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문무공-24화 (24/149)

제  목: [연재] 독문무공(24)

10. 대둔산채

구십년전 중원 암흑가는 자고 일어나면 주인이 바뀌는 군웅할거의 장이었다.

몽고족의 힘이 약해지자 치안은 문란해졌고 들끓는 것은 도적이오 채이는 것은 거지였다.

또한 곳곳의 한인들은 자고 일어나면 반몽단체를 결성하여 몽고족 부호들을 습격하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낮에는 아무리 몽고족이 반몽인사를 잡는다고 설치고 다녔지만 밤이면 언제 습격받을까 무서워 나다니지도 못하였다.

그 시절 무창에 암흑가에 광돈(狂豚)이라 별명이 붙은 파락호가 나타났다.

무창의 유생이던 아버지는 몽고족에게 반몽인사로 낙인찍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그는 유생인 아버지에게 나이 열일곱이 될 때까지 글 공부를 하였기에 상당히 유식하였지만 얼굴 모양이 돼지 머리이다 보니 그를 누구도 유생으로 보지 않았다. 몽고족을 피하여 숨어든 곳은 무창의 뒷골목이었고 그곳을 지배하던 흑수파(黑手派)라는 암흑조직에 몸을 담았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조직의 말단부터 성장하였다. 그는 순식간에 치밀한 일처리로 조직의 중요 인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은 다른 조직원의 조직적인 견제를 받게 되고 그는 외부가 아니라 조직과의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대 이십이라는 싸움이 무창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루 동안 벌어졌고 최후의 승자는 그였다. 그는 이 전쟁으로 광돈(미친돼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가 나이 스물에 흑수파를 장악하였다.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무창의 뒷골목은 흑수파가 장악하고 있지만 무창의 밤을 지배하는 것은 독존파(獨尊派)라는 조직이었다. 그는 생존을 위해 독존파에 붙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들어간 그는 독존파의 두목의 의형제가 된다. 독존파의 두목은 그에게 기념으로 한 권의 책을 주었다. 실로 그 선물은 광돈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으니 송대 최고의 거마 사혈마제(邪血魔帝)의 영파검급(英破劍級)이었다. 사혈마제는 세인이 부르는 이름이었고 스스로는 영파검객이라 칭하였다. 영웅이라 칭하는 위선자들을 깨부수는 검객이라고 스스로 자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끔 강호에 출도하는 자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흑도의 무공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연히 비급을 얻어 수련한 경우에 그 비급의 내력을 모르기에 그러했다.

아무리 마왕이라 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자신을 칭할 때는 항상 그럴 듯하게 불렀고 비급에도 그런 내력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기에 그 무공이 흑도의 무공인줄을 모르는 것이다.

흑도의 무공이라고 하여도 대부분은 일반 무공과 별차이가 없었고 그 무공을 처음 쓴 사람이 정도인이냐 흑도냐에 의해서 정도무공이니 흑도무공이니 구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파검급이라 쓰여진 좀 어려운 검급을 한번보고 사혈마제의 무공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고 이해가 잘 안되기에 도외시 하였고 마지막으로 소유한 독존파 두목 소광지(蘇廣志)는 싸움 밖에 모르는 일자무식이었기에 비급을 얻은 이후 비급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기에 준 것이었다.

독존파에 가입할 때 대화를 나누고 결의 형제를 맺으면서 그가 유생의 아들이고 무공을 배우지도 않고도 순수한 근력만으로 흑수파를 장악하였다고 하자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공비급 같으니 생색을 내면서 무공을 익히라며 자신에게 쓸모없는 책 한권을 준 것이다. 그가 그 비급을 얻은 것은 전대 독존파 두목을 제거할 때 가슴속에 있던 것을 꺼내어 가지고 보관하다가 의제가 된 기념으로 무엇을 줄까 하다가 그 책이 눈에 뜨여 자신의 보물창고에서 들고 나온 것이다.

지극히 돈을 밝히는 그의 성격으로 가장 돈이 안될 것 같은 책을 그럴 듯한 구실을 붙여 준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유생 출신인 광돈은 감읍하며 받았다. 하나 그 결맹을 지켜보던 독존파의 중진들은 그날 광돈이 감읍하는 장면을 보고 그 자리에서 웃음을 참다가 몇 명은 허파가 부어서 꽤나 고생하였다는 후일담이 있었으니….

자린고비 같은 독존파의 두목이 수하들에게 주는 것은 항상 쓸모없는 것이었다. 쓸모없을 것이 뻔한 책 한권에 감읍하는 광돈의 모습은 한마디로 웃음 없이는 볼 수 없는 희극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광돈의 얼굴은 돼지의 상 이었으니 돼지가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광돈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와 그 책을 보고 다시 한번 감읍을 하였다. 암흑가의 전설 사혈마제의 비급을 주었다고 감사하였다.

그는 비급이 사혈마제의 비급이라고 발설할 만큼 경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과 두목 밖에는 모르는 비밀로 알고 있었다. 그런 행운을 준 소지광에게 감사하며 하루에도 서너번은 마음속으로 충성을 다짐을 하면서 지내었다.

삼개월 후 소광지의 생일날 실로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유명한 명필이 쓴 글이라며 누군가 족자 하나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것이 위아래로 똑같이 끈이 달려 있어 위아래가 똑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거꾸로 들고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느낀 충격이란 실로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 소광지는 술이 떡이 되어서 애첩의 방에서 잠들고 독존파의 간부들은 다시 술을 한잔 더하였다.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실로 광돈을 다시 한번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자신에게 준 책은 다른 부하들에게 주려고 하였지만 모두가 관심 없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영추상이 감읍하여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웃음을 참느라 허파가 터지는 줄 알았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늘어 놓았다.

그렇게 삼년이 지나고 영추상은 영파검급을 어느 정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천성적인 싸움꾼인 그는 무패의 강자로 고작 삼십여명에 불과하던 흑수파를 백여명에 이르는 조직으로 키웠다.

일은 어이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법, 독존파의 부두목 쌍도끼는 항상 소광지의 애첩 애화를 탐냈고 애화도 일자무식인 소광지보다는 잔인하지만 말쑥한 외모의 쌍도끼를 원하였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야합을 하였고 쌍도끼는 자고 있는 소광지를 암살하고 자객이 들었다고 소문을 내었다.

그러나, 비밀은 없는 법, 소광지의 본부인은 그 일을 눈치 채었고 소광지의 암살범이 쌍도끼라는 것을 영추상에게 알려왔다.

일자무식이고 수전노인 소광지였지만 명분상 의형제였다.

그리고, 이것은 틀림없는 기회였다. 소광지가 아들이 없는 이상 쌍도끼만 처단하면 독존파를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소광지가 의형제를 맺은 관계는 쌍도끼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세개파의 두목도 마찬가지였지만 암흑가는 의리와 힘이 우선이었다.

소광지의 본부인이 이 사실을 알려온 것은 자신이 그를 제거하면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독존파를 넘겨준다는 보이지 않는 거래의 요청인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쌍도끼는 성대하게 소광지의 장례를 준비하며 자신이 마치 독존파의 대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 중 누구도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영추상은 장례식이 있기 직전 부하들과 함께 애화를 제압하였고 영결식장에 가서 방심하고 있던 쌍도끼도 제압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애화와 쌍도끼의 야합이 밝혀지고 고문에 못이긴 애화의 자백이 이어졌다. 그 자리는 소지광의 장례식 뿐이 아니라 쌍도끼와 애화의 장례식장도 되어버렸다.

영추상은 스물 세살의 나이에 무창의 밤을 지배하는 자리에 올라섰다.

영추상은 강남의 다른 도시의 암흑가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밑으로 끌어 들였다. 사혈마제의 무공을 터득한 영추상에게 적수는 없었고 나이 서른에 암흑가의 총두목이 되었다. 십여년이 지나자 그는 암흑가를 일통하게 되었지만 칠십 오년전 명이 들어서자 그는 암흑가의 조직을 지하로 스며들게 하고 핵심 인물들을 모아 사황성을 만들었으니 그가 바로 사마였다. 그가 장악한 도시는 항주,무한,장사,남경,소주,악양,합비,복주,양주 등 강남의 중요한 모든 도시들이었다.

사마 사황문주 영추상에게는 세명의 심복이 있었다.

사마의 사황문에서의 공식적인 명호는 영파대제(英破大帝)였다. 그도 사혈마제처럼 영파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편의상 중원의 무인들이 사마라고 불렀지 사황문의 누구도 함부로 사마라고 칭하지는 못하였다.

그 세명의 별호는 영파대제보다 한단계 낮은 명호를 써서 패왕, 수왕, 화왕이라 칭하였다.

패왕 강남패마 조천은 항주의 밤거리를 장악하던 자였다. 그는 천성적으로 힘이 좋았고 사마보다 나이가 한살 많았다. 그는 사마에게 패천강룡신공이라는 무공을 전수받았고 무조건 적인 충성심을 보였다.

수왕 녹림대살 연적상은 강남수로연맹의 반도였다. 그는 총표파자인 녹림대제에게 반기를 들다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사마에게 구함받아 수하가 되었다. 그는 천성적인 모사꾼이었다. 그의 모사에 의해 결국 강남수로연맹이 지금은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사마에게는 한번도 반심을 보이지 않았다.

화왕 흑호독접 호미상은 사황의 정부이자 가정부이자 부인의 역할을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기녀였는데 사마에게 구함을 받고 호접수(狐蝶手)라는 무공비급까지 받았다.

사황은 자신의 못생긴 외모와 젊었을 때 낭심을 차여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과 소지광의 일 때문에 여자를 믿지 않았고 부인도 두지 않았다. 여자는 한번 자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흑호독접만은 그래도 신임하였다. 그것은 처음에 시녀였고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명은 사황성이 세워진 후에 사황성의 무상과 군사와 내총관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사황성의 이인자로서의 권력을 누려왔다.

하나 사마가 이십년 전 한 여자를 취하고 그 여자가 임신을 하여 딸을 낳자 일이 이상하게 변하였다. 사마는 여자를 믿지 않았기에 그 여자가 사마의 애를 가졌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시비인 그녀가 모진 고난 속에 애를 낳고 사마의 애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자 사마는 심히 고민하다 결국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원을 불러 자신을 진맥하게 하였다.

사마는 영파검결을 꾸준히 연성하였는데 육십년이 지나자 극의를 깨우쳐 삼화취정의 경지에 올랐다.

그렇게 되자 이전까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몸이 회복된 것이다. 사마는 육십이 넘은 이후에 한 이십여년간 무공에 전념하다보니 여자를 취하지 않다가 대성한 이후에 갑자기 욕정이 일어 침소에 드나들며 시중들던 시비를 취하였던 것이다.

사마는 자신이 그녀를 믿고 자신을 진맥만 하였어도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자책이 들어 딸아이를 애지중지하며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런 영소혜의 등장은 사황성의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어찌보면 사황성의 일에 무관심하면서 무공이나 수련하던 사마를 다시 사황성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만들었다.

내심으로 사황성의 차기 패권을 노리던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사마는 영소혜의 나이 다섯이 되는 해 원로원을 만들어 사황성을 이끌던 열두명을 퇴진시키고 말았다.

졸지에 삼왕과 아홉명의 핵심인물들이 물러나게 되었고 청수각(淸水閣)이란 곳을 만들어 나이 칠십이 넘은 사람들은 무조건 물러나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사황성의 조직을 사각 사당이라는 조직으로 개편하여 친정체제를 구축하여 버렸다.

그러면서 그 동안 자신의 또 다른 심복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영소혜를 보호할 비밀 조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사황성은 사마의 독재가 시작되었다. 그의 처사에 반기를 드는 자에게는 가차없는 숙청이 이루어 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마의 최초의 숙청대상은 원로원에 물러난 패왕의 추종자들이었고 두번째는 녹림대살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무리 물러났어도 그 동안 심어둔 수하들이 부지기수였고 그들은 은연중에 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 일을 두고 볼 사마가 아니었고 하나 둘 그들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십여년간 내린 뿌리는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그리고 십오년이 흘러서야 진정한 사마의 사황성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인간적인 정 때문에 두 심복을 그대로 원로원에 두고 있지만 그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한수칠흉은 이런 와중에 등용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다시 일년전에 영소혜가 나이 열아홉의 나이에 사황성의 소성주가 되어 정식으로 정무에 참여하면서 또 다른 양상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십오년전에 등요된 인물들이 하나 둘 원로원과 청수각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들도 아무리 부인하여도 패왕과 수왕의 손떼가 묻은 인물들인 것이다.

한수칠흉은 외당의 기찰령주를 맡고 있던 사황성의 인물이었다. 그들은 나이 스물에 강호에 출도하여 강도, 살인, 강간 등을 밥먹듯이 일삼다가 삼년만에 꼬리가 잡혀 관부에 쫓기에 되었고 그길로 사황성에 들었다.

그들은 모두 인정받아 녹림대살의 수족과 같은 존재가 되어 승승장구하여 각 총타를 다니면서 사황성의 첨병이 되었다. 그러나 녹림대살은 그들이 탐욕스러운 것을 알고 일벌백계차원에서 그들을 총단에 불려들어 백일의 근신형에 처하였다.

그들이 성도총타에 있으면서 당시 성도 암흑가를 놓고 싸우던 두 세력 중에 하나를 지원한 것이다.

암흑가는 사황성 휘하이지만 사황성에 가입하는 자는 수뇌뿐이었다. 즉 사황성과 암흑조직은 공식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이었다. 눈가리고 아웅 식이지만 이렇기에 사황성이 칠십여년간 관과 큰 충돌이 없이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큰 대도시에 총타를 두었기에 십오대 총타가 있지만 그것은 겉으로는 사황성의 지단이지 암흑가와는 연관이 없는 조직이었다. 사황성은 암흑가의 세력을 지역의 패주로 인정하고 후견인 역할을 해주었고 암흑가는 그 지역에서 펼치는 사황성 총타에서 하는 객잔, 반점, 주루, 기루, 도박장 등의 사업을 보호해 주었다.

그런 원칙을 깨고 기고만장하게 지역의 암흑가 패권다툼에 개입하여 그들을 패주로 만들고 뇌물을 챙긴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총단에 머무는 시점에 바로 십이원로의 퇴진이 이루어 졌고 그들은 외당의 기찰령주로 임명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다시 기회를 잡자 사마에게 충성을 다하였고 녹림대살의 수족을 자르는 첨병이 되었다. 한데 영소혜가 등장하면서 그들의 입지는 어느 순간에 좁아지게 되었고 년이 지나면서 청수각으로 물러날 것을 종용받았다.

원로원에 들어갈 자격은 사대각주나 사대당주를 지낸 자에 한하였고 나머지 인물들은 청수각에 들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청수각에 들고 안들고는 각자의 마음이었다. 청수각에 드는 대신에 심산유곡으로 은거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월 백냥씩 지급되는 돈이 있기에 청수각에 들어갔다. 청수각에 들었다는 것은 거기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집에서 살면서 낮에 거기에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청수각이라는 말이 손을 씻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니 그저 그곳에서 있으면서 소일이나 하라는 의미였다. 청수각에 들건 안들건 그들은 다시는 중원의 일에 관여를 하면 안되었다. 특히 암흑가나 뒷골목에 관계된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되었다. 만일 그런 인물이 사황성에 발견되면 그 즉시 압송되고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기찰령주라는 것이 암흑가를 감시하며 사황성에 반심이 있는 자를 암중으로 제거하는 일을 맡았다. 암흑가라는 것이 부침이 심하기에 일정지역에 패주가 되면 사황성이 접근하여 그들과 협상하여 상납금을 정하고 그들을 사황성의 맹도로 받아들이는 일을 하는 것이 또한 기찰령주들의 소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황성을 나오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그들은 암중에서 엄청난 재물을 착복하였다.

한수칠흉은 그 재물을 이용하여 중원 곳곳에 땅과 집을 장만하여 두었다.

그 중에는 가끔 쓸만한 녀석들에게 재산을 관리할 기업을 만들어서 맡겨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대둔채였다. 대둔채의 채주는 한수칠흉중에 가장 머리가 좋다는 오흉의 심복인 대둔산왕 유강한이 채주였다.

지금의 대둔채는 삼십년전에 생긴 조직으로 그전에는 사실 미미하였다.

그러던 대둔채가 어느날부터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대둔채는 녹림의 집단이라 사황성의 통제를 받지 않는 세력이었다. 특히 그 위치가 참으로 교묘한 지역이라 사황성으로서도 관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수칠흉은 바로 이 고장 출신이었고 연고가 많았으며 대둔산의 지형에 빠삭하였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 한수오흉이 발견하였을 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흉은 때때로 암흑가의 세력 다툼에 패해 숨어다니는 흑도무리를 대둔채에 보내어 숨겨 주었고 그들로 인하여서도 대둔채주는 딴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한수칠흉이 보내준 무리들로 인하여 대둔채는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장강은 무한에서 한수와 갈라지는데 한수는 그 길이가 사천리에 이르는 대하였고 장강의 거룻배가 들어가는 물길만 이천리가 되었다.

이 물길이 무한에서 천삼백리 지점에서 다시 갈라지고 있으니 하남에서 내려오는 소담강이었다. 소담강은 길이가 오백리에 이르는 강이었고 거룻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이가 백육십리나 되었다.

이 소담강 물길이 열린 것은 바로 천하문에 의해서 였으니 그 물길의 끝에 영파진이라는 곳은 그 물길로 인하여 번성을 하고 있었다.

이 영파진이 하남성 복강현이라면 그 마주보는 곳은 호북성 운성현이었다. 이 운성현은 화산의 속가인 백가장이 패주였다. 무림맹에 가입한 문파는 아니지만 백가장의 위세는 어느세가 못지 않았다. 그 운성현에서 서남방향으로 내려가면 산이 하나 있으니 바로 대둔산이었다. 이 대둔산을 넘으면 창성현이니 이곳은 무당의 속가인 대륭장이 그곳의 패주였다. 무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호북성에서 화산의 속가인 백가장이 운성현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은 이례적이었지만 백가장이 화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원나라 시절이었으니 무당도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 위치한 대둔채는 양세력의 교묘한 균형속에 대둔산의 패자로서 운성현과 창성현의 교통으로 일어나는 통행세를 징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채이지만 그렇게 심한 약탈이 없었고 백가장과 대륭장과도 관계가 원만하였다.

그들이 심한 약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 대둔산 길은 수많은 표국에서 통행을 하였고 그들이 통행세를 냈기에 가능하였다.

대둔채가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천혜의 산세에도 큰 이유가 있었다. 대둔산은 곳곳에 깊은 골짜기가 많아 토벌이 곤란하였다. 몇번이나 토벌하러 간 군대나 무인들은 매복에 걸려 오히려 몰살되거나 겨우 몇 명만 살아나왔다. 그러니 토벌도 곤란하기에 마지못해 통행세를 내고 있었다.

“저기가 대둔채인가? 자네가 가꾸어둔 산채라고 하여 상당히 기대가 크네. 다섯째.”

무창의 사황성 총단을 떠나온 한수칠흉(漢水七凶)은 대둔산(臺屯山)을 오르고 있었다. 한수칠흉은 사황성에서 얼마전까지 외당에서 기찰령주를 지내던 사황성의 중진이었다.

하나 영소혜의 등장은 그들의 인생에 한줄기 암흑을 드리우고 이제는 그간의 모든 것을 잃고 궁벽한 대둔산으로 도망치듯 사황성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들은 청수각에 머물기는 싫었고 그리하여 미련없이 사황성을 떠나왔다. 사황성의 세력은 실질적으로 강남에만 미치기에 그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곳 대둔채에서 기회를 보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많은 재산이 있지만 그 재산은 사황성의 영향이 미치는 강남이기에 결국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이곳까지 사황성이 영향을 미치려면 양쪽으로 무당과 화산의 영역을 통과해야 했고 혹시 물길로 오더라도 물길은 천하문의 영역이기에 안전하였다.

그들은 최근 이년 동안 많은 부하들을 대둔채로 피신시켰기에 지금 그들은 최종적으로 그곳의 왕이 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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