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문무공-37화 (37/149)

제  목: [연재] 독문무공(37)

“어서오시게.”

승천검황은 그들 무적철검과 무상도를 보자 앞으로 나서 환영의 말을 하였다.

“저희들을 아시고 있었사옵니까?”

무적철검은 그 것이 궁금하여 먼저 물었다.

“물론일세. 한번쯤 찾아올 것으로 기대를 하였건만 오지를 않더군. 그 때는 나도 일이 바빠 찾지를 못하였네. 천존 어르신은 입적하셨는가?”

“예, 그러하옵니다.”

“자 들어가세.”

그렇게 말하고 승천검황은 청명원 안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안수전의 정청이었다.

“인사드리게. 이쪽은 천하문의 오태상들일세. 자네들보다 연치가 모두 많으니 선배대접을 하면 될 것이네.”

그렇게 말하고 각자 인사를 시켰다.

그렇게 인사와 소개가 끝나자 뒤에 서있는 화영지를 보았다. 황영지가 이런 자리에 끼일 자리는 아니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기에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아, 저 여아는 자네들의 전인인가?”

승천검황은 황영지를 보고 먼저 말을 꺼냈다.

“예, 저희들의 공동전인입니다.”

그들은 제자라는 말보다는 전인이라는 말로 답하였다.

전인이라는 말은 제자라는 말보다 훨씬 포괄적인 말이었다. 제자라고 하면 바로 직전제자를 가르치는 말이고 전인은 제자의 제자나 가르침을 준 친인들까지를 포함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소녀 황영지라 하옵니다.”

황영지가 예를 표하였다.

“대단한 여아일세. 그 나이에 자네들의 가르침을 다 전해 받은 것 같군.”

승천검황의 말에 무적철검과 무상도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성룡아 인사올려라. 이 아이는 제자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나의 전인일세.”

승천검황은 지성룡을 소개하였다. 지성룡은 앞으로 나서서 예를 표하였다.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드는 순간 황영지와 눈이 마주쳤다.

‘실로 대단한 아이다. 영지가 뛰어난 아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아이에 비하면 좀 처지는 느낌이 드는구나. 결국 영지에게 버거운 짐을 지워준 것 같구나.’

‘지아가 약간은 처지는 느낌이구나.”

그렇게 무적철검과 무상도는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훌륭한 전인을 두신 것 같습니다. 서로 인사나 나누게.”

지성룡과 황영지는 그때가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지성룡으로서는 처음 접하는 여자이기에 느낌이 묘했다. 무상문과의 일을 들었지만 꺾어야 할 적수라기 보다는 여자로 보이기 때문에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 황영지는 지성룡을 보는 순간 벽을 보는 듯 아득하였다. 최후에 꺾어야 할 숙적이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러나 오기로 마주보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젊은 아이들이라 이거 보는 순간부터 불꽃이 튀는 것 같습니다.”

종수사는 두 젊은이가 처음 보는 순간부터 눈 싸움을 하자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둘울 약간 놀리는 듯이 말을 하였다.

처음 보는 순간 둘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생은 지성룡이라 하오이다.”

지성룡이 어색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소개를 하였다.

‘이런 내가 먼저 소개를 했어야 하는데 선수를 뺏겼잖아.’

황영지는 내심 그 생각을 하였다.

“소녀는 황영지예요. 그 쪽은 벌써 참룡검객이라는 명호를 가지고 있는데 소녀는 아직 강호초출이다보니 명호가 없어요.”

황영지는 톡 쏘듯이 말을 건넸다. 처음 보는 순간 자신을 압도하는 신위를 보이자 심통이 났기 때문이었다.

지성룡은 상대에게 이상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심통이 난 반응을 보이자 당황스러웠다. 지금 처음 본 사람인데 이렇게 반응을 하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색하여 곁눈질로 보니 모두가 다음의 대응이 궁금한 듯 지성룡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거 여자애들을 상대해 봤어야 알지. 이럴 경우는 어떻게 하는거야?’

여자관계는 쑥맥이기에 상대할 길을 궁리하였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 그러야 조금 먼저 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오나 소저도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이 고운 얼굴에 출중한 무공을 겸비하셨으니 곧 저보다 더 좋은 명호를 얻으실 것입니다.”

지성룡의 진지한 말에 주변의 노인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옆에서 웃자 둘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 올랐다. 늙은이들이 선남선녀를 보면 엮어줄 궁리부터 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청춘이 부럽기 때문이었다. 만날 때부터 불꽃이 튀는 대결을 하는 그들을 보자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였다.

“거,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 아주 좋은 표현이로다. 무상천녀라, 아주 좋은 명호로다.”

승천검황이 그렇게 말하자 황영지는 내심으로 자신에게 붙여진 명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무상천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이런 거창하고 촌스러운 명호를 갖게되잖아.’

황영지는 자신에게 명호가 생겨 기쁘면서도 또한 그런 명호를 갖게한 지성룡이 원망스러웠다.

“소저, 금방 명호를 갖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자신 때문에 그런 명호가 붙여진 줄도 모르고 지성룡은 축하를 하였다.

그렇게 눈치 없이 행동하는 지성룡 때문에 다시 한번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졌다.

“자, 자리에 앉세나. 그리고 성룡이는 황소저에게 청명원을 좀 안내해 드려라.”

지성룡은 갑자기 승천검황이 황영지를 데리고 나가라는 말을 하자 얼굴에 난처한 빛이 어렸다. 이제나 놀림감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되었는데 다시 데리고 나간다면 그 후에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앉으려고 자리를 찾다가 어쩔 수없이 황영지에게 다가갔다.

지성룡은 황영지옆에 세자 근처까지 갔다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돌아섰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황영지는 어떻게 할지 몰라 무적철검을 보았다. 무적철검은 그렇게 하라는 표정이었다. 황영지는 평생 외부인과 혼자 접한 적이 없기에 어색하였다. 그것도 자신 또래의 남자이기에 일단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다고 못 간다고 할 수도 없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지성룡의 뒤를 따랐다.

지성룡은 청명원을 안내하라는 말을 들었기에 청명원을 안내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청명원에 대하여 소개하기 위해 머리 속으로 설명할 말을 찾고 있었다. 승천검황이 청명원을 안내하라는 뜻은 무적철검과 무상도와 만나서 어른들끼리 무엇인가 할 말이 있으니 황영지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라는 뜻이었다. 무적철검도 승천검황의 뜻을 읽고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었는데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상시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지만 당황하다보니 정신이 없는 것이다.

“지금 있는 이곳이 청명원입니다. 청명원은 원래 저희 천하문에서 연세가 들어 일에서 물러나신 분들이 모여서 말년을 ….”

지성룡이 설명을 시작하여 몇 마디 말을 하자 곧바로 황영지가 외쳤다.

“조용히 좀 해요. 지금 제가 화원을 보고 있는 게 안보여요. 시끄러워서 볼 수가 없잖아요.”

지성룡의 말에 황영지는 불쑥 핀잔을 주었다, 자신도 모르게 면박을 주고 만 것을 느낀 황영지는 내가 이러나 하였지만 당황하여 허둥대는 지성룡을 보자 즐겁기 짝이 없었다.

“조용히 따라나 와요. 내가 물어보면 대답하고요.”

황영지는 지성룡이 순박해 보이기에 그렇게 말하고 화원으로 눈을 다시 돌렸다.

머쓱하니 황영지의 뒤에서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황영지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실상 황영지도 화원을 보는 척 하였지만 지성룡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신의 반응에 당황하여 그대로 서있는 지성룡이 재미 있어 보지 않는다면 배꼽이 빠지도록 웃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

엉큼한 여심이여.

황영지는 지성룡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지 놀려 먹기로 하였다. 그렇기에 여기저기 끌고 다니기로 하였다.

“화원을 보았으니 저쪽을 보고 싶군요.”

지성룡은 황영지가 가리킨 곳을 보다가 얼굴이 다시 곤혹스럽게 변하였다. 하필 가리킨 곳이 청운각이기 때문이었다.

황영지가 그렇게 말하자 마자 가지 못하게 할 시간도 주지않고 앞장서서 가기 시작하였다.

지성룡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연무장 쪽에서는 청운각에 머무는 기재들이 한창 연무 중에 있었다.

“저곳은 오대문파와 대결할 기재들이 연무를 하나 보네요. 제가 봐도 되겠죠,”

지성룡은 곤혹스러운 생각이 들어 황영지에게 말을 하였다.

“저곳에 저희 증조부님들이 계시는데 그곳으로 가시지요.”

그렇게 말하고 얼른 황영지의 앞으로 나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나무그늘아래 오원주는 앉자 연무를 보고 있었다. 오원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지성룡이 외부인을 끌고 오자 연무를 중단하고 보고 있었다.

지성룡은 모든 사람이 보자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이 쑥스러워 발걸음을 빨리하였다.

“천천히 가요.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급하게 걸어요.”

지성룡은 뒤에서 황영지가 불평하자 걸음을 멈추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황영지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들렸고 황영지의 성깔에 지성룡이 멈추자 픽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보기에 지성룡이 뒤에 오는 여자에게 뭔가 약점을 잡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지성룡과 황영지는 오원주 앞에 다다랐다.

“이 소저는 무적철검 어르신과 무상도 어르신의 공동 전인인 황영지 소저입니다.”

그렇게 지성룡이 소개를 하였다.

“소개를 하려면 제대로 해요. 왜 승천검황어르신이 붙여준 무상천녀란 명호는 빼먹어요.”

그렇게 지성룡에게 다시 면박을 주고는 돌아서더니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소녀 황영지라 하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황영지의 태도는 요조숙녀 그 자체였다. 소개를 하고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오, 그 어른들의 전인이시구만. 잘 왔어요. 소저에게 차라도 한잔 대접하여야 겠네. 자 들어가세.”

지일광은 어른들이 할말이 있기에 둘을 내보낸 줄을 짐작하고 황영지를 이끌었다.

“고맙습니다. 하온데 저 분은 먼 길 오느라고 목마른 저에게 차는 고사하고 물 한잔 줄 생각을 않아 말도 못하였어요. 역시 할아버지는 제 마음을 알아 주시네요.”

그렇게 황영지는 이죽거렸다. 지일광은 그런 황영지를 보면서 지성룡을 보았다.

“성룡이가 손님 접대를 잘못하였구려. 죄송하오이다. 소저.”

지일광이 장단을 맞춰주자 황영지는 지성룡을 보고 눈을 흘겼다.

‘이 아가씨가 성룡이에게 관심이 있는데 눈치 없는 녀석이 맞춰주지를 못하고 있구나’

지일광은 황영지가 지성룡에게 뭔가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성룡은 따라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그냥 서 있었다. 그들이 삼사장이나 갔는데도 그 자리에 서있자 황영지가 돌아보았다.

“뭐하고 있어요. 빨리 오지. 그러다가 제가 길이라도 잃으면 어떻게 할 거에요.”

그 말에 모두가 대놓고 웃지는 못하였지만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도 황영지가 지성룡에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 보였다. 지성룡만 모르지 모두는 황영지가 지성룡에게 관심이 있기에 계속하여 놀리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다.

지성룡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발걸음을 옮겨 따라갔다.

“제수씨가 재미있는 사람이 들어올 것 같은데?”

지장룡은 그들이 안보이게 되자 지연룡에게 말을 건넸다.

“그럴 수도 있겠군. 저 녀석이 여자에는 완전 쑥맥이라 이거 저 소저한테 꼼짝 못하는데 걱정이군.”

지연룡은 지성룡이 여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거 안되겠어. 내가 가보야지.”

지연룡은 동생의 일이라 걱정이 되어 뒤를 따라갔다.

“형님이 간다고 뭐 도움이 되겠소? 그 녀석은 완전히 얼어있던데.”

지장룡은 우스운지 말하였다.

지연룡이 급히 뛰어가자 모두는 다시 웃음을 터트리고 하던 연무를 다시 시작하였다.

허겁지겁 지연룡이 쫓아가자 아직 오원주 등은 건물로 들어가기 전이었다.

지연룡이 다가가자 지성룡은 오기를 기다렸다.

“아참, 너도 오너라.”

지연룡이 오자 지일광은 지연룡을 반겼다.

마침 지연룡도 오도록 하여야 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소저, 이 쪽은 성룡이의 형인 연룡이일세.”

“아,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하온데 동생분과는 달리 훨씬 의젓해 보이시네요.”

황영지의 약간은 당돌한 말에 지연룡은 어이가 없었지만 면전에서 무안을 줄 수도 없어 예를 표하였다. 그러나. 황영지는 아까의 말과는 달리 상당히 공손한 표정이었다. 지금의 말도 지연룡에게 한말이 아니라 지성룡을 자극하기 위한 말에 불과하였다. 지연룡은 그런 생각이 들자 안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쪼록 머무시는 동안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 절 안내해줄 사람이 편하게 해줄지는 모르겠네요.”

이번에도 황영지는 지성룡을 다시 자극하였다. 지성룡으로서는 말만하면 자신을 자극하는 황영지 때문에 돌기 일보직전의 상태였다. 뭐가 불만인지 계속하여 입만 열면 자극하고 있었다.

황영지의 연속되는 도발에 모두는 어이가 없어 지성룡을 보았다. 지성룡은 어떻게 해야할지 종을 못 잡고 죽일 듯한 표정으로 황영지를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황영지는 그런 지성룡의 표정을 보자 왜 이리 통쾌한지 몰랐다. 그러나, 그런 표정에도 모른 척 지일광의 뒤를 따라갔다.

지성룡은 나머지 사원주와 지연룡에게 왜 저 여자가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다섯은 그것을 네가 알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오히려 되묻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고 다섯은 돌아서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나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하고 얼굴 표정만 이상하게 변하였다.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감추려고 하다 보니 얼굴이 이상한 표정으로 변한 것이다.

지성룡은 안으로 들어가서도 황영지의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소저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예, 저는 방년 스물이옵니다.”

“생일은?”

“삼월 초닷새로 알고 있습니다.”

“아, 성룡이 하고 동갑이구나.”

그 말에 황영지는 지성룡을 보았다.

“어머, 저랑 동갑이에요. 한데 꼭 열다섯이나 여섯 정도로 밖에는 안보였어요.”

황영지의 말에 노인들은 미소로서 답했고 지연룡은 지성룡의 반응을 보았다. 또한 지성룡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어금니를 악 물고 있었다.

“아 제 동생이 조금 동안이라 그러합니다.”

지연룡이 거기에 거들기까지 하자 지성룡은 그저 두 눈까지 감고 말았다.

“그런 것 같아요.”

“소저는 그동안 어디서 살았는지요?”

“황산이라고 하더군요.”

황영지는 지연룡이 묻자 대답을 하였다.

‘그동안 심산유곡에서 무공만 수련하였던 것이구나.’

황영지의 어투에서 그런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하온데 얼마 전에 한수칠흉의 토벌에 나섰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되었어요.”

황영지는 궁금하였기에 먼저 물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황영지는 서로 미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일 어리신 분이 해주세요. 그런 일까지 어르신들이 하실 수는 없잖아요.”

참고 참던 지성룡이 폭발하고 말았다.

“소저,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시구려.”

“어머, 정말 모르시는 말씀. 그곳에 직접 가셨던 분한테 듣기 위해 청하는 것이예요. 저도 알아보고 싶은데 보신 분들이 없고 오직 여기 있는 분들만 정확한 것을 안다고 하던데요.”

지성룡은 말 싸움을 청하자 응하기로 하였다.

“물론 그렇기는 하나 굳이 피가 흐르는 전장의 일을 꺼내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소이다.”

지성룡은 퉁명스럽게 쏘아부쳤다.

“어머, 죄송해요. 그렇기도 하네요. 제가 경솔하였네요. 다른 것을 물어야 하겠네요. 생일이 언제예요?”

그 말에 지성룡은 황영지를 보았다. 같은 초닷새였기 때문이었다.

“삼월 초닷새요.”

그렇게 말하자 황영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랑 생일이 같아요?”

모두는 그 사실을 인식하자 둘을 신기한 듯 보았다.

“혹시 저보다 느린데 속이는 것 아니예요?”

“맞네. 그건 내가 보장하지.”

지일광이 그렇게 말하자 황영지는 내심 불안하였다.

“둘은 뭔가 인연이 있기는 있나 보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때 시비가 찻주전자를 들고 들어왔고 그들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시비가 물러가자 황영지는 지성룡이 차를 마시는 것을 슬쩍 보았다. 얼굴에 나 화가 나있습니다 하는 표가 확연하였다.

“찻물이 참 향기롭고 좋아요. 지금까지 마셔본 차중에는 제일 향취가 좋아요? 차 이름이 무엇이예요?”

‘여자라 말이 많기는 많아.’

지성룡은 그렇게 생각하고 조잘거리는 황영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은 철관음이라는 차일세.”

“아, 이것이 이름만 듣던 철관음이예요. 역시 이름만큼 좋은 차네요. 한데 지공자님은 차맛이 별로인가 봐요. 이렇게 맛이 좋은 차를 드시면서도 얼굴이 찡그리고 계시네요.”

그 말에 막 찻물을 들이키던 지성룡은 목구멍에 찻물이 걸려 사래가 들고 말았다.

몇 번 콜록거리고서야 재채기가 멎었다. 지성룡은 재채기를 하다보니 눈물에 콧물이 흐러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서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황영지는 자신의 말에 찻물을 들이키다 재채기까지 하자 재미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있기에 웃지는 못하고 지성룡을 보면서 눈웃음만 지었다.

화를 내려던 지성룡은 다른 사람이 있기에 참고 앉으려고 하였는데 황영지가 눈웃음을 치자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다시 털썩 앉았다.

“아마 성룡이가 소저가 옆에 있으니 긴장하여 그런 것 같습니다. 이만 순진한 제 동생을 놀리시지요.”

황영지는 지연룡이 그렇게 말하자 지성룡을 보았다.

“한데 소저와 어르신들은 무슨 일로 이곳 개봉에 오셨는가?”

지일광은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물었다. 이미 강호견문중이라는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하여 물은 것이다.

“그저 강호에 대하여 알려고 다니던 길이예요. 물론 사문의 전해지는 업도 있으니 그것도 해결하고요.”

“아 사문의 업이라니 무슨 일입니까?”

지연룡이 궁금하여 물었다. 그 말을 꺼낸 것은 말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사자가 이 자리에 있어요.”

그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지성룡을 보았다. 그들의 생각에 지성룡 밖에는 그런 일에 연관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황영지의 도발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무슨 말이오? 소생은 그 말의 의미를 모르겠소이다.”

지성룡이 시치미를 뚝 데고 묻자 황영지는 오히려 당황하였다.

“본문에 얽힌 일을 듣지 못했나요?”

“아, 물론 들었지만 그 일과 소저가 하는 일과 무슨 연관이 있소이까?”

지성룡은 한번쯤 황영지를 놀려주고 싶었다. 더구나 여자를 상대로 비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몰라서 묻는 것인가요?”

황영지는 그 일로 자신은 이렇게 노심초사를 하는데 상대는 아예 자신들을 의식하지도 않는듯하자 무시당한 느낌이 들었다.

“아, 어르신들이 몇 번 비무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은 비무일 뿐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소저와 제가 그 일로 이래야 하는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장내의 사람들은 승천검황의 사문과 황영지의 사문의 전대에 비무가 있었고 그 비무에서 승천검황쪽이 이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황영지가 도발하는 것은 그 일과 지성룡에 대한 끌림이 마음속에서 대립하는 심리의 표출임을 짐작하였다.

지성룡의 말에 황영지는 지성룡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느꼈다.

내심으로 황영지가 도발하는 것을 보면서 참은 것은 그 일을 마음속에 염두에 두었지만 먼저 꺼내자 아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눌러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요? 하면 다시 제가 비무를 청한다면 어떻게 하실거예요? 응해주실건가요?’

“물론이오. 언제든지 좋습니다.”

황영지는 너무나 쉽게 대답을 하자 속에서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적수로도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이렇게 만났으니 한번 겨루어 보는 것도 좋겠군요. 제가 이겨야 될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지성룡은 갑자기 비무를 하는 분위기로 황영지가 이끌자 당황이 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분위기가 돌변하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찻물도 동이 나고 말았다.

황영지도 홧김에 비무를 청하고 말았지만 사부들에게 알려지면 경솔한 짓을 하였다고 야단맞을 것이 걱정이 되었고 자신보다 강해보이는 지성룡을 이길 자신이 없어 내심으로 걱정이 되어 조용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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