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23)
지성룡은 자신에게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초식을 혼동하는 것으로 파악하기에 오히려 불안하였다.
그가 하는 오후의 연무는 예전에는 검초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시전하는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검무가 되어 버렸다. 그저 내키는 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저 초식도 없고 일정한 법칙도 없었다. 그저 마음 한쪽에 생각하는 조화(調和)였다. 초식의 벽을 허물고 조화(調和)라고 생각하면서 내키는 대로 검무를 추는 것이었다. 그때만은 운기법도 잊어버리고 그저 내키는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움직이다보면 자연스럽게 검에 맞추어 저절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 솟아오르는 기운은 또한 자기가 생각하는 정도였다. 강하게 하고 싶으면 좀더 강해지고 약하게 하고 싶으면 약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왜 뻔히 알고 있는 검초도 순식간에 잊어먹고 잘 시전하지 못하는 것인가? 점점 나의 검공이 퇴보하는 것 같으니 정말 불안하기 짝이없구나. 더구나 네 가지의 신공을 결합할 신공의 창안은 요원하기만 하고….’
지성룡은 사위가 다소 어두어지자 검무를 멈추고 마무리 체조를 하였다. 그가 하는 마무리 체조도 가끔은 조금만 딴 생각을 하면 틀리기 일쑤였다. 마무리 체조도 한 순간에 검무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무리 체조를 하면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한순간 정확한 동작을 하였다.
지성룡은 검을 거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씻을 곳으로 갔다. 요즘에 연무를 마치고 나면 다른 때보다 훨씬 땀 냄새가 지독하였다. 그래서 뭔가 몸에 이상이 있나 하였지만 몸은 오히려 한바탕 검무를 추고 나면 개운하였기에 그저 깨끗이 씻어 주었다.
이런 저런 모든 것이 그에게는 마땅치 않았다. 오늘도 자신이 뭔가 잘못하여 대련도 제대로 못하였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네 개의 신공이 따로 놀기에 항상 불안하였기에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성룡이의 검은 어떠했습니까?”
지장룡은 아직도 자신이 왜 그렇게 쉽게 지쳤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고 지성룡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 몰라 지연룡에게 물었다.
“글쎄다.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이 안되어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초식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예, 초식의 한계라니요?”
지장룡은 다소 생소하여 되물었다.
“초식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고 법칙이 잇다. 그러나 그 일정한 흐름과 법칙이 있기에 그 변화를 안다면 막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데 오늘 성룡이는 시작은 이 초식으로 하고 중간에 변화하여 다른 초식으로 변하고 말았다. 즉 연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연환의 묘를 터득한 것이다. 그 연환의 묘라는 것은 검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연환이야 우리도 가능하지만 대전 중에 상황에 따라서 연환을 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 연환이라는 것은 필수 적으로 상대의 약점을 보는 눈, 아니 약점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능력이 형성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단계 성숙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지연룡의 설명에 지장룡은 지성룡에게 일어난 변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성룡이는 우리에게 좋은 대련 상대이다. 그와 대련을 할수록 느끼는 것이 많다. 그는 다양한 초식을 사용하기에 우리 천하문이 가지는 한계를 벗어나 적응할 능력을 주었다. 사실 우리 천하문의 무공은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대련을 하여도 그저 단순한 반복 외에는 효과가 별로 없다. 하지만 성룡이는 수많은 초식을 구사하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도 우리에게 걸 맞는 내공으로 조절하여 싸우기에 우리에겐 최고의 대련 상대이다. 그도 우리와 대련을 통하여 한단계 진보를 하였고 그것은 바로 연환을 얻은 것이다. 나도 그에 못지는 않지만 최근 연환을 조금은 터득한 것 같다.”
지연룡의 말에 지장룡의 눈은 동그래졌다.
“아마 다음 비무에는 좀더 오래 버티도록 노력해 보아라. 아마 성룡이는 너에 맞추어 내력을 이번보다 좀더 낮추어서 올 것이다.”
지장룡은 그 말에 마음속으로 연환을 되뇌이고 있었다.
하나 지연룡이 연환이라고 파악한 것은 조금 오류가 있었다. 연환이란 동일한 운기법하에 있는 무공을 사용하는 것으로 심법이 다른 무공마저 시전하거나 조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지성룡이 사용하는 것은 연환보다 더 넓은 무초식의 무공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저 지연룡이 이렇게 파악한 것은 지성룡이 근본을 두는 심법이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오는 오류였다. 지성룡이 펼치는 무공이 동일한 심법하에서 펼치는 무공이라는 전제하에서 연환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런한 해석은 오원주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도 지성룡이 사용하는 검초가 동일한 심법하에서 시전되는 것이라고 파악하였기에 연환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 성룡이가 보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지원주?”
종유명은 지일광에게 물었다. 그로서는 지성룡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있지만 상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대등한 공력을 사용하며 대련을 하다보니 연환의 묘를 깨우친 것 같소이다. 하지만 아직 그 아이는 경험이 적어 연환의 묘를 깨우치고도 오히려 당황하는 것 같습니다. 그 아이에게 연환의 묘라고 일깨워 주는 것보다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 그저 돌려 보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아이의 무공 내력이 워낙 복잡하기에 단시간에 그런 경지에 이른 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안됩니다. 그만큼 초식의 운용에 정묘하지 않다면 그런 효과는 얻지 못할 것이 아니오?”
종유명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성룡이 알고 있는 초식은 수십가지, 아니 수백가지였다. 그 하나하나에 정통하지 않는다면 연환의 묘를 얻을 수는 없었다.
“아마 성룡이는 지난 두달간 청운각에 있는 아이들과 비슷한 내공을 사용하여 대련을 하였소. 내공이 높으면 초식의 전개가 훨씬 용이하기에 그 정묘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제한된 내공을 쓰다보니 초식의 정묘함이 증진되어 이해가 한층 높아지게 되었고 대련을 통하여 실전감각이 증진되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게 밖에는 생각이 안되는구려.”
“그 것은 생각치 못했소이다. 그럴 수도 있겠구려. 어찌 되었건 이제 아이들은 연환을 터득한 성룡이를 상대로 또 한번 배울 것이 생겼네. 연환의 묘를 터득하고 연환의 묘를 방비할 능력을 가진 고수로 탈바꿈한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종유명은 자신들의 후예가 중원 무림을 주름잡는 고수가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여 스스로 감탄하고 말았다.
“우리도 듣기만 하였지 연환의 묘를 가르칠 능력이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그 아이가 오일에 한번씩 대련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오원주들은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들도 깨우치지 못한 연환의 묘를 후예들이 깨우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제 등봉조극의 경지의 초입에 있었지만 그것은 내공의 상승으로 얻은 결과였지 깨우침에 의해 형성된 경지가 아니었다. 검기나 검강이 검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라면 연환도 마찬가지 또 다른 검의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연환은 검을 조금 배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감각적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과 끊임없는 대련과 실전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연환에 관하여는 일정한 경지를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검을 잡은 사람이라면 연환에 능한 고수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성룡은 천수권이 숙달되자 검공에 발생하였던 문제가 다시 발생하자 미칠 지경이었다. 천수권에서 천수장공, 천수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무공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육합권과 태극권도 완전히 익숙해지자 갑자기 어느날 초식의 전개에 혼동이 오기 시작하였다.
이미 검공에서 한번 겪은 문제이기에 이런 문제에 익숙하였지만 이번에 받은 심리적인 충격은 처음에 겪은 것에 못지 않았다. 그것은 영락없이 익숙해질만하면 나타난다는 상습적인 현상이라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익히면 대성할 것 같은데 꼭 중간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기에 이번에 받은 충격은 더하였다. 며칠을 헤매다가 포기하고 오전마저도 초식을 버리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항상 초식을 익히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권무(拳舞)가 되어 버렸다. 그러하기에 권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그가 익히는 무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저 춤을 추듯이 무공을 익히는 구나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가 지성룡은 권무를 추다가 일어나는 운기의 혼란을 인식하자 화들짝 놀랐다. 검법이야 네가지 신공의 운기법을 가진 초식이 있기에 순간순간 이상한 운기가 되어도 이해가 되었지만 권법은 오직 천수장왕이 창안한 내공심법을 운기하여 연공하였는데 권무가 되는 순간 이상한 진기의 흐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오후에 검무를 출 때 일어나는 현상과 동일하였다.
그리하여 그것마저도 오직 조화라는 말만을 생각하며 그대로 두어 버렸다. 검무에서 문제가 없다면 권무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이 것 정말 미치겠구나.’
지성룡은 며칠 전부터 네 줄기 기운이 엉켜 운기조식을 할 수가 없었다. 평상시에는 말짱하다가 운기조식만 하면 기운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천하제일심공도 천수공도 승천심법도 창령검공(그렇게 지성룡이 명명하였다)도 운기가 되지 않았다. 아에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어느 정도 운기가 되다가 갑자기 진기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예 제마음대로 통제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저 어디로 가나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으면 제 맘대로 내키는 대로 수십 갈래로 갈라져 온몸을 헤집고 다녔다. 그저 네가지의 다른 기운에 따라 그들끼리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운기조식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부좌를 틀고 어떤 심공이건 사용하여 기운만 일으키고는 그저 앉아 있기만 하면 제 맘대로 기운이 돌아 운기조식을 하는 효과를 내었다. 다행이라면 멈추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렇게 돌아다니던 기운들이 한 순간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운기조식을 안 할 수는 없어 매일 그렇게 한시진간 앉아 있었다.
며칠간 그렇게 하자 이제는 네 가지 심공을 운기하는 방법도 가물가물하여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성룡이 머리 속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그가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권법이건 검법이건 내공심법이건 간에 몸이 제 맘대로 움직여 버린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연무를 하면 몸에 익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딴 생각을 하여도 틀림이 없이 시전하는데 자신은 그 반대가 되자 혼란이 더욱 심하게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새로운 조화신공(調和神功)을 창안하려고 명상에 잠기면 심상에 네 가지 신공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심상마저도 점점 흐릿하여 지고 불쑥불쑥 흐릿해지는 가운데 네 마리의 용이 요상하게 엉켜서 날뛰고 그러면 온몸에 기가 제멋대로 흐르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네 가지 내공심법을 운기하지 못하게 되자 그 현상은 더욱 심하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가만히 있거나 움직이거나 간에 불쑥불쑥 온몸의 기운이 제 맘대로 날뛰면서 도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었다.
‘이거 다른 사람들은 익힐수록 잘한다고 하는데 나는 점점 머리는 기억하지만 몸은 까먹어 가니 내가 점점 이상해 지는 것 아닌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익힐수록 잊어먹는 경우는 듣지 못하여 더더욱 당황하고 있었다.
“대련을 하자고 하고서 왜 준비를 안하느냐?”
지연룡은 지성룡이 대련을 하자고 하였지만 검을 들지 않자 기다리다가 물었다.
“저는 적수공권으로 대련을 할 생각입니다.”
한번도 지성룡과는 적수공권으로 대결해보지 않았기에 미처 그 생각을 못한 지연룡은 그제서야 검을 들고 부딪쳐 왔다.
지난 한달 동안 스무명의 기재와 지성룡은 일종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대련 시간이었다. 스무명이 대련하는 시간에 대한 문제였다. 처음 한나절이던 것이 차츰 조금씩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지성룡의 검법에 익숙해지는 것에 발맞추어 지성룡의 변화도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초식 운용에 대한 것이 상당히 세밀해 지고 수비에 대한 능력이 엄청나게 증진 되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원로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대련이 끝나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연무를 하였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연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노력을 하였지만 점점 시간이 줄어들자 그 동안 익힌 것도 시험할 겸하여 적수공권으로 나선 것이다.
지연룡은 항상 검을 든 상대와 대련을 하였기에 상당히 어색하였다. 더구나 검이 없는 대신 거리가 좁혀지기만 하면 예측불허의 방향에서 손과 발이 튀어 나오기에 검을 가진 상대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성룡으로서도 검이 없이 손으로 싸우는 것은 상당히 불안하였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자 검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싸울 수가 있었다.
지성룡이 불안한 마음에서 처음 비무를 시작하였다면 지연룡은 그런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마음은 반대가 되어갔다. 검이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던 지성룡은 익숙하여지자 오히려 평안해졌고 검법과 다른 변화무쌍한 초식에 공격당한 지연룡은 상당히 신중해졌다.
더구나 변화가 훨씬 더 많기에 검을 상대하는 것보다 검을 몇배 민활하게 움직여야 했기에 오히려 더 힘이 들었다.
이런 검(劍)대 권(拳)의 대결은 모두 처음이기에 두사람 모두 신중하게 대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자 그 격렬한 어우러짐은 검대검 못지 않게 변하였다.
평상시처럼 한시진여를 싸우고난 지연룡이 결국 지쳐서 물러나고 말았다. 검이 있건 없건 고수들 간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번 대전을 통하여 절감하였다.
지성룡은 비무상대를 바꾸어가며 대련을 하였다. 은연중에 대련 순서가 정해져 있었기에 한사람이 지쳐서 물러나면 자동으로 다음 사람이 출전하였기에 대련은 그침이 없이 이어졌다.
최근에 들어 지성룡은 기운을 죽이면서 비무에 임하고 있었다. 자신이 초식이나 무공을 몸으로 잊어먹고 있는 동안에 오히려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은 더 많아 지고 있었다. 그가 기운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십여초 안에 이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련 중 그런 생각이 들자 황당한 생각이라고 얼른 뇌리에서 지우고 대련에 열중하였다.
어찌 보면 대련 시간은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지성룡이 적수 공권으로 싸우자 오히려 대련 시간이 줄어 들었다. 그것은 지성룡이 앞 사람과의 대련을 통하여 점점 적수공권으로 싸우는 것에 익숙해진 반면 그들은 처음 이기에 허둥대다가 먼저 지쳐버린 것이다.
“이거 대책을 세워야지 안되겠어.”
지장룡이 지연룡에게 말을 건네었다.
“왜?”
“검을 들었는데도 일각 가까이 버티었는데 검도 없는 적수공권에 반각정도를 버티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니오?”
지장룡은 지성룡이 검도 없이 오히려 더 쉽게 물러서게 하자 이상한 듯하였다.
“아마 적수공권으로 싸우는 것에 그는 좀더 빨리 익숙하여 졌기에 그런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정히 그러면 다른 사람이 대련하는 것을 좀더 보고 끝나면 다시 한번 대련해 보아라.”
지장룡은 우선 기운을 추스리기 위해 운기조식을 한 후에 모든 사람의 대련이 끝나자 다시한 번 대련을 신청하였다. 그가 대련을 다시 신청한 것은 처음이라 지성룡도 임하였다. 다른 사람의 대련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해둔 바도 있었고 아까의 경험도 있기에 훨씬 나은 편이었다. 지장룡이 다시 한번 대련을 갖자 아까의 아쉬움도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운기조식을 하고 기운을 추스려서 재대련을 하였다. 결국 지성룡은 하루종일 적수공권으로 그들과 대련하고 말았다. 그들도 적수공권으로 그들이 검공을 최대한 발휘하는 가운데 상대해줄 사람이 천하문에 없기에 그들로서도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대련을 한것이다.
지성룡은 그렇게 하루종일을 대련하자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상대들은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대응방법을 연구하여 나오지만 지성룡은 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힘이 남았지만 오후 말미에는 최대한의 공력을 끌어 올려야 했다. 그들은 지성룡에 대한 배려가 없었고 못한다고 할 수도 없어 참고 상대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런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모두가 감탄은 하였지만 지성룡이 죽지 못해 대련한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모두는 적수공권에 대응하는 법을 배우려는 마음이 앞섰기에 지성룡을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안수전의 거처로 돌아온 지성룡은 온몸에 난 긁힌 상처와 뼈마디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통증에 몸을 씻자마자 가부좌를 틀고 운기에 들어갔다.
저녁 먹을 기운도 없기에 일단 운기조식을 하여 몸을 추스리기 위해서 였다.
그저 운기조식을 하여야 겠다는 마음을 먹기만 하면 기운이 일어나기에 일정한 방향으로 돌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솟아나는 기운을 그대로 두면 스스로 도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 줄기의 커다란 다른 기운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다. 가만히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조하다보면 네 가지의 다른 기운들은 혈도와 경락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작도 끝도 없이 운기가 이루어 졌다.
그가 알고 있는 네 가지의 무공들도 일정한 혈도를 따라서 돌기에 시작과 끝이 명확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운기법은 혈도와 경락에 있는 기운이 물 흐르듯이 연속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흐름은 한군데로 모이기도하고 다시 갈라지기도 하여 그 흐름을 기술하려고 하여도 기술할 수가 없었다. 미세한 세맥(細脈)과 세혈(細穴)로 흐르는 흐름까지 기술할 수가 없었다. 최초로 제멋대로 돌 때는 그래도 일정한 혈도와 경락을 따라 도는 듯 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름은 모든 혈과 경락을 역류라고도 할 수 있는 흐름까지 만들면서 도는 것이었다.
지성룡은 다른 때 같으면 반시진만에 마칠 운기조식을 무려 한시진 이상 하였다. 반시진이 지나자 그의 기의 흐름이 예전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몸에 쌓인 노폐물들이 제거되자 그의 몸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기에 예전의 기의 흐름이 된 것이다.
‘오늘은 상당히 다르구나.’
반시진이 지나자 정상으로 돌아가던 기운이 다시 예전에 없던 흐름으로 변하였다. 근본적으로 그의 몸에 흐르는 기운은 네 가지의 기운이었고 서로 다른 기운끼리는 섞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섞이지는 않지만 꼬인다는 기분이 들었다. 서로 다른 기운들이 만나서 같이 흘러가고 다시 갈라지고 하였다. 예전에는 그저 같은 길을 사용한다는 느낌이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가끔씩 서로 만나서 상조하며 나아가다 어떤 혈에서 갈라지고 다시 어떤 혈에서 합쳐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흐름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꼬이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한동안 기운이 돌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대로 일어섰다. 새로 안 사실이지만 운기조식을 그치지 않고 일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저 그의 움직임에 따라 기운이 알아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가 신기하였다.
그러나, 네 갈래로 갈라진 기운 때문인지 최대한 발휘하는 힘은 예전에 비하여서는 아직도 모자랐다. 기존에 육성의 힘으로도 검이나 도를 검강을 발휘하여 자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최대한 기운을 집중하여도 검강이 발휘될까 말까한 정도였다. 다행히 검의 운용(運用)이 예전에 비하여 상승되었기에 기존처럼 검을 자를 수는 있었다.
지성룡이 퇴보한 무공을 다시 예전의 위력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화신공(調和神功)을 최대한 빨리 창안해야 했다.
그는 잊어버린 무공초식을 최대한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가 몸으로 익힌 초식이 얽히는 현상도 내공이 예전의 수준으로 발휘되면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신공(新功)을 빨리 창안하여 네 가지의 기운을 하나로 합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길은 요원하기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포기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매일 명상을 하면서 새로운 신공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신공은 머리 속에만 맴돌 뿐 그 구체적인 윤곽은 잡히지 않고 있었다. 어찌 네 가지 신공을 조화시킬 신공이 하루아침에 창안될 수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