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쿠아아아아아아아앙!
일백 장(300미터)이 넘는 지름.
시공간의 구멍.
아니, 시공간을 연결하는 통로.
그것이 열렸다.
모두가 경악과 두려움 또는 각오를 다지며 그곳을 주시했다.
그리고 처음 모습을 보인 요괴.
아! 곰은 곰인데, 온몸이 하얀 털로 뒤덮인 백웅요(白熊妖) 수백 마리다.
“으허허허허엉!”
몸체가 다섯 장에 달하는, 웅요보다 열댓 배는 더 커다란 백곰이 선두에서 괴성을 질러댔다.
요괴의 본신(本身)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 모습에 두려워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저 덜덜 떨기만 했다.
그런데 그때.
“으허허허허엉! 네놈이 결국 요왕을 배신하고 악의 무리에 붙었구나! 죽어라! 으허허허허엉!”
웅요다.
나도 웅요의 본신은 처음 본다.
그 크기가 백웅요만큼이나 커져 조금의 주저도 없이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쿠르르르르르릉.
단순히 곰과 곰이 격돌하였을 뿐인데, 십간산 전체가 무너질 것 같은 지진이 일어났다.
둘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다음 요괴가 시공간의 문을 통해 튀어나왔다.
금빛의 엄청난 갈기를 자랑하는 사요(獅妖, 사자 요괴)다.
무지막지한 괴력을 뿜어 대던 백웅요와는 달리, 사요에게서는 그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위험이 깃들어 있다.
“네 이놈! 어흐으으으응!”
하지만 놈이 인간계로 넘어와 정신을 차리기도 전.
본신을 드러낸 호요가 놈을 덮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
콰콰쾅쾅쾅쾅!
거대한 앞발을 큰 궤적을 그리며 힘과 힘의 싸움을 벌이는 웅요들과 달리, 사요와 호요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발길질과 이빨로 서로를 죽이려 들었다.
그들이 한 번 격돌할 때마다 땅이 수십 장이 파여 하늘로 날아갔고, 그들이 포효할 때마다 하늘이 진동했다.
그야말로 괴수들의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항마와 퇴마의 법을 쓰던 수천에 달하는 도사들과 술사들 그리고 스님들까지.
하나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듣도 보도 못한 요괴들의 엄청난 싸움에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조차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퇴마와 항마의 힘을 지속하세요!”
예지다.
오늘은 우리들의 첫사랑이 아닌 무림맹의 맹주다.
그녀가 목소리에 각성의 힘을 실어 그리 외쳤다.
그러자 수천 명에 달하는 도사와 술사, 스님들이 정신을 차리고 주문과 기도, 술법 등을 지속했다.
그들이 일심으로 퇴마의 힘을 보태자, 시공간을 넘어온 백웅요와 사요들의 힘이 확연하게 약해지는 게 보였다.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의 요괴들이 이제는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호랑이, 곰, 돼지, 쥐, 소, 말, 공작, 거북이, 코끼리, 코뿔소, 사슴, 닭, 개, 늑대, 벌레도 있다.
끊이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요괴 놈들 별거 아니네! 더 없냐? 죄다 통구이로 만들어 주마! 오늘 밤은 요괴 고기 연회다! 화양문의 영웅들은 요괴들을 통으로 구워라!”
“와아아아아아아!”
“요괴들을 죽여라! 와아아아아!”
극양신장과 화양문의 고수들.
단연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사방이 불길이었고, 극양신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그의 말 그대로 요괴들이 통구이가 되어 버렸다.
그냥 무지막지하다.
그리고 소리소문없이 구음신녀문의 여고수들이 주소수를 선두로 귀신과 같이 움직이며 요괴들을 쓸어버리고 있다.
말 그대로다.
그냥 쓸어버린다.
요란한 화양문 고수들과 달리, 실속은 구음신녀문 여고수들이 몇 곱절 위다.
그리고 유령신검의 황룡회.
“유령의 검으로 사악한 요괴들을 물리쳐라!”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역시나 무지막지하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검은, 이를 오래 연구한 인간들조차 막기 힘든데, 처음 보는 유령의 검을 요괴 따위가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영혼 없는 요괴들의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송암 도장과 무당파.
아미삼검과 아미파.
황제의 친위대를 비롯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무림인들이 인간계를 침범한 요괴들을 넘어오는 족족 도살하고 있었다.
이렇게만 끝난다면, 오늘도 완승일 텐데.
아직이다.
“사대무요에 필적하고 경쟁한다는 무요 중 백웅요와 사요만 왔네?”
“응. 아직이야. 흑낭요(黑狼妖, 검은 늑대 요괴)와 혈응요(血鷹妖, 피의 매 요괴)가 오지 않았……. 어? 왔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오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핏빛 날개를 단 커다란 무언가가 시공간의 문을 통해 우리의 하늘 위를 날았다.
곧바로 거대한 검은 늑대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 시작했다.
백웅요나 사요에 절대 뒤지지 않는, 엄청난 요기를 뿜어 대는 대요괴들이었다.
“맹 대협.”
“네. 가 보겠습니다.”
“꼭…….”
“염려 마십시오, 천주님. 아들 녀석 장가도 보내지 못했는데, 요괴에게 죽을 마음 따위는 없습니다.”
그렇게 만검존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곧 그를 하늘 위에서 볼 수 있었다.
오로지 하늘 위.
혈응요와 만검존 두 인영이 멈춘 듯 그리 보였다.
만검이 발동된 것이다.
“예지야, 의제, 한 형, 천 형.”
“형님! 구경이나 하쇼!”
“네 이놈!”
“오빠, 이따가 봐!”
“마 형,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의제, 한해북, 예지, 그리고 천무휘가 한마디씩을 뱉으며 곧바로 흑낭요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고수들을 산 채로 갈기갈기 찢어 버린 흑낭요는, 갑작스레 네 사람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들자 손발을 멈추고 우리 녀석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
콰르르르르르쾅쾅쾅!
네 명의 화경급 고수.
우리 녀석들.
요계의 최강자 중 하나라는 흑낭요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는다.
“어험, 어험. 사람들이 많이 죽는데……. 악치야, 나는 아직 기다려야 하냐?”
작은 사부다.
“잠깐 몸풀기 좀 하면 안 될까? 잠깐만 움직여도 많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적할매다.
“아니요. 기다리세요. 최대한, 콩알만큼의 진기도 아끼세요. 백웅요나 사요, 흑낭요, 혈응요보다 더 강한, 요왕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요계의 삼대천요가 곧 올 거예요.”
요계에서 요왕과 더불어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요괴들.
용왕(龍王).
현무왕(玄武王).
대상왕(大象王, 코끼리 요괴의 왕).
이들 셋이다.
요계의 중천을 요왕이 다스렸다면, 중천을 세 방향으로 둘러싼 요계의 또 다른 요계.
그곳의 왕들이 바로 이들 셋이다.
닭대가리가 도대체 무슨 수를 쓰고, 또 어떤 유혹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요왕조차 굴복시키지 못했던 이들이 닭대가리의 편이 되어 함께 인간계를 넘어온다고 하였다.
작은 사부와 무적할매, 그리고 백미호가 내 옆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대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무아미타불!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는가? 소림의 제자들은 목숨을 버려 요괴들을 물리쳐라!”
은은하지만 감동적인 사자후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원혼 대사가 소림사의 승려들을 이끌고 도착한 것이다.
곧바로 화산과 종남, 그리고 계두교에 합류하지 않은 다른 오대 세가의 무인들도 모습을 드러내 곧바로 전장에 합류하였다.
이들의 가세는 실로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거의 일방적이라 할만한 싸움이었는데, 소림과 이들이 가세하자 이건 그냥 학살과 도륙 수준으로 전장이 변모…….
아! 왔다.
“죽여라! 계신께서 강림하셨다! 계두교의 자식들은 계신을 거부하는 저 악마들을 모두 죽여 응징하라!”
천예휘다.
그가 화산의 배신자들과 또 수백에 달하는 계두교 고수들을 이끌고 전장에 들이닥쳤다.
그 수가 미비해, 전세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다만, 천예휘는 간과할 수 없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광천마제 시절 화산검후라 불렸던 고수이기 때문이다.
괜찮다.
“곽 형! 한 형! 예지야!”
천무휘가 다급히 세 사람을 불렀고.
“천 형! 어서 가 보세요! 이 검은 늑대 녀석은 우리만으로 충분해요!”
“고마워요!”
천무휘가 곧바로 흑랑요에게서 몸을 빼 천예휘에게로 향했다.
천무휘와 천예휘는 땅과 하늘을 오가며 무지막지한 싸움을 벌였다.
누가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남매지간이라 하겠는가?
처음 보는 이라면, 부모라도 죽인 철천지원수가 만나 싸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살벌하게 싸우는 남매지간이었다.
천무휘가 천예휘를 상대하기 위해 흑낭요에게서 몸을 뺐지만, 의제나 한해북 그리고 우리 예지는 여전히 잘 싸워 주고 있다.
처음부터 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천무휘가 중간에 합류해 네 사람이 싸우게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일이 너무 잘 풀리니 또 병이 도졌다.
근거 없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계효보 녀석은 언제 나타날까?
또 작은 사부와 무적할매 그리고 백미호가 삼대천요를 정말 상대할 수 있을까?
사대무요는 사실 충분한 계산이 있었다.
하지만 삼대천요는 다르다.
요왕과 백미호도 정확한 그들의 경지를 모른다고 하였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직접 삼대천요를 상대할 작은 사부나 무적할매는 조금도 긴장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무적할매는 몸이 많이 근질근질한가 보다.
엄청난 자신감이다.
반면 백미호는 시종일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아마도 요괴들로 인해 많은 인간이 죽기 때문에, 더 미안해 그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때였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으아아악!”
“뭐야! 으아아악!”
갑자기 요괴들을 거침없이 도륙하던 무인들이 얼음이 되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저것들은?”
내가 급히 백미호에게 물었다.
백미호도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설마 저것들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그럴 수 없는데!”
“저 시퍼런 것들이 뭔데?”
“빙귀(氷鬼). 요괴가 아니야. 요계에 살지만 우리와는 다른 종족. 얼음 귀신 종족이야. 우리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서 살고, 왕래조차 없는데. 어떻게 저들이…….”
수천에 달하는 빙귀들의 등장.
사람 허리만 한 키에 둥글둥글 귀엽게 생겼다.
하지만 그들의 손속은 매섭고 잔인했다.
쩌저저적.
쾅!
사람을 얼리고, 곧바로 그 얼음을 터뜨려 죽인다.
속수무책이다.
예상 밖의 공격이었고, 변수였다.
빠르게 대책을 찾아야 했다.
“네 이놈들!”
극양신장이 양손에서 용암이라도 될법한 화염을 마구 쏟으며 빙귀들의 중심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얼음은 순식간이고, 그것을 녹이는 극양신장의 화염은 시간이 필요했다.
송암 도장, 주소수, 아미삼건, 유령신검 등은 다른 요괴들에게 붙잡혀 몸을 뺄 수 없다.
만검존이나 우리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고.
작은 사부나 무적할매를 보낼 수도 없는데.
큰일이다.
극양신장이 어찌저찌 버티고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버티는 것이다.
홀로 수천에 달하는 빙귀의 얼음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다.
그렇게 내가 초조하고 다급하게 대책을 강구하려던 그때.
“천주님, 명을 완수하고 돌아왔…….”
털썩.
달호다.
천주대사 달호가 돌아와 나에게 복귀를 보고하고는 곧바로 실신했다.
달호가 왔다는 건.
“북해의 전사들은 적들을 도륙하라!”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내렸고, 땅에서 얼음 기둥이 솟구쳤다.
빙귀들을 오히려 얼음으로 가두고, 다시 그 빙귀들을 향해 얼음의 검을 소나기처럼 날려 댔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 오는데 더워 미치는 줄 알았다!”
북해빙궁주 한무기와 설민민 그리고 오천에 달하는 북해의 전사들.
그들이 거대한 얼음 감옥에 갇힌 빙귀들을 마구잡이로 도살하고 있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고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빙귀들의 얼음 공격을 북해의 전사들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즐기고 있었다.
북해에서 여기까지 날도 더운데 열심히 달려온 듯하다.
전장에 뛰어들자마자 빙궁주가 명령을 한 것도 아닌데, 너도나도 얼음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어 빙귀들을 도살하고 있다.
다행이다.
달호가 해냈고, 빙궁주와 설민민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다시 전세는 압도적으로 우리에게 넘어왔다.
“쯧쯧, 저러다 네 각시 죽겠다. 전장도 전장이지만, 각시도 좀 챙겨라.”
무적할매의 뜬금없는 소리.
한숨 돌려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전장을 살피던 중, 무적할매의 저 말로 나는 시선을 돌려야 했다.
젠장!
“향이는 왜 데리고 왔어요?”
“향이가 고수라니까! 그나저나 저러다 향이 진짜 죽겠다.”
향이는 홀로 무려 쉰 명이 넘는 충요(蟲妖, 벌레 요괴)들과 싸우고 있었다.
땅을 구르고, 피를 흘리며…… 어?
이거, 설마…… 광마일기의 문구가 갑자기 떠오르며 불안해졌다.
그때, 당랑요(螳螂妖, 사마귀 요괴)가 의제의 대도(大刀)만큼이나 살벌한 자신의 날카로운 앞발로 향이의 왼쪽 어깨를…… 쓱싹!
향이의 어깨는 멀쩡하다.
내가 지풍을 날렸다.
당랑요의 앞발과 전신을 천 개의 조각으로 분리하고, 향이의 주변을 둘러싼 나머지 쉰에 달하는 충요들을 모두 조각 내었다.
갑자기 화가 솟구쳤다.
전장을 살폈고, 곧바로 맹소강을 찾을 수 있었다.
놈도 피를 흘리며 열심히 싸우고는 있다.
하지만 아니다.
“맹소강, 이 녀석!”
내가 녀석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러자 요괴들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싸움을 하는 중에도, 맹소강이 답했다.
“네, 천주님!”
“거기서 뭐 해?”
“네? 싸움…… 으악! 얍!”
쾅!
펑펑펑!
“꾸에에에엑!”
“요괴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천주님!”
“그러니까! 왜 거기서 싸우냐고!”
“네? 잠시만요! 안 돼! 얍!”
퍼퍼퍼펑!
“꾸에에엑!”
다시 세 마라의 요괴 목을 벤 맹소강이 정신없는 상황에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전장이라도 여자 친구는 살려야지! 이런 살벌한 전장에서 여자 친구를 멀리 떨어뜨려 두고 싸우는 놈이 세상천지에 어딨어?”
“네? 그게…… 얍! 얍! 천주님! 저 지금 여자 친구 지키면서 열심히 싸우는 중인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네 이놈! 우리 인경이는 건드리자 마!”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 놈이, 눈깔까지 뒤집혀 세 척에 달하는 검강을 뿜어 대며 요괴들에게 달려들었다.
어라?
여자친구?
향이는 저어어어기 있는데.
그리고 맹소강이 뛰어든 곳.
아! 뭐지?
내가 여태 혼자 착각하고 있었나?
맹소강 녀석이 눈깔이 뒤집혀 달려간 곳.
그곳에 국대 인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