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쾅!
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쾅쾅쾅!
허공에서, 하늘 위에서 엄청난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창궁검제가 만들어낸 거대한 청룡은 그렇게 유령신검을 갈갈이 찢어발겼다.
그리고 곧.
힘을 잃은 유령신검이, 이제는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채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다.
툭.
간신히 곤두박질치는 것만은 면한 유령신검.
옷은 갈가리 찢겼고, 드러난 몸 역시 만신창이가 되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
한 손과 검, 그리고 한쪽 무릎까지 꿇어 간신이 자신의 몸을 지탱한 유령신검.
창궁검제 역시 거대한 청룡을 거두어들이고 땅으로 착지했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렇게 오연한 자세로 서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처참한 유령신검을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유령신검이 며칠 전 내게 말해 주었던 그 비기.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창궁검제가 웃고 있는 가운데, 유령신검이 천천히 또 비장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창궁검제.
반전은 있을 수 없다는 확고한 자신감이었다.
창궁검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유령신검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천천히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이내 그것을 훌쩍 하늘로 던져 버렸다.
창궁검제는 그 모습을 보며 유령신검이 자포자기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입꼬리가 이제는 귀에 걸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니다.
유령신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번쩍!
하늘로 떠올랐던 유령신검의 검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멈추어 서는가 싶더니.
이내 번쩍였다.
모습을 드러낸 유령신검의 검.
하나가 아니라 세 개로 변해 있다.
다시 번쩍.
이번엔 아홉 개다.
다시 번쩍, 또 번쩍.
허공에 떠 있는 유령신검의 검은, 어느새 일백 자루가 되어 있었고.
하나같이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을 뿌려 대고 있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나 보다.
창궁검제가 인상을 팍 구기며, 검집으로 되돌려 보냈던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번쩍.
허공에 떠 있던 유령신검의 일백 자루 검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 이거였구나.
자신을 숨기는 대신, 검을 숨기는 방법을 유령신검의 사형은 고작 약관의 나이에 발견한 것이다.
숨을 쉬고 끊임없는 신진대사를 통해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인간은 살아 있는 생명체다.
이를 완벽히 숨기고 감추기 위해서는 극도의 내력이 필요하고 또 소모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를 위해서는 세밀하면서도 매우 복잡한 기의 운용이 뒤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완벽히 숨기고 감추는 것은 유령신공이 아니고서는 감히 따라 할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무생물인 검은 다르다.
살아 숨 쉬고 끊임없이 신진대사를 이어야 하는 인간과 다르게, 가만히 두기만 해도 눈으로 발견하지 않는 이상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
유령신검의 사형이 깨닫고 발견한 진리였고, 이를 유령신검이 완성한 것이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지?
유령백검이라 해야 할까?
뭐, 이름이야 유령신검이 알아서 지었겠고.
보자,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
콰콰콰콰콰쾅쾅쾅쾅쾅!
엄청났다.
유령신검이 유령공을 펼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분명, 유령공을 검으로 옮긴 것에 그치지 않고, 이기어검(以氣馭劍)의 극상승 묘리까지 첨부한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었다.
창궁검제가 만들어 낸 거대한 청룡이, 보이지 않는 일백 자루의 검을 상대로 사방을 날아다니며 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양발로 땅을 짚고, 이기어검의 무리로 보이지 않는 일백 자루의 검을 다스리는 유령신검.
반대로 창궁검제는 스스로 검을 뽑아 들고 허공을 밟고 날아다니며 용과 한 몸이 되어 유령검을 상대하고 있다.
아까와는 다르다.
유령신검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때도, 전혀 그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던 창궁검제였다.
하지만 지금.
일백 자루의 유령검을 상대하는 창궁검제는, 손발이 허둥대고 있다.
그 인상마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에는.
콰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콰쾅쾅쾅!
시간이 지날수록, 창궁검제의 거대한 청룡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헛발질만 하기 바빴다.
쾅!
치이이이익.
쿠르르르르르르릉.
벼락이 몰아치는 하늘을 오가며 싸우는 보이지 않는 일백 자루의 유령검.
그리고 거대한 청룡.
다시 이를 다스리는 두 명의 인간.
그 싸움은 결국 하나의 결과를 만들었다.
피슉.
촤아아아아아아.
이미 자잘한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던 창궁검제.
이번엔 어깻죽지가 통으로 잘려 나갔다.
피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대지에 뿌려졌다.
다시.
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
콰콰콰콰콰콰콰쾅쾅쾅!
천둥과 번개.
그 사이로 언뜻언뜻 그 기운을 발산하는 유령의 검.
그것이 마치 한 마리 짐승을 도륙하듯, 그렇게 거대한 청룡을 찌르고 베고 죽였다.
다시.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발과 함께, 하늘을 날던 창궁검제가 조금 전 유령신검의 모습보다 훨씬 더 처참한 모습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내.
쿵!
그가 땅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부딪히며 곤두박질쳤다.
피는 여전히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는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일백 자루의 검을 모두 회수한 유령신검.
싸늘한 얼굴, 차가운 얼굴, 그렇지만 또 뜨거운 눈으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피를 흘리며 혼절한 창궁검제에게로 다가갔다.
혼절하였기에 듣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가 아니라 그의 영혼에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령신검이 자신의 검을 치켜올리며 창궁검제를 향해 말했다.
“저승에 가면, 꼭 사형에게 무릎 꿇고 잘못을 빌어라.”
그렇게 유령신검의 검이 빠른 곡선을 그리며 창궁검제의 목을 향해 날아들…….
“멈추시오!”
순정의 내공이었다.
또 너무 깊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내공이기도 했다.
천하에 이런 깊이의 내공을 목소리에 실어 사자후를 터뜨릴 수 있는 고수는 몇 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양과 기운 등 모든 것이 낯선 자였다.
심지어 젊다.
고작해야 삼십 대 중후반일 것이다.
소림사에서 빡빡이 중이 그렇게 엄청난 기세로 사자후를 터뜨리며 주먹을 뻗어 날아들었다.
유령신검을 막아 창궁검제를 살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곧.
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어?
뭐지?
방금 엄청 멋있게, 또 엄청난 기세로 날아들었던 그 젊은 빡빡이 중 말이다.
멋쩍은 얼굴과 자세로, 그렇게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가 그렇게 멋진 기세로 날아들었는데, 이미 창궁검제의 목은 반듯하게 잘려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보는 이들도, 또 당사자인 젊은 땡중도 황당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기세의 땡중을 막은 건, 유령신검이 아닌 주소수였다.
아! 저 아줌마 진짜 관심받는 거 엄청 좋아하나 보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자신의 내기를 제대로 흘리고 있다.
그녀 주변으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나오며, 긴 머리칼과 옷 그리고 장신구까지 멋지게 휘날리고 있다.
내공 운용의 합리성을 따지자면 정말 저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냥 멋을 부리기 위해 저러는 것이다.
아무튼 그녀가 막았다.
유령신검이 창궁검제의 목을 베려는 것을 막으려던 젊은 땡중을, 주소수가 그렇게 극적으로 등장해 멋진 자세까지 취하며 완벽히 막은 것이다.
아! 극적인 등장까지 어쩌면 이런 상황을 계산해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녀의 그 신비로운 능력으로 피부 미용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무튼 그랬다.
“고맙습니다, 주 여협.”
“아니에요, 월 대협. 수고하셨고, 또 사형의 복수에 성공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이제 뒤는 저에게 맡겨 주세요.”
유령신검이 주소수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목인사를 하고는 우리 진영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그런 유령신검의 복수, 통쾌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씁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유령신검을 향해, 존경과 감동 또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시선은 다시 전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주소수와 젊은 땡중에게 쏠렸다.
젊은 땡중은 무림 출두 경험이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전 자신을 막은 주소수의 일격에 꽤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사이, 주소수는 비웃음을 가득 담아 소림사 진영의 중심에 있는 천수신권에게 말했다.
“아까 말했었지? 사십여 년 전 귀주의 그 산장에서도, 남궁비혁이 나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은 후에야 비로소 너는 도우려 했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사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똑같냐? 남궁비혁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니, 젊은 땡중 한 명 보내서 도우려고 해? 너도 참, 거시기하다. 쯧쯧.”
주소수의 거침없는 비난과 비아냥, 그리고 조롱.
상대는 무려 천수신권이다.
그녀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고 어쩌고 해도, 상대는 천수신권인 것이다.
그녀의 거침없는 언사는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까지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두 천수신권이 어찌 나올까 보았는데.
역시, 늙은 여우.
창궁검제보다 한 수 위, 아니 몇 수 위다.
역시나 아까와 같이 그저 재밌다는 듯 웃기만 하는 천수신권이었다.
이는 자신감을 뜻하고, 주소수의 말이 모두 지어낸 거짓말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흥! 끝까지 오리발이군. 그런데 그거 알아? 그때도 지금도, 너는 남궁비혁을 도우려 했지만, 결국 돕지 못했어. 나한테 같이 두들겨 맞기만 했지. 뭐해? 나와. 오늘도 이 누나한테 흠씬 두들겨 맞고 울고불고 살려 달라며 애원해야지.”
“나무아미타불. 시주는 그만하시…… 허걱!”
고작 일 장의 거리를 두고 있던 젊은 땡중.
녀석이 짐짓 근엄한 모습으로 천수신권에게 무례한 주소수를 꾸짖으려 했다.
하지만, 주소수가 누군가?
애초에 젊은 땡중 따위가 상대할 그릇 자체가 아니다.
녀석이 입을 벌림과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형성강기로 만들어진 사편검(蛇鞭劍, 뱀의 형상을 한 검이 달려 있는 채찍)이 날아갔다.
놀란 젊은 땡중은 급하게 신법을 펼쳐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야 했다.
경고였다.
한 번만 더 나서면 진짜로 죽여 버리겠다는 경고를 눈으로 강하게 발출하였다.
그런 후, 그녀는 다시 천수신권을 향했다.
‘구음신녀문의 혀는 뱀과 같고, 구음신녀문의 칼에는 자비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말발로 따지면 그녀가 천하제일이 아닐까 싶다.
나도 호되게 당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극독을 묻힌 그녀의 혀가 지금 천수신권을 향해 있다.
와! 이렇게 흥미진진한 말싸움은 스물여덟 번의 회귀를 통해 처음이다.
그 극독의 혀가 나를 향했을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른 놈에게 향해 있으니, 그냥 기대 만발이었다.
천수신권이 언제까지 저 가짜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오십만 명이 훌쩍 넘는 모두가, 지금 마른침까지 꼴깍 삼키며 주소수와 천수신권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
천수신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쌍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천수신권 옆에 자리하고 있던 늙은 중이 일어나 몇 걸음 앞으로 나왔다.
천수신권은 부처님 흉내, 저 늙은 중은 그런 천수신권을 흉내를 내려는 모양이다.
소림사의 방장 스님 원혼 대사다.
가짜 미소를 짓고 합장까지 하며.
“나무아미타불. 령무에게 오늘 금강의 봉인을 풀 수 있게 허하노라.”
뭐지? 금강의 봉인?
나나 주소수, 그리고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이번에 원혼 대사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령무는 본 소림사에서 사백 년 만에 금강불괴지체를 완성한 무승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동시에, 나와 주소수 그리고 일백만 개가 넘는 눈이 일제히 령무라는 젊은 중에게로 쏠렸다.
동시에. 아니, 이미.
령무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황금빛이 발현하는 금강불괴지체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아! 이건 조금 간과했다.
주소수가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 같은데,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