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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233화 (233/245)

233화

끝인 줄 알았다.

하나의 사편검을 더 숨겨두고 있지만, 눈을 공격한 것도 실패요, 남자의 가장 큰 약점인 거시기에 대한 공격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방법이 없다.

이 싸움은 졌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네.

뭐지?

극양신장의 저 자신감은?

난 다시 시선을 전장으로 돌렸고.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온몸으로 황금빛 광채를 사방으로 뿌려 대는 령무.

양발을 쩍 하니 벌리고, 부동의 자세로 주소수의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린 령무.

빈틈이 없는, 완전무결한 금강불괴의 위력을 가감 없이 모두 보여 주고 있는 그가.

처음으로 인상을 구기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고통이다.

엄청난 고통을 참느라 애쓰고 있다.

도대체 어디를……?

와! 미친. 미쳤다!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개였어.

땅을 뚫고 치솟은 사편검이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조금 전 터져 버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령무의 거시기를 문 사편검이었고.

다른 하나.

입을 벌리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꼭 다물고, 곧바로 돌진했다.

마지막 사편검.

열 번째 사편검의 목표는.

아! 조금 더럽다.

주소수의 강기로 형성된 사편검은 령무의 똥꼬를 정확히 뚫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어라? 버티네? 괜찮아?”

“으으으으…… 끄으으으으으.”

“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설마 금강불괴는 오장육부마저 금강불괴로 만드는 거야? 뭐, 그럼 내가 졌고.”

“으으으으으. 끄으으으으으으.”

주소수가 령무를 향해 길게 뻗은 손.

그 손끝으로 그녀가 일부러 멋지게 보이려고 형성한 황금빛 사편검이 이어지고 있었다.

뱀의 꼬리다.

그리고 꼬리와 이어진 그 황금빛 뱀의 몸통은 땅을 파고 들어갔고, 다시 머리가 땅을 뚫고 나와 령무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주소수가 손끝을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금강불괴지체인 령무는, 지옥의 고통이라도 겪고 있는 사람처럼 끔찍한 얼굴로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어라? 계속 버티네? 요렇게. 요렇게 하면 더 아픈데. 요렇게.”

“으으으으으으. 끄으으으응.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끄아아아아아악!”

부동의 자세가 무너졌다.

금강불괴가 파훼되었다.

령무는 더 이상 황금빛 광채를 뿜어 대지 못했다.

쓰러지는가 싶더니, 땅을 마구 구르며 끔찍한 괴성을 질러 댔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너무 아파요! 엉엉엉엉.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악!”

무시무시한 여자다.

일부러 죽이지도 않고, 살려 주지도 않는다.

도도하게 선 상태로, 손끝만 살짝살짝 움직이며, 소림사의 금강불괴에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계속 주고 있는 것이다.

와! 나도 미쳤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여자와 싸웠던 걸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때!

령무가 땅바닥을 구르고 괴성을 지르며 살려 달라는 외침이 이어지던 중.

주소수가 시선을 령무에게서 떼어 소림사 진영의 천수신권을 향해 방긋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미소였다.

“이제 기억나? 사십육 년 전, 너도 얘처럼 이렇게 바닥을 구르며 나한테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했었잖아. 어때? 아직도 기억 안 난다고 하면, 이 누나가 친히 기억나게 해 줄 수도 있는데.”

사악하고 무시무시하기만 한 게 아니라, 집요하기까지 하다.

머리카락이 다 곤두서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나는 극양신장 오대극과 그의 세 아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조금은 안다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와! 내가 알던 건 그들이 실제 겪었던 고통의 만분지 일도 될까 말까 할 것 같다.

갑자기 천하의 극양신장이 불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천수신권이 손을 뻗었고, 그의 손이 다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커지면, 계속 커지며.

장강(掌剛)이다.

이내 열 장보다 더 커져 버린 천수신권의 장강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주소수와 령무를 동시에 덮쳤다.

아니, 주소수는 천수신권의 장강을 자신의 열 줄기 사편으로 막으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폭발과 동시에 수십 장을 뒤로 날아가 버렸다.

척!

폭발의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가던 그녀를 극양신장이 허공에서 멋지게 낚아채 품으로 안아 땅으로 착지했다.

조금 전까지 주소수가 있던 그곳.

거대한 반원의 구체가 마치 령무를 보호하듯 그렇게 둘러싸고 있었다.

주소수는 발끈했다.

곧바로 천수신권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손을 극양신장이 꼭 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 것이다.

하지만 불같은 그녀를 어디 그렇게 쉬이 막을 수 있겠나.

내가 도와줘야 했다.

“주 여협, 잠시 기다려 주시오.”

나까지 나서고서야 주소수는 숨을 거칠게 쉬면서 화를 삭이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상대 진영에서 네 사람이 튀어나왔다.

빡빡머리다.

사대금강이었다.

그들이 쓰러진 령무 곁으로 다가가자, 천수신권은 자신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곧바로 사대금강이 쓰러진 령무를 부축해 진영으로 데리고 돌아갔다.

그런데.

아! 천하의 금강불괴가 말이다.

사대금강의 도움으로 진영으로 질질 끌려 돌아가면서, 피똥을 질질 흘리고 있다.

싸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질질 흘리며 가는 것이다.

천하의 금강불괴가 그랬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더러운 똥과 피다 뒤섞인 기다란 피똥 줄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령무가 그들의 진영으로 몸을 숨기고.

다시 오십만이 넘는 모두의 시선이 천수신권에게로 향했다.

그가 움직일 것을 예상한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천수신권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면, 그러니까 우리 쪽을 응시한 채 그가 움직였다.

아니.

아! 젠장.

허공무형보(虛空無形步).

허공답보(虛空踏步)보다 한두 수 위의 지고한 상승 보법이다.

허공답보는 허공을 밟고 걷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허공무형보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그러니까 그 어떠한 동작도 취하지 않고 허공을 천천히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천수신권이 그 허공무형보를 선보이고 있었다.

령무가 싸지른 피똥이 그도 더러웠나 보다.

땅을 밟지 않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무튼 그가 전장의 중심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의 고절한 보법을 실제 목격한 모든 이들은, 적과 아군을 망라하고 모두가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거 나도 할 수 있는데.

내가 먼저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냥 속으로 삼켜야 했다.

아무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천수신권의 시선은 한 곳을 줄곧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랄맞은 주소수가 그냥 물러설 리 만무다.

“누나한테 맞고 싶어 나왔냐?”

비웃음과 함께 표독스럽게 한마디를 쏘아대는 주소수였다.

천수신권이 시선을 그녀에게로 향해 방긋 웃었다.

아! 가짜라지만 대단하다.

우리 사부만큼은 아니지만, 아니 우리 사부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분명 처음 보는 이들이라면, 저 미소만 보고도 불도에 귀의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아무튼, 천수는 그런 미소를 지으며.

“주 여협의 공명정대한 무위에 빈승은 크게 감탄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빈승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분이 있으니, 잠시의 시간을 양보해 주시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역시 만만치 않군.

주소수가 조금 전 령무를 상대로 쓴 수법을 비꼬는 천수신권이다.

다시 주소수가 발끈하려 했으나, 극양신장이 다시 그를 말렸고.

그제야 천수신권은 시선을 조금 전 향했던 그곳으로 되돌려 놓았다.

“사형, 아이들 재롱은 그만 즐기시고, 이제 나오시지요.”

천수신권의 사형.

그 한마디는 탄성산 광야에 모여 있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천수신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보고 있던 사람은 작은 사부였다.

다시 모두의 시선이 작은 사부에게 쏠렸고.

작은 사부는 살짝 쑥스러운 듯, 그렇게 멋쩍은 웃음을 한 차례 지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문당한 사형을 아직 사형이라고 불러주고. 그래도 어렸을 적 너를 때리며 가르친 내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나무아미타불이다, 허허허.”

우리 작은 사부가 또 만만치 않다.

하지만 천수는 과거 작은 사부에게 떡이나 배달하던 그때의 원욱이 아니었다.

미소를 잃지 않는다.

“무어라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만 나오셔서 끝을 보시죠.”

천수신권의 말이 맞다.

최고수들 간의 대결.

아마 실제 전쟁에서는 통하지 않을 테다.

대장전을 치러 이기는 값은, 실제 전투에서는 그저 사기를 북돋는 이득이 고작이다.

하지만 무림은 다르다.

무에 대한 숭배, 고수에 대한 존경과 승복.

그것이 가능한 곳이 바로 무림이란 곳이다.

그러면 뭐 하러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렀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또 다른 의미다.

변수란 게 있고, 상대가 도전을 받아 주지 않으면 뜻대로 될 수도 없고.

또 많은 이들이 보고 승복해야 그것이 참 승부가 아니겠는가.

그 외에도 이유야 많고.

아무튼 다시금 잔잔함 속에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백만 개가 넘는 눈동자가 작은 사부의 입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욱아, 뭔가 사람을 잘못 찾은 듯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형? 지금 싸움을 피하시려는 것입니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칠지 몰라 그리 나오시는 것입니까?”

“쯧쯧. 사람을 잘못 찾았다니까, 뭔 소리냐? 어렸을 적에도 밀떡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쌀떡을 가지고 와서 그렇게 나한테 맞고서는, 여전히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미세했다. 정말 아주 미세해서, 안력을 극도로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보지 못 했을 테다.

하지만 나는 분명 보았다.

천수신권이 미소를 지은 상태로 찰나의 순간 인상을 구겼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찰나에 불과했다.

“제가 사람을 잘못 찾았다니요? 현화천에 사형보다 강한 자가 더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있지. 여기 이 잘생긴 도사도 있고, 여기 계신 우 여협도 계시고. 그리고 이놈아! 대장전을 치를 거면, 대장을 찾아야지. 왜 나를 찾아? 저기 있지 않으냐? 현화천의 대장, 천주. 도사 마악치.”

순간이었다.

다시 일백만 개가 넘는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보았다.

천수신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천수신권의 인내도 한계에 다른 듯하다.

미소는 잃지 않았지만, 확실히 기분 나쁜 게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가 나를 잠시 쳐다보는가 싶더니, 그냥 대놓고 무시한다.

다시 작은 사부를 향해.

“지금 장난할 상황이 아니란 것을 잘 아실 텐데요?”

“나도 장난 아니다. 말했잖느냐. 우리 대장은 내가 아니라 저기, 저. 나와 여기 있는 유현 도사의 공동 제자, 현화문의 이십사대 제자이자 당금 현화천의 천주인 마악치라고.”

“진심이십니까?”

“이 녀석아, 비싼 밥 먹고 내가 헛소리를 할까?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 너 말이다, 너. 세인들이 천수신권이라 부르는 원곡, 너!”

“……?”

“넌 절대로 내 제자를 이기지 못해. 그러니 주 여협 말대로 바닥을 구르고 질질 짜며 살려 달라고 하기 전에, 그냥 데리고 온 애들 데리고 곱게 돌아가. 괜히 어린 내 제자한테 창피당하지 말고. 한때 네 사형으로서 해 주는 마지막 충고다.”

천수신권이 씨익 웃는다.

“제자를 잃은 사형의 얼굴이 어떨지 궁금하군요.”

그게 끝이었다.

천수신권도 제대로 나를 상대하려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작은 사부에게 시선을 거두고는 나를 정면으로 향했다.

다시 모두의 시선이 쏠린 상황 속.

나는 천천히 걸어 전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천수신권과 삼십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휴우, 솔직히 조금 떨리긴 했다.

계두교의 난 때의 천수신권과 지금의 천수신권은 다르다.

또! 광천마제 시절의 천수신권과 지금의 천수신권 역시 다른 느낌이다.

아마 나의 회귀, 그로 인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바뀜으로써 천수신권 또한 변한 모양이다.

됐다. 그도 변했지만, 나 역시 바뀌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히 하나만큼은 내가 스물여덟 번의 회귀를 거치면서도 절대 변하지 않았다.

그건 바로.

무림에선 힘센 놈이 형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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