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38)
“그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무적철검은 황영지와 지성룡이 나가자 자리에 앉아 승천검황에게 근황을 물었다.
“나야 등격리에서 곧바로 하란산에 은거를 하였네. 뭐랄까 그런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헤매고 다녔더니 너무나 내 자신이 싫어 졌었네. 마침 더 이상 무림맹에 있어 보았자 안에서 또다시 구파일방이네 뭐네 하면서 떠드는 꼴을 보는 것도 싫었고. 자네들은 그 동안 원하는 것을 얻었는가?”
“조그마한 성취는 있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역시 어르신을 뵈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이야 자질이 부족하여 스승님이 가르쳐준 것도 다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자네들이 얻은 것도 만만치 않아. 그런데 혹시 자네들 본문에 대하여 어떠한 호승지심을 가지고 있는가?”
승천검황의 질문에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다 부질없는 일이네. 혹여 그런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만난 마당에 풀어버렸으면 하네. 그렇지 못하고 그 일을 다시 후손들에게 남겨주면 결국 후환이 될 수가 있네.”
그렇게 승천검황이 말하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이 마주 보기만 하였다. 그들이야 칠십년의 세월동안, 아니 구십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절치부심 승천문을 뛰어 넘을 호승지심으로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그것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실로 무리였다.
“하오나 사부님의 비원이 너무나 큽니다. 최소한 사부님의 원대로 본문의 무공이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승천검황은 이들의 한이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네. 하나 승천문의 무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보아도 될 것이네. 자네들이 본 아이가 승천문의 무공을 전수 받기는 하였으나 그 아이가 익힌 것은 본문의 무공이 아니네. 그 아이가 완성하는 무공은 본문의 무공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새로운 무공이네. 자네들이 꺾고자 하는 무공이 사라진 마당에 그 일이 의미가 있겠는가?”
그 말에 무적철검은 생각에 잠겼다.
승천검황이 전한 무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공이 탄생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승천문의 무공이 변하여 다른 무공이 되어가는데 꺾는 다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것과 예전에도 진 무상문의 절기를 가지고서 승천문의 절기도 꺾지 못하는데 이제 그보다 한단계 성장한 무공을 꺾을 수 있냐는 반문이었다.
“일단 두 아이가 한번은 마주쳐야 할 것입니다. 그 아이가 부딪쳐서 진다면 어쩔 수는 없지만 일단은 기회를 주어여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았네. 이번에 아예 결판을 짓는 것이 어떤가?”
무적철검은 지금 붙은다면 질 것은 뻔하였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들이 본 그 아이는 고작 무공에 입문한지 오년밖에 되지 않았네. 그런데도 자네들의 전인보다 좀 나은 실력이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면 그 격차가 좁혀질 것 같은가?”
무적철검은 지성룡이 무공에 입문한지 오년밖에 안된다는 말에 미간이 찌푸려 졌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승천검황은 그들이 갈등을 하는 것을 알기에 다시 한번 마음을 강하게 먹고 밀어 부쳤다.
“나는 그 아이들이 서로 보는 순간 호감을 가진 것을 느꼈네. 아마 자네들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나중에는 두 아이들에게 한(恨)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네.”
그 말에 무적철검은 마음이 아팠다. 그들도 눈이 있기에 황영지의 태도를 보았다. 남녀관계는 잘 모르지만 그들도 황영지가 끌리는 것을 보았다. 그렇기에 그런 태도를 의식적으로 취한 것을 알았다.
그들이야 말년에 얻어 정성껏 키운 황영지가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황영지는 단순한 전인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하면 일단 그 아이에게 이번에 비무를 시킬까 합니다. 물론 그 아이가 이기건 지건 간에 상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잘 생각하였네. 자네들이 왔다는 이야기에 내내 그 일이 마음에 걸려 이번에 정리를 하기로 하였네. 어찌 되었건 그렇게 하기로 하세. 자네들은 이후에 어떻게 할 생각인가?”
무적철검은 승천검황이 묻는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산천유람이나 할 생각입니다. 저희랑 같이 가볼 생각이 없으십니까?”
승천검황은 오히려 한수 빠르게 권유를 하자 움직이려던 생각도 있었기에 마음이 동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며칠간 자네들도 나랑 같이 있도록 하세. 이후의 문제는 차차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일단 비무를 하고 말일세.”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영지와 지성룡은 원주들과 차를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황영지는 지성룡을 놀리는 것에 시들하여져서 밖으로 나오자 다시 안수전으로 가자고 하였다.
“남자가 좀 놀린 것 가지고 화를 내세요?”
황영지는 지성룡이 내내 말이 없자 분위기를 풀려고 먼저 말을 하였다.
“화난 것은 없소. 하지만 선조들의 호승지심에 나나 소저가 휩쓸려 적대시 하는 것이 싫은 것이오.”
황영지는 내심으로 그 말에 한편으로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에는 그런 일이 없으면 좀더 친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아쉬움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 그 말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다정한 연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황영지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고 깜짝 놀라 고개를 땅으로 숙이고 말았다. 해놓고 보니 이상하였기 때문이다.
지성룡도 황영지의 말에 아무말도 못하고 멀뚱하니 눈을 허공으로 돌렸다. 서로 어색한 침묵 속에 안수전의 뜰로 들어서고 있었다.
“비무 이야기는 어떻게 할 것이오?”
지성룡은 이미 어른 들 앞에서 말을 꺼냈기에 알려질 것은 뻔하기에 물었다. 그 사실이 어른들에게 알려지면 혼날 것은 뻔하였기 때문이다.
“뭐, 이왕 말이 나왔으니 내일 오전에 한번 붙어 보죠. 뭐 제가 질 확률이 많겠지만요. 하나 여자인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공격하지는 않겠지요? 혹시 저번 군웅회처럼 검을 자르지는 않겠지요?”
황영지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하자 비무는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무적철검은 그간 가르친 것이 아까워 땅을 칠 일이엇다.
지성룡은 그 말에 웃고 말았다. 이왕 붙을 바에는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다시는 비무하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할 생각이었는데 봐달라고 하니 난감하였다. 이런 소리를 듣고 그렇게 했다가는 무지막지한 남자로 생각할 것이고 봐주자니 또 나중에 비무하자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안수전 정청으로 다가가 어른들의 눈치를 보자 두런거리는 소리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갔다.
“잘 둘러보았느냐?”
“녜, 경치는 좋은데 안내인이 별로여서….”
승천검황의 질문에 황영지는 그렇게 말하다가 얼른 말을 멈추었다. 순간적으로 아까의 기분에 젖어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황영지의 말에 그들은 다시 웃고 말았다.
“뭘 그렇게 잘못하였기에 황소저가 이런 말을 하느냐?”
승천검황은 짐짓 화난 척 지성룡에게 말을 건넸다.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허참, 하면 잘한 것은 있느냐?”
지성룡은 승천검황의 말에 오늘따라 여기저기서 정신 없게 만드는지 몰라 어이없는 눈을 뜨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여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황영지가 못마땅해 눈을 부라렸다.
황영지도 자신의 말로 인하여 지성룡이 타박을 듣자 민망해 지고 말았다.
“벌써 장난을 칠만큼 가까워 졌느냐?”
무적철검은 황영지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야단을 치고 말았다.
그제서야 둘은 어른들도 장난으로 하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애들이 벌써 그만큼 가까워 졌으니 좋은 일이오. 한데 둘의 표정을 보니 뭔가 할말이 있어 보이는데 뭐가 있느냐?”
승천검황은 아까 둘이 밖에서 상의하는 것을 들었기에 물었다.
“내일 황소저와 오전에 비무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그 말에 장내의 노인들은 놀라서 서로 보았다.
그들이 방금 전에 이야기 한 것이 그 내용이었는데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자 놀란 것이다.
무적철검은 너무 놀라 황영지를 보았다.
“이길 자신은 있느냐?”
황영지는 이기고 지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가 없었다.
“이기고 지고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지면 지는 것이죠. 그런다고 설마 저를 심하게 공격하여 다치게는 않겠지요.”
그런 태평스러운 말에 무적철검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소리를 하라고 여태 그 공을 들여서 가르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연인과 연습삼아 비무하면서 살살 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기고 지고는 의미가 없네. 그러면 내일 오전에 둘이 비무를 하는 것으로 하세.”
승천검황은 아예 못을 박아버렸다.
둘은 호된 야단을 맞을 각오를 하였는데 그냥 싱겁게 받아들여지자 오히려 이상하여 서로 마주 보았다.
“둘의 비무를 이야기 하였다. 너희들이 먼저 합의를 하였다 하니 그렇게 하자.”
그렇게 말하고 넘어갔다.
지성룡은 이미 비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자 일이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적철검과 무상도가 천하문에 갔다고?”
천기각주는 천하문을 나와 낙양에 파견된 천기밀령을 만났는데 그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전대고수들이 모조리 천하문에만 간다는 것이냐? 무림맹은 그간 뭐했기에 그런 것을 몰랐단 말이냐?”
“워낙 전대 고수이다 보니 놓친 것 같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이지 천하문의 배를 탔기에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승천검황이 부르는 형식으로 갔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과 승천검황의 사문이 서로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보고 입니다.”
“아마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국 승천검황이 이번 일에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천기각주는 무림맹으로 떠나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