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61)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승천검황이 나타났고 패왕은 탈출하다가 사마에 의해 격살당하였습니다.”
무영루주의 말에 천지쌍마는 내심 철렁하였다.
“소문주는 움직였느냐?”
“아닙니다. 승천검황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철수하여 사황성의 경내를 벗어나 지금은 본문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지금 천하문의 배는 고작 악양을 지나고 잇는데 어느 사이에 그들이 사황성에 간 것이냐?”
지마는 무영루주에게 왜 그것을 여태까지 몰랐느냐고 질문을 한 것이었다.
“몰래 배에서 내려 사황성에 간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결국 그들이 빠르게 움직인 것은 바로 사청이와 천지 오장로의 움직임을 읽었기에 그렇게 한 것으로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본문에 그들의 첩자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오?”
천마의 말에 지마와 무영루주는 말이 없었다. 이일은 극도로 보안을 유지하였는데 밖으로 새나간 것이다. 결국 배를 타고 이동하던 승천검황이 사황성에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고 다급하여 경공을 전개하여 달려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당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하문의 정보력이 그 정도로 높다는 것이 아니오?”
지마의 말은 천하문의 정보력을 인정한 셈이었다.
“네 생각에는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승천검황은 따로 지성룡을 불렀다.
“일단은 사황성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부상을 당한 사마로서는 현재 사황성을 완벽히 장악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소성주인 영소혜가 나서야 하는데 영소혜는 여자이고 흑도인의 속성상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그렇다. 실로 사마가 부상을 당한 것이 잘된 것 같지만 실로 곤란한 지경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발이 묶이게 되었다. 방법이 없느냐?”
“방법은 우리가 있는 것이지만 그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가 있게 되면 태을자에게 반격할 빌미를 주게 됩니다.”
“그렇다. 나도 그 점이 염려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럽게 할 방법이 없느냐?”
“일단 무적철검어르신에게 이곳을 맡아달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그분들이 계시면서 소성주가 내부를 정비하는 시간을 주고 천지문이 범하는 것을 방비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방법이지만 길어야 세달 정도나 머물 수가 있다. 그 안에 가능할 것 같냐?”
“일단은 사마가 이틀정도 요상이 끝난 후에 제가 다시 한번 사마를 치료해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금 상처에서 회복하는 시간이 단축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 그러면 무적철검에게는 그런 생각을 말해보겠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일단 세달만 머물면은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옵고, 이번 기회에 사황성에 대하여 관여할 길은 마련해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어떻게 말이냐?”
“일단은 여기에 인원을 몇 명 남겨두고 갈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연스럽게 접근할 길을 만들어 두고 강남진출의 교두보로 삼을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지.”
지성룡은 승천검황의 침실에서 나와 이기의 침실을 방문하여 승천검황의 전갈을 전하였다.
자신의 침실로 가려다가 황영지의 침실 앞에서 기척을 하였다.
“무슨 일이세요?”
황영지는 침실문을 열고 밖을 보다가 지성룡이 서있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성룡은 황영지가 반기자 기분이 좋아졌다.
황영지는 다른 때와는 달리 경장을 걸치고 있어 새하얀 피부와 등불아래에서 보이는 속살이 유난히 하얗게 느껴지고 있었다.
가만히 황영지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황영지는 가만히 손을 맡긴 채 따라왔다.
침상에 나란히 걸터 앉았다.
“이틀동안 강행군을 하였기에 힘들지 않았소?”
“괜찮아요.”
그러면서 손을 끌어당겨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상당히 피곤할 것이오?”
“아니예요. 좀전에 씻고 운기조식을 하였더니 괜찮아요. 상공은 괜찮아요?”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손으로 황영지의 반대편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만히 힘을 주어 당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성룡의 가슴에 기대왔다.
둘은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상공, 이렇게 있으니 마치 우리가 혼인한 부부 같아요.”
“나는 이미 지매를 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래도 되지?”
“그래요. 저는 상공의 여자가 되어버렸어요. 이렇게 있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니 그런 것 같아요.”
“나도 그렇소. 마치 지매가 나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소.”
지성룡은 손에 힘을 주어 황영지를 안았다.
경장아래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있는 황영지의 감촉을 느끼자 숨겨져 잇던 본능이 살아나고 있었다.
지성룡은 다른 한 손으로까지 감싸 안으면서 배우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황영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황영지는 이마에 지성룡의 입술이 닿자 온몸에서 열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황영지가 힘을 빼자 황영지의 동체는 자연스럽게 뒤로 쓰러지고 지성룡이 그 위로 덮쳐누르는 자세가 되어 버렸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황영지의 자태를 보자 지성룡도 불끈 솟아오르는 정열을 느꼈다.
지성룡은 눈을 감고 누워있는 황영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황영지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자 자연스럽게 입술이 벌어지고 두 사람의 이빨이 맞닿았다. 그 이빨도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지성룡이 황영지에게 사랑을 말했던 혀가 이제는 황영지의 입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방법으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아버님의 상세는 생각보다는 빠르게 치료가 되는 것 같구나. 겉으로는 에전의 모습을 찾은 것 같지만 내상은 언제 다 낳을지 모르겠구나.’
영소혜는 침상에서 운기조식을 하는 사마의 모습을 보면서 한쪽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사황성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 정파도 아닌 흑도의 사황성을 여자의 몸으로 끌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영소혜는 예전부터 알면서도 미루어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생각하기 싫어 미루어 두고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현실적인 대안은 결국 사황성을 이끌어갈 남자와 결혼하는 방안이다. 그런 면에서 청혼을 한 율사청이라는 천지패룡과의 혼인은 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위해서 결혼하기보다는 사황성을 차지하기 위해 청혼을 하였다. 그렇기에 거절을 하였고 그 방법으로 안되자 천지문은 이런 음모를 꾸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무리와 혼인을 하지 않고 거절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사황성을 버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다. 사황성은 누구건 힘 있는 자가 차지하는 것이고 나는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연 내가 떠나서 사는 것을 용납할까? 언제건 나로 인하여 위협을 당할 수가 있기에 기필코 나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영소혜는 이런 끔찍한 것이 싫어 생각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이끌어가야 한다.’
영소혜는 다시 생각이 원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강해져야 한다. 결국 사황성을 이끌어 갈만큼 강해지는 길 밖에는 없다.’
영소혜는 생각을 하다가 흔들거리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것에서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천검황 일행이 머물고 있기에 사황성은 마치 폭풍이 몰려오기 직전처럼 조용하다. 저들이 언제까지 머물 수는 없을 것이고 떠나는 그 순간부터 죽느냐 사느냐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흑도의 속성상 강자가 상처를 입으면 물어뜯게 되어 있었다.
‘우군이 필요하다. 화왕이 다행히 나의 편이 되어 준다면 어느 정도 의지가 될 것이지만 적은 사황성 내부만이 아니라 천지문도 있다.’
이미 발톱을 드러낸 천지문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상처입은 사황성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황성이 내부를 정비하도록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영빈관에 있는 분들이 당분간은 필요하다. 떠나지 말도록 잡아야 한다.’
영소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일단은 아버님이 상처를 추스릴 동안 아버님과 나를 지켜줄 힘이 필요하다. 내부의 적들은 수하들과 화왕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외부의 적이 나타난다면 양면으로 적을 맡게 되어 실로 위급한 처지에 처한다. 삼개월 정도만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라면 내부의 정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거래를 신청하여야 한다. 하나 무엇으로 거래를 청한단 말인가? 결국은 사황성의 영역을 내주어야 하는 것인가?’
사황성이 천하문의 강남진출을 돕는 길 뿐이었다.
‘그렇게 하자. 하나 이렇게 사황성을 지키는 이유가 단지 내가 살기 위해서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의 생각이 부질없어졌다.
‘아버님은 나에게 사황성을 물려줄 일념으로 원로들에게서 모든 힘을 뺏어버렸다. 그결과가 이번 반란이다. 그런데 내가 물려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자신이 사실상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사황성을 또한 지킬 의미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 생각을 멈추고 촛불을 응시하였다.
‘결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구나.’
그런 영소혜에게는 마음 한구석에 드는 또 다른 욕심이 이순간에 솟아 올랐다.
‘실현 가능성은 없겠지만 참룡검객이 사황성에 남아 나와 혼인하여 사황성의 성주가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었다. 흑도의 속성상 강자에게 약한 것이 그들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영소혜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사(正邪)라는 벽이 있고 그의 옆에는 이미 황영지라는 미녀도 있었다. 더구나 데릴 사위나 마찬가지인 혼인을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지성룡이 할 리도 없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아이는 참룡검객의 아이인데.’
그런 생각이 들자 영소혜는 자신이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꼭 혼인을 하여야 낳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영소혜는 흑도의 여인답게 여염집의 여자라면 할 수도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출생부터가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렇게라도 만들면 된다. 최음제라도 사용하면 못할 것은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도 아닌 남자가? 남자이기에 창피해서도 왈가왈부를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된다면 그도 나를 음으로라도 지켜줄 것이다. 이정도면 되는가?’
영소혜는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 하였다.
‘꼭 혼인을 해야 될 이유는 없다. 그의 수하가 되건 여자가 되건 그에게 다가가서 내가 필요하면 같이 자고 그가 필요하면 같이 자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이를 낳아서 부부의 명분은 없더라도 자식의 명분이라도 만들면 된다.
부부관계는 인륜이지만 부모자식의 관계는 천륜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요악하게 영소혜의 머리는 돌아가고 있었다.
‘후후, 과연 상황이 이렇게 되면 그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황소저가 일이 이렇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지가 궁금하군.’
영소혜는 궁지에 몰리자 편법으로라도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사황성의 일이 밖으로 알려져서 소문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하루이틀이 지나자 수천리 밖에서도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소이다. 우리가 내부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외부의 일을 등한시 한 면도 있지만 그런 일을 몰랐다니 어이없는 일입니다.”
제갈중명은 천기각주가 사황성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하자 탄식을 하고 말았다.
“워낙 은밀히 일어나 일이라 미처 포착하기도 전에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데 우리도 모르는 정보를 천하문에서 파악하여 대응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천기각주의 말에 제갈중명은 한참동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천하문의 정보력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검황어르신이 새로운 정보조직을 가동시킨 것으로 보이오. 그 정보조직이 어디냐는 잘 파악이 안되지만 사천 방향으로 간 것이 그 이유일 것이오.”
제갈중명의 말에 천기각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추측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데 그 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의 소지가 많소이다. 검황어르신이 개입한 것부터 시작하여 천지문에서 개입 한 것도 문제이고. 이제 이 일의 전개방향은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일은 천지문과 사황성의 싸움으로 전개가 되고 검황어르신은 사황성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사마가 상당한 부상을 당한 이상 사황성도 움직이는데 제약이 클 것입니다.”
인자기의 설명에 제갈중명의 얼굴은 다소 풀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맹주는 누가 좋을 것 같습니까?”
제갈중명은 그 일로 고심 중이었다. 누구도 이번에 맹주를 선출하는데 의견조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오대문파에서 면목이 없는지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장로회의마저 참석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은 제갈중명 뿐이었다.
맹주가 사임하고 지배세력이 몰락하면 무림맹 총단의 통제가 흐트러져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그 통제력을 유지하고 현재는 제갈중명과 인자기의 권한이 강화되어 완벽히 무림맹 총단을 장악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제 생각에는 소림의 청수선사가 바람직할 것입니다. 소림은 이번 기회에 무림맹에 대한 영향력을 높일 수 있으니 맡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지만 맡으려 할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일단은 내가 한번 만나 설득을 할 생각이오.”
“하나 문제는 무림맹을 이끌어갈 비용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오대문파에서 자금조달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고 현재 남아있는 자금으로는 한두달을 버티기 곤란한 실정입니다.”
인자기의 말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현재 매월 총단운영에만 이만냥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확보되어 있는 재원은 팔천냥에 불과합니다. 과연 현실적으로 소림에서 만이천냥에 대한 재원을 마련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그 재원을 오대문파에서 책임지고 있었다.
그 말은 소림이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기에 맡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이 문제는 거론하지 않을 생각이오. 결국 이렇게 되면 우리가 나서는 수 밖에 없소이다. 그 돈은 앞으로 나와 각주가 마련하도록 합시다.”
그 말은 실질적으로 무림맹을 장악하자는 의미였다.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주인이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청수선사는 내심으로 장로회의에 참석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오대문파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왔다.
더구나 지성룡과의 비무가 알려지고 난 후에 일어난 소림의 명예실추는 이런 자리에 오고싶은 마음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런 소림방장 청수선사를 찾아온 사람은 무림맹의 대총사인 제갈중명이었다.
“어서오시오. 어려운 시점에 중임을 맡아서 심히 노고가 크시오. 아미타불”
청수선사는 제갈중명이 실로 힘들 것이라 생각하여 위로의 말을 건넸다. 외형적으로 보면 모든 일의 수습은 제갈중명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뭐,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제갈중명이 자리에 앉자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 소림의 문인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맹주의 자리를 맡아주십시오.”
청수선사는 앉자마자 말하는 제갈중명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물론 장로회의에서 논의될 내용을 조율하러 온 것은 알았지만 그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이오, 제갈총사?”
청수선사는 제갈중명이 단언적으로 언급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반문을 하였다. 마치 제갈중명의 말은 그가 마음을 먹으면 맹주가 된다는 식의 발언이었다. 무림맹의 대총사라는 자리가 각파의 장문인들에 버금가는 자리이지만 함부로 이런 식의 말을 할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무림맹은 구심점이 없고 무주공산이옵니다. 결국 표류하는 무림맹을 현재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은 소생이옵니다.”
제갈중명의 말에 청수선사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심히 건방지기 짝이 없는 수작이었다. 호랑이 없는 산중에 여우나 토끼가 왕 노릇을 하겠다는 작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무림맹을 이 모양으로 만든 태을자와 청명도인에 대하여 분노가 생겨났다.
“총사, 지금 노납과 거래를 하자는 것이오?”
“그렇사옵니다. 거래를 청하는 것입니다.”
제갈중명은 이미 이런 반응을 예상하였기에 태연하게 대꾸를 하였다.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오? 무림맹의 맹주자리가 이제 거래의 대상이 되어버리다니? 강호동도들이 이일을 안다면 실로 통탄할 일이로다.”
청수선사가 한탄을 마치자 곧바로 제갈중명은 재차 공격을 하였다.
“이미 그보다 더한 추악한 일도 강호동도들은 알고 있습니다. 무림맹의 맹도를 배신하여 사지에 몰아넣고 그 일을 감추기위해 칠십여년간 무림맹의 권력을 독점하고 흑도를 섬멸하면서 흑도와 똑 같은 짓을 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맹주자리를 거래하는 일이 새삼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제갈중명의 말은 오히려 오대문파가 한일에 대하여는 왜 아무 말도 못하느냐는 질책이었다.
“무림맹은 강호의 정의를 수호한다는 수호단체이기 이전에 지금에 있어서는 수만의 식솔을 거느린 조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생계를 다른 일에 우선하여 고려하여야 할 상황인 것입니다.”
제갈중명의 말에 청수선사는 제갈중명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다가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그 말은 오대문파니 구파일방이니 사대세가이니 하는 세력들 외에도 무림맹에 관여하고 무림맹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수만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이 말은 무림맹이 그들의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무림맹이 망하면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그들이 떠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는 제갈중명의 말은 이제 자신들의 주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이야기였다.
청수선사는 갑자기 무림맹에 대하여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청수선사의 뇌리에는 열네개의 세력밖에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그런 사실을 인지하자 오히려 열네개의 세력들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무림맹은 각 문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문파처럼 변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자 혼란이 오게 되고 아무런 대꾸도 못한 것이다.
“무림맹을 총사가 어느 사이에 장악한 것이오? 고작 이제 일년밖에는 안되었는데 그사이에 그런 일을 하다니 총사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소이다.”
청수선사의 말은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라 솔직한 감탄이었다.
“제가 장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제가 장악 당한 것입니다.”
제갈중명의 말에 청수선사는 같은 의미이지만 사뭇 다른 의미를 느꼈다.
그렇다면 예전부터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데 제갈중명이 총사가 되면서 의기투합하였다는 것이었다.
“좋소이다. 그러나 노납은 수만의 식솔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소이다. 그렇게 본다면 총사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오.”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저나 지금 무림맹에 몸담고 있는 자들이 할 것입니다. 먹여살리실 능력이 있다면 거래가 아니지 않습니까?”
청수선사는 그 말에 자신이 허수아비가 되라는 의미로 파악이 되었다.
“현재의 무림맹은 다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오대문파를 봉문에 가까운 상태로 제제를 가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해주십시오. 두번째로 천하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십시오. 이미 오대문파의 죄상이 밝혀지는 마당에 천하문을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세번째 무림맹주의 이름으로 공표한 천하문의 비무를 막아주십시오. 물론 소림의 방장이시기에 어려울 것이지만 그일에 관하여는 소생이 검황어르신의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은 실로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오대문파가 물러난다면 소림이나 타 문파의 활동영역은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소림의 영역을 그만큼 커지도록 해주겠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종적을 감춘 태을자와 정해도장입니다. 그들의 공격은 결국 천하문과 이런 일을 행한 무림맹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공론을 하고 그들을 무림에서 제명하는 일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청수선사는 결국 이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만일 이 제의를 물리친다면 제갈중명은 다른 거래상대를 찾을 것이라는 것이고 소림이 이 거래를 물리친다면 기회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세력이 들어오더라도 현재 가장 입지가 나은 소림을 막는데 주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겠소이다. 어차피 누군가는 무림맹을 정비해야 할 것이니 그 일을 맡기로 합시다. 하나 무림맹이 결코 문파처럼 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오.”
청수선사는 그렇게 승낙을 하면서도 부언을 하였다.
“물론입니다. 그 점은 항상 유념하고 있겠습니다.”
제갈중명도 그 일에 관하여는 주의할 부분이기에 동의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