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우리 눈에 보이고.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악치 눈에 보이고.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사악함은 착한 눈에서 숨을 수 없다.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우리 눈에 보이고.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악치 눈에 보이고…….”
“사부…….”
하늘에서는 백미호와 호요, 웅요, 그리고 인간들, 다시 고려의 산신령과 산군이 피를 마구 뿌려대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계효보와 싸우고 있다.
그리고 사부는.
땅에 쓰러져 나를 보며 당당당을 노래하고 있다.
간절한, 너무나도 간절하고 진실한 눈으로 나를 보며 그리 노래를 부르는 사부였다.
사부가 말했지만, 당당당 노래에는 어떤 신비로운 힘 같은 게 담겨 있지 않다.
그저 노래일 뿐이다.
하지만 사부는.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당당을 통해.
생명정을 볼 수 있게.
어린 시절 착한 아이의 마음을 찾아, 악의 근원을 보라 말하는 것이다.
흙이 묻은 채 몸을 일으켜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보였다.
삶과 죽음.
그 경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착했던 내 마음이 어른이 되어 다시 내 가슴에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였다.
아! 처음부터 없었다.
생명정은, 애초에 이곳에 있지 않았다.
그건.
저 멀리 시공간을 넘어, 요계에 있다.
계효보의 본신마저 요계에.
그것이 보였다.
난 눈을 감은 상태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후 다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광천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것을, 허공에 휘둘렀다.
만검존의 만검보더 훨씬 더 느리게.
광천검을 휘두르니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닭대가리 새끼.
이 미친 새끼가 진짜로 나를 자신의 권좌 좌편에 앉히려 했던 모양이다.
요계의 요궁(妖宮).
그곳의 깊은 심처 높디높은 곳에 요왕의 화려한 의자가 있고.
그 좌편과 우편으로 주인이 없는 의자가 각각 있다.
요왕의 화려한 의자.
그곳에 계효보가 있다.
보인다.
그리고 그가 품고 있는 생명정 역시 보인다.
난, 내가 뚫어 만든 시공간의 문을 넘어 그곳으로 갔다.
그러자 권좌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계효보가 눈을 떴다.
경악.
두려움.
그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놈의 눈에 드러났다.
난 놈을 향해 조소를 날린 후.
“끝이다, 닭대가리야.”
광천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곧.
계효보는 요궁의 권좌에 앉은 상태 그대로.
요궁과 함께 영원히 소멸해 갔다.
아니, 빌어먹을 닭대가리 새끼.
지옥으로 떨어지며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것이 놈의 마지막 남은 힘이고, 마지막 발악임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내 머릿속으로 그런 놈의 저주가…….
-수억 년 동안 인간에게 탄압받은 닭의 혼령들이시어! 저 사악한 인간에게 저주를 내려 주소서! 태어나지도 못한 우리들의 알을 삶고 튀기고 볶아 먹는 악마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우리의 부모를 삶고, 우리의 형제를 튀기고, 우리의 가족들을 볶아 먹는 저 사악한 자에게 억겁의 저주를 가하소서! 죽어서도 영원히 죽지 못하는 닭들의 저주를, 꼭 저자에게 내려 벌해 주소서!
처절하면서도 간곡하고 또 비참한 그런 계효보의 외침이고 저주였다.
그리고 놈은.
마지막에 나를 향해 한마디를 한 후,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져 버렸다.
-죽지 못할 것이다. 우화등선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광마, 너에게 일백만 닭의 혼령이 저주를 내렸다. 네놈이 일백만 마리의 닭을 해치우지 않는 이상, 큭큭큭. 영겁과 같은 저주가 네게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 끄아아아악! 싫어! 싫어! 죽기 싫어! 놔! 악귀들아! 내 몸에서 손을 떼라고!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닭이, 죽었다.
* * *
곧바로 인간계로 돌아왔다.
이곳도 난리가 났다.
닭이 죽음과 동시에, 요계와 연결되었던 시공간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계에서 온 요괴들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마 저 시공간의 통로마저 계효보의 힘으로 연결되었기에 그런 듯했다.
문제는.
“악치야, 나도…… 나도 가 봐야 해.”
“미, 미호야…….”
갑작스레 미호를 떠나보내야 했다.
이미 죽은 요괴들과 산 요괴의 구 할가량이 시공간의 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미호가 버티려면 버틸 수 있지만, 그러면 언제 다시 요계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계효보로 인해 지옥이 된 요계는 요왕이라는 구심점이 절실히 필요할 테다.
내가 그녀를 잡지 못하는…… 어?
눈물을 흘리던 미호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오는가 싶더니.
쪽.
뽀뽀.
“잘 살아! 그리고 고마웠어. 악치야! 나…… 사실 너 좋아했어! 요계로 돌아가기 싫을 만큼. 이제 정말 가야 해! 잘 살아야 해! 꼭! 꼭!”
미호가 그렇게 떠났다.
시공간의 문이 닫히고 서도.
난 한참이나 힘이 풀린 두 다리를 버티며 그곳에 서서 미동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좋아?”
“응. 좋아.”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리 대답했다.
그런데, 허걱!
향이다.
향이가 하필 이 시점에 내 옆으로 온 거지?
뽀뽀한 거 다 봤나?
“그렇게 좋았어?”
“아니. 아니야, 그런 거.”
“방금 좋았다고 했잖아.”
“요괴들이 물러가서 좋다고 한 거지.”
“응. 계속 좋아해.”
“향아! 어디가? 같이 가! 사부! 괜찮아요? 괜찮아 보이네요? 저 향이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요. 향이야! 같이 가자니까!”
* * *
요괴대전(妖怪大戰) 일 년.
요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함께 싸웠기 때문일까?
무림은 지난 일 년 동안 무림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 다섯 명 중 한 명은 이 자리에서 죽게 된다.
나, 의제, 한해북, 천무휘, 그리고 우리들의 첫사랑 금예지.
반드시.
기필코.
꼭.
무조건.
한 명이 죽는다.
“헤헤헤, 형님. 헤헤. 한 형. 헤헤헤헤. 천 형. 헤헤헤헤. 미안하게 됐수다. 우리…… 헤헤헤. 예지랑 나랑 올해 가을에 혼례식 올릴 겁니다.”
빌어먹을!
하필 왜 저렇게 무식한 녀석을 선택한 거야?
난 우리 예지를 향해 눈물까지 글썽이며 눈빛으로 호소했지만.
“오라버니들…… 축하해 주세요..”
예지가 너무 행복해한다.
왜! 어째서!
왜 하필 저 녀석이냐고!
진짜 눈물이 마구 흘러내릴 것 같았다.
입은 턱 막혀 뭐라 말도 안 나오고.
그냥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개새끼.”
천무휘다.
천무휘가 완전 분노하여 처음으로 욕이란 걸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넌…… 좀 맞아야겠다, 도둑놈.”
곧바로 한해북이 의제를 향해 살기를 마구 뿌리며 다가갔고.
“그래. 의제, 오늘 좀 맞자.”
나는 광천검까지 빼 들었다.
퍽퍽퍽!
퍼퍼퍼퍼퍼퍼퍽!
“죽어! 죽어, 도둑놈아!”
“으아아아아악! 형님! 살려 줘! X팔! 내가 뭔 잘못을 저질렀다고! 잘생긴 게 죄야! 끄아아아아아악!”
“오라버니들, 우리 신랑 살려 줘! 으아아아앙!”
예지는 울고불고, 의제는 비명을 질러 대고.
나와 한해북 그리고 천무휘는 손에 잡히는 건 죄다 휘둘러 의제를 때렸다.
그리고 그해 가을, 우리 현화천에서 성대한 혼례식이 치러졌다.
아! 젠장!
바로 다음 해 따스한 봄날.
우리 현화천에서, 한해북 녀석이 장가를 갔다.
기억하는가?
아미파의 그 무도(舞蹈) 선생.
삼대제자들에게 무도를 가르치던 그 예쁜 아미파 선생 말이다.
결국 한해북 녀석까지 그렇게 장가를 갔고.
두 녀석이 차례로 혼례를 올리자 충격을 크게 받았는지, 천무휘 녀석은 화산파에 틀어박혀 화산 재건에만 몰두하고 있다.
벌써 화산은 과거의 명예와 영광을 빠르게 되찾고 있는 중이다.
아! 천예휘.
요괴대전 당시 천무휘에 의해 단전이 파괴되었다.
이후 현화천으로 잡혀 와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요괴에 붙어 인간들을 죽인 그녀를 모두가 한목소리로 죽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천예휘는 지금 갑돌산에 새집을 지어 지내고 있는 사부에게 가 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뭐 우리 사부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보름 전에 사부에게 다녀왔는데, 천예휘가 착해졌다.
눈빛, 말투, 품행, 기운까지.
그냥 착하고 평범한 여인으로 환골탈태했다.
아! 그리고 나는.
누가 그랬던가, 절대자는 외롭다고.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니, 요즘은 부쩍 그런 기분이 더 든다.
안 되겠다.
빈속이라도 채우러 가야겠다.
날이 쌀쌀하고 속이 허할 때는, 뜨끈뜨끈한 국수가 최고지.
최근 중원에 소문이 하나 돌았다.
천하제일국숫집에 관한 소문이었다.
백두산과 가까운 곳에 백발의 노인 여섯 명이 운영하는.
맛나고 친절하고, 값까지 착한 천하제일국숫집이라고.
큭큭큭.
살왕 할배, 아니 면왕 할배가 진짜로 해낸 것이다.
오늘 점심은 거기서 해결해야겠다.
-악치야?
엇? 미호다.
미호가 어떻게?
-잘 지냈어? 만리연통석 가지고 오는 거 깜빡했네, 호호호.
그날 이후 미호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미호와의 연락만으로 텅 빈 내 가슴속의 무언가를 채울 수는 없었다.
* * *
다시 일 년이 지났다.
천무휘 녀석은 화산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의제 녀석은 자주 오긴 하는데, 예지 손을 꼭 잡고 찾아와 하하호호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한해북, 이 녀석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자랑질을 하는데, 아오!
사부와 작은 사부, 그리고 무적할매도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고.
난, 나는 오늘도 혼자다.
처호, 처선, 공손병이 일을 너무 잘해서 내가 할 일도 없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이렇게 빈둥빈둥.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허전하지?
일 년째 이렇다.
뭔가 아리기도 하고 쓰리기도 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그런 느낌이 계속 든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시전으로 나와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평범한 옷을 입고,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 속을 그냥 걷고 또 걷고.
그러면 그나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느낌이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젊은 사람이 정신을 어디다 팔고 남의 발을 밟아?”
아! 오늘도 알지도 못하는 행인에게 한 소리 들었다.
내가 이렇게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왜 이러지?
며칠 전 사부에게 물었는데, 사부도 또 작은 사부도 그리고 무적할매도 그냥 웃기만 한다.
답은 안 해 주고.
내가 정말 왜 이럴까?
마음이 답답하고 공허하니 걸을 힘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전 중앙에 떡 하니 있는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또 멍하게, 아무 생각도 없이 사람들 오가는 모습만 몇 시진째 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때.
아찔한 꽃향기를 머금은 여인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방끗.
그녀가 나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며 방끗 웃는다.
예쁘다.
아름답고.
“낭군님, 이제 내 마음도 좀 알아주지? 너무 오래 기다렸더니 지친다.”
그렇게 말을 하며 내 손을 잡아주는 향이.
이상했다.
느낌이.
향이가 내 손을 잡았는데.
그토록 공허했던 내 마음이, 순간 뜨겁고 활기차며 아름다운 그 무언가로 가득 차 버렸다.
내가 우리 향이를…… 사랑하게 됐나 보다.
* * *
요괴대전 일천오백 년.
신조는 삼류 작가다.
무협을 쓴다.
오늘도 위에는 깔깔이를 입고 아래는 사각 빤쓰만 입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원래부터 삼류 작가였는데, 전작 <오늘도 램프를 주웠다>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스스로 은근슬쩍 이류 작가 반열에 끼워 넣었다.
하지만 <대마두가 된 이유>가 폭망하면서, 큭큭큭.
다시 삼류로 돌아왔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놈이다.
자기 자리가 어디인 줄은 알고 찾아가니 말이다.
아무튼 신조는 심기일전하여 다시금 이류 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쾅쾅쾅!
이제 막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 차기작의 위대한 첫 글자를 찍어 내리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부술 듯 두드린다.
“아! 저 인간 또 왔네.”
짜증을 내며 문을 여는 신조.
잘생긴 사내 한 명이 히죽히죽 웃으며 그런 신조를 반긴다.
“어이! 신조, 뭐 해?”
중국인이다.
마악치라는 녀석인데, 한국인인 신조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
“왜? 또 뭐?”
“치킨에 쇠주 한잔해야지.”
“아놔! 어제도 치킨, 그제는 닭갈비, 그끄저께는 닭꼬치. 마 형은 무슨 닭고기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 왜 맨날 닭고기야?”
“말했잖아. 내가 닭의 저주에 걸렸다고.”
“또 그 소리!”
“진짜라니까 안 믿네. 그러지 말고 가자.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이니 뭐니 쓴다고 고생하지 말고, 이 형님이 오늘도 쏜다. 두 마리 치킨으로, 하하!”
“안 먹어. 그리고 나 일해야 해. 차기작은 꼭 성공할 테니, 두고 보라고.”
“정말? 배고플 시간 됐잖아? 매콤달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양념치킨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프라이드치킨. 거기에 소주 한잔 딱! 캬! 생각만 해도 좋다.”
“안 먹는…….”
꼬르륵.
결국, 오늘도 신조는 마악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닭다리 하나를 손으로 집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그 닭의 저주 타령을 들으며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2034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열릴 때…….”
“우리나라? 중국? 한국?”
“아! 미안, 하하하. 내가 이곳에 수백 년이나 살아서, 자꾸 우리나라라고 하네, 하하. 아무튼 2034년에 한국에서 월드컵 열릴 때까지 매일 일일(一日) 이닭(二鷄)을 하면 정확히 일백만 마리 닭을 해치우게 되는 거야. 그러면 닭의 저주도 끝! 나 우화등선해서 선계에 계신 우리 사부님 보러 갈 거다. 하하하하!”
“제발, 미쳐도 곱게 좀 미쳐라.”
“그래, 그래. 미쳐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두 맛있는 한국 치킨 덕분이니까. 고맙다, 신조야. 하하.”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고마워?”
“그냥 다 고마워. 한국 치킨도 고맙고, 너도 고맙고, 우리 독자님들도 고맙고.”
“우리 독자님?”
“나를 응원해 주시는 독자님들, 네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님. 모두 다!”
“그래, 나도 고맙다. 하하하!”
“건배!”
“건배!”
마악치는 오늘도 닭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치킨을 먹고 또 먹는다.
지금까지 <<대마두가 된 이유>>를 사랑해 주신 우리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