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문무공-54화 (54/149)

제  목: [연재] 독문무공(54)

17. 위기

“어서오십시오.”

만상문의 태상장로 이군평은 만상문의 최고 원로이자 문주인 만상천군 이상연의 숙부였다.

그는 승천검황을 보자 아는 체를 하였다.

“어르신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군평은 세수 백삽십이 넘은 인물이었다.

“이사람, 내가 빨리 죽기를 바랬구만. 무슨 바람이 불어 왔는가?”

“그저 강호에 나온 김에 안부나 듣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들렀습니다.”

승천검황은 노골적으로 말을 하였다.

“그렇게 말을 하니 뭔가 우리가 도와드리지 못한 것이 있다는 말이구려. 자 들어갑시다.”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이끌었다.

빈청에 당도하자 태상장로, 문주등 몇몇의 만상문 인물이 따라왔다.

“인사드리게. 이분은 만상문의 태상장로이신 이군평 어른이실세.”

무적철검과 무상도를 보면서 말을 하였다.

그렇게 서로간에 인사가 진행되었고 차가 나오자 차를 같아 마셨다.

“그래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말을 하시구려”

“오늘도 보셨다시피 오대문파가 무림에 끼치는 해악이 실로 중대합니다. 이 기회에 그들을 징치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배후에는 화산의 태을자가 있습니다.”

승천검황은 이미 태을자와 흑혈사군의 종적을 발견하였고 흑혈사군이 죽어서 만상오절에 의해 발견된 것까지 알고 있었기에 단언적으로 말을 하였다.

“물론이네. 허나 이미 흑혈교의 잔당으로 보이는 자가 죽은 마당에 그가 흑혈강시의 배후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상천군이 그런 문제를 지적하였다.

“물론입니다. 그가 워낙 교묘한 자이기에 그런 문제를 부인하면 아무런 증거가 없기에 크게 도움이 안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미 그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흑혈교의 잔당이 죽은 마당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설사 살아 있다고 하여도 그자에게 그의 죄는 들을 수 있을 지 몰라도 그를 궁지를 몰 수는 없습니다. 흑혈사군이 석년의 원한으로 모함을 한다고 말하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자가 무림의 해악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그런 자는 흑도의 수괴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승천검황의 말에 만상천군은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논리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할 말이 없었다. 승천검황이 말하는 말에 그렇다고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본문은 강호의 일에 가급적이면 간섭하지 않는 것이 조사지령(祖師之令)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은 강호의 일에 참여를 한다면 쉽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검황어르신의 뜻을 따라서 강호대사에 참여하지는 않을지라도 방해는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만상천군은 승천검황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하지는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 말에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생각한 승천검황의 얼굴은 다소 긴장이 풀어졌다.

한데 지성룡의 얼굴을 보던 만상천군의 얼굴은 긴장의 빛을 띄었다.

“자네 혹시 강시를 직접 손으로 만졌는가?”

“네, 그렇습니다만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지성룡은 황영지를 향해 육탄으로 돌격하는 흑혈강시를 워낙 다급하여 장으로 쳐낸 적이 있었다. 황영지의 등뒤로 쳐들어 가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자네 손을 보게나.”

손을 보자 손에 검붉은 반점이 돋아나고 있었다.

“시독에 중독된 것이네. 흑혈강시는 바로 흑혈시독(黑血屍毒)이라는 독물에 시신을 오년이상 담궈 놓았다가 제련한 것일세. 그렇기에 흑혈강시는 시독이 있네. 흑혈시독은 공기 중에서는 전염이 잘 되지 않지만 그 타액이나 분비물을 만지게 되면 중독이 되는 것일세. 아직까지 흑혈시독은 정확한 치료약이 밝혀지지 않은 극독일세.”

승천검황이나 누구도 그 말에 경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지성룡은 그 말에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중독이 되었으니 죽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데 자네의 증상을 보건데 단지 검은 반점만 있는 것을 보니 몸안에 흑혈시독을 이길 만큼의 내성은 있어보이네. 그러나 반점이 생긴 이상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네.”

만상천군은 흑혈강시를 손으로 직접 만지고도 멀쩡한 경우를 보자 의아하였다. 단지 반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독이 되면 피가 흑혈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여서 그런지 왼손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고 있었고 머리가 멍하니 현기증이 돌고 있었다.

지성룡은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고 있었다.

“운기를 하면 더욱 더 빨리 독에 감염될 것이니 일단 가만히 있게.”

지성룡은 그 말에 운기하여 독을 몰아내려고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이 독은 혈액을 통하여 감염되는 것이라 치료가 거의 불가능 합니다. 일단은 몸에 내성이 있는 듯하니 조용한 곳으로 가서 자연적으로 치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그들의 이야기는 지성룡의 중독 때문에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지성룡은 조용한 곳으로 안내가 되었다. 그가 머물게 된 곳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가 없는 연무동이었다. 전염을 우려한 조치였다. 연무동은 석실로 밀폐되어 있었고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지성룡은 차가운 돌 침대에 안내되었다.

“독과 화기는 상극일세. 그러니 일단 이곳에서 독성을 다스려야 할 것이네. 일단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고 이 위로 올라가서 눕게.”

지성룡은 시키는 대로 하고 어지러워 돌 침대로 올라갔다. 현기증 때문에 이곳으로도 겨우 움직여서 오는 것도 숨이 찼기 때문이다.

지성룡이 눕자 갑자기 천장이 빙빙 돌아 눈을 감고 말았다.

“일단 나가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네.”

지성룡은 혼자 남겨졌다. 그가 눕자 곧 이어 왼손만이 아니라 왼손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점 마비가 되고 있었다.

혼자 남겨진 상태에서 점점 마비가 되자 지성룡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하였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나갔고 목 부분이 마비되자 이제는 온몸의 감각이 사라져 버렸고 오직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생각도 혼미해지는 머리 때문에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황영지는 지성룡이 중독된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 도착하여서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무적철검은 지성룡이 있는 석실에 대한 호법을 한다고 남았기에 무상도만 따라왔고 황영지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지성룡이 결국 장을 써서 흑혈강시를 밀어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황영지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 결국 지성룡이 중독된 것은 자신의 탓이기 때문이다.

이기도 그 것을 알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걱정 말아라. 저 아이는 아마도 그 흑혈시독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승천검황이 눈물을 흘리는 황영지를 보고 위로하였지만 그 말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독이라는 것이 중독이 되면 치료가 대부분 불가능하였다. 설사 치료를 하여도 폐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렇기에 황영지는 눈물을 그칠 줄을 몰랐다.

“걱정입니다. 만일 저 아이가 잘못되면 승천검황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 아닙니까?”

만상천군은 지성룡을 안내한 후에 승천검황 일행에게 객방을 내어주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 곳에는 태상장로인 이군평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을자는 그의 분노로 인하여 도망 다녀야 하고 무림은 초토화가 될 것이다. 그가 살수를 쓴다면 무림은 종말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무림도 저분이 살수를 쓴다면 태을자가 어떤 변명을 하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대문파정도나 옹호를 하겠지만 과연 흑혈강시 오십구를 단지 이각도 못가 해치우는 무공에 누가 대적을 하겠느냐? 더구나 태을자가 저런 일을 하는 것은 승천검황이 존재하여서는 안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무엇이겠느냐?”

만상천군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혹여 등격리사막에서 있었던 일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무림맹에서 저분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만상천군도 그 당시에 이미 청년이었기에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 같구나. 그 당시에 무림맹의 주력군은 오대문파의 장령제자들이 인솔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하루 늦게 도착한 것은 그들이 일부러 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일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태을자는 결국 자결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관련이 있는 오대문파는 봉문이상의 치욕을 당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수까지 사용하여 승천검황을 제거하려한 것이다.”

“결국 이일은 이미 단순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만일 저 아이가 죽게 된다면 승천검황이나 천하문은 이 일로 태을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피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에 본문이 개입을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어려운 일을 외면하는 것은 서로 정리를 생각해서도 바람직 하지 않네. 일단은 상황의 추세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 후에 결정을 하도록 하세.”

태상장로 이군평의 말에 만상천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씬 피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은 중원의 기류가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승천검황은 처소로 들어와서 내심으로 자신이 안일하게 대처하였다는 생각을 하였다. 태을자를 상식적으로 판단한 불찰을 후회하고 있었다.

‘만일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때에는 참지 않으리라. 무림에 피가 최대한 흐르지 않게 만들려고 하였지만 이렇게 된다면 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리라. 무림맹에서 맡은 매캐한 냄새가 바로 흑혈강시의 냄새였다. 내 그곳을 파헤쳐서라도 그들의 죄를 증명하고 말리라. 흑혈강시의 흔적이 무림맹에서 발견되었을 때 과연 태을자가 발뺌을 하는지 보겠다.’

승천검황은 그러면서도 지성룡이 걱정이 되었다.

‘저 아이는 태아였을 때 천년하수오, 학정홍, 천년속단유를 흡수하였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흑혈시독을 이겨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만을 바래야 한다.’

승천검황은 내심으로 타오르는 분노와 불안감을 삭이느라 몇 번이고 안색이 바뀌고 있었다.

‘네 놈들의 간계를 정면으로 파헤칠 것이다. 이제 무림맹도 저들의 소굴인 이상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승천검황은 내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문인, 내가 돌아오는 길에 흑혈강시를 보았네. 그러니 바로 장로회의를 소집해 주고 내가 써주는 글을 무림맹의 맹주에게 보내주게.”

태을자는 화산에 돌아오자 화산의 장문인인 명정을 호출하여 장로회의를 소집하였다.

그의 발 빠른 조치는 지성룡이 쓰러지는 시점에 이루어 지기 시작하였다.

태을자의 말에 신속하게 장로회의가 소집되었다.

“내가 무림맹에 청명도인과 상의할 일이 있어 다녀오는데 승천검황일행과 조우를 하게 되었소. 그러나 굳이 만나서 할 말도 없기에 피하려고 하는데 그분들이 천섬관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귀령곡 쪽으로 우회를 하였소이다. 나는 그리하여 무슨일이 있는지 궁금하였는데 그분들이 귀령곡 근처에서 바로 흑혈강시 백여구와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곤란하지만 섣불리 나서는 것은 그분에게 실례를 하는 것이기에 사태의 추이를 보다가 마침 흑혈강시를 조정하는 흑혈사군을 보았소이다. 그리하여 그를 막 격살하는데 그 분의 조력자로 보이는 자들이 접근하기에 바로 물러났습니다. 바로 구대문파와 각 세가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흑혈교의 잔당에 대한 수색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고 촉구를 해 주시오, 또한 화산은 이시간부로 일급경계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찰을 맹주에게 전해주시오.”

태을자의 말에 장문인과 장로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후후, 일단 위기는 이것으로 넘긴 것인가? 흑혈교의 출현이라는 것에 무림의 관심은 그 곳으로 쏠리고 나에게 혐의를 두려던 승천검황은 낭패를 당할 것이다. 당분간은 나에게 혐의를 두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승천검황이 우겨도 당분간은 나에게 혐의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 만일 나를 찾아오면은 문제가 심각해진다. 출타를 한다고 하여야 겠구나.’

태을자는 일이 이렇게 되면 혹시 승천검황이 자신을 암살하려고 오지 않을까 두려워 당분간 종적을 감추기로 하였다. 자신이 지금 벌인 일을 보면은 승천검황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고 암살을 할까 두려워 진 것이다. 자신의 이런 조치에 격분한 승천검황이 조용히 제거하겠다고 마음먹는 다면 두려운 일이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또한 나는 흑혈교의 잔당을 쫓아 갈 것이니 그렇게 알도록 하라.”

태을자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천하는 오십년전에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다가 무림맹에게 적발되어 멸문한 흑혈교의 잔당이 승천검황을 공격하였다고 하자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그 일의 진실을 아는 종남의 정해도장도 마찬가지로 흑혈교 잔당을 쫓겠다는 말을 남기고 종남파를 떠나고 말았다.

천하는 흑혈교의 잔당이 있다는 태을자의 말에 의해 곳곳을 뒤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종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종적이 발견되지 않기에 천하는 더더욱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태을자가 허튼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천하인들은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 소식이 터지자 제갈중명은 천기각주를 불렀다.

“태을자의 최후의 발악입니다. 저는 태을자가 맹주전 지하에 바로 흑혈강시를 봉인해 둔 것을 제 할아버지로부터 들었습니다.”

천기각주의 말에 제갈중명은 어이가 없었다.

“이일에 관련된 모든 일은 바로 전임총사인 만박노사가 주도하였고 지금도 그렇듯이 맹주전은 아무도 자유롭게 들락거리지 못합니다. 맹주전에 있는 팔대호법은 그 신분도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흑혈교의 이인자인 흑혈사군이 바로 그 팔대호법의 일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기각주의 말에 제갈중명은 어이가 없었다.

“하면 태을자가 이일을 하고 일이 어렵게 되자 흑혈사군을 살인멸구한 후에 자신의 입으로 그 일을 떠든다는 말이 아니오?”

그들은 이제 태을자에 대하여 아무런 존칭이 없었다.

그들로서도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그의 가증스러운 마각을 보았기에 그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그는 우리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감시의 손길을 뻗어 두었을 것이 아니오?”

“물론입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는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 이렇게 방치를 하여서는 우리가 당하고 맙니다. 그에게 일격을 먹여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말이오?”

“은밀히 맹주전 지하에 흑혈강시가 있었다는 사실과 흑혈사군이 바로 맹주전의 팔대호법의 일인이었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흘려야 합니다. 또한 무림맹에도 그런 자들이 암약하였다고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등격리 사막에서 있었던 비사도 흘리는 것입니다.”

그 말에 제갈중명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지금 승천무황어르신이 두려워 지하로 잠적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만들어 놓은 마당에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아예 제거하려고 할까 두렵기에 숨은 것입니다. 종남의 정해도장도 마찬가지로 숨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소문이 나도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한 진실을 아는 사람도 상당히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단지 자신이 본 것이 확실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하였다가 당할 보복이 두려워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천기각주의 말은 태을자의 음모를 소문이라는 형태로 흘려서 천하에 경종을 울리자는 말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태을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는 다면 태을자의 흉악한 간계를 막지 못합니다. 오대문파는 이런 줄도 모르고 이용을 당할 것입니다.”

천기각주의 말에 제갈중명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좋소이다. 그렇게 해주시되 흔적은 남기지 마시오.”

제갈중명의 허락이 떨어지자 인자기는 밖으로 나갔다.

인자기가 밖으로 나가고 혼자남은 제갈중명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승천검황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태을자의 마성은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저 천하문에 대하여 억제를 하였을 것이다. 하나 천하문에 참룡검객이 나타난 상황이라면 결국 흑혈강시를 동원하여 천하문을 파멸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에게 적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마성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끔찍한 일이다. 그런 자가 여태 정파무림의 수장으로 칠십년이 넘게 군림하여 왔다. 이일로 인하여 내가 희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더 이상 무림맹이 그에게 이용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바에는 아예 무림맹이 해산되어야 한다.’

제갈중명은 소름이 오싹하니 끼쳐왔다. 자신도 언제 어떻게 태을자의 마수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룡은 아득한 느낌 속에서도 의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의식의 끈을 놓는 순간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의식을 놓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머리 속에 제일 강하게 각인된 열한가지 무공의 구결과 뜻풀이였다. 그렇게 한 구절 한 구절 생각하면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 하였다.

몸은 이미 완전히 마비가 되어 오감은 아무런 촉감이 없지만 그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무공의 오의를 생각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점점 생각에 몰두 하였다.

차츰 마비된 그의 몸은 검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갔고 이제는 아예 피부의 색깔이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반점이 피부의 색깔이 검게 변하자 사려 보였다.

그의 몸은 마치 시체나 같았다. 숨도 차츰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미하게 뛰는 심장이 아직 그가 죽지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외부에서 보기에 더욱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지만 오직 다행이라면 그의 피부가 아무런 손상이 없이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몸에 들어온 흑혈시독은 순식간에 그의 피를 중독시켰고 중독된 피는 더욱더 많은 흑혈시독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그의 골수와 세맥에 잠재되어있던 영약의 성분은 곧 심맥만은 온전하게 보호하였고 몸에 이상이 발생하자 자기 증식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몸 안에서는 지금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가 의식을 놓지 않고 있기에 뇌도 차츰 흑혈시독의 침습에 대항하여 마비가 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뇌리에서 오직 무공에 대한 것만을 생각하였기에 뇌의 활동 자체가 상당히 치열한 기운이 충만되어 차츰 몸안의 기운을 심맥을 통하여 자극하고 있었다.

승천검황도 흑혈시독에 관하여는 속수무책이었다. 시독이라는 것이 피에 영향을 미치기에 함부로 다스릴 수도 없었다. 함부로 약을 투여하면 정확한 해독단이 아니라면 오히려 독과 결합하여 더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어 더욱 악화되는 수도 많았다. 또한 내공을 이용하여 치료를 하는 것도 자칫 잘못하다보면 독기운을 심맥에까지 침투시켜 즉사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만들어 버렸다.

다른 독성은 일반적으로 몸에 들어오면 피와 반발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독은 인간의 몸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인간의 생체와 결합하면 오히려 자기증식을 하게되고 지성룡이 중독된 흑혈시독은 중독되면 피를 검은 피로 만들어 온몸을 독투성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저 특별한 의술이 없기에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상문의 의약을 담당하는 의원도 흑혈시독에 대한 연구를 하였지만 방법이 없어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만일 네가 잘못된다면 태을자는 죽지 않는 이상 나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오대문파는 이 죄를 같이 받아야 한다.’

승천검황의 얼굴에는 무서운 살기가 뒤덮이기 시작하였다.

지성룡의 몸은 점점 더 검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 것을 보던 승천검황은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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