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문무공-21화 (21/149)

제  목: [연재] 독문무공(21)

태을자는 군웅회의 소식을 듣자 매화동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장문인 명정도인이 보고를 하는 동안 얼굴이 몇 번이나 변하였다. 그 만큼 보고 내용이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그런 개망신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군웅회의 철부지들이 일을 망친 것이다. 어른들이 만만하게 본다고 그들마저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어 일을 그르친 것이다.

태을자가 지금까지 천하문을 무시하는 것은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강하기에 더 강해지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그들을 얕보다가 당하고 만 것이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변하자 가만히 수양만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기어이 그 어른이 나의 앞을 막는단 말인가?”

태을자는 승천검황이 이 모든 일의 배후자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할 만큼의 능력이 천하문에 없다고 아직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무림맹에 있을 때부터 구파일방이 무림맹을 이끄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다. 결국 그런 생각을 천하문을 통하여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결국 그 어른도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그 어른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둘 중에 하나이군. 일단은 소림에 들러 오로성승의 의견을 듣고 종남의 정해와 무당의 청명을 움직여 대응할 수밖에 없다.’

태을자는 정면대응을 선택하였다. 그로서는 이길 뿐이기 때문이었다.

천하문의 의도는 무림의 주도권을 쥐고 이제 오대문파와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흑도 삼문이다. 그들이 천하문에 동조를 한다면 우리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우리와 천하문이 양패구상하기만을 바랄 것이기에 천하문이 기운다고 생각하면 천하문에 힘을 보탤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태을자로서는 말년에 일이 이렇게 꼬여 자신이 나서야 하는가 한탄을 하였다.

이대로 둔다면 강호의 주도권은 천하문으로 갈 것이고 한번 주도권을 뺏기면 질질 끌려가다 천하문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지성룡은 거처로 들어와서 자신이 한일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의 처사는 심히 그런 대접을 받아도 어쩔 수가 없지만 그들이 당할 충격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사실 지켜보는 사람은 그가 쉽게 이겼다고 하였지만 그도 몇 번이나 상대의 공격에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에 위지강천의 검을 자르라는 말을 무시하고 위지강천을 비무대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비무를 끝낸 것은 검을 잘리거나 놓친 자들이 받는 충격을 보자 마음이 약해 졌기 때문이다.

지일광은 어제 비무가 결정되고 난 후에 완전히 사람이 변하여 지성룡에게 강하게 지시를 내렸다. 지성룡도 지일광이 흥분한 이유에 공감이 가서 처음에는 그런 일을 서슴없이 행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충분히 검을 자를 수 있었음에도 자르지 않은 것이다. 만일 위지강천의 검마저 잘랐다면 결과는 위지강천의 자결로 이어졌을 지도 몰랐다. 그 것을 알기에 지성룡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비무대 밖으로 떨어지게 만든 것이었다.

더구나 비무가 끝나고 마주친 율사청과의 조우는 자신과 버금가는 강자를 보았다는 것을 떠나 무공을 익힐 결의를 새롭게 다지게 하였다.

그저 새로운 독문무공의 창안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적수를 이기겠다는 투지로 변화된 것이다.

특히 만용 같은 적수 공권의 대결에서 그는 상당한 교훈을 얻었다. 자신이 그 동안 검만을 배웠다는 자각이었다. 만일 그들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당했을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지성룡은 이제야 구체적으로 왜 무공을 익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만일 자신이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끔찍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강하기에 그들의 멸시에 대항하여 설욕을 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강하였다면 천하문이 그런 개망신을 당했을 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지성룡의 마음 속에는 차츰 죄책감보다는 질 수 없다는 투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지성룡은 안수전의 자신의 거처에 틀어 박혔다. 그에게 오늘 일은 상당히 충격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는 없었다. 패배자의 모습에서 반면교사(反面敎唆)의 가르침을 얻은 것이다. 자신은 저런 모습이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결의를 한 것이다.

지성룡의 머리 속에는 오늘의 비무가 다시 떠 오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한일이 어떤 일인지 의미보다는 자신이 싸운 내용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런 문제는 집안 어른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을 접고 무공 분석에 자신의 정력을 집중하였다.

“저, 어르신들이 부르십니다.”

밖에서 하인이 말을 전하고 사라졌다.

지성룡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안수전의 정청으로 갔다, 정청에는 승천검황과 오태상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비무를 해보니 어떻더냐?”

지청현은 지성룡이 앉자 소감을 물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상대들이 강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지성룡은 자신의 감정을 일부는 숨기면서 답하였다.

“네가 행한 일은 상당히 심한 일이다. 그들은 그런 일을 당하여도 마땅한 짓을 하였지만 어찌 되었건 비무의 상대에게 그런 일을 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물론 너야 지원주가 시키는 대로 하였겠지만 그런 것은 알아두어라.”

“녜, 알겠사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들자 승천검황이 나섰다.

“오늘 적수공권으로 싸운 것은 만용이었다. 물론 그렇게 싸워 이기는 것이 그들에게 더한 모욕을 줄 것이지만 실전이었다면 위험한 짓이다. 향후에는 그런 만용을 부리지 말아라.”

승천검황의 말에도 지성룡은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그리고, 당분간은 검술이 아니라 권법을 좀 배워보아라. 오늘 사용한 권각법은 상당한 위력이 있어 보이더구나. 그러하니 그 것을 중점적으로 익혀보아라. 또한 무공을 익힘에 동일한 능력이라면 내공보다 외공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하니 외공을 익혀라. 상승의 무공을 익힌 자가 자칫 소홀히 하는 것이 외공이다. 그러나 튼튼한 기초가 없이는 대성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하니 가급적이면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순수한 너의 체력으로 외공을 익혀보아라. 그런 점에서 다소 미흡하더구나.”

승천검황의 지적은 다소 박투술에서 지성룡이 약점을 보이는 것을 보았기에 한 말이었다. 박투술에서 강한 자는 정신력이 강하기에 실전에서는 반드시 필요하였다.

“일단은 순수한 근력의 힘으로만 하는 권각의 대결을 갖도록 하여라.”

승천검황의 지적에 자신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지청현은 지성룡에게 가르침을 주는 승천검황을 보면서 그의 의중이 조금은 궁금하였다.

지청현은 지일광이 공증인 문제를 꺼내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승천검황에게 부탁하였다. 해주면 좋지만 거절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다. 만일 그렇게 부탁을 하여 안되면 공증인이 없이 할 생각도 하였다. 그런데 기꺼이 맡겠다고 한 것이었다.

오늘 일이 완벽한 효과를 거둔 것도 승천검황이 한몫 거들었기에 가능하였다.

결국 비무의 공증인이 된다는 것은 무림의 활동을 한다고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승천검황의 의중을 모르기에 지청현으로서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천하문의 후견인이라고 공표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만일 승천검황이 다른 의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비무를 보니 예전의 생각이 절로 나고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일을 보고받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을 구파일방의 인물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승천검황이 말을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였다.

누구보다도 오태상은 오늘 일로 칠십년간 맺힌 한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팽가의 가주가 슬그머니 꽁지를 빼는 것을 보자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비무대 위에 승천검황이 버티고 있자 비무를 중지시키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통쾌한지도 몰랐다.

“저도 그러하옵니다. 특히 이일을 듣고 화가 났을 태을자 사형의 표정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종수사의 말에 승천검황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좋아 했다.

“예전 무림맹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태을자는 유난히도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를 싫어하였지. 아마 반드시 소림에 갈 거야. 이제는 나에 대한 배려보다는 이제 나를 뛰어 넘으려고 할 것이네.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오로성승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네.”

승천검황의 말에 지청현은 승천검황의 의도를 엿볼수 있었다.

‘이거 정말 큰일을 내려고 작정을 하셨구나.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한 무림맹의 질서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질서의 중심에 있는 태을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 어른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우리 천하문을 선택한 것이란 말인가?’

지청현은 승천검황이 하려는 위험한 도박에 천하문이 참가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어른의 생각은 하루 이틀만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칠십년전에 하고 있던 생각이다. 단지 구파일방과 대립이 번거로워서 묻어두고 은거를 하였는데 우리를 만나면서 마침내 평소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결심을 한 것이다. 결국 이분도 태을자를 의식하였다는 것인가?’

지청현은 그런 생각이 들자 승천검황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우리 천하문은 결국 이분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이제 이분도 그런 결심이 확고해 졌기에 무림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하긴 이 어른이 무림맹에 가보았자 허울 뿐인 명예 외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전설 속의 일황이라고 앞에서야 하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명예뿐이다. 예전에도 강한 무공으로 구파일방이 인정하였지만 무림맹의 총호법이라는 자리외에는 없지 않았는가? 그런 불만이 지금에 와서는 구파일방 중심의 무림맹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청현은 승천검황의 말에 일성이라 칭해지는 오로성승의 거취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오로성승도 상당히 고집이 강한 양반이지. 나와 겨루어서 동수를 이루자 십년이나 폐관에 들어 무림맹에 발걸음도 안 했고, 그 덕에 나는 팔자에도 없는 무림맹의 총호법을 십년이나 하여야 했지. 그 일이 지겨워 무리를 하다가 등격리 사막에서 그 혈전을 치루게 되었지. 그 혈전을 끝으로 무림맹을 떠났고 마음의 빚을 지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예전의 자존심 대결에 휘말리게 되었으니….”

승천검황의 말은 그들이 상상도 못할 무림맹의 비사였다. 승천검황 때문에 오로성승이 십년폐관을 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일로 인하여 무림맹의 총호법으로 승천검황이 십년이나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인 것이다.

승천검황이 등격리 사막의 혈투 끝에 잠적한 이면에는 세인이 생각하지 못할 복잡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중원 무림의 패자가 될 무림맹의 대권을 놓고 구파일방과의 대립이 싫어 떠난 면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홀홀단신이던 승천검황이 무림맹에 돌아왔다면 구파일방과의 대립이 필연적인 것을 알고 떠나 버렸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때 하지 못한 일을 천하문을 통하여 다시 해보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태을자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 될 것이야. 하나 태을자를 꺾는 것은 바로 너 성룡이다.”

승천검황의 말에 오태상은 승천검황이 지성룡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에 오태상은 안도를 하였다. 승천검황이 어떠한 명리를 취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지성룡은 승천검황과 오태상을 보면서 무엇인가 복잡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태상의 태도가 상당히 신중하였고 승천검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시시각각 표정이 미세하게 변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천검황이 태을자를 꺾는 것이 자신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 오태상이 상당히 안도하는 것을 느꼈다.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아직 지성룡은 너무 순수하였다.

그러나,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은 아무리 순수한 그라도 느낄 수가 있었다.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곳곳에 있었다.

바로 청운각에 거하는 천하칠걸이 받은 충격은 실로 대단하였다.

그들은 비무대에 올라가서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성룡의 무위를 보았다. 지성룡이 나가자 질줄 알았던 천하칠걸은 비무에 나가 멋지게 자신들의 존재를 뽐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성룡은 자신들이 생각하던 지성룡이 아니었다. 그들로서는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자신들이 지난 세월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모든 것을 하찮게 만들어 버렸다.

그의 등장은 그들에게는 경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청운각에 모인 열세명의 다른 사람들을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한데 지성룡의 등장은 그들이 가진 자신감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양공리의 말에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비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이지? 그가 이겼으니 기뻐해야 당연한데 그렇지를 못하는 내가 싫다.”

양공리는 술을 많이 마셨는지 주정처럼 말을 늘어 놓았다.

“어른들은 감쪽같이 그 애를 숨겨놓고 있었다. 비무에 우리를 내보낸다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한데 그자리에 우리는 서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물론 비무에 나갔다고 하여도 이긴다고 보장은 못했겠지만 이런 기분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들러리에 익숙한 우리지만 오늘 같이 더럽게 기분 나쁜 경험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양공리의 주정에 모두 같은 기분이었다.

“들리는 말에 승천검황어르신의 무공도 성룡이가 익혔다고 하고 우리가 익히고 있는 신공(新功)이 그가 창안한 것이라고 하더구나. 결국 그 아이가 무엇이기에 그런 행운과 능력이 주어진다는 것이냐? 기껏 죽도록 노력하여 이 자리에 왔는데 그에게만 행운이 있으니 말야.”

양공리의 주정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공리야, 니맘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하겠냐? 성룡이를 우리는 바보라고 놀렸지만 어찌 보면 바보이기에 그런 행운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우리도 바보들이었기에 오년전에 청운각에 왔고 그나마 지금의 정도라도 이룬 것 아니냐? 그가 이루었다면 우리도 이루면 될 것이 아니냐?”

지성룡이 양공리를 다독였다.

“어떻게? 성룡이는 이미 천하제일신공인지 뭔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신공마저도 완성해 간다고 어른들이 수군대는 것을 들었다. 그 애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그 바보 천치가 그렇게 한다는 사실이 미치겠다는 것이다.”

이런 양공리의 주정이 그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더 노력하였고 이제야 어느 정도 인정 받고 있었다. 한데 자신들 보다도 더 소외 받았던 지성룡이 어느날 갑자기 영웅이 되자 이것을 심정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하칠걸이 술을 마시고 있는 그 시각에 청운각 한쪽에서는 또 다른 무리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 일을 자네는 알고 있었는가?”

술이 얼큰하게 취하자 지연룡에게 말을 붙이는 인물이 있었다. 종일명이었다.

“어느 정도 성룡이를 내세울 때 알았네.”

지연룡은 사실대로 답하였다.

“자네도 성룡이의 실력을 알고 있었는가?”

“동생인데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왜?”

“자네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차기 문주가 될 자네보다 더 뛰어난 동생이 있다는 사실에 불안하지 않아? 나는 결명이만 하여도 요즘 상당히 불안하다네. 그 아이가 어느새 나를 위협하고 있단 말일세.”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문주가 되고 못하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네. 그 보다는 바보 같던 성룡이가 정상이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네. 문주가 무공만 강하여 되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성룡이가 강한 것이 나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하네. 성룡이나 강룡이도 강하고 그들이 나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이 강한 힘을 보태준다고 하지 않겠는가?”

“나는 오룡이나 삼검을 그렇게 이기지는 못할 것이네. 잘해야 동수정도이겠지. 허나 오늘 어른들이 성룡이를 내세워 한일은 실로 잔인하기 짝이 없었네. 같은 무인으로서 그런 모욕을 당한다면 어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받은 충격에는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받은 충격도 그에 못 지 않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가? 나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네.”

지연룡은 지성룡으로 인한 충격이 상당한 것은 예상하였지만 이정도로 클 것은 예상치 못했다. 어찌 보면 목표 상실 같은 것이었다.

“자네가 그런 소리를 하다니 자네답지 않군. 성룡이가 할 일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이 있는 것일세. 그러니 너무 낙담하지 말게. 나도 이렇게는 말하지만 상당히 힘이 드네. 동생의 성취에 기뻐해야 하는데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내가 어떤 때는 죽도록 싫네.”

지연룡도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본심이 나오고 말았다.

“맞네. 자네나 나나 이 정도에서 좌절하지 마세. 하나 자네와 나는 좀 처지가 다르네. 자네는 친동생이기에 도움을 받겠지만 나는 그렇지도 못하다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지연룡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자 종일명이 안쓰러워 졌다.

그가 잘 부탁한다는 의미는 종일명이 가내에서 차기 부문주 자리를 도전받고 있는데 그런 일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지성룡은 지연룡의 친동생이고 어찌 보면 든든한 우군이지만 종일명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결명이 최근 급부상하기 때문에 종내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늘만은 수련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시게 허락한 것도 그들의 이런 심정을 알고 있는 청명원원로들의 배려였다.

“오늘의 일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용운은 집으로 돌아와서 지유성을 불러 같이 술을 마셨다.

“소자의 생각에 오늘 일은 다소 심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의도가 우리를 멸시하려는 것이지만 그들은 어른들이 행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한 것인데 그렇게 까지 깔아 뭉개버린 것은 다소 과한 것 같습니다.”

지유성은 할아버지가 오늘의 일을 주관하였다고 알기에 어떤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무림맹의 많은 후기지수들에게 씻지 못할 치욕을 주어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 면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나는 이번 결단을 내리고 밀어부친 아버님의 면모를 보면서 그간 내가 너무나 어른들에게 의존하였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하신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말할 수도 없다.”

“그렇기는 하옵니다. 향후 본문을 멸시하는 것을 이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중원 무림이 안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큰 소득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일로 인하여 사대세가와도 풀 수 없는 원한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강호는 결국 힘이다. 사대세가이건 구파일방이건 간에 결국은 힘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된다. 내가 오대문파와의 비무의 배후를 알아보니 바로 무림맹의 총사인 제갈중명이었다. 그는 이번에 무림맹의 총사가 된 이후에 오대문파를 부추겨 그 일을 꾸몄더구나. 한데 그가 그런 일을 꾸민 의도가 바로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 인 것 같아 참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유성은 잠자코 지용운의 말을 기다렸다.

“그 제갈세가의 배후에는 바로 사대세가를 비롯한 각 세가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지만 역시 구파일방에 눌려 지내온 아픔이 있었고 그렇기에 오대문파와 우리의 대립을 이용하여 그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려한 것이다.

아버님은 그들의 그런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이번에 이일을 하신 것이다. 오대문파보다도 먼저 이일을 부추긴 사대세가와 여러 세가를 먼저 오대문파와 분리한 것이다. 그들은 이일로 무림맹에서 상당히 입지가 약화될 것이다. 결국 그들이 소극적으로 무림맹의 일에 임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은 체면이 없는 인간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님은 이번 일로 오대문파에 앞서 그들을 꺾어 버린 것이다. 이제 무리의 최종 목표인 오대문파만 남아있다. 사대세가야 어차피 그들이 자초한 일이기에 시간이 흐른 후 적당한 체면만 세워주면 못이기는 척 따라올 것이다. 결국 그것도 우리가 힘이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지용운의 말에 지유성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또한 아버님은 그간 너무 방만한 본문의 문제를 짚고 간 것이다. 사실 지가가 본문의 문주를 계속 맡아 왔지만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불만이 있다. 할아버지들이 있기에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는 못하지만 이 문제는 너나 연룡이가 문주가 될 때쯤이면 한번쯤 표출될 것이다. 이런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 또한 힘이다. 그 힘의 우위를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이다. 오늘 일로 인하여 성룡이가 있는 한 나머지 사대가문은 결코 문주자리를 넘보지 않을 것이다. 성룡이가 버티고 있는데 나설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녜, 그런 점은 생각치 못했습니다. 이번 일에 그런 의미까지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한 것이다. 그들의 도전을 접했을 때 암담하였는데 아버님은 그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도 성룡이가 있기에 가능하였지만…”

“알겠사옵니다.”

“너는 성룡이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성룡이로 인하여 연룡이의 입지가 좁아 지지 않도록 하여라. 어찌 되었건 차기 문주는 연룡이가 맡아야 한다.”

“만일 차후 성룡이가 문주를 노리면 어찌해야 합니까?”

지유성은 불현듯 그 생각이 들자 형제간에 대립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성룡이는 순수한 아이다. 그 아이에게 그런 마음을 갖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일 성룡이가 문주를 노리면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성룡이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연룡이의 후견인이어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 천하문에 있어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이일은 군웅회가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와 천하문의 비무에서 그 발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갈 총사의 의도는 이번 일로 더욱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무당의 운산도인, 화산의 명륜도인, 아미의 복호선사, 종남의 진해도장, 청성의 유현도장은 명륜도인의 거처에서 회합을 갖고 있었다.

복호선사는 사실 제갈중명이 중간에서 모계를 꾸미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 화가나 정청에서 뛰쳐 나간 것이다.

“보시다시피 그는 무림맹을 보이지 않게 장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와 천하문의 대립을 부추기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군웅회가 천하문에 비무를 신청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와 천하문의 비무를 성사시키자 이제 결과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뒤로 빠지는 것입니다.”

복호도장은 성격은 괄괄하고 행동은 거칠었지만 상당히 치밀한 인물이었다.

“맞는 말이오. 우리도 그의 의도를 알면서도 모른 척 따라준 것이 아니오. 한데 이런 일이 발생하여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이오. 제갈 총사를 애초에 믿었던 것은 아니지 않소.”

명륜도인이 복호도장의 불만을 다독였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의 협조는 필수적이 아니오. 사대세가가 이번 일로 인하여 사실상 초토화되었고 결국 그들을 상대하는데 나서지 못할 형편이오. 더구나 비무를 해서는 안될 상황이오. 참룡검객인가 하는 녀석은 천하문의 비밀 병기였소. 승천검황의 진전을 이은 것 같소이다. 그런 녀석과 붙어서 이길 자신이 없지 않습니까? 중간에서 무림맹이 움직여서 중재를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오.”

명륜도인의 말은 사실상의 패배를 인정하는 소리였다.

“예전에 이런 말은 무림맹의 금기였지만 이제는 해야할 때인 것 같소이다. 승천검황은 바로 힘으로 무림맹의 총호법을 차지하였고 그때는 한명의 고수라도 필요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들었소. 총호법에 앉은 이후 맹주도 의식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행동을 많이 하였다고 들었소이다.”

이 말은 무림맹의 최고의 금기 사항이었다. 한데 갑자기 명륜도인이 이 말을 꺼내자 모두가 새삼 그 말을 꺼내는 저의를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말은 승천검황의 행보가 예전의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명륜도장의 말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불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구파일방과 승천검황은 암중으로 대립 관계였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림맹의 총호법이었지만 무림맹에서의 실권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기에 등격리 사막에서 혈투가 끝난 이후에 잠적을 한 것입니다. 만일 무림맹에 남았다면 필연적으로 구파일방과 대립할 것이기에 피한 것이오.”

명륜도인의 말은 승천검황이 사라진 연후에 금기시한 내용이었다.

만일 무림맹과 승천검황사이에 알력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돌면 일어날 혼란을 막기위해 아예 이일은 언급을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 말을 꺼내는 저의는 무엇이오?”

복호도장은 명륜도인의 말에 얼른 제동을 걸었다. 잘못하면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민감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일이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수습할 단계를 벗어나 버린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갈중명이 제갈세가를 오대세가로 끌어올리기 위해 무림맹의 대총사를 맡았고 그가 우리와 천하문의 대립을 부추겼지만 이제 상황이 그가 나서야 해결될 상황인 것이오. 그는 아무리 힘이 없지만 무림맹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대총사이고 그가 움직여야 이일이 원만히 해결된다는 것이오.”

명륜도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은 아리송한 말이었다.

“좀더 확실히 말해보시오. 화산에서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모두 펼쳐 보이시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진해도인이 나섰다. 명륜도인이 뭔가 숨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제갈총사를 추천한 것이 우리 화산이오. 그와 우리는 제갈세가를 오대세가의 하나로 만드는 것과 우리 오대문파와 천하문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였소이다. 그 일은 어느 정도 양해가 된 것이 아니오?”

명륜도인의 말에 그들도 알고 있는 말이라 더 설명을 기다렸다.

“한데 지금 상황에서 우리 오대문파의 힘만으로는 천하문을 대적할 수가 없지 않소. 결국 나머지 오파와 사대세가를 모아서 그들과 협상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군웅회 사건으로 사대세가는 궁지에 몰렸고 우리는 진퇴양난의 지경에 처했지만 입지가 커진 것은 대총사라는 것이오. 그는 구파일방도 아니기에 천하문에 접근하여 협상을 할 수도 있고 우리의 체면도 어느 정도 세워줄 수 있는 것이오.”

명륜도인의 말에 아직도 석연치가 않았기에 모두 명륜도인을 보고 있었다.

“사실 사조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이오. 사조님이 움직인다면 이일은 일황 일성 삼도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일황과 사조님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고 일은 더 커지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럴 때 가교의 역할을 할 사람이 제갈총사 뿐이기에 지금까지 말한 것이외다.”

명륜도인의 말에 모두는 조금 이해가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을 때 제갈중명의 입지는 지금과는 천지차이가 되어 버리고 결국 그 때를 위해 제갈중명은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미 우리가 천하문과 일을 추진하면서 일은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이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갈총사는 천하문을 무림맹으로 끌어들이고 우리를 어느 정도 견제하기 위해 이일을 성사시키려한 것 같소이다. 한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천하문이 대립하려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오. 천하문이 협상을 하자고 그에게 매달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적당한 타협점을 제시하여 천하문을 끌어 들이려한 것이오. 그의 이러한 구상은 명실상부한 무림맹을 만들려는 의도인 것이오. 우리도 비무를 추진할 때 일이 이 지경에 이르기 전에 천하문이 협상할 줄 알았지 않소이까?”

명륜도인의 말이 끝나자 각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두 묵묵부답 침통한 표정만을 짓고 잇었다.

‘아, 이일을 어찌한다는 말인가? 사조님은 결국 승천검황과 정면대결을 하려고 하신다. 세상은 사조님이 나서기에는 너무나 바뀌었는데 나서려고 하고 있다. 그렇기에 제갈총사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명륜도인은 이런 속을 펼쳐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혼자 끙끙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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