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55)
“이렇게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벌써 오일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차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야 하지 않습니까?”
무적철검은 석실에서 나오는 승천검황을 보자 너무 답답하여 외쳤다.
“두고보세.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는 길이 없네. 그 아이가 독을 스스로 이기기 전까지는 어떠한 방법도 없네. 그 아이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은 그에게 강한 시련만큼 큰 임무를 맡기려는 하늘의 시험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네. 영지는 어떤가?”
승천검황은 지성룡이 중독되고 난 이후 한잠도 자지 못하고 이곳을 하루에도 열번 이상 석실 앞에 왔다갔다 하는 황영지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황영지는 지성룡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기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애만 태우고 있었다.
“방금 전에 수혈을 짚어서 좀 자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애마저 병이 날 것 같앗습니다.”
“잘했네. 이제 좀 가서 자네도 쉬게나. 내가 서 있겠네.”
그들은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하루에 한 사람씩 문밖에서 호법을 서고 있었다.
무적철검은 한사코 번을 서겠다는 승천검황의 고집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에게 배정된 침소로 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
혼미하던 정신은 이제 다시 말짱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열한가지 구결을 생각하고도 시간이 남아 승천검황의 무공부터 천수장왕, 창령검제의 무공을 생각하고 황영지의 무공까지 생각하였으며, 그래도 시간이 남아 마지막으로 소림에서의 비무까지 생각을 하였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생각을 하였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이 아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정신만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하는 생각은 그에게 고도의 집중을 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예전에 몰랐던 것까지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자신이 배워온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재구성하는 기회를 주었다.
하나 그가 아는 것은 무한한 시간에 비하여 한정되어 있었다. 드디어 의술에 대하여 까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것도 모자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추억까지 반추하고 있었다.
그렇게 검게 변한 상태에서 오주야가 지나는 순간 지성룡은 이렇게 영영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몸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하여도 마비된 몸은 꼼짝을 힐 수가 없었다. 예전에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이런 노력마저도 실패로 돌아가자 차츰 절망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되자 모든 것이 부질없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시점에서 자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슬퍼할 사람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자신을 처량한 눈으로 쳐다보던 여인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지성룡은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어머니의 임종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한꺼번에 쳐다보는 두사람의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그 소년은 바로 형 지연룡이었다. 그 처량한 시선에 더욱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지성룡의 얼굴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차츰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눈 주위부터 차츰 하얗게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지성룡은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지일광을 거쳐 그의 생각이 황영지에 이르자 그는 불현듯 석실 밖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죽으면 평생 그녀가 운다고 생각하자 다시 한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렇게 자신을 만든 태을자에 대한 끝없는 분노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태을자를 향한 분노는 갑자기 마음 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다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없어서인지 일어나다가 다시 주저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차가운 한기를 느꼈다.
지성룡은 자신이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자 희열을 느꼈고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렇게 깨어난 이상 독을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부좌를 틀고 나서 기운을 일으키자 미약하게 몸에서 공력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그 기운은 차츰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더 강하게 느껴졌다.
지성룡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지성룡도 모르는 사이에 검은 땀이 아래로 흐르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내려온 땀이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분비물이 흐르더라도 오히려 점점 잿빛으로 변하여 갔고 마치 마침내는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쩍적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순간적으로 갑자기 돌던 기운이 갑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폭주가 일어나자 지성룡은 정신이 아득하여 졌고 그의 몸은 세자 정도로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그의 몸에서는 마침내 청,황,적의 삼색의 기운이 솟아오르고 종내는 머리 위에 세 송이 꽃처럼 기운이 형상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지성룡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진기의 폭주에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이는지 아무런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안으로 안으로 의식이 침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던 의식이 활짝 꽃처럼 피어나는 것처럼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현상은 절정의 삼화취정의 상태를 지나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아득해지는 정신속에서 자신이 누워서 생각하였던 모든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특히 초반에 생각한 무공에 관한 모든 것이 하나하나의 영상처럼 펼쳐져 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뇌리의 영상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종내에는 차츰 그 영상들이 사라져 갔다.
자신의 뇌리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한번 광채에 휩싸이는 듯한 상쾌한 기분이 들었고 강하게 일던 기운이 조금씩 저절로 가라앉고 있었다.
마침내 지성룡의 몸은 점점 아래로 내려왔고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던 지성룡은 손을 들어 허물을 걷어냈다. 온몸에 허물이 벗어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환골탈태가 이런 것인가?”
지성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붙어있는 허물을 다 벗겨 내었다.
마치 뱀 허물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예전에 구릿빛 이라면 지금은 오히려 백옥 빛이었다. 그러나 조금은 약간 검은 빛이 돌아 더 하얗고 투명한 듯이 보이고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서 등뒤로 손을 돌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허물을 벗겨내었다.
몸에서 허물이 벗어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가 벗어둔 옷가지가 한쪽에 있었고 옷 위에는 검까지 그대로 있었다.
지성룡은 옷을 그대로 걸쳤다. 그리고 검까지 다시 품에 넣고 석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 사위는 어둠에 감싸여 있기에 눈이 부시지 않아 다행이었다.
문소리가 나자 뒤를 돌아보던 승천검황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 놀라고 있었다.
“제가 아픈지 며칠이나 되었습니까?”
“벌써 오일이 지나 육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다 나았느냐?”
“그런 것 같습니다. 흑혈시독도 저를 어떻게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다. 일어났으니 되었다. 일단 처소로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자.”
지성룡은 승천검황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이거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로다.’
한수쪽으로 길을 내는 일이야 단 이틀 만에 계획을 짜고 나자 그 다음부터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니 조금은 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네, 할 일이 별로 없지. 심심파적으로 이 책들이나 보게.”
용소명이 심심해 하는 것을 보자 어촌에서 자라 책을 그리 많이 접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알고 웅전휘가 집안에 있는 책을 모두 모아서 백여권정도 들여주었다.
“책이 이렇게나 많았어요? 진작에 주시지.”
용소명은 할일이 없던 참이라 책이 반가웠다.
“이 책들을 읽어보면 중원에서 살아가는데 문자가 짧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네. 자네가 언뜻 서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여 생각이 나 집안에 있는 책들을 모두 모아 보았네. 그 책을 다 읽고 더 필요하면 송장주의 집에 가보게. 그러면 더 많은 책이 있을 것이네. 책을 사면 저절로 머리 속으로 글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 친구는 책을 사 모아 아마 몇 천 권은 될 것이네.”
용소명은 웅전휘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가자 책을 한 권 꺼내어서 읽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밥 먹는 시간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책에 묻혀서 지내기 시작하였다.
용소명으로서는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싶었고 한 때는 문사가 되어 한세상을 풍미하고도 싶었고 대학자가 되어 천하여 문명을 떨치고도 싶었던 적이 있었기에 책을 보자 다 보기 전까지는 쉽게 책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지고 있었다.
“아버님, 소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녁 식사시간에 웅전휘는 큰 아들 웅가청(雄價淸)으로부터 갑자기 따지는 듯한 어투로 묻고 들어오자 의아하여 보았다.
이미 작년 겨울이 혼레를 마친 스무살의 아들이었다.
“뭐가 말이냐?”
“항주 사마세가에 갔다가 달고 오신 용소명이라는 친구를 그리 중하게 대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웅전휘는 용소명에 대하여는 집안에 가타부타 설명을 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용소명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애비가 필요하여 데리고 온 것이다. 물론 그만한 대접이 필요하니 그만한 대접을 하는 것이고.”
웅전휘는 집안에서는 과묵한 편이었다. 또한 집안의 일에 대하여는 스스로 결정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지 않는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가장이었다.
“하오나, 소자보다도 두살이나 어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세분이나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랫사람들 보기에도 좋지가 않습니다.”
웅가청은 내심으로 자신은 어린애 취급을 하면서 용소명은 어른대접을 해주는 것이 불만이기에 다른 때 같으면 ‘알겠사옵니다’ 하고 물러났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한번 더 말을 하였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잘 하여라. 그 아이는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 말 말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라.”
웅가청으로서는 이번 일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는 것 같아 보였다.
“더구나 이번에는 생전 상종도 꺼리시던 송장주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웅전휘는 식탁을 내리쳐 버렸다. 그러자 그릇들이 바닥으로 구르지는 않았지만 위로 튀어 오르고 요동을 쳤다.
“네 이놈, 애비가 너에게 어른을 부를 때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더냐? 송장주가 네 친구냐? 어디서 그 따위 말투냐?”
웅가청으로서는 평상시에는 송장주를 그렇게 불러도 아무런 말이 없던 아버지가 갑자기 화를 내자 오히려 이해가 안되었다.
“앞으로 그런 식으로 송장주를 지칭하지 말아라. 알았느냐?”
웅가청은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송장주와 같이 한 뜻이 되기로 한 마당에 자식들이 부르는 칭호부터 고치게 하여야 하겠기에 짐짓 화난 듯이 주의를 주었다. 아들들이 송장주, 송장주 하여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송장주와 같이 일을 몇 가지 하기로 하였고 그 중심에 용소제가 있다. 그 아이가 나이는 어릴 망정 애비와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이니 결코 무례하지는 말아라. 너에게 대놓고 숙부라고 호칭은 강요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숙부라고 생각하고 대하여라. 대하다보면 배울 점이 상당히 있을 것이다. 네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결코 무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무례하다면 그것은 아직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증거이니 너를 탓해 뭣하겠느냐?”
웅가청은 그 말에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웅가청에게는 두 아들과 딸이 하나 있었다.
둘째는 딸로서 열일곱살이었고 셋째는 아들로 열네살이었다.
“향후 벌어지는 일들은 실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행동 하나하나를 신중히 하여야 한다. 네 기분대로 하다가는 대사를 그르칠 수가 있다.”
그 말에 웅가청은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하오면 소자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재주껏 용소제를 쫓아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지 말아 보아라. 하나 아는 사실에 대하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함구를 하여라.”
글을 읽던 용소명은 갑자기 찾아온 웅가청을 보고 놀랐다. 오는 날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기에 웅가청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외는 잘 몰랐고 웅가청도 관심이 없는지 소 닭 보듯 하여 그러려니 하였다.
“어인 일이시오?”
용소명은 책을 보고 있는데 불쑥 들어오자 다소 의아하여 물었다.
“내가 도울 일이 없나 해서 왔습니다.”
“아니옵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합니다.”
“며칠 전에 저족 숲으로 하여 강가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지형에 대하여는 제가 조금 더 안다고 할 수가 있으니 필요하시면 불러 주십시오.”
용소명은 상대가 호의를 보이자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면 인근의 중요한 장원에 대한 자료를 모아 주시겠습니까? 그들에 관하여 식솔과 재산등에 관한 것들입니다. 구할 정도만 맞으면 되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웅가청은 갑자기 그런 자료에 놀랐지만 그러려니 하고 알았다고 답을 하였다.
용소명이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하여 왔다가 갑자기 일거리를 받자 내심으로 곤혹스러웠다.
‘이거 별안간 쫄따구가 된 느낌이네. 일단 해주고 보자. 이일을 핑계로 인근에 다니기나 해야겠구나. 하나 괜한 소문이 나면 오히려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겠구나.’
웅가청은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용소명을 보았다. 뭔가 건진 것이 하나도 없이 물러가기는 아쉬웠다.
“그 자료들이 무엇에 필요한지 알면 안되겠습니까? 쓰이는 용도가 알면 조사가 훨씬 용이할 것입니다.”
“그저 몇 가지 장사를 하는데 쓰고자 해서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용소명이 장사를 한다는 말에 그래도 한가지는 알았다는 생각에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