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42)
15. 소림사에서의 비무
천하문을 출발한 일행은 천천히 낙양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절에 유람을 떠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도 이렇게 평화로운 중원을 다닌다는 것은 크게 생각치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유람하듯이 바뀐 중원을 보는 흥취도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맞는 말일세. 하나 이제 옛날의 인물들도 하나둘 쓰러져 가 이제는 별로 없는 것 같네. 이제 낙양을 보고 소림에 들러 보는 것도 좋을 듯 하이.”
승천검황은 낙양에 들렀다가 소림에 가고 싶은 듯 하였다.
“그렇게 해보지요. 사부님들도 소림과는 많은 인연이 있고 저희들도 소림과는 인연이 있으니 가보는 것도 의기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애들도 강호행도를 하려면 소림과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가 있을 것이니 이번에 인연을 만들어 두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지설용은 맨 앞에 서서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무적철검과 승천검황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이번에 승천검황과 무적철검이 본사에 오는 것은 거의 기정 사실인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
방장인 청수선사는 사제이자 장로이며 나한당 수좌인 청해대사에게 승천검황 일행의 서행을 보고 받고 대책을 물었다.
“그 분들이 본사에 오는 것은 그 동안 침체된 본사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본사의 위용을 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만일 예전과 같은 일만 일어날 수 있다면 예전의 명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면 무정사숙을 선보이자는 말인가?”
청해도장이 말하는 것은 팔십오년전의 승천검황과 오로성승의 비무를 말하고 있었다.
그 비무로 일약 오로성승은 일황과 버금가는 일성의 호칭을 얻었고 무림맹에서 아무리 오대문파가 성세를 자랑하나 소림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삼도가 아무리 무림맹의 맹주를 지내더라도 은연중에 은거상태에 있는 오로성승의 눈치를 보면서 독주를 못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삼도를 일황 일성의 뒤에 놓아 은연중에 그들보다 소림이 한수위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무정사숙은 이제 나이 서른에 불과하지만 혜운사조님의 진전을 다 이은 본사최고의 기재가 아닙니까? 승천검황의 전인으로 알려진 참룡검객의 무위가 높다고 하나 고작 스물에 불과한 애송이가 아닙니까? 물론 그 아이가 팔룡의 수좌인 검룡을 꺾을 만큼 뛰어나다고 하니 차후 무림을 선도할 후기지수는 분명하지만 이번 기회에 꺾어 버린다면 평생 본사의 무정에게 꺾인 것은 영원히 따라다닐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꺾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만일 시간이 더 흘러 승천검황의 무공을 대성한다면 무정도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청수선사는 청해대사의 말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 승천검황의 소림행은 분명 기회였다. 더구나 오로성승이 말년에 거둔 기재 무정의 존재는 여태까지 비밀에 휩싸여 있었다. 이번 기회에 선을 보여 소림이 살아 있음을 만방에 떨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이면에 또 다른 걱정이 있었다.
“하나 다시 생각해야 될 문제가 있네. 만일 참룡검객이 소문대로 강하거나 그 보다도 더 강하다면 어떻게 하는가? 사실 사조님이 무정사숙을 거둔 것이 승천문의 후인이 나타날 것을 대비하여 특별히 거두었네. 물론 본사 일각에서는 이일에 대하여 상당히 반발도 많았지 않은가? 항렬을 파괴하여 버리는 조치였기 때문이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한 이면에는 바로 이번과 같은 일을 대비한 것이네.”
청수선사는 이번 승천검황의 소림행에 대하여 너무나 성급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천검황의 후인의 나이가 어렸다. 하나 다르게 생각하면 다행이기도 하였다.
확실한 승률이 보장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비무를 주장하면 승천검황은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지는 못할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이 없어 피한 것이 되기에 평생 참룡검객은 분사에 큰 소리를 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 이번 비무를 피하였다고 하면 그로서는 언제건 비무를 요청할 권리를 주게 되는 면도 있네. 그가 만일 무공을 대성하여 추후 비무를 신청하면 거절할 명분이 없어지는 수도 있네.”
청수선사의 말은 일견 상당한 타당성이 있었다. 몇 년간 지성룡이 비무를 피하다가 자신이 있을 때 도전하여 오면 피할 수 없게 되어 그 때 진다면 지금의 이런 일들이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때 만일 지게 된다면 무공도 대성하지 못한 사람을 비무에 끌어 내려 했다는 오명을 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난 몇 년간의 영화가 오히려 치욕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었다.
청해대사는 청수선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맞는 말이었다.
“일단 사조님들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이일에 대하여 말씀드리세.”
“그렇게 하여 그분들의 중론을 들어서 결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승천검황이 본사를 향하여 오고 있다고 하는 구나.”
오로성승은 이십년전에 받아들인 제자 무정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승천검황과의 비무에서 자신이 실질적으로 진 것을 알고 있었다. 금강반야장과 백보신권, 금강나한장, 달마삼검으로 이어지는 소림 사대신공을 모조리 격파한 승천검황이었다. 더구나 역근경과 세수경을 모두 섭렵하여 팔성의 경지에 이른 오로성승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만일 자신이 그 두 무공을 칠성이하로 익혔다면 자신의 재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지만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서 진 것은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구나 승천검황은 천여초의 비무내내 공세보다는 수세였지만 그 비무에서 승천검황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오로성승 혜운대사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말은 비겼지만 진 것이라고 패배감을 느꼈고 그 승부 이후 십년 폐관에 들어 역근경과 세수경을 십성까지 연마하였던 것이다.
하나 그가 나왔을 때에는 승천검황은 어디론가 은거를 해버리고 그도 이미 나이가 예순이 넘어 다시 어떤 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대결을 포기하였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성취를 전하려고 하였지만 제자중에서 소림 육대절기의 하나라도 대성하는 자가 없었다. 그로서는 승천검황의 후예가 언제건 출도하면 다시 소림을 찾을 것을 알기에 항상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는 이십년 전에 갓 들어온 사미승 중에 지금의 무정을 발견하여 눈여겨 보다가 육대 절기를 이어받을 재목이라는 판단하에 제자들과 사손들이 항렬을 파괴하는 처사라고 반발하는 것을 누르고 그를 직전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정은 이미 승천검황에 대하여는 많이 들었기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온다는 사실에는 설레임이 앞섰다.
“한데 그의 진전을 이은 참룡검객이라는 아해가 있는데 그 아이도 같이 온다고 하니 이번에 비무를 할 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그런 승부는 불제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나 그렇다고 도전을 피할 수는 없느니 준비를 하고 있도록 하여라.”
오로성승은 장문방장이 승천검황이 올 것 같은 보고를 하자 그 동안 미루어둔 승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였다. 그러나, 불제자이기에 내색도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전인이 아직 대성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스무살이라고 하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천검황과 지금 다시 비무를 하여도 이길 자신은 사실 별로 없었다. 그 것은 오로성승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전인이 어리다고 하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하여도 좋아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왠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승천검황이 온다면 이런 사실을 대비하고 있거나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알겠사옵니다. 제자는 만반의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일단 비무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일이라는 것이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기에 대비를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으로 불제자가 이렇게 호승심을 가지는 것에 수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낙양에 도착한 일행은 소림사로 향하여 낙양을 출발하기 전날 다섯이 같이 모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소림은 어르신이 비무행을 할 때 한번 오로성승과 부딪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 때 평수를 이루었지만 소림으로서는 그 일로 인하여 체면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혹시 비무를 신청하는 일이 벌어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적철검은 승천검황과 소림의 일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염려하여 먼저 말을 꺼내었다.
승천검황도 처음에는 소림행을 오로성승과 만난다는 생각에 결정을 하였지만 지성룡을 동행하자 불현듯 소림에서 그 일을 설욕하기 위해 비무를 요청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분명 평수였지만 오로성승만은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동안 절치부심하여 이기려고 준비를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칠십오년전 무림에 발을 끊으면서도 이대로 무림에 있으면 오로성승과 재대결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싫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흘렀기에 호승지심도 사라졌을 것이기에 오로성승과 승천무황의 대결은 어렵지만 그대신 오로성승의 후인이 지성룡과 비무를 원한다면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도 그 문제가 내심 걸리네. 성룡이 생각에는 어떠하느냐?”
“응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지성룡은 담담히 말하였다. 두 번의 비무를 통하여 비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림은 항상 비밀이 많은 것이다. 내가 비무행을 가기 전까지 소림에 오로성승이 있는 줄도 몰랐다. 두번의 비무에서 이기자 그때에야 오로성승이 나왔고 나는 처음으로 적수를 만났다. 그만큼 소림은 비밀이 많은 곳이다. 소림이 보이는 모습은 전부가 아니다. 소림에는 숨겨진 수많은 저력이 있다. 그 저력이 있기에 오대문파가 무림맹에서 독주를 하면서도 내내 소림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렇기에 소림은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지성룡은 승천무황의 말에 슬며시 안에서 소림에 대한 일말의 경계심이 생겼다. 승천검황이 이런 말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녀도 듣기에 그렇다고 하더군요. 소림이 보이는 힘은 항상 진실된 힘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소림이 항상 웅크리고 있지만 누구도 얕볼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황영지도 맞장구를 쳤다.
“물론 그렇다. 소림에 간다면 혹여 비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잇다. 특히 군웅회를 꺾은 너이기에 너를 꺾어 소림의 명예를 드높이고자 할지도 모르겠다. 거절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혹여 아직 미숙한 너에게 그 일로 인하여 너의 장래의 영명이 깨어질 수도 있다.”
승천검황이 두려워 하는 것은 아직 다 성숙하지 못한 지성룡이 좌절을 겪지 않을까 두려웠다. 아무리 비무이지만 한번 꺾이면 그 패배를 씻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재대결을 하여 설욕을 하여야 하는데 그런 기회는 드물었다. 결국 평생을 패배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네. 한번 지면 그 패배를 설욕하기 전까지는 소림에 당당할 수가 없게 되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번 비무는 피해야 할 것이네. 정히 비무를 피할 수 없다면 소림에 가지 않는 방법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네.”
무적철검은 젊은 지성룡이 혹시라도 좌절을 겪을까 걱정이 되어 소림행을 그만두자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소림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소림에 갈 생각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두려워 피한다면 내내 마음 한구석에는 당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아예 소림에 부딪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진다면 어렵더라도 나중에 다시 설욕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세. 자네 혼자의 승부가 아니라 검황어르신과 천하문의 체면이 달린 문제인 것이네. 결국 자네가 진다면 검황어르신과 천하문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란 말일세.”
그말에 지성룡은 일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을 직감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성룡이를 이길만한 고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네. 그렇기에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일세.”
승천검황의 말에 지성룡은 내심 위축된 마음이 다소나마 풀리게 되었다.
승천검황은 황영지와의 비무에서 보인 실력을 볼 때 무적철검이나 무상도에 바금가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는가?”
승천검황의 말에 무적철검은 의아하였다.
“삼일 후에 출발할 까 하네. 그간 두 분이 성룡이를 좀 도와주었으면 고맙겠네.”
승천검황의 말에 무적철검과 무상도는 자신들이 지성룡을 도울 일이 무엇일까 의아해하며 선뜻 대답을 못하였다.
“성룡이에게 대련 상대가 되어 주었으면 하네.”
그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은 다소 경직이 되었다.
“이틀간은 일대일 비무를 하고 삼일째 되는 날은 이대일 비무를 했으면 하네. 물론 내가 비무에 나서도 되지만 성룡이도 조금은 불편할 것이네.”
승천검황의 말에 무적철검도 내심으로 지성룡과 겨루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제자의 패배에 대한 불승복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말을 못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참에 승천검황의 부탁은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顧所願)이었다.
“그렇게 부탁을 하시니 그렇게 하리다.”
무적철검이 승낙을 하자 무상도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하였다.
승천검황에게는 한수를 접고 가지만은 그 전인인 지성룡에게만은 그런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는 내심이 있었다. 더구나, 내심으로 황영지의 상대로 생각하기에 이번 기회에 그들의 무서움을 보여줘 황영지를 우습게 알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계산도 들어 있었다.
“어르신들이 저를 위하여 그런 수고를 자청하시다니 소생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승천검황의 부탁으로 성사된 것이지만 이런 부탁에 응해준다는 것은 실로 파격이 아닐 수가 없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하나 승천검황이 이렇게 결정한데는 그들 두 사람에게 지성룡의 실력을 느끼게 하여 그 승부에 대하여 승복하게 만들 생각이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아직까지 비무의 결과를 승복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알기에 이들이 그런 청을 한다면 응해주리라는 것을 알기에 다소 무리한 일이지만 말을 꺼낸 것이다.
무적철검이나 무상검의 마음 한구석에 지성룡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시를 읽었기에 이들과 대련이라는 형식을 빌어 지성룡과 이들의 비무를 하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지성룡과 대련을 하게 한다면 살수는 아니지만 혹독한 방법으로 지성룡을 몰아칠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지성룡은 단련이 될 것이다. 무적철검이나 무상도가 인간인 이상 제자를 이긴 지성룡을 이기겠다는 호승심은 있을 것이고 그 호승심은 지성룡에게 혹독한 훈련이 될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지정룡에게 만족할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삼일째 되는날 이대일 비무는 생사지경을 넘나드는 격렬한 비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단기간에 지성룡을 성장시킬 묘책이 없었다.
“아니야. 이렇게 라도 늙은이들이 자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네.”
그렇게 무적철검이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승천검황은 이들이 기뻐하는 이유가 다른데 있다는 것을 알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도 제자를 두 사람이 도와주어 감사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두 사람의 속내를 알기에 웃은 것이다.
황영지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순진하게 자신의 마음에 있는 지성룡을 두 사부가 도와준다고 생각하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머무는 곳은 천하문에서 운영하는 객잔 중에 하나였고 그들은 별원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들어와 있었다.
“그럼 내일부터 낙양 외곽의 망산에 가서 한적한 곳을 골라 대련을 하도록 하세나.”
“자네가 이번 대련 연습을 찬성하여 했지만 이건 좀 무리한 일이 아닌가?”
무상도는 무적철검과 단둘이 있게 되자 전음을 보내었다.
그들은 옆방에 있는 승천검황을 의식하였기 때문이다.
무상도는 내심으로 이런 승천검황의 청이 불쾌하였기 때문이다.
“무서운 그 분의 심계일세.”
무적철검은 그렇게 말하였다. 그 말에 무상도는 의아하여 무적철검의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이 비무를 받아들여야 했네.”
그렇게 말하자 무상도는 얼굴빛이 변하였다.
“비무신청일세.”
그 말에야 무상도는 얼굴에 이해가 되는 빛이 되었다.
“저 어른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네. 저 어른은 성룡이를 우리에게 도전시키는 것이네. 그 머리 속에는 우리와의 관계에서까지 주도권을 쥐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러다가 이번 소림사행에서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고 모험을 한 것이네.”
그 말에 무상도의 얼굴은 비장함이 어렸다.
“결국 그 어른은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호승심마저 저 아이를 통하여 꺾기로 한 것일세. 이것은 대련연습이 아니라 비무일세. 그 어른의 판단에 영지와의 비무로 성룡이가 우리들의 무공의 비밀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 같기에 마침내 크게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런 일을 한 것이네. 그야 져도 크게 상관이 없네. 그러나 영지처럼 어이없게는 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을 것이네. 하나 우리는 질 수 없는 비무일세”
“우리가 그렇다면 그 아이를 반드시 꺾어야 하겠구려.”
“하나 그리 쉬운 대결은 아닐 것이네. 우리라도 영지의 공격을 그렇게 방어만 하면서 막기란 쉬운 일은 아니니 결국 우리의 모든 것을 보여야 할 것이네.”
그들은 전음으로 지성룡을 어떻게 상대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이야 대련이라는 명목하에 펼쳐질 비무에 대하여 이길 방법을 찾고 또 찾고 있었다.
용소명과 웅전휘, 초광생의 동행은 상당히 재미가 있는 동행이었다.
용소명은 생각보다 넉살이 좋았고 눈치도 빨랐기에 두 사람은 생각보다 편리하게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저기 보이는 저 주막에서 오늘은 쉬고 가시지요?”
웅전휘와 초광생은 용소명이 길가에 보이는 한 객잔을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해는 서산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하세나. 자네는 지치지도 않나?”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였기에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무공이 떨어져 보이는 용소명이 오히려 팔팔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피곤은 하죠. 허나, 이 정도를 걷는 것은 물속에서 조개를 잡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자 들어 가십시다.”
용소명은 앞장서서 달려 갔다.
그들이 막 개점에 들어가자 관도옆에 있는 객잔은 먼저온 여행객들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이, 웅장주, 초장주”
그들이 들어가자 어디선가 웅전휘와 초광생을 불렀다.
웅전휘와 초광생은 아는 체를 하자 시선을 둘렸다.
그들은 뭔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자네들을 여기서 볼 줄이야? 사마세가에서 자네들을 찾았는데 사라지고 없어 무척 서운하였다네.”
사십대 중반의 풍채 좋은 남자였다. 거기에 고급스러운 의복이 한눈에 부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송장주, 자네도 왔었나?”
“물론이지.”
용소명도 어쩔 수 없이 그들 뒤를 따라갔다. 용소명은 웅전휘와 초광생의 안색에서 이들이 송장주라는 인물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그런 내색을 대놓고는 못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송장주라는 사람 옆에는 호위로 보이는 무사만도 다섯이나 있었다.
“자, 자리에 앉게. 한데 자네와 같이 가는 소형제는 누구인가?”
송천영은 명색만 무가의 장주라고 있는 웅전휘와 초광생을 이런 자리에서 보자 면박을 주고 싶어졌다. 이웃한 두 장원은 그의 욱일승천하는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였다.
그의 장원에 인접한 두 장원으로 인하여 농토의 확장이 맘에 들지 않은 모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소생은 복건성 출신의 용소명이라고 하옵니다. 두 노형님과는 호형호제 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노형님과는 친구처럼 지내시는 것 같사온데 소생이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용소명이 이때다 싶게 넉살 좋게 말을 하였다. 그가 그렇게 나오자 송장주의 얼굴은 이상스럽게 변하였고 그 옆에 앉아 있던 삼십대 후반의 무사가 탁자를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네 이놈, 이분이 누구시라고 그 따위 수작이냐?”
용소명은 그가 그렇게 호통을 치자 주눅이 들기는커녕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웅전휘와 초광생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용소명의 반응에 곤혹스러워 하는 송장주를 보면서 그가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호위무사가 나서자 용소명을 보았고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원, 시끄러워서. 이보시오? 자네는 이분의 호위무사 같은데 나는 이분과 동격인 이 형님들의 동생 자격으로 말하는 것인데 이렇게 나서는 것은 이 두분에게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이오?”
용소명은 말을 이상하게 돌려서 호위무사인 듯한 인물을 공격하였다. 용소명의 의외의 반격에 호위무사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송장주를 보았다.
송장주는 용소명의 말에 호위무사가 나서자 간접적으로 용소명을 핍박하여 두 장주를 면박주려고 가만히 있다가 용소명의 말에 교묘하게 공격을 받는 것을 알았다.
즉, 어른들의 이야기에 무례하게 호위무사가 끼어든다는 꾸짖음이었다. 만일 여기서 호위무사를 제지하지 않게 되면 두 사람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어버릴 것이고 제지한다면 자신의 꼴이 우습게 되어버리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변변치 않는 무가이지만 바로 이웃에 있는 이들과 원수를 져서 좋을 것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용소명의 말에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자네들도 짖궂기 그지 없구만. 자식 뻘 되는 아이와 호형호제를 하다니 사실인가?”
송장주도 노련한 여우였다. 일단 용소명을 공격하기에 앞서 웅전휘와 초광생을 슬쩍 공격하였다. 이런 애송이와 그런 관계이냐는 확인과 더불어 그런 짓을 하는 변변찮은 인간이라는 힐난을 담고 있었다.
“영웅은 나이에 관계없이 세교를 한다네. 나는 용소제에게서 영웅의 기개를 보았네.”
웅전휘는 이왕 기호지세의 형국이기에 배짱 좋게 밀고 나갔다. 그 말에 송장주는 용소명을 다시 보았다. 눈앞의 위인들이 자신의 장사수완에 밀려 빛이 바랬지만 인간성 바르고 근면성실하여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여행을 떠나며 종복 한둘은 데리고 떠날 가세는 되는데도 농번기라하여 단둘이 여행을 떠난 인물들이었다.
그런 사실까지 알기에 무시하기에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용소명은 어리지만 당찬구석이 있었다. 지금 나선 호위는 무당의 속가제자로 자신이 특별히 무당에 청하여 불러온 호위대장이었다. 그런 인물에게 한치의 꿀리는 기세도 없이 맞받아 치는 것을 보면 그 배짱하나는 인정해 줄만 하였다.
이미 웅전휘가 그렇게 나온 이상 이들을 대놓고 무시하지 않은 이상에는 호위대장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는 싫었다.
“하나 자네가 동생으로 인정하였다고 하여 나까지 인정할 수는 없는 일, 실례가 안된다면 두 사람이 한번 실력을 겨루어 정하도록 하세.”
송장주의 말에 웅전휘와 초광생의 얼굴은 굳어졌다. 또한 용소명의 얼굴도 굳어졌다.
“좋습니다.”
“내 자네의 나이를 생각하여 십초의 제한을 두겠네.”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흥미로운 눈초리로 사태의 추이를 궁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하나 초수 제한은 굳이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용소명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보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여 말하였다.
자신보다는 강해보이지만 자신이 배운 검술의 신랄함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히 상대가 안되면 최후의 초식으로 허점을 노릴 생각이었다.
웅전휘와 초광생은 자신들로서도 버거운 상대로 보이는 호위무사를 그런 초수의 제한도 없이 상대한다고 하자 걱정이 되었지만 용소명이 본인의 입으로 말한 이상 어찌 해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