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미친 듯 달려 천산에 도착했다.
백미호와 호요, 웅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
닭이다.
“악치야.”
미호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곧바로 쓰러져 있는 사체로 향했다.
커다란 닭.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반듯하게 잘린 커다란 머리가 닭대가리다.
흡사 독수리의 날개라고 해도 믿을 법한 커다란 날개 역시 자세히 살피면 닭의 날개다.
다 헤진 신발을 뚫고 나온 닭발까지.
영락없는 닭이다.
죽은 게 확실하다.
닭모가지가 잘렸으니 죽은 게 맞다.
하지만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닭의 기운이 사체에 남아 있다.
난 그것을 아주 정교하게 살피고 또 감지했다.
계효보의 기운이 맞다.
계효보가 진짜로 죽은 것이다.
아! 설마설마했는데, 미호가 진짜 해낼 줄이야.
진짜로 닭을 잡아 버렸다.
미호와 호요, 웅요를 돌아보았다.
음, 내가 너무 계호보에게만 관심을 쏟았나 보다.
세 사람 다, 아니 세 요괴 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초토화된 주변도 그렇고, 닭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나 보다.
우리 예쁜 미호 얼굴에 상처가 가득하다.
괜히 미안했다.
“괜찮아?”
“빨리도 묻네.”
씨익 웃는 미호.
괜찮나 보다.
난 다시 닭을 살폈다.
확실히 계효보가 맞다.
이 녀석과 그간 있었던 수많은 일이 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시원하고 통쾌할 줄만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계효보의 사체, 다시 살피니 그 몰골이 매우 끔찍하다.
내가 닭이라고 생각해서 보니 닭이지, 이건 흡사 무슨 괴수와 같다.
아니, 괴수를 넘어 정말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몰골로 죽어 있는 계효보였다.
이미 많은 죽음을 보았고, 삶과 죽음의 경지마저 언뜻 볼 수 있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추악하게 죽은 계효보의 꼴을 보니 속이 다 울렁거린다.
요괴들은 죽으면 다 이렇게 추하고 괴상한 몰골로 죽는 것일까?
“아니야.”
“응?”
“요괴들이 죽는다고 다 저렇게 끔찍한 몰골로 죽지 않는다고.”
“미호야, 너 설마 내 생각을 읽는 거야?”
“읽긴 뭘 읽어. 네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지금.”
“아…….”
“요괴는 죽으면 그 삶이 죽음에 반영돼.”
“무슨 말이야?”
“착하게 살다 죽은 요괴는 죽은 모습마저 아름다워. 간혹 요계에서 현요(賢妖)라 불리고 선요(善妖)라 불리는 요괴들은, 그 죽음에서 신비함마저 느껴질 정도야. 반대로 계효보처럼 악행을 일삼은 요괴들은, 지금 보는 것처럼 저렇게 끔찍하고 추악한 모습으로 죽게 되지.”
“아, 그렇구나.”
“그나저나 넌 느끼지 못했어?”
“뭘?”
“계효보가 죽었으면 네 억겁의 굴레도 풀렸을 거 아니야?”
음, 미호의 말이 맞는데.
이상하다. 아무 느낌도 없다.
풀린 건가? 아니면 아직 내 몸에 억겁의 굴레가 걸려 있는 상태인가?
모르겠다.
죽어 볼 수도 없고.
“잠깐. 내가 봐 줄게.”
“가능해?”
“응.”
내가 허락하자 백미호가 섬섬옥수라는 표현조차 한참이나 부족할 정도로 예쁜 손을 내 심장 부위로 가져다 댔다.
그녀의 기운이 내 심장에 미세하게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녀가 내게서 손을 뗐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이상하네.”
“뭐가? 계효보가 죽었으니 억겁의 굴레가 풀려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맞아. 그래야 하는데. 아직 있어.”
아! 이건 또 무슨 지랄인가?
억겁의 굴레가 아직 나에게 걸려 있다니.
“이건 내 추측인데.”
“응.”
“네가 기록한 광마일기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 계효보가 너에게 억겁의 굴레를 시전할 때, 네 힘, 그리고 추혼책과 각혼필의 힘이 섞였다고.”
“그것 때문에?”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 그것들이 강하게 얽혀서 계효보가 죽었음에도, 억겁의 굴레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다른 가능성은?”
“당장 생각나는 건 그것뿐이야.”
닭대가리, 이 닭 새끼!
죽어서까지 사람 골치 아프게 만드네.
그때였다.
“미안.”
백미호가 잔뜩 미안한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네가 왜 미안해?”
“결국 우리 때문이잖아.”
“아니야. 네가 미안할 게 아니지. 그리고 조금만 생각을 전환하면…… 큭큭큭.”
“……?”
“계효보가 살아 있을 때 억겁의 굴레는 내게 저주였지만, 지금은…… 큭큭큭. 이게 더 이상 저주가 아니잖아, 하하하!”
“그럼……?”
“말도 안 되는 축복이고 기연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뭐, 좋게 생각하자는 거지. 솔직히 조금 꺼림칙하긴 하지만, 어쩌겠어? 설마 내가 죽고 살아나면, 계효보도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겠지?”
“그렇진 않아. 사체는 남았지만, 그 영혼을 우리가 소멸시켰어. 지옥이란 곳이 너무도 만만해서 계효보가 그곳을 탈출한다면 모를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보단…… 이젠 널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을 것 같은데?”
오! 백미호.
단박에 내 경지를 알아봤나 보다.
“보여?”
“응.”
“어느 정도야?”
“아까 네가 날아올 때, 그 엄청난 기운 때문에 나는 요계에 계신 아버지가 시공간을 넘어오신 게 아닌가 하고 순간 착각했을 정도야.”
“그래? 내가 많이 성장하긴 했네, 하하하.”
일부러 크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미호가 미안해하고 걱정하는 게 싫어서 그랬다.
억겁의 굴레 따위, 깨끗이 씻길 줄 알았는데.
실망이 크고 찝찝함 마음이 강하게 드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계효보가 죽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괜찮다.
만약 억겁의 굴레가 추혼책과 각혼필의 힘과 얽혀 있다면, 그것마저 깨끗이 씻어 버리면 된다.
“방법을 함께 강구해 보자.”
“아니. 이미 알고 있어. 더 열심히 참선하고, 착한 일 많이 하고. 그렇게 내 업보를 모두 씻어 버리면, 추혼책과 각혼필의 봉인이 모두 풀릴 거야. 그러면 억겁의 굴레도 더 이상 내 몸에 남아 있지 않겠지.”
더 착한 아이.
아니, 더 착한 도사가 되면 된다.
그러면 내 몸에 깃든, 또 걸려 있는 내 것이 아닌 다른 힘들을 모두 씻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미호야, 수고 많았어. 그리고 고마워.”
내 진심이 미호의 마음에 닿았다.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얼굴이지만, 그 안에 미소가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계효보가 죽고 일 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서른세 살이 되었다.
아! 우리 향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향이는 또 무림행을 떠났다.
맹소강, 이 음흉한 녀석!
스무 살이나 된 처자를 데리고 무림행을 떠나다니.
그 꿍꿍이가 뻔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칠 것 같다.
걱정 때문에 밤에 잠도 자지 못한다.
어쩌다 잠이 들면, 맹소강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꿈에 나와 이리 말한다.
‘큭큭큭. 향아, 나 믿지? 손만 잡고 잘게.’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다가 잠에서 깨고 만다.
그나마 아주 작은 위안은 우리 국대 인경이다.
향이와 맹소강이 있는 자리에는 언제나 국대 인경이 함께한다.
이렇게 든든한 아군이 될 줄 알았으면, 인경이가 어렸을 때 영약도 좀 먹이고 더 잘해 줄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다.
아무튼 내가 지금 믿을 거라곤 국대 인경밖에 없다.
제발, 제발 한 시도 두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말아라.
그렇게 나는 매일 밤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린다.
“뭐해? 또 기도해? 도대체 지금 네가 더 바랄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밤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해?”
“어? 왔어? 미호 너야말로 이 늦은 시간에 잠은 안 자고 나왔어?”
“그냥. 요계에서 답도 없고. 휴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네.”
계효보가 죽고 미호는 곧바로 요계에 이 사실을 알렸다.
동시에 그녀와 호요, 웅요의 요계 소환 역시 부탁하였다.
편정(蝙晶)이라 하여, 만리연통석과 같이 통신 요술을 하는 박쥐 요괴들의 신물을 이용하여 연락한 것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통신은 원래 어려운 것이라며? 요계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다르기도 하고.”
“그래도 일 년이나 지났는데 아무런 답이 없어서 좀 그래. 만리연통석을 편요(蝙妖, 박쥐 요괴)들과 나눌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되고.”
“그렇게 빨리 돌아가고 싶어? 요계로?”
“……?”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얼굴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미호.
“그곳으로 가면 널 다신 볼 수 없잖아. 그래서 나는 네가 천천히 갔으면 좋겠는데.”
순간이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미호의 얼굴이 홍시가 되었다.
동시에 내 심장 박동도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미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두 눈을 감고,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서로를 향해 다가…….
“형님! 형님!”
개새끼.
찢어 죽일 오중체 이 나쁜 새끼!
하필 이 중요한 시점에!
“형님! 여기 계셨군요? 아! 백 소저께서도 함께 계시네요, 하하.”
눈치라고는 일도 없는 빡대가리 새끼야!
백미호가 여기 있는 거 알았으면 얼른 가!
가라고!
“봉황검후 금예지 맹주님이 왔어요. 무림맹의 천문관(天文官, 우주와 천체의 현상과 법칙성을 연구하는 문관)을 여럿 대동하여 왔는데, 형님을 급하게 찾고 있습니다. 형님의 사부님과 작은 사부님 그리고 부천주님을 비롯해 이미 모두 모여 있어요. 얼른 가 보세요.”
“아, 그래? 알았다. 바로 가마.”
“네, 형님.”
무슨 일이 있나?
이렇게 평화로운 무림에 생길 일 자체가 없는데?
얼른 가 봐야겠다.
우리 미호와 못다 한 건 나중에 계속하고.
아!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군.
“중체야.”
“네, 형님.”
“너 화양문에 좀 잠시 다녀와라.”
“그, 그게…… 저희 집에는 왜……?”
“너, 어머니 뵌 지 오래됐잖아? 가서 인사도 드리고, 응? 눈치란 게 뭔지 좀 배우고. 응?”
“형님!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어머니가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요.”
“응, 그래서 가라는 거야. 다녀와. 삼 개월. 이건 천주로서 내리는 명령이야. 가자, 미호야.”
“그래.”
난 그렇게 울상이 된 오중체를 뒤로하고, 미호와 함께 천주전으로 향했다.
녀석, 그러게 진즉 눈치란 걸 좀 배우고 그러지 말이야.
*
아! 내 수양이 부족한가?
아니면 나는 원래 나쁜 놈인 건가?
미호를 보고 있으면 너무 좋다.
그런데 또 예지를 보고 있으니 너무 좋다.
이런 천하의 바람둥이 같으니라고.
머리를 밀고 산으로 가야 하나?
하아!
돌겠네.
어쩌지?
둘 다 너무 좋고 사랑스럽고 진짜 좋은데?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찾아온 거야. 우리 무림맹 뿐만 아니라, 천하 각지에서 천문을 연구하는 천문관과 술사들에게서도 제보가 잇따르고 있어. 오빠? 마 천주님?”
“어? 앗! 미안. 아이고, 미안해라. 하하. 잠시 내가 생각을 좀 정리하느라고. 그런데 난 이해가 되지 않는 걸?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하늘에 뜬 별의 움직임이 예전과 달라지는 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그때 예지에게 눈빛으로 허락을 구한 무림맹의 천문관주라는 자가 조심스레 나섰다.
“이게…… 좀 황당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탄없이 말씀하세요.”
“저희는 시공간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말고, 우주에는 또 다른 우리가 있고, 우리와 다른 모습의 생명체가 사는 세계 역시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라? 지금 설마?
“계속하세요.”
“네, 천주님. 그리고 몇 달간 우주의 움직임을 관측하여 예측한 결과, 그중 한 곳의 세계와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의 시공간이 연결되고 있음을…… 휴우. 죄송합니다, 천주님. 너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생각하실 줄은 알지만, 그래도 수천 년 동안 연구한 학문이고, 수천 년 동안 지금껏 이러한 움직임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라 이 일을 보고하게 됐습니다.”
오! 이 양반들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학자들이 먼 훗날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진짜 엄청 똑똑한 양반들이다.
나와 미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긋 웃을 수 있었다.
미호가 요계로 돌아가는 길이 열리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공간의 연결이 언제쯤 될 것 같은데요?”
“정확히 스무날 뒤에 열릴 것이라 계산되었습니다.”
“장소는요?”
“천산입니다.”
“이 사실을 누가 알고 있죠?”
“날짜와 장소는 이 자리에 계신 분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난 곧바로 예지를 향했다.
“예지야.”
“응.”
“부탁 하나만 하자.”
“이 사실을 비밀로 해 달라고?”
“응.”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
“나중에. 일이 모두 끝나면 다 말해 줄게.”
예지가 슬쩍 시선을 백미호에게로 향했다.
예지의 시선을 받은 미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예지가 또 그런 미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짝 미묘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지만, 됐다.
스무날이 지나면, 모두 끝날 일이다.
그전에, 꼭 해야 한다.
아까 우리 미호랑 하다가 못 한 그거 말이다.
미호가 요계로 완전히 돌아가기 전에, 꼭 하고 말 테다.
*
이십 일 후, 천산 자시(子時, 자정).
쿠르르르르릉.
쾅쾅쾅!
멀쩡했던 밤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는가 싶더니, 엄청난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다.
그렇게 시공간의 문이 그곳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미호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미호야.”
“그동안 고마웠어, 악치야.”
아! 미호를 보내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때 하던 거 마무리도 못 했는데.
그래서 더 슬프다.
지금이라도 그걸 마저 해야 하나 갈등하던 그때.
쿠르르르르릉.
쾅쾅쾅!
콰콰콰콰콰쾅!
미호의 표정이 변했다.
“어? 잠깐. 뭔가 이상해.”
“왜? 뭐가?”
“이건…… 우리를 소환해 가려는 시공간의 문(門)이 아니야.”
“그럼?”
“누군가 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