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6)
3. 위기와 기회(3)
“이리 와 보아라.”
지성룡은 아버지가 부르자 얼른 달려갔다.
“지금까지 네가 시전한 것이 무엇이냐? 자세하게 말해보아라.”
지성룡에게 지유성이 물었다. 지유성이 묻자 모두는 궁금함을 참고 지성룡의 말을 기다렸다. 이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잘못하면 지성룡을 격동시킬 수 있고, 혼란을 줄 수 있기에 조용히 있었던 것이다.
“그저 청명관에서 배운 것을 익혀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운검법이나 다른 검법은 줄였느냐?”
그들로서는 그것이 제일 궁금하였다.
“소자는 청명관에서 열한가지 무공과 열한가지 검법의 구결을 전수받았습니다. 물론 뜻풀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만 삼년에 걸쳐서 외우게 되었습니다. 다 외우자 이년전부터 천자문이나 태극권을 배웠고요. 또한 증조할아버님이 유운심공을 익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다른 모든 것을 연습해 왔습니다. 물론 할아버님들이 제가 검을 만지지 못하게 하였기에 밤에 몰래 익혔습니다. 낮에는 할아버지들이 항상 옆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기에 밤에만 했습니다.
한데 저는 천하제일신공(天下第一神功)이 맘에 들어 이것을 익히고 싶었는데 익히려고 하면 너무나 힘이들고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였기에 열가지 밖에는 흉내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열가지를 다 해보고 나서 천하제일 신공을 시전하자 그렇게 안되던 것이 조금씩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열가지를 하고 천하제일신공은 맨 나중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열가지를 다 시전하다보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천하제일신공을 익힐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줄일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쓰는 것을 하지않고 두번째 것부터 하였는데 그렇게 하면 두번째 것도 시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하는 것중에서 조금씩 빼도 되는 것을 빼고 두번째 것을 시전하였습니다.
그렇게 이년동안 줄인 것이 아까 시전한 것입니다.”
그말에 모두는 그렇게 축약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혼자서 그렇게 한 것이 대단히 신기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날 때부터 정상인과 다른 지성룡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더 놀람이 컸다.
“하면 앞의 것을 하지 않고 뒤의 것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냐?”
지유성의 물음은 다른 사람들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녜,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앞의 동작중에서 세번째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세번째로 넣고 있습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다듬으면 첫번째 것은 생략하고 두번째부터 시전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지성룡의 두 동생들 뿐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그 말에 흥분하여 희색이 만연하였다. 그들도 독문무공에 대한 열망은 개파조사 못지 않았다. 단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묻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성룡이 완성은 하지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지성룡이 말하는 가운데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 사용하는 무공을 연무한 연후에 이번에 새로 창안한 것을 연무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두번째의 무공에 뭔가 부족한 것을 기존무공이 채워주고 있으며 이번에 창안한 무공을 시전하고 처음에 창안한 무공을 익히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사용하는 무공이나 두번째에 창안한 것이 부족한 것을 채워준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들이 본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아까 시전한 무공에 어느 정도의 내공만 받쳐준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가진 무공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무공이 창안되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완성이 안되었기에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였다. 더구나 지금 같은 시점이기에 그 것의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였다.
지성룡의 일로 인하여 그 자리에 있던 어른들은 어디론가 몰려 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유성의 사랑방에는 이십여명의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지성룡의 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지용운은 지유성에게 물었다.
“제 생각에는 그 아이이기에 가능했던 일 같습니다. 그러나, 한가닥 독문무공에 대한 가능성은 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아이가 어떻게 하였는지는 어르신들과 같이 검토를 하여야 하겠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어보인다. 한데 그 아이를 이번 비무에 참여시킬 것이냐?”
지용운은 그것이 궁금하여 물었다.
“아직은 참여시키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참여시킨다면 방해만 될 것입니다. 그저 조용히 연무를 하여 하루빨리 연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일단은 저나 연룡이가 같이 그 아이를 돕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알았다. 일단 나는 청명헌에 들러 아버님과 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전해드려야 하겠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아마 그 어른들이 들으신다면 정말 기뻐할 것입니다. 당분간은 아랫사람들에게 이사실에 대하여 함구토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그들은 모두 모인 김에 한마디씩 하였다. 그들로서는 지금의 위기속에 한가닥의 희망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지성룡은 형인 지연룡의 거처에 같이 갔다. 지성룡이 돌아왔지만 변변한 환영도 못하였기에 이번 기회에 자리를 같이한 것이다. 다른 세 형제도 같이 따라왔다. 그들로서는 지성룡이 오년전에는 말도 잘 못하는 지진아였는데 오늘 보니 말도 아주 또박또박 잘하는 것을 보고 다시 놀랐다. 그 동안 지성룡을 생각할 때마다 하던 걱정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형, 정말 형이 그렇게 변한줄도 몰랐어. 형, 정말 멋있었어. 형도 아까 작은 할아버지와 숙부들이 놀라는 얼굴을 보았어야 했는데.”
지광룡은 역시 열여덟이지만 어리기에 감탄의 말을 서슴없이 건네었다.
“형이 이렇게 말을 잘할 줄은 몰랐어. 형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이야?”
지광룡은 궁금한 것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한 이년전부터였다.”
다른 형제도 지성룡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런 질문을 대놓고 할 수 없어 궁금하지만 참고 있었기에 그들의 대화에 귀를 귀울였다.
‘저애가 이년동안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참았단 말인가?’
지연룡은 그말에 다시 한번 동생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동생에게 너무나도 무심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은 지성룡을 만나지 못하였지만 자신만은 지성룡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동생에게 말을 한번 해본적이 없었다. 아예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제대로 말을 건네보지도 않고 멀리서 보고 지나쳤던 것이다.
그저 볼 때마다 동생이 안되었고 한편으로 부끄럽기까지 하였다. 그렇기에 남들앞에서 동생의 치부를 보이기 싫어 모른척한 것이다.
“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어? 그 이유에 대하여 알아?”
“나도 잘 모르겠다. 유운심법을 운기한 후에 나도 모르게 점점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하였어. 아마 유운심법이 그동안 몸에 있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것 같아. 일정부분 구결을 외우기 위해 소리를 친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지성룡의 말에 그들은 일정부분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들도 내공을 수련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조금은 느꼈기 때문이다.
지성룡은 지광룡이 말을 건네자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하려는 듯이 유창하게 말을 하였다.
“정말 형이 아닌 것 같아.”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지연룡과 지장룡은 상당히 착잡하였다. 어느 사이엔가 바보로 알던 동생이 한순간 오히려 자신들을 저만치 앞서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다른 두 동생들처럼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특히 지연룡은 가문의 수장이 되고 천하문의 문주가 되어야 하는 입장이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뛰어난 동생의 등장은 그만큼 그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더구나 최근에 청명관에 갔다온 일곱명의 동생들이 천하사관에 입관하여 그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기에 불안하였다. 더구나 그들 일곱은 어리지만 의형제마저 맺어 같이 행동하기에 내심으로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아직은 미약하지만 만일 천하 오관마저 통과한다면 그들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였기 때문이다.
천하문은 친형제가 아닐지라도 서로 의형제를 맺어 친형제처럼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일곱이나 의형제를 맺고 천하사관이나 천하오관을 통과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이 시간이 흘러 그가 문주가 될 시점이 되면 그들은 만만치 않을 세력이 될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지장룡도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는 형인 지연룡을 제외하고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지성룡이 뛰어난 실력을 보이자 자괴감이 든 것이다.
두살이나 어리고 오년전까지는 바보이던 동생이 십년이상 무공을 익힌 자신의 실력을 능가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순간도 오늘 지성룡이 받은 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둘의 마음을 모르는 동생들은 지성룡에게 감탄을 하고 있었다.
동생이 정상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들 두 형제의 처지였다.
그것은 그들이 그만큼 단순하게 좋아하기에는 너무나도 커버렸고 성숙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네분을 오라고 한 것은 오늘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갑작스러운 문주의 호출이라 하여 네명의 부문주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저녁 무렵에 모여야 할 만큼 중요한일이 생겼나 하는 마음에 급히 온 네부문주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십시오.”
지용운은 지유성의 장원에서 수하들을 시켜 네명의 부문주들을 자신의 집무실로 모이라고 전갈을 하였다. 그리고 막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하였다. 이미 네명의 부문주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소문주의 장원에 갔다오는 길이오. 그곳에서 지성룡이를 보고 오는 길이오.”
그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직 지성룡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았기에 모르고 있었다.
오대세가는 개봉을 중심으로 하여 각기 성씨별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성씨들에게는 소식이 가지 않은 것 같았다.
문주가 자신의 손자를 보고 온 것과 자신들이 모여야 할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곳에서 나는 이상한 장면을 보고 말았소. 지성룡이 바로 청명원에서 창안하였다는 무공을 시전하는 것을 보았소.”
그말에 네 부문주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아마 그아이는 혼자서 밤에 익힌 것 같소. 그 아이가 익혔다면 그 어른들이 그대로 두지 않았고 그대로 집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보고 하기에 앞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이렇게 모이시라고 한 것이오.”
부문주들의 얼굴에 이제서야 모이라고 한 이유가 이해되었다.
“물론 어르신들에게 바로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한데 우선 정황과 결과를 자세히 말해보시오?”
“아이가 어제 집으로 돌아왔고 형의 연무장으로 갔던 것 같소. 그곳에 가서 형이 연무하던 것을 보다가 자신도 해보고 싶어 목검을 들고 나서서 목검체조를 하는데 그 경지가 심상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절정의 고수나 할만큼의 몸놀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본문의 오대검법을 시전하는데 변초를 일부 생략하고 짧게 시전하고 이번에 창안한 무공으로 보이는 것을 역시 변초를 일부 생략하여 시전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삼십년전에 창안하였다는 천하제일신공을 한시진에 걸쳐 시전하였습니다.”
“왜 첫번째와 두번째는 변초를 생략하였다고 합니까?”
장내의 인물들은 변초를 생략하였다는 말에 이상하여 물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삼십년전에 창안한 무공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오대검법을 시전한후에 새로 창안한 다섯가지를 익혀야 하고, 천하제일신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다시 이번에 창안한 것들을 시전하여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천하제일 신공을 익히려면 열가지 모두를 시전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에 이각씩만 잡아도 두시진반이나 소요되지 않겠소. 그러니 빼도 상관없는 동작은 뺐다고 합니다.”
그 말에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 눈치었다. 그들의 머리에는 어른들이 창안한 무공을 그런 이유로 겁도 없이 없애거나 변형한 아이의 당돌함이 기가 막혔다.
물론 그속에는 하필 그많은 아이들 중에서 지성룡이 그일을 해내었느냐는 질시가 담겨 있었다.
한편에서 일어나는 지씨 우위에 대한 반발심이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쓰게 만들고 있었다.
오태상이 생존하여 있기에 아직까지 지씨 우위에 대한 불만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런 생각은 사대와 오대에서 돌고 있었다. 삼대만 하여도 그런 생각을 못하지만 사대가 이제 마흔이 넘어가는 마당에 이런 문제가 조금씩 대두되고 있었다. 앞으로 지유성이 오십이 될 때 오태상들이 살아있다면 문주의 지위는 자연스럽게 지유성에게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다면 잡음이 생길 소지가 있었다.
최근에는 부문주들도 이런 생각에 다소 동의하고 있어 보였다.
“물론 그 아이가 행한 일은 생각치도 못한 어이없는 일이오. 하나 그것에 우선하여 이일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독문무공의 창안에 한걸음 다가간 일이니 그 아이의 잘못은 일단 거론치 맙시다. 더구나 그 아이는 청명원에 들어갈 때까지 백치였고 그곳에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오. 배우지 않은 것을 탓해야 한다면 그 아이의 훈육을 담당하신 어른들에게 불경한 처사가 될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배운 아이라면 이런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가능성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용운은 언급되지 않은 문파의 문규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자 얼른 선수를 쳐서 말을 막았다. 중요한 일은 그런 것보다 독문무공의 가능성이 중요하였다.
물론 이일이 거론되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청명원에서 알아서 잠재울 것이지만 이런 문제로 시끄러워 지는 것은 반갑지 않았다.
그렇기에 얼른 부문주들에게 양해를 구하여 문제의 소지를 없애버렸다.
“그럼 대략 이해가 되었으니 청명원으로 갑시다. 한데 이미 늦은 시간인데 어른들이 계시겠소?”
“아닙니다. 이미 내가 유성이를 시켜 어른들께 긴급으로 보고할 일이 있다고 했소이다. 아마 기다리고 계실 것이오. 또한 소문주들도 그곳에 모여 있도록 했소이다.”
지용운은 이미 보고할 조치를 하였기에 천하전(天河展)을 나와서 청명원으로 향하였다.
청명원에는 오태상과 오원주가 지유성이 전한 말을 듣고 지용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차대 부문주로 지목된 사람들도 지유성이 불러 모았기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용운이 문주의 자리에 앉자 모두가 지용운을 주목하였다.
“일단 독문무공의 창안에 대한 가능성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소문주가 말을 해 보아라.”
지용운의 말에 모두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들어야 할 내용이 그런 내용이냐는 듯이 보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유성이 일어나서 하는 말에 소리없이 지유성을 응시하였다.
“일단 지난 오년간 청명원에 있던 지성룡이 어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유성의 말에 새삼스럽게 그 이야기는 왜하냐는 얼굴이었다.
“오늘 그 아이가 연무장에서 검술을 수련하였고 거기서 이상한 장면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목검을 들고 목검체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검체조라는 것이 검의 조예를 가늠하는 척도이다는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 아이의 동작은 결코 연룡이 못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청명원의 사람들의 얼굴에 뿌듯한 자부심이 어렸다. 특히 지일광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바보를 그만큼 만드는 데에는 지일광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증손자이기에 남모르게 더욱 챙겨주었던 것이다.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오대검법을 시전하였습니다. 그것도 간단한 변초는 생략하고 어려운 동작만을 몇 가지 시전한 후에 본초를 시전하는 방식으로 시전하였습니다. 그 후에 다시 이번에 창안한 다섯가지 무공을 시전하였습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일부 간단한 변초를 생략하였습니다. 오대검법을 시전하는 시간은 반시진, 다시 새로 창안하는 검법을 시전하는 시간이 반시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삼십년 전에 창안한 천하제일신공을 한시진여에 걸쳐 시전하였습니다. 한데 이번에는 거꾸로 구결에 없는 변초를 더 하여서 시전하였습니다. 이는 구결을 잘 알고 있는 연룡이가 확인하였으니 사실입니다.”
그 말에 모두는 놀람의 표정이 되었다.
“그 아이가 시전이 끝난 후에 몇 가지를 묻자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오대검법을 시전한 연후에야 이번에 창안한 것을 시전할 수가 있다는 것이고, 이 두 가지를 전부 시전한 연후에야 삼십년 전에 창안한 신공을 시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생략해도 상관없는 변초는 생략하여 시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생략한 변초의 일부는 마지막에 더하여 시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희망적인 사실은 곧 오대검법은 시전하지 않아도 새로 창안한 무공을 바로 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지유성의 말에 그들은 모두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였다.
이 몇 가지 사실은 대단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발견이었고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말은 더욱 그런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은연중에 천하제일 신공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곳의 초식을 없애는 것은 그 것이 천하제일 신공으로 귀일되어 완성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기뻐하여야 할 일이었다.
특히 오태상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고 오원주도 미소가 어렸다. 그간에 그들이 가진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다.
하나 몇은 기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알았다. 이일은 앞으로 청명원에 다시 그 아이를 불러와서 우리가 처리하겠다. 그리고 이일에 대하여는 가능한 한 기밀을 유지하여라. 오늘은 이만 일어나자.”
지청현은 일이 이해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있어보았자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내일 본인을 불러다가 자초지종을 다시 듣고 새로 시작하여야 했다.
이렇게 지성룡은 다시 청명원에서 집으로 돌아온지 이틀만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몇군데서 사람들이 모여 술자리가 벌어지게 되었다.
모처럼 지유성은 식구들과 같이 밤늦은 시간에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였다.
지유성이 집으로 오자 부인인 수월부인 양씨가 식사를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저녁을 먹은 줄 알았는데 방안에 차려진 상을 보고 다른 사람도 저녁을 먹지 않고 기다린 것을 알았다. 모처럼 열네명의 모든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하자 영원부인 소씨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더구나 오늘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지성룡을 보자 더더욱 생각이 간절하였다. 벌써 십년이 지났지만 엊그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 딸들도 모두 이제는 처녀티가 나고 있었다. 더구나 지연룡과 지장룡은 가정을 꾸려 애까지 하나씩 있었다.
지성룡과 지창룡의 혼사도 이제는 서둘러야 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유성은 이렇게 식사를 해본지도 오래 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성룡이가 짐에 돌아왔는데 다시 내일 청명원에 가야 되었으니 안타깝구나.”
지유성은 자리에 앉아서 그 말을 하자 모두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되었건 자연스럽게 성룡이가 이제 정상인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다행이다. 어찌 되었건 오늘은 그동안의 시름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다.”
지유성은 기분이 좋아서 준비된 잔에 술을 다랐고 아들들에게 한잔씩 권하였다.
아들 다섯이 눈앞에 앉아있자 내심으로 뿌듯하였다.
특히 그동안 항상 마음이 쓰이던 지성룡에 대한 염려가 사라지자 마음이 뿌듯하였다.
그런 마음은 그자리에 모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성룡이가 한마디 해보아라. 청명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좀 해보거라.”
지유성은 기분이 좋아서 연신 술을 홀짝 거렸다.
“이렇게 정상으로 돌아와서 보니 옛날의 제모습이 생각납니다.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것도 생각이 조금은 나고 그런 소리를 듣고서도 무슨 말인지 몰라 웃었던 저를 보면서 걱정하였을 아버님이나 형님을 생각하니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저 때문에 바보형 이야기만 나오면 부끄러웠을 동생들에게 죄송합니다.”
지성룡의 말에는 예전의 바보같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다. 다 이 애비의 잘못이지 너의 잘못이겠느냐? 한데 다시 청명원에 가야 하니 서운하기 그지없구나. 어찌 되었건 너는 대단한 일을 하였다.”
그 말에는 지유성의 고민이 숨어 있었다.
윗대와 달리 최근에는 지씨가 천하문주를 계속 세습하는 것에 대하여 반발이 있었다. 이번 일로 다시 한번 지씨의 우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것에는 오늘도 느낀 것이었다. 다른 집안의 소부문주의 얼굴이 다소 경직되는 것을 보고서 확연히 느낀 것이다. 일단 오태상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지씨 우위가 지켜지지만 그 후에는 다른 세가에서 반발하면 결국 지씨가 일방적으로 문주를 잇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일은 천하문의 경사이기도 하였지만 지씨의 경사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자식들이 든든하게 자란 것을 보자 가슴이 뿌듯하여 졌다.
더구나 지성룡의 성취는 결코 두 형들에 못지 않았고 독문무공을 완성한다면 그 것은 증조부인 지청현의 권위를 세울 뿐만이 아니라 증조부인 지청현이 천하문에 남긴 업적에 버금가는 대단한 업적을 남기에 될 것이었다. 지청현이 천하문의 재력을 천하제일로 만들었다면 이제 지성룡은 무림에서 천하문의 위명을 드높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유성은 그동안 심려가 지성룡으로 인하여 사라지자 연신 술을 마셨고 얼굴이 발갛게 변하였다. 지유성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모두들 마음한구석에 있던 그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형제들은 지성룡이 정상인이 된 것을 알자마자 다시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서운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그날의 만찬은 지유성이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