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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243화 (243/245)

243화

아! 그게……. 그러니까.

어험.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머릿속으로 그림을 한번 그려 보자.

그렇지.

그때 분명 우리 향이랑 맹소강 녀석이랑 둘이 하하호호, 그러고 있었고.

아! 국인경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번 그때도 분명 국인경이 있었고.

다시 저번에도, 그저께도 향이와 맹소강 곁에 인경이가 있었다.

처음부터 맹소강 녀석…… 우리 향이가 아니라 국인경을 좋아했던 거야?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국인경 저 아이도 많이 컸네.

살은 진즉 빠져서 어렸을 적 뚱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런 거였어?

무림행을 갈 때도 항상 셋이 다녔던 게, 국인경이 들러리가 아니라 우리 향이가 들러리였어?

짜식, 진즉 말하지. 사람 헷갈리게.

머리가 다 띵하네.

그런데 그때.

“악치야, 온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십간산이 하늘이, 땅이, 대기가, 또 시공간의 문이 진동했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튀어나왔다.

“작은 사부님.”

“걱정 마라, 악치야. 내가 살다 살다 용이랑 싸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우리 악치 두고 혼자 저세상에 갈 생각은 없다. 기다려라, 후딱 해치우고 올 테니.”

“네, 작은 사부님.”

작은 사부가 용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려 용이다, 용.

하지만 작은 사부에게서는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용에 비하면 밤톨만큼이나 작아 보이는 작은 사부의 등이, 천지를 뒤덮을 것처럼 크게 보였다.

곧이어.

뱀의 머리, 거북이의 몸.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현무왕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시공간의 문으로 바다가 쏟아져나왔다.

“난 대사 칠 시간이 없겠구나. 간다, 악치야.”

무적할매가 이미 현무왕을 향해 몸을 날리며 나에게 그리 말했다.

요계에서 쏟아져나온 바닷물로 이미 수천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휩쓸렸다.

하지만 무적할매가 검을 일직선으로 뻗으며 몸을 날리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쏟아졌던 요계의 바닷물이, 다시 시공간의 문을 통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기세 좋게 요계의 바닷물을 끌고 온 현무왕은, 그 바닷물과 함께 시공간의 문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괴성까지 지르며 발악을 했다.

무적할매는 언제나 그렇지만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는다.

시공간의 문에 몸이 반이나 걸려 발악하는 현무황을 향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순식간에 수천 방에 달하는 천재(天災)급 검강이 쏟아졌다.

하늘에서는 작은 사부가 용왕을 상대로.

또 땅 위의 시공간 문에서는 무적할매가 현무왕을 상대로.

이건 가히 사기적인 싸움, 신들의 싸움이라 할만한 신위를 마구 뿜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한 발이다.

발 한쪽.

거대한 그것이 시공간의 문을 통해 나왔다.

오로지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시공간의 문에 몸이 반쯤 걸렸던 현무왕이 퉁 튕겨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거대한 앞발.

“왔네. 휴우, 네 작은 사부님하고 우 여협은 원래 저렇게 겁이 없으시나? 난 조금 떨리네.”

대상왕의 앞발을 본 미호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요왕께서 함께하실 거야.”

“응. 다녀올게.”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백미호가 몸을 날리는 동시에 대상왕의 온몸이 시공간을 뚫고 나왔다.

“우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일백 장?

이백 장?

삼백 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거대한 코를 휘날리며 포효하는 대상왕.

소리 또한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전장의 모든 싸움이 순간 멈추었을 정도다.

대상왕은 그냥 네 다리로 서 있기만 했지만, 그 머리가 하늘에 닿을 것처럼 컸다.

그 거대한 대상왕을 향해 일백 개의 꼬리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미호.

마치 작은 점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호는 강하다.

왜? 대상왕은 요계 변두리의 왕이지만, 미호는 요계의 중심 천중의 왕이기 때문이다.

“우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쾅쾅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쾅쾅쾅!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대상왕이 한 번 코를 휘저을 때마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인간과 요괴가 휩쓸려 수백 장이나 날아갔다.

하지만 백미호는 이를 귀신처럼 피하며 대상왕을 무섭게 공격해 나갔다.

“괜찮냐, 악치야?”

사부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우리 사부는 웃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짓던 우리 사부지만, 오늘만큼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날 걱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전 괜찮아요. 어쩌면 죽음에 대해 이미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죽음에 익숙한 사람은 없단다. 그것이 열 번, 백 번, 천 번이 반복되어도 말이다.”

사부 말이 맞다.

죽음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것이건 다른 사람의 것이건 말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악치야.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게 자연의 이치니 말이다.”

“사부!”

“아무리 끔찍한 전장이라도, ‘님’ 자는 좀 붙여 줬으면 하는구나.”

“아, 네. 사부님.”

“그래, 악치야.”

“사부님, 자연의 이치니, 죽음이니, 새로운 생명이니 이런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무슨 무림 영웅전 같은 거 보면, 누가 죽기 전에 엄청 감동적인 대사 하고 죽잖아요. 저 그런 결말 원치 않아요. 진짜로 그런 거 싫어해요.”

“나도 죽을 생각 없다. 언제나 행복한 결말이 좋지 않겠느냐?”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래, 약속하마. 그런데 악치야, 저 커다란 닭들은 뭐냐?”

닭? 닭들?

커다래?

안 보이는…… 엇?

그때였다.

시공간의 문을 통해 뚱뚱한 새들.

아니, 사부 말대로 거대한 닭들이 뒤뚱뒤뚱 뛰고 퍼더덕 날며 튀어나왔다.

“저 요괴들은 강하구나. 아무래도 네가 말한 것처럼, 계효보란 요괴의 힘을 하사받은 요괴들인 듯하다.”

그렇다.

사부의 말이 맞다.

계효보가 자신의 힘을 계요(鷄妖, 닭요괴)들에게 나누어 준 듯하다.

수십 마리의 거대한 닭들에게서 삼대천요에 버금가는 요기가 느껴진다.

또 그 기운이 내가 아는 계효보의 것과 같다.

닭대가리 친위대라도 되는 것일까?

“큰 희생이 있기 전에, 내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사부님과 저는 계효보를 막아야 하는데…….”

난감하다.

정말 강하다.

한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의 괴수급 대요괴들이다.

닭들.

아! 닭대가리!

“꼬끼이이이이이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닭이 울부짖으며 날갯짓을 하자, 그 여파로 수백 수천에 달하는 인간과 요괴들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수백 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말 무시무시한 닭들이다.

저걸 다 막으려면, 결국 나나 사부가 나서야 하는데.

젠장! 어쩔 수 없다.

“사부님,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 할…….”

“아니다. 그분들이 오셨구나.”

“어흐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응!”

산군의 포효.

곧이어 호요나 사요의 수십 배나 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하늘을 가르며 닭들에게 날아들었다.

“어흥! 어흥!”

“꼬끼오!”

퍼덕퍼덕!

“어흥!”

“꾸에에에엑!”

닭 잡는 호랑이다.

아! 산군, 역시 백두산의 산군이다.

한입에 한 마리씩.

닭들을 찢어발기고 있다.

“내가 좀 늦었네.”

“우리도 왔네.”

백두신령, 금강신령, 한라신령 등.

고려의 신령들이 하늘을 날아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을 타고, 또 축지법이란 기이한 신법으로 수백 장을 한걸음에 내디디며.

계효보의 닭대가리 친위대를 마구잡이로 때려잡는다.

퍼더더더덕!

퍼더더덕!

“꽥! 꽥꽥꽥!”

닭들은 얼마나 다급하고 놀라고 또 무서웠는지.

날갯짓을 마구 하고, 심지어 오리 소리까지 내며 사방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산신령들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일은 요원했다.

팔방을 점령한 고려의 산신령들.

그리고 닭의 중심에서 날뛰는 산군.

와! 오늘 고려는 닭 잡는 날인가 보다.

그렇게 산군과 고려의 산신령들 덕분에 다시 전세는 확고히 우리가 잡게 되었다.

하늘에서 땅에서 또 사방에서.

용과 인간, 거대한 코끼리와 미호, 다시 현무와 무적할매, 요괴들과 인간들의 싸움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이나 이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승기는 더더욱 확실해졌다.

그런데 왜? 어째서?

계속해서 요괴들이 죽어가고 인간들의 승리가 확실해지고 있는데.

계효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미 전장을 살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인간의 우세가 뚜렷했다.

그래서 난 시공간의 문에 집중하고 있었다.

계효보가 오는 즉시.

인간계로 넘어오는 그 즉시.

닭의 모가지를 비틀 것이다.

그런데 오지 않는다.

왜지?

왜 오지 않는 것이지?

“악치야, 누굴 기다리느냐?”

“사부, 아니 사부님. 말씀드렸잖아요. 계효보를 없애야 한다고. 그놈이 요계와 우리 인간계 모두를 집어삼키려 하는 흉수라고요.”

“그래서 묻는 말이다. 계효보 말고 또 누굴 기다리고 있는지 묻는 것이란다.”

뭐지?

우리 사부 갑자기 뭔 소리야?

이 중차대한 시점에 치매라도 왔나?

난 한참이나 지켜보던 시공간의 문에서 눈을 떼어 사부를 향했다.

“계효보 기다리고 있잖아요. 놈이 넘어오는 걸 기다렸다가 곧바로 닭 모가지를 비틀려고요.”

“어허, 네가 말한 계효보가 이자 아니더냐? 이미 한참 전에 넘어와 우리 곁으로 와 있었는데. 난 네가 알면서 뭘 더 기다리는 줄 알았구나.”

뒷머리가 쭈뼛 섰다.

사부 옆에.

그러니까 나하고 사부의 중간 지점 뒤에 낯선 사내 한 명이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또 확실히 처음 보는 얼굴이다.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렇게 놀리듯 또 재미있다는 듯 웃고만 있다.

그런데 알 것 같다.

놈이다.

낯선데 익숙하고, 처음 보지만 놈이 닭상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부, 위험해요!”

거의 본능적인 반사신경에 가까웠다.

설명은 길었지만, 정말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찰나의 순간 이 모든 생각을 했었고.

곧바로 난 사부의 손을 잡고 놈에게서 열 장이나 뒤로 물러섰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보며 웃고만 있는 놈이다.

아니, 닭이다.

놈이 계효보다.

그리고 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광마야.”

히죽히죽.

서늘했던 내 간담이 어떨지는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웃음이다.

비웃음이 아니다.

자신감이 차고 넘치고 다시 흘러내려 나오는 웃음이다.

그것도 아니다.

놈은.

놈은 이 상황이 재미난 것이다.

그래서 웃고 있다.

“진짜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광마야, 그동안 잘 지냈어? 너는 믿지 않겠지만, 나 정말로 네가 많이 보고 싶었다고. 진짜야.”

닭대가리, 무슨 꿍꿍이냐?

아니다. 저건 꿍꿍이가 아니다.

그냥 자신감이다.

절대적 자신감.

요괴와 인간들이 모두 죽고, 또 요계와 인간계가 모두 멸망한다고 해도.

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왜지?

“많이 궁금한 얼굴이네? 넌 예나 지금이나 그거 하나는 안 바뀌나 봐. 항시 뭔가를 궁금해하는 거, 하하하. 괜찮아. 이번엔 어렵게 추리하고, 또 몇 번씩 죽으면서 하나하나 깨달을 필요 없어. 내가 다 알려 줄 테니까.”

“무슨…… 속셈이냐?”

“속셈?”

“요계의 요괴들이 지금 죽어 가고 있다. 시간이 걸릴 뿐, 여기 있는 요괴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웃지? 동족 아닌가?”

“동족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는 신이 되었고, 요괴들과 인간들 모두 내 노예들일 뿐이야. 요괴와 인간이 모두 죽으면, 다른 시공간으로 가 새로운 생명체를 내 노예로 삼으면 돼. 아쉬울 게 없지. 안 그래? 하하하하.”

“신? 신이 되었다고? 드디어 미친 거냐? 아니면 원래 닭대가리라 신이란 말의 뜻이 뭔지 모르는 거냐?”

내 모욕적인 말에도 닭은 화내지 않았다.

계속 웃는 얼굴로 나에게 답했다.

“이런 이런. 신을 모욕하면 쓰나? 하하. 괜찮아, 광마야. 그거 알아? 난 네가 너무 마음에 들어.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나는 네 희생을 통해 완성된 거잖아. 그래서 네가 좋다니까, 하하하.”

“난 싫어, 닭대가리 새꺄.”

“계속 욕하면 화낸다. 하지만 그전에, 나는 자비로운 신이 되기로 결심했어. 그래서 너에게 기회를 줄까 해.”

저 닭대가리가 진짜 미쳤나 보다.

품을 수 없는 과한 힘을 얻어 진짜로 미친 것이다.

문제는, 그 과한 힘이란 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네가 그랬지? 권좌의 좌편을 내게 주겠다고. 이제 자비로운 신이 된 나는, 너에게 내 권좌의 좌편을 주려고 해. 어때? 예쁜 미호에게 내 권좌의 우편, 너에게는 좌편. 하하하하! 너무 멋있지 않아? 우주를 내 발아래 굴복시킬 거야. 우주신이 되는 거라고! 내가! 내가 말이야, 진짜로 신이 되었어! 푸하하하하하…… 컥!”

번쩍!

순간이었다.

광소를 터뜨리던 계효보.

놈의 심장 부위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그곳이 통으로 뚫려 버렸다.

가슴의 삼분지 일이 그냥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상태 그대로 몸이 굳어, 경악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뚫려 버린 심장을 바라보는 계효보.

놈의 뒤로, 놈의 심장을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는 사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량수불. 부디 저세상에 가서는 착한 요괴로 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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