못하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유강이라는 학사를 처리하여라. 그리고 강남에 대한 토벌에 대하여는 밀어부쳐라. 이일은 막을 명분이 황실에도 없을 것이다. 만일 이일까지 좌절된다면 너도 군부에서 입지가 어려울 것이다. 이일은 무관하다는 것을 황궁에 들어 해명하여라.”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태을자로서는 꼼짝없이 궁지에 몰았다고 생각하던 일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자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승천검황이 소문을 낸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들이 이런 방법으로 대응을 하였다면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도 눈치챌 것이고 곧 알아챌 것이라는 생각에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는 더 이상 안전한 은신처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태을자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이곳에 있기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왕유상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어리자 내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을자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빛이 감돌았다.
“일은 그렇게 마무리 지어라. 나는 당분간 호법장로와 같이 일을 할 것이니 지시한 일을 마무리 지어라. 사황성에 대한 일과 천지문과의 연수는 마무리 짓도록 하여라. 천하문에 대하여는 당분간 활동을 보류해 두어라.”
“예, 그렇게 조치토록 하겠사옵니다.”
태을자 일행이 떠날 준비를 하자 왕유상의 불안한 마음도 조금은 진정이 되고 있었다.
청명도인이 장로회의를 참석하지 않고 무당으로 떠나버리자 결국 장로회의는 무림맹에서 제갈중명이 주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오대문파가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누구도 맹주에 대하여 맡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결국 소림의 청수선사가 무림맹주가 되었다.
그러나 무림맹의 권위는 오대문파의 몰락으로 인하여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청수선사는 무림맹주가 되었지만 무림맹에 머물지 않고 소림으로 떠나버려 무림맹은 대총사인 제갈중명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체제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무림공적에 대한 진상이 조사되어 태을자를 공적으로 지목하는 절차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은 오대문파에서 나중에 날고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그들의 이의는 묵살되어 버렸다. 이미 증거가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마당에 아니라고 우길 수가 없었다.
권력이 있을 때야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던 자들이 권력이 사라지자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오대문파의 온갖 일들까지 소문으로 나돌기 시작하기에 실로 무림맹은 오대문파에 대한 성토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대총사의 뜻대로 모든 것이 대총사의 손안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천기각주 인자기는 이번 개편에서 부총사라는 직책을 하나 더하였다.
“원하는 대로 우리들에게 대부분의 무림맹의 권한이 들어 왔습니다. 태을자에 대한 처결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태을자에 대한 대비입니다. 지금까지 태을자가 우리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아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우리의 일에 대한 보복을 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지 않겠소?”
제갈중명의 말에 둘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하였다.
“물론 입니다. 현재 우리의 뜻대로 되었지만 태을자가 만일에 난입하여 우리에 대한 공격을 하는 순간 우리는 막을 힘이 없습니다.그에 대한 대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참 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본가에 비전 되어 오는 태을환상천무진을 한번쯤 시전하여 그에 대한 대비를 할까 합니다. 천기각과 총사전을 보호하여 그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그가 침입을 하더라도 그에 대한 신분은 알아야 우리가 죽어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오.”
“맞소이다. 그리고 무림맹에 태을자에 대한 갑호경계령을 내려 공격에 대비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천하문에서 입맹요청서와 더불어 십만냥의 은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말에 둘은 서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천하문에 대한 일은 둘만의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저리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일단은 처리를 해놓으세요. 그리고 그들이 낸 십만냥은 천하에 소문을 내서 의혹을 없앤 후에 쓰도록 합시다.”
“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행이 남경상림에 도착하였을 때는 남경상림의 반응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들로서는 천하문의 강남 진출이 공식화되어 버린 면이 있기에 조금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대규모로 몰려오는 것은 무력시위이기에 실로 그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더구나 천지문에서 오기로 한 천마 일행이 오다가 중도에서 돌아가버린 것은 결국 고희연에 온갖 억측이 돌도록 하였다.
남경상림으로서는 자신들에게 하는 조치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천하문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하문이 도착한 다음날, 고희연이 시작되기 전에 결국 남경삼림의 림주인 유주광과 아들인 유한열은 천하문 일행이 머무는 객잔으로 방문을 하였다.
“어서오십시오.”
지일광은 유주광을 맞이하였다.
“부족한 제가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실로 불편을 끼친 점 송구하옵니다.”
“아니오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호경험이 없던 후기지수들에게 강호 견식을 쌓도록 여행을 시키려던 참이었습니다. 그점에 대하여는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옵니다.”
지일광과 유주광은 서로 만나자마자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말은 서로 겸양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서로간에 칼을 숨기고 있었다. 유주광의 말은 쓸데없이 왜이리 사람이 많이 몰려왔느냐는 말이고 지일광의 말은 당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니 괘의치 말라는 말이었다.
무력시위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을 표출한 것을 지지 않고 지일광이 표출한 것이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지일광은 유주광을 인도하여 내실로 들게 하였다.
“지난 세월간 본림과 천하문은 서로를 범하지 않고 잘 지내왓습니다. 하온데 이번에 사황성의 일은 석연치가 않아 결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유주광은 이일에 대하여 항의를 하러 왔기에 먼저 말을 꺼내었다. 전쟁을 원하냐는 최후통첩을 하러 온 것이다.
“천하문이 사황성과 거래가 무슨 의혹이 있습니까?”
지일광은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상인이 거래를 하는데 있어 영역을 넘지 않는다는 공식적인 협약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남은 예로부터 본림이 관장하여 왔소이다. 그런데 천하문이 무단으로 넘어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지일광의 능청에 유주광은 결국 그 말을 먼저 하고 말았다.
“하면 본문은 개봉과 하남성만을 영역으로 장사를 하여야 한다는 어떤 제약이나 법조문이 있습니까?”
지일광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어 물었다.
용유의 일을 꺼내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일단 용유의 일을 꺼내려면 그들에게서 개봉이나 하남성에 대한 영역에 대한 인정을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 천하문은 하남성과 인근으로 보이지 않는 테두리를 정하여 거래를 하였고 그 것을 본림도 인정을 하였습니다. 하온데 그런 보이지 않는 묵계를 깨고 강남으로 진출을 하는 것은 본림에 대한 침공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지 않소이까?”
지일광은 유주광의 말에 드디어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하온데 남경상림에서 그에 대한 것을 먼저 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는 더 이상 언급은 않을 것이나 그 일은 너무나 림주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림주를 비롯한 그 일을 한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한 이상 더 이상 어떤 묵계는 의미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지일광의 말은 예리한 비수였다. 유주광은 그 말이 떨어지자 자신이 잘못 왔음을 알았다. 이미 그 일이 입 밖에 나오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여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상행위가 아니라 무력으로 도모하려는 의도를 먼저 보였다는 것은 상인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아무리 천하문이 만만해 보여도 그런 짓을 하였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상황이 바뀌어 천하문이 강자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그런 일을 당하고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력으로 점령하려고 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우리가 양보하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일광의 말에 유주광은 천하문에서 이일을 들고 나올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두다가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하기에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 일을 천하문에서 문제 삼지 않기에 잊고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터트린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일도 당했는데 다른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지일광의 말은 지금이라도 칼부림을 원한다면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유주광은 그 일이 이야기되자 자신이 너무 천하문을 얕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쉽게 쳐들어온 것이고 면박을 당하는 것이다.
사황성이라는 강남상권을 지탱하는 한 축이 등을 돌린 이상 천하문의 강남공략에 자신들만이 버텨야 하는 상황임을 깨달았다. 만일 천하문을 어떠한 명분으로 몰아부친다면 천하문도 그 일을 천하에 소문 내어 남경상림을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한 것이었다.
유주광은 이미 그 일까지 밝혀진 마당이라 더 이상의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한번 강남에 발을 붙이는 천하문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올 것이었다. 그리고 남경상림의 기반을 순식간에 잠식할 것이었다.
그일에 대하여 협상을 통하여 일정기간 유예를 하려고 하였던 유주광은 치명적인 약점을 잡혔기에 말도 못꺼낸 것이다. 자신들이 한 일은 상도의(商道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고서도 협상을 바란다면 후안무치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지일광의 말로 더 이상 할말이 없는 유주광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여기서 일어난다면 남경상림은 몰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유주광은 위기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오대문파가 견제하는 가운데서도 버거운 적인데 이제 그런 속박마저 벗어던지고 사황성마저 길을 내어준 마당에 그들만으로 상대하기는 중과부적이었다.
특히 천하문의 상술은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 상술에 대항하여 자신들이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문이 하는 일에 대하여는 림주께서 더 이상 할말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일광은 더 할말이 없냐는 식으로 축객령을 내리고 있었다. 유주광의 입장에서 잘못하였으니 조금 봐달라는 식의 굴복은 할 수는 없었다.
유주광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사황성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
용소명은 들려오는 사황성에 관한 소식과 천하문의 강남 진출소식을 듣자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장주는 용소명이 묻자 뭘 묻는지 몰라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였다.
“뭘 말인가? 앞으로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하는 일 말인가?”
“둘 다 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 질 것으로 보입니다. 천하문이 이 지역을 포함하여 동정호 일대까지 진출을 한다면 이곳은 더 중요한 위치가 될 것입니다.”
용소명의 말에 송장주를 비롯한 웅장주와 초장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공동사업인 대장간과 포목상은 이제 궤도에 올라 상당히 수익이 좋은 일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이런 일의 성공으로 새로 시작하는 일도 잘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내일 영수진에 있는 포구의 책임자가 본장을 방문하다고 하네. 그들이 우리의 하는 일에 관심을 보였지만 우리가 자네 말처럼 무시를 하자 이렇게 직접 오기로 한 것이네. 그래 이제 그들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용소명은 농번기가 끝나자 작업을 시작하였고 이제 천하문에서 먼저 접근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제 생각에는 그들이 오는 것이 우리가 만드는 포구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특히 이번에 사황성과의 거래로 인하여 이곳에 대한 가치가 증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오니 그들의 조건을 들어본다는 입장으로 협상에 응해야 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용소명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하였다.
“한데 자네 말대로 우리가 인근의 특산물을 구입하여 두었지만 그들이 과연 그것도 알고 우리에게 거래를 청할지 의문이네.”
“물론입니다. 호북성의 광목과 쌀은 특산품으로 어디서나 알아주고 있습니다. 한데 저희가 구입한 양은 그 중에 고작 일리도 못되지만 가장 운송이 편리한 지역에 있는 것들입니다.그들로서야 가장 빨리 물건을 풀어야 하는 곳에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판로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것이니 장주님에게 사정을 할 것입니다. 천하문의 윗사람이 알았다면 난리가 나고 장주님에게 결코 거래를 못하게 할 것이지만 중간책임자로서야 문책이 두렵기에 조건만 어느 정도 맞다면 거래를 할 것이옵니다.”
용소명은 천하문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알기에 그 것을 공략하였다.
“일단 저희가 구입한 곳에서 영수포구로 가서 하남성을 비롯한 다른 곳으로 흘러갈 텐데 그렇지 못하면 물건을 못 받는 곳에서는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소명의 생각은 실로 천하문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실로 자네의 머리는 일취월장 하고 있네. 그렇게 해보세. 뭐 안되면 나도 저쪽 강남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에게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네.”
생각보다 풍운각의 무사들을 지단에 보내는 문제는 일이 복잡하였다.
더구나 지단주의 직할 부대를 만드는 일까지 발표되자 외단의 반응은 노골적인 적대로 돌아서고 있었다. 한데 이런 그들의 움직임을 막는 군부의 토벌령은 결국 외단을 어둠 속으로 숨게 만들어 버렸다. 군부의 토벌령이 떨어지자 외단은 지리멸멸 지도부가 사라지고 그 사이에 그 힘의 공백을 풍운각의 무사들이 채우고 그들 사이에서 이탈한 자들을 지단의 직할부대로 편입하자 일이 너무나도 쉽게 정리되어 버렸다.
군부도 쉽게 사황성의 지단에 대하여는 개입하지 못하기에 조용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영소혜는 일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공자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지성룡을 미워하던 마음이 이제는 다시 그리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지성룡을 그날 이후로 보지 못하였다. 승천검황에게 불려 갔다가 온 날 이후로 보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속박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불안하였고 갑자기 보고 싶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더구나 지성룡이 자신으로 인하여 뭔가 곤란한 지경에 처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죄스럽고 미안하였다.
그리고 빨리 방문하기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고 있었다. 그 것은 그녀의 심령상의 금제가 자연스럽게 발동되고 그 동안 보지 못하자 그전에 가지고 있던 연심과 결합하여 구체적인 그리움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남경에 도착하자 천하문 일행과 헤어져 남경 외곽에 있는 사황성의 지단에 머물고 있었다. 영소혜는 지성룡에 대한 원망이 이제 사라지고 오히려 그리움만 커지고 있었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소식은 어떻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에게 소식을 전할 길은 없을까? 황소저에게 서신을 전할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자 묘하게 질투가 생겼다.
‘아냐, 그 여자에게 전했다가는 오히려 상공에게 가지 못하고 승천검황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야. 그렇게 되면 또 다른 곤란에 처할 수고 있어. 그자리에 있던 사람은 안되어. 혹시 형님에게 전할까? 맞아 형님은 만날 수 있을 거야. 외당 당주를 시켜서 그 형님에게 서찰을 준 다음에 전하도록 하는 거야.’
영소혜는 그렇게 생각하자 부랴부랴 서찰을 적기 시작하였다.
< …… 상공의 소식을 듣지 모하니 소녀 불안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소녀로 인하여 곤란한 지경에 빠지지나 않았는지 심히 불안하옵니다. 하오나 이 모든 것이 소녀가 발설하여 일어난 일은 아니오니 소녀를 탓하지는 마시옵소서. 소녀는 상공이 지시하신 모든 것은 거의 완수하고 있사오니 이후에 할 일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하옵고 소녀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리시어 어려우실 것이오나 잠시라도 현신하여 소녀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영소혜는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도 이상함을 발견하지 못한 듯이 봉하였다.
그런 영소혜의 마음은 이미 지성룡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영소혜의 내면을 보이지 않게 잠식하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그리움이 커지게 되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변하여 가는 것이었다.
지성룡은 금언금족령을 지일광에게 통보받았기에 그저 묵묵히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이런 징계를 받자 자신이 경솔하였던 점에 대하여 후회가 되었다.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다가 일을 이렇게 망친 것이다.
사황성과의 일도 이미 틀어졌고 승천검황이나 이기의 태도는 냉정하였고 이제는 상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자초된 일이지만 그런 것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이런 모든 것보다도 더욱 힘든 것은 냉랭한 황영지의 태도였다.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는데도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의 그런 태도에 한동안 의아하게 생각하던 다른 사람들도 그저 그가 계속 그렇게 있자 가만히 있었다. 특히 황영지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자 둘이 뭔가 신경전을 벌이나 보다고 생각하였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 서찰을 사황성에서 전해왔다.”
지연룡은 대략적인 일의 경과를 지성룡에게 들었기에 남이 이목을 피하여 영소혜가 보낸 서찰을 지성룡에게 전하였다.
지성룡은 서찰을 개봉하여 보다가 놀라고 말았다.
자신에게 일이 틀어졌으니 없었던 것으로 하라는 통첩인줄을 알았던 것인데 오히려 그 반대의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영소혜가 승천검황에게 불리어 왔다는 것을 알기에 영소혜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영소혜의 글은 그런 그의 생각과는 달리 간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실로 예상 밖의 글이기에 영소혜에 대하여 그의 마음속에 신의를 아는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하였다.
영소혜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그런 부당한 처사에도 자신을 믿고 의지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영소혜의 마음을 알자 지성룡은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던 마음 한가운데 일말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래, 내가 잘못하였지만 나를 믿어주고 있다. 그녀의 이런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녀가 나에게 이런 신의를 보여주는데 나도 그녀를 믿어주어야 한다.’
이런 지성룡의 마음은 결국 답장을 쓰게 만들었다.
< ……영소저의 마음을 알게 되니 실로 기쁘기 한량이 없습니다. 영소저가 나를 믿어준 만큼 영소저에게 추후에 돌려주고자 합니다.
내가 말한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니 다행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면 일단 외단에 대한 소탕령 이후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지단에 대한 소탕령까지도 대응하여 준비를 해주시오. 그리고 한가지 부탁을 한다면 가급적이면 흑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있도록 해주시오. 그리하여 광면정대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주시오. 또한 사황성이나 사황문대신에 이제 그대 부친의 휘호를 따서 영파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으면 합니다. 그런 환골탈태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조치가 끝났을 때에 나를 위하여 천명정도의 무사로 구성된 조직을 최대한 기밀을 유지하여 만들어 두시오. 혹시라도 사황성의 모든 것이 사라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니 그렇게 해주시오. 장소는 형산 안에 비밀스러운 곳이라면 좋을 것이오…..>
지성룡은 답장을 적어 지연룡에게 몰래 주었다.
낙담하였던 지성룡에게 희망을 준 영소혜의 서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