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26)
모두가 나가자 지유성 만이 지용운의 집무실에 남았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들을 토벌하는 문제 말이다.”
이일은 천하문 전체의 일이었다.
“제 생각에는 천하 삼단을 전부 움직일까 합니다.”
“일단 이 문제 만은 일단 어르신들에게 보고한 후에 처리를 해야 할 문제 같구나.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해야 하니 같이 가자.”
그들은 같이 일어나 청명원으로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
이미 이런 사실은 소문이 돌아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안수전에 도착하자 이일을 들었는지 오태상과 오원주가 앉아서 뭔가를 숙의 중이었다.
지용운은 간략하에 일의 개요와 처리방향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들은 지용운의 보고에 아주 훌륭한 대처방안이라고 동의를 해주었다. 그러나 토벌에 대하여 천하삼단을 전부 움직인다는 말에 지일광이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천하삼단을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토벌을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청운각의 아이들로 하는 것이 어떨까 하네. 그것이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야. 물론 그 아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 오원주와 성룡이도 같이 가면 어떨까 한다.”
지일광의 말에 아무도 말이 없었다. 무인들에게 있어 피가 튀는 실전을 겪어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기 았기에 후기지수들에게 실전을 겪게 해주고 싶었다. 심성이 착한 사람일수록 실전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첫 살인에서 오는 충격도 컸다. 하나 만일 이런 충격을 극복한다면 그들의 무공은 일취월장하였다.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 그들은 실전에 내보내 단련시키고 싶은 것이다. 또한 흉악한 마인들을 상대로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그 충격을 극복하는데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대둔산채에 있는 녹림도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천하삼단을 움직여 봉쇄를 해야 할 것이네. 물론 거기에 덧붙여 다른 표국의 표사들도 최대한 동원하게. 그리고 그들을 토벌한 이후에 그곳 산채를 아예 접수해 버리는 것이 어떤가? 향후 이런 일이 없기 위해서는 그 화근이 될 곳을 없애야 한다는 이유를 대고 말일세.”
그 말은 백가장과 대륭장, 무당파가 들으면 발끈할 말이었다.
“물론 각 현과 관아에는 적당히 둘러대서 보고를 하고 일단 눌러 앉아 있는 것이야? 만일 그들이 나가라고 하면 그들에게 이번 피해에 대하여 보상해달라고 하고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못나간다고 버티는 것일세.”
지일광의 말은 이번 일을 핑계로 화산과 무당에 시비를 걸어보는 것이다. 천하문이 이런 일이 또 발생할 것 같으니 미연에 이곳에 주둔하겠다고 하면 몰아낼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그 곳은 삼십년간 도적의 소굴이었으니 나가라는 명분이 부족하였다. 도적은 용납이 되고 우리는 그곳에 있으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진다면 그들로서는 할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르라고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천하문의 하남성 외부로의 진출을 허락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기에 그들로서는 가만히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힘으로 내쫓는 일은 명분이 없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을 할 것이다. 그러다가 정히 사정이 어려워지면 천하문으로서는 적당히 물러서면 되었다.
지일광의 말은 이번 일을 기회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의도였다.
천하문의 배가 한수칠흉에 의해 침몰하였다는 소식은 천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일로 인하여 제일 고민이 되는 사람은 제갈중명이었다.
사건이 보고되자 제일 먼저 천하문을 살폈다.
천하문이 발 빠르게 명분을 축적하자 제갈중명은 그들의 일 처리에 감탄을 하였다.
천하문은 신속하게 일을 정리하여 진행하고 있었다. 대둔채에 대한 무조건적인 토벌보다는 한수한수 일에 대한 빈틈없는 명분을 쌓고 있었다.
이런 명분 축적은 향후의 일에 대한 그들의 대응을 살피는 좋은 본보기 였다. 일부 무림맹에 있는 정파인들은 천하문이 하는 일에 대하여 도적의 집단에 대하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장사꾼은 장사꾼이라고 멸시하고 있었지만 제갈중명의 입장에서 향후 천하문에 대한 처리가 어렵다는 생각 밖에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앞뒤 재지않고 물불 안가리는 상대는 다루기가 싶지만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상대는 매사에 신중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습에 휘말릴 수가 있었다.
더구나 이번 일이 화산과 무당의 속가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골치가 아팠다. 그들이 이 번 일을 책임지고 처리하여 천하문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 버리는 것이 무림맹으로서는 제일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녹림도가 자리를 잡고 삼십여년간 있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산채를 점령한 후에 물러가지를 않는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제갈중명이 보기에 산채의 토벌은 천하문의 힘으로 못할 것이 없었다. 백가장이나 대륭장으로서도 그들의 토벌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천하문으로서는 대둔산 같은 지역에 언제라도 녹림이 들어설 수가 있는 위험을 방치하려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대둔산에서 무사를 철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물러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곳이 지난 삼십여녀간 녹림의 소굴이었지만 방치하였고 그들이 토벌한다면 그곳의 권리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자칫 그 곳에 권리를 주장하다 보면 도적과 뒷거래한 세력으로 몰리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오면 대응할 말이 없어지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일이 지난 칠십여년간 지켜진 불문율을 깬다는 데 있었다.
천하문이 활보하는 것은 하남성 안에서이다는 관례를 깨는 일이라는 것이다. 천하문이 하남성 밖으로 진출을 하였을 경우 그 이후에 일어날 파장이 두려워 무림맹은 천하문을 포위하고 있는데 그 포위망이 깨진다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외부에 진출하고 싶어도 명분이 없기에 참았지만 이번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다.
그런 봉쇄가 깨졌다는 심리적인 충격은 크다고 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천하문의 포위망이 풀릴 경우 그 지척에 있는 산동의 제갈세가를 생각해서도 방관할 수는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을 막자면 우리가 토벌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천하문을 대신하여 토벌하자는 말에 따를 문파가 몇이고 과연 어느 세월에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러다가 만일 그들이 도주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책임을 무림맹에서 쓰게 될 것이다. 무림맹이 그들을 비호하여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빌미를 주게 되어 무림맹은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제갈중명은 자신의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랬지만 현재 일 처리를 하는 천하문의 신중함은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번 손해를 만회할 이런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림맹에 속해 있는 세가들도 대부분 상가였지만 이런 신중한 일 처리를 할만한 세가는 없었다. 사대세가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우선 힘으로 토벌하고 난 후에 통보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일 처리는 항상 뒤탈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한데 사황성의 의도도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사황성의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명분 하에 사오십명의 고수들을 몰아내었다. 한데 그들이 모두 사황성의 관내를 탈출하여 무림맹의 관할지역으로 옮겨왔다. 탈출한 자들의 자발적인 이동이지만 이것은 사황성의 어떤 의도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제갈중명은 한수칠흉에 조사하다 사황성에서 한수칠흉처럼 떠난 자가 사오십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주로 강북의 무림맹의 관할 구역으로 숨어 든 것으로 조사되자 그런 일을 까마득히 몰랐던 것에 무림맹의 정보력에 구멍이 발생한 것을 알았다. 그들이 온 것까지는 보고가 되어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온 사실만을 알지 그런 것을 종합하여 파악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무는 보았지만 전체적인 숲은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은 어디에 가건 분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들로 인하여 분란이 발생한다면 사황성은 힘 하나 안들이고 무림맹의 힘을 감소시키는 일을 할 수가 있고 자신들이 직접 그들을 제거함으로서 발생할 문제를 피하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결국 그들은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이번 한수칠흉의 문제에서 알 수가 있다.’
제갈중명의 뇌리에서는 온갖 상념이 스치고 지나갔다. 갈수록 모든 상황이 무림맹에 위해가 되는 일만 불거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칠십여년간 평화롭던 중원 무림이 이제는 피를 부르는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나 이런 문제가 아무리 피하려고 하여도 곳곳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천하문에서 일이 벌어진 다음날 밀영루주는 영소혜에게 한수칠흉이 벌인 일을 보고하였다. 그 자리에는 사마도 같이 있었다.
“너의 생각에 천하문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사마는 영소혜에게 보고가 끝나자 되물었다.
“일단 토벌을 하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것 같습니다.”
영소혜의 말에 사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먼저 그들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 말에 영소혜는 조금 의아한 듯 생각하다가 얼굴에 미소가 어리다가 다시 의아함이 어렸다.
“설마 그들이 그렇게까지 할 리가 있겠습니까?”
“천하문은 상당히 치밀한 집단이다. 그들이 그렇게 치밀하지 않았다면 무림맹에 의해 오래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토벌을 하기 전에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책임을 거절할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그들을 철저하게 토벌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우리와 분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소혜로서는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천하문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칠십여년간 무림맹의 오대문파에 당하면서도 아무런 대응이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런 천하문이 정상적인 기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오면 그들이 곧 어떤 조치가 본문에 대하여 있을 것이겠군요. 아마도 그들의 대응이라는 것이 우리의 문도가 저지른 일이니 우리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겠군요.”
“물론이다. 우리가 거절하면 그때에야 그들을 토벌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들의 말이 나오자 마자 거절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전에 그들은 토벌할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우리에게 손해를 물을 것이다.”
영소혜는 역시 사마의 말에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은 천하문이 있는 하남성이 아니라 호북성입니다. 그래도 가능할까요? 무림맹이 호북성으로 천하문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다면 일이 쉽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정파에서 토벌하겠느냐? 만일 그러다가 한수칠흉이 도주라도 한다면 그 책임을 무림맹에서 어떻게 질 것이냐? 도적의 무리를 숨겨주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텐데 그들이 그런 비난을 감수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들은 군웅회의 일로 천하에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에서 그런 비난마저 받게 된다면 무림맹이 해체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사마의 말은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영소혜는 이번 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보다도 그간 우리가 한 일들이 천하문이나 무림맹에 알려졌을 것이고 강북 곳곳에서 그일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 질 것이다. 결국 그 일에 대한 무림맹과 천하문의 역습이 있을 것인데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영소혜는 한수칠흉과 같은 사건을 기대하고 그들을 강북으로 추방하였지만 막상 일이 닥치자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들이 은퇴한 이상 그들은 본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라고 하여라. 정작 문제는 이일에 대한 그들의 새로운 도발인 것이다. 그들은 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일로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여라.”
그때 밖으로 나갔던 밀영루주가 들어 왔다.
“무슨 일인가?”
“천하문에서 한수칠흉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무한의 호북성 총타에 그 사절이 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요구한 금액이 얼마이냐?”
“사십오만냥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만일 본성에서 그들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지 않으면 한수칠흉이 가지고 있는 강남 내의 재산을 관에 신고하여 손해를 보전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하옵니다.”
밀영루주의 말에 사마의 얼굴이 핼쓱해졌다.
거기에 대하여는 생각치 못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한수칠흉의 숨겨놓은 재산까지 천하문이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손해배상은 생각하였지만 손해를 실질적으로 보전하겠다는 생각을 할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한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철저한 계산이었다.
“물러가보아라. 곧 내가 그에 대한 답변을 주겠다.”
영소혜는 밀영루주를 나가게 하고 사마를 보았다. 단순하게 부인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런 것을 예상하고 온 것이다.
“그만큼 철저한 천하문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영소혜는 한수칠흉의 재산을 관에 신고하여 손해에 대한 보전을 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의도를 파악해야 했다.
“그들의 실질적인 손해배상 청구이군요. 결국 그들이 이제 사황성이 있는 강남에 들어 오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영소혜는 단순히 손해의 보전이 아니라 천하문이 그 재산들을 차지하여 강남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었다. 사황성이 단순하게 거절할 수 없는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들의 의도가 그렇다고 하여도 이일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한수칠흉의 재산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일은 결국 우리가 한수칠흉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관에 자인하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추후 관과의 관계에서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 아닙니까? 실로 무서운 심계입니다.”
“그들은 위기를 강남에 진출하는 기회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방해하면 우리가 한수칠흉의 일로 앙심을 품는다고 소문내어 관을 자극할 것이다. 그들로서야 관의 비호를 받고서 들어오겠다는 것이다.”
영소혜는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시작하였다.
“그들이 강남에 들어와서 실질적으로 어떤 일을 하겠어요. 남경상림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데요. 그저 쉽게 우리에게 면죄부는 주지 않겠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도 재미가 있겠어요.”
영소혜의 말에 사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일단 손해인 것 같지만 천하문으로서는 남경상림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남경상림에서도 최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소혜는 일이 더욱 재미있게 되는 것을 느꼈다.
“모여보아라.”
오원주가 연무하는 곳으로 오더니 연무중인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도 이런 일은 없었기에 궁금함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모두들 대략 우리의 배가 소담강에서 침몰한 것은 들었을 것이다. 그일이 대둔산채에 있는 한수칠흉이 저지른 일이다는 것은 들었을 것이다. 그들을 토벌하기로 하였다. 그들을 포위하는 일은 개봉에 있는 천하 삼단과 천하표국의 표사들과 표두들이 하기로 하였지만 그들을 토벌하는 일은 너희들이 하기로 하였다.”
그 말에 모여들었던 스물한명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어렸다. 물론 그들의 무공 조예로서 한수칠흉의 무예에 대하여 주눅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실전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 갑니까”
“일단 오늘 밤부터 운성현과 창성현으로 천하삼단이 움직이기로 하였다. 대둔산채에 있는 적도들이 탈출하기 전에 일단 대둔산을 봉쇄하기로 하였고 대륭장이나 백가장의 양해도 구하였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이동을 하고 제형안찰사의 추살령이 떨어지고 사황성의 답변이 오는대로 그들을 수일 내에 공격할 것이다.”
지일광은 말을 마치고 그들 하나하나를 보았다.
“일단 너희들은 우리가 불러주는 것들을 있는 대로 챙겨서 행낭에 넣어 한시진 후에 나오도록 하여라. 없는 물품들은 각자 적어내도록 하여라. 그러면 보충해 줄 것이다.”
지일광이 물목을 불러 주기 시작하였다. 그 품목은 무림인들이 강호 행보시에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지일광이 불러주는 것을 마치자 모두들 일어나 청운각으로 갔고 지성룡도 일어났다.
“너도 같이 가기로 하였으니 짐을 챙겨서 오도록 하여라.”
“녜.”
한수칠흉은 다음날 어떤 일이 발생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외부에 내보낸 정보원에게 자신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토벌이 이루어 진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다시 자세히 알아보라는 말에 천하문의 대응이 알려졌다. 이미 그때는 운성현과 창성현에 그들에 대한 현상수배가 시작되었고 백가장과 대륭장이 천하문이 토벌하는 것에 대하여 허락하였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아울러 지창성이라는 표두가 그 와중에 탈출하였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탈출하여 자신들의 일이 발각되자 대응방법을 찾느라고 부심하였다.
“일이 이지경이 되어버리다니?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천하문으로서는 이번일에 전력을 투입할 텐데 어떻게 대응할 길이 있느냐? 이미 천하문에서 봉쇄가 시작되고 있다고 하는데 길이 있느냐?”
대흉은 어제 일에 고무되어 어제 밤에 술을 먹고 만취하였던 자신들의 행동이 경솔하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만시지탄이었다. 혹시 모를 자신들의 정체에 대하여 주의를 하였어야 했는데 그들이 자신들을 알고 이정도의 조치를 하는 동안 두 손 놓고 있다가 이제는 봉쇄가 되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 탈출을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대흉은 오흉을 보고 물었다.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대륭장이나 백가장이나 이미 주요 도로를 막고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천하표국에서 삼백여며의 표사와 표두들이 이미 곳곳에 무리를 길목을 차단하고 있습니다.관군도 검문을 어제 저녁부터 실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얼마나 버티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흉은 알려진 순간에 이미 일이 틀어진 것을 알았다. 그들의 운명은 그 일을 계획할 때 이미 틀어진 것이다. 결국 자업자득이었다.
탈출이라는 것은 이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수하들의 동요가 없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탈출할 기회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이제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일순간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천하문이 과연 그렇게 일 처리에 허술하다고는 결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천지문에 돌아온 율사청은 천지쌍마를 찾아갔다.
“왜 이렇게 돌아왔느냐? 천하문에 잠입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율사청의 갑작스러운 귀환에 의아하여 되물었다.
“제자는 그곳에서 제자의 적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제자가 방심하는 사이 제자에 필적하는 성취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한때 제자는 무공에 있어서는 천하의 누구도 제자의 상대가 없다는 자만에 잠겨있었습니다. 그것이 제자의 자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지쌍마도 이미 군웅회와 천하문의 대결을 들었기에 율사청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잇었다.
“그만큼 참룡검객이라는 아이가 대단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소문에 알려진 것은 제자가 보기에 그의 본신능력의 절반밖에는 보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소한 제자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승천검황의 무공을 이어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말은 사실일 것이라 판단되옵니다. 그의 재질을 보건데 승천검황이 충분히 가르침을 주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안 이상 더 이상 그곳에 잠입하는 따위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미 저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고 그도 나를 처음보는 순간 의식하였습니다. 이미 그들이 나를 의식한 이상 아무리 있어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승천검황이 등장한 이상 더더욱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말에 천지쌍마도 긴장을 하였다. 천지쌍마의 나이는 승천검황이나 큰 차이는 없었지만 승천검황에 비한다면 그들은 한참 후에야 중원에 이름을 얻었다.
“그의 경지는 말그대로 오기조원의 경지였느냐?”
천지쌍마는 그것이 궁금하여 물었다.
그들이 천지쌍절을 합일하지 못하였기에 성취가 삼화취정에 이르러서 정체되고 말았다. 그들은 그 두 가지 무공을 하나로 합일하기를 율사청에게 바라고 공동제자로 삼은 것이다.
그렇기에 승천무황의 경지가 궁금하였던 것이다.
“세간에 사부님들의 경지가 삼화취정이라고 하고 그 다음이 오기조원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오기조원의 경지가 아닌 새로운 경지에 들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천지쌍마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나이 여든이 넘어서야 겨우 삼화취정에 들었는데 승천검황은 오기조원을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들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허탈하기까지 하였다.
“승천검황의 경지를 보았기에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저의 적수가 승천검황의 절기를 이었다면 그도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만큼 강해져야 했습니다. 이미 천지쌍절이 팔성에 이르렀으니 합일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천지쌍마는 율사청이 자청하여 폐관에 들겠다고 하자 그만큼 이번에 율사청이 충격을 받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