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문무공-20화 (20/149)

제  목: [연재] 독문무공(20)

8. 주도권이 넘어 갔느냐?

천하문에서 있었던 일이 알려지는 것은 친절한 각파의 간세들 덕분에 천하문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 졌다.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온 중원을 강타하였다. 그 날 공증인으로 나선 승천검황과 그날 대표로 나선 지성룡의 무위는 단연 두 가지의 큰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승천검황의 소식에 관심을 표하였고 나중에는 지성룡이 어리아이를 희롱하듯 군웅회의 오룡 삼검을 물리친 내용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었다.

“승천검황님이 비무의 공증인으로 나선 것은 바로 천하문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표시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물론 그렇게 보아야 하지만 굳이 그런 자리에 나선 것은 무림의 일에 관여하시겠다는 의도가 계신 것이 아닐까 하네.”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오늘 일은 너무나 끔찍하네. 천하의 오룡들이 천하문의 참룡검객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니 믿어지지가 않았네. 만일 오늘 비무를 오대문파에서 보았다면 뜨끔 하였을 것이네.”

“맞는 말이지. 이렇게 됨으로서 오대문파와 천하문의 비무는 점점 재미있게 되고 말았네. 만일 오늘 나온 참룡검객이 나선다면 오대문파도 승부에 장담을 못할 것이네.”

그들이 말하는 참룡검객은 지성룡을 일컫는 말이었다. 누가 지었는지 그 별호가 어느 순간 그의 공식적인 별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한청년의 마음은 상당히 무거웠다. 바로 율사청이었다. 그는 지성룡의 무위에 도망치듯이 천하문을 떠나왔다.

무공에 있어서는 아래로 보았던 천하문이었기에 그일로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무공만은 우위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런 확신이 깨어지고 자신들이 이길 것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천하의 주도권은 무림맹에서 천하문으로 넘어갔다. 더구나 천하문 뒤에 승천검황이 버티고 있는 것은 더더욱 충격이다. 군웅회의 도전은 그 일을 천하에 알리는데 촉진제가 되어 주었다. 승천검황의 무위는 중원에 알려진 오기조원의 경지가 아니었다. 그 보다 한 단계 이상 높아 보였다.’

율사청의 뇌리에는 온갖 상념이 들어차고 있었다. 그 동안의 자신감이 사라졌기에 일시적인 혼란 상태에 빠졌다. 그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향후에 자신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밤 무림맹은 군웅회의 일로 인하여 곳곳에 환한 불이 밝혀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제갈중명은 지금 무림맹의 정청에 모여든 사람들이 하는 질문을 무시하면서 앉아 있었다. 방금전에 들어온 일차의 전서 내용은 충격이었다. 승천검황의 등장과 천하문의 일방적인 승리에 대한 소식이었다.

<비무는 예정대로 사시에 천하문에서 진행. 천하문에서 비무의 공증인으로 승천검황을 내세웠음. 비무의 공증인은 군웅회에서 생각치 못한 듯 함. 승천검황의 등장으로 모든 문파의 간세들이 소식을 전하기에 정신이 없었음. 비무는 연승방식으로 진행됨.

군웅회는 예상대로 오룡 삼검이 나섰으며 천하문은 참룡검객이란 명호를 얻은 지성룡이 나섬.

동검 팽효중은 십여초만에 도가 잘리는 수모를 당하고 패배를 자인함. 은검은 이십여초만에 상의 가슴부위에 별모양의 검흔에 의해 패배를 자인함. 금검도 이십여초에 검이 잘리는 수모를 당함. 광룡은 참룡객의 적수공권에 의해 팔이 제압되어 패배를 자인함, 장룡은 십여초만에 내상을 입어 패배, 도룡은 도를 놓쳐 비무대 밖으로 도가 날아가서 패배, 도룡은 도를 집어들고 뛰쳐나감. 암룡은 암기가 떨어져 패배를 인정함, 검룡은 비무대 밖으로 사십여초만에 밀려나 패배함.

그 자리에는 도룡의 비무가 시작될 쯤에 하북팽가의 가주가 나타났으나 비무가 시작되어 그대로 있다가 비무가 끝나자 바로 떠나갔음. 승천검황이 공증인이라 나서지 않은 듯함.

이날 비무는 삼천여명 이상이 지켜보았고 군웅회는 바로 떠나갔으며 곧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애초의 목적지인 사마세가에는 대부분 가지 않을 듯함.>

실로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 그대로 입니다.”

제갈중명은 전서를 바로 앞에 앉은 사람에게 주었다. 글을 읽은 사람 모두가 말을 잃은 듯 보고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낭독하였다. 뒤에서 읽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은 형형색색이었다.

“이 내용입니다. 승천검황어르신이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바로 어찌 보면 천하문의 후견인을 자청하고 나서신 것입니다. 두번째는 무림맹의 후기지수들이 이일로 인하여 커다란 좌절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엄청날 것이며 무림맹의 사기는 이제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그 이일이 고소한 사람도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오대문파도 좋아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천하문과의 대결이 있기에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모두들 얼굴이 굳어 어이없는 결과에 말을 못하고 있었다. 만일 공증인이라도 없었다면 천하문을 트집잡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승천검황이 공증인이기에 비무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하여 어떤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하지 누구 하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뭘 이렇게 모여 있습니까? 어줍잖은 녀석들이 팔룡이니 뭐니 하여 설치고 다니다가 개망신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 일은 그들의 개망신에 불과한 것이니 모두 신경쓰지 맙시다.”

무림맹에서 평소 바른말을 잘하고 거칠기로 소문난 아미의 복호선사가 못마땅한 듯 큰소리를 치고 나가버렸다. 복호선사의 말 그대로 어찌 보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고 다니는 철부지들이 시비를 걸다가 된통 당한 것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기에는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다.

그가 떠나가자 장내는 웅성거리는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이 진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무를 하다 보면 근소한 차이로 전부 질 수도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진 내용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무인이 자신의 무기가 무 잘라지듯이 잘라지는 경우를 당하였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그런 일을 가능한 사람이 우리 중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절정의 검강이 아니라면 바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절정검강을 신전하여 자르는 경지는 고작 맹주님이나 가능한 경지라는 것이오.”

제갈중명의 설명에 그저 웅성거리고 개망신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하였다. 제갈중명의 설명에야 비무의 결과에 담긴 심각한 의미를 읽은 것이다.

“그들이 우연히 비무를 신청하였지만 천하문은 이것을 철저히 이용하여 무림맹을 농락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갈중명은 하나하나 예를 들었다.

“우선 시기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알게 되는 시점을 비무시간으로 정하였습니다. 우리가 두시진 정도의 시간만 있었다면 비무를 막았을 것인데 사시로 정하여 알지만 막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이런 결과를 몇몇은 예상하였지만 불가항력으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고작 비무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습니다.

두번째 그들의 대전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비무는 일대일 비무인데 그들은 연승방식을 제안하여 참룡검객의 화려한 등장을 준비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군웅회는 이상함을 느끼고 그만두어야 했지만 그들은 젊은 혈기에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응한 것입니다. 이것도 그들이 경험이 없는 것을 철저히 이용하였습니다. 아마 연승제라는 말도 모르고 그대로 하자고 하였을 것입니다.

세번째는 공증인 문제입니다. 사실 공증인은 비무가 성립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즉 공증인에 대하여 군웅회는 비무 당일까지도 공증인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천하문은 공증인을 내세웠습니다. 그들의 치밀한 준비입니다. 더구나 승천검황님을 내세워서 누구도 비무 결과에 하자가 있다고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네번째는 군중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화려한 등장과 군웅회를 공개적으로 멸시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문파간에 실력의 고하를 가늠하는 비무는 비공개로 진행하고 그 결과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물론 군웅회가 이런 관례를 깨고 공개적으로 도발을 하였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천하문이 이를 빌미로 공개적인 망신을 주어 버린 것은 무림 도의상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군웅회의 의도가 비무를 통하여 승리를 하고 천하문을 멸시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젊은 혈기였습니다. 하지만 천하문은 철저하게 앞뒤를 재보고 하였습니다. 결국 결과를 이렇게 예측하고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갈중명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천하문은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서든지 승천검황어르신이 있다는 것을 중원에 알리고 그들의 무위를 내보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군웅회는 재수없이 그들의 그런 의도를 모르고 도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장내는 아까와 다른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의 분노가 군웅회가 당한 망신에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천하문에 철저하게 농락당하였다는 데서 오는 분노였다.

천하문의 계산된 계략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분노는 이제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총사, 하면 천하문이 그렇게 한데는 어떤 의도가 있지 않겠소. 그 의도를 한번 분석해 주시오.”

화산파의 명륜도인은 이들이 분노하는 시점에 그들의 분노를 천하문으로 돌리기 위해 말을 재촉하였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각파의 중진(重進)들로 그들의 여론을 천하문을 비난하고 대항하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였다.

그의 그런 의도를 제갈중명은 읽었지만 자신도 그럴 생각이기에 말을 이었다.

“천하문이 승천검황어르신을 후견인으로 맞이한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명분을 위해서 입니다. 결국 승천검황이 있는 천하문은 이제 명실상부한 무림 문파라는 것입니다. 결국 무림맹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런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할 것이고 천하문을 뒤에 가지고 있는 검황어르신도 이제 무림에서의 권위뿐만 아니라 힘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그분의 권위에 도전은 않겠지만 그분에게 어떠한 힘도 주지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문은 그분에게 세력을 주기 때문에 그분도 그런 선택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분이 있는 천하문은 이제 어느 명문대파에 못지 않는 무림에 대한 권위와 명분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들에게 이런 절대 고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오대문파에서 향후에 할 어떠한 조치도 힘으로 누르겠다는 의도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의 생각에는 언제든지 힘으로 무림맹이나 각 대문파에서 그들을 제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을 그냥 두는 것은 우리들의 아량이고 그들을 제명할 명분이 없어서 그냥 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지금까지 무림맹에 팽배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런 생각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일을 본 여러분들이 향후 천하문을 예전과 같이 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승천검황어르신이 없어도 이번 일로 인하여 천하문의 힘은 충분히 증명이 된 것입니다.”

제갈중명의 지적은 맞는 말이었다. 그들의 생각 이면에는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마음이 이번 일을 부른 것이다. 군웅회가 바로 그런 생각으로 이번 일을 저지른 것이다.

천하문을 얕보는 마음이 없었다면 감히 비무를 청하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림맹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뜯어 고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내년에 있을 비무대회도 이제 더 이상 중도에서 그만둘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만일 오대문파에서 천하문에 어떠한 일을 핑계로 압박을 한다면 비무에서 질 것을 염려하여 하는 도발로 몰아 부칠 것이고 천하문이 정면으로 대응한다면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오대문파의 인물들은 그 말에 얼굴빛이 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제갈중명의 말이 그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힌 것이다. 사실 그들은 천하문과의 비무를 중도에서 천하문의 양보를 얻어내어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들의 압박에 천하문이 양보를 하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런 그들의 생각이 그들만의 상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만일 천하문에 어떤 위협을 가해도 정면으로 반박하면 자신들만 낭패를 당하는 것이다. 세상의 인심이라는 것이 천하문이 약할 때는 조용히 있지만 천하문이 강하면 거꾸로 천하문의 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명륜도인은 제갈중명이 이상한 말을 하자 화가 났지만 사실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금부터는 천하문을 무시하는 어떠한 행동도 천하문은 용납하지 않고 대응해오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제갈중명의 말이 끝나자 오대문파의 인물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제갈중명을 노려만 보았고 이번일로 개망신을 당한 세가의 인물들은 오히려 평온해 졌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갈진명은 영취루로 군웅회 사람들과 같이 왔다.

군웅회의 인물들은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번 일을 추진한 당한권은 아예 어디론가 몰래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크게 좌절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삼천의 군중 앞에서 당한 이런 망신을 감당할 정신적인 힘이 없었다.

제갈진명도 이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이렇게 무참하게 조롱을 당할 줄은 몰랐다. 이번 결과는 어른이 아이에게 버릇을 가르치는 것보다도 더 혹독한 일이었다.

돌아온 군웅회의 인물들은 소리없이 하나 둘 사라졌고 잘 가라는 인사도 없었다. 그들은 이런 망신을 당하고 백주대낮을 활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전에 나간 오룡 삼검은 짐을 챙기자 마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받은 충격은 하루 이틀에 회복할 것이 아니었다.

‘실로 이일을 어떻게 수습한다는 것이냐? 천하문이 우리에게 행한 일은 아무리 우리가 무례하였다고 하여도 정도가 심하였다. 이런 모욕을 받고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나, 우리가 행한 잘못은 이런 모욕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심히 무례한 일이었다. 천하문이 졌다면 우리는 그 것을 훈장인양 자랑하며 천하문을 멸시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제갈진명은 결국 이번 일이 자업자득인 것을 알고 있었다.

천하문에 비무를 신청한 것부터가 천하문에게 엄청난 멸시를 가한 것이었다.

‘이번 일로 폭발된 천하문의 분노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화살은 무림맹이나 오대문파에 미치고 중원 무림은 이일로 인하여 평지풍파가 일 것이다. 일단 이일의 전모를 형님에게 말하여야 한다. 나라도 가서 이일의 전모를 말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제갈진명이 무림맹에 도착한 것은 비무가 있은지 삼일 후였다, 누구 하나 군웅회의 인물들은 무림맹에 보이지 않았다. 군웅회의 인물들 중에 비무에 나간 인물들은 집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비무에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세가에 칩거하였다.

그들은 군서회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고 군웅회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에서 오명이 되어 버렸다.

제갈진명은 무림맹의 총사인 형을 생각하여 어찌되었건 무림맹에 돌아갔다.

그가 무림맹에 들어가자 모든 사람의 멸시가 쏟아졌다. 군웅회의 일이 알려지자 무림맹에 있던 군웅회원들은 무림맹의 총단에서 모두 떠나고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자세히 말해 보아라.”

제갈중명은 제갈진명이 오자 책망하기보다는 진상파악이 우선이라 물었다.

“당한권이 술김에 천하문과 비무를 하지고 하였고 팽덕중이 동조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너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제갈중명은 이런 일에 사리가 밝은 동생이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것에 화가 나서 큰 소리를 쳤다.

“소제는 군웅회의 삼회이옵니다. 그러니 어떤 의견을 말할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천하문에 도전장을 통보하자 천하문에서 한 시진만에 승낙의 글이 도착하였습니다. 소제도 사실 천하문을 얕보는 마음이 있기에 승낙의 글을 자세히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일은 당한권이 하였기에 그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비무에 참석할 사람을 제외하고는 늦게까지 술을 먹었습니다. 한데 아침에야 천하문에서 비무방식을 연승제로 하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는 그때까지 천하문에서 기량이 고르지 않아 승률을 높이려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한데 비무장에 도착하자 그들의 준비를 보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소제도 그때까지 공증인에 대하여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공증인을 내세우자 뭔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승천검황이 공증인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일이 심각해지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천검황 어르신 앞에서 재주를 뽐내 중원에 이름을 떨치겠다는 생각들 뿐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동검 팽효중이 어이없이 지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팽효중의 검이 검강에 의해 잘리자 그때부터는 악몽의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갈중명은 제갈진명이 그런 일을 당하고도 와준 것이 오히려 대견하였다.

“한데 네가 보기에 참룡검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이냐?”

어떤 보고보다도 제갈진명의 말이 궁금하였다.

“소제는 파악이 잘 되지 않습니다만 그가 사용한 무공은 그의 능력의 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시진 가까이 비무를 하였지만 지친 기색이 없었습니다. 검룡은 사실 형님이나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비무에서 위지가문의 팔황검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무공은 기존 천하문의 무공이었고 그 것에 팔황검법이 어이없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소문에 있는 새로운 무공은 선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광룡과 장룡을 대항하여는 적수공권으로 싸웠습니다. 결국 그의 무공은 최소한 등봉조극의 수준에는 이른 것 같았습니다.”

제갈진명의 말에 제갈중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삼화취정의 수준은 아니었느냐?”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의 노수를 파악하는 것은 저로서는 어려울 것입니다.”

“알았다. 일단 너도 본가에 가서 자중하고 있어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갈중명이 맹주전에 든 것은 제갈진명을 만나고 난 후였다.

청명도장도 이런 결과를 들었을 것이지만 아무런 하문이 없었다.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아닐세. 내가 다 덕이 없음이지. 이번 비무에 검황어르신이 나섰다고?”

“녜, 그러하옵니다.”

“검황어르신은 태을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지. 아마 이번 일은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 것이오. 이럴 때일수록 무림맹은 그들과의 분쟁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오. 한데 비무 내용이 너무나 심각하다던데 어느 정도인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한 지경입니다.”

“그 동안 그들에게 행한 업보를 받은 것일세. 한동안 이일로 각문파와 무림맹이 시끄럽게 되었네. 총사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천하문과 적당히 타협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번 일로 사대세가를 위시한 각 세가는 절치부심할 것이고, 오대문파는 비무대회의 승산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다급하게 움직일 텐데….”

“마땅한 대응책이 없습니다. 이제 주도권은 무림맹에서 천하문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들의 의중이 어디에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무림맹을 파괴할 의도가 있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했건 못했건 중원의 평화를 이만큼 이라도 유지하는 것은 무림맹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칠십여년간 당한 것에 비하면 이번 일은 아무것도 아닐세. 당분간은 지켜보고 가능하면 검황어르신을 만나뵈어야 하겠네.”

태을자는 군웅회의 소식을 듣자 매화동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장문인 명정도인이 보고를 하는 동안 얼굴이 몇 번이나 변하였다. 그 만큼 보고 내용이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그런 개망신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군웅회의 철부지들이 일을 망친 것이다. 어른들이 만만하게 본다고 그들마저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어 일을 그르친 것이다.

태을자가 지금까지 천하문을 무시하는 것은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강하기에 더 강해지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그들을 얕보다가 당하고 만 것이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변하자 가만히 수양만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기어이 그 어른이 나의 앞을 막는단 말인가?”

태을자는 승천검황이 이 모든 일의 배후자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할 만큼의 능력이 천하문에 없다고 아직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무림맹에 있을 때부터 구파일방이 무림맹을 이끄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다. 결국 그런 생각을 천하문을 통하여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결국 그 어른도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그 어른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둘 중에 하나이군. 일단은 소림에 들러 오로성승의 의견을 듣고 종남의 정해와 무당의 청명을 움직여 대응할 수밖에 없다.’

태을자는 정면대응을 선택하였다. 그로서는 이길 뿐이기 때문이었다.

천하문의 의도는 무림의 주도권을 쥐고 이제 오대문파와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흑도 삼문이다. 그들이 천하문에 동조를 한다면 우리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우리와 천하문이 양패구상하기만을 바랄 것이기에 천하문이 기운다고 생각하면 천하문에 힘을 보탤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태을자로서는 말년에 일이 이렇게 꼬여 자신이 나서야 하는가 한탄을 하였다.

이대로 둔다면 강호의 주도권은 천하문으로 갈 것이고 한번 주도권을 뺏기면 질질 끌려가다 천하문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지성룡은 거처로 들어와서 자신이 한일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의 처사는 심히 그런 대접을 받아도 어쩔 수가 없지만 그들이 당할 충격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사실 지켜보는 사람은 그가 쉽게 이겼다고 하였지만 그도 몇번이나 상대의 공격에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에 위지강천의 검을 자르라는 말을 무시하고 위지강천을 비무대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비무를 끝낸 것은 검을 잘리거나 놓친 자들이 받는 충격을 보자 마음이 약해 졌기 때문이다.

지일광은 어제 비무가 결정되고 난 후에 완전히 사람이 변하여 지성룡에게 강하게 지시를 내렸다. 지성룡도 지일광이 흥분한 이유에 공감이 가서 그런 일을 서슴없이 행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충분히 검을 자를 수 있슴에도 자르지 않은 것이다. 만일 위지강천의 검마저 잘랐다면 결과는 위지강천의 자결로 이어졌을 지도 몰랐다. 그 것을 알기에 지성룡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비무대 밖으로 떨어지게 만든 것이었다.

더구나 비무가 끝나고 마주친 율사청과의 조우는 자신과 버금가는 강자를 보았다는 것을 떠나 무공을 익힐 결의를 새롭게 다지게 하였다.

그저 새로운 독문무공의 창안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적수를 이기겠다는 투지로 변화된 것이다.

특히 만용 같은 적수 공권의 대결에서 그는 상당한 교훈을 얻었다. 자신이 그동안 검만을 배웠다는 자각이었다. 만일 그들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당했을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지성룡은 이제야 구체적으로 왜 무공을 익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만일 자신이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끔찍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강하기에 그들의 멸시에 대항하여 설욕을 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강하였다면 천하문이 그런 개망신을 당했을 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지성룡의 마음 속에는 차츰 죄책감에서 질수 없다는 투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지성룡은 안수전의 자신의 거처에 틀어 박혔다. 그에게 오늘 일은 상당히 충격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는 없었다. 패배자의 모습에서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얻은 것이다. 자신은 저런 모습이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결의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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