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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229화 (229/245)

229화

천수신권도.

또 창궁검제도.

아니, 이곳 탄성산 광야에 모인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숨까지 죽여 가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어쩌면 이 첫 싸움의 승패가 고스란히 이번 전쟁의 승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집중하고 있는 사이, 우리 현화천의 진영을 나선 현화용봉대가 창궁검제의 무력대와 석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두근두근.

사람들이 얼마나 이 싸움을 긴장한 상태로 지켜보는지, 그 심장의 떨림 소리가 내 귀에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싸움이…… 큭큭.

“어이쿠, 언 대협. 반갑습니다, 하하.”

“오중체 대주님 맞습니까? 저야말로 화양문의 태양철장 오중체 대주님을 만나 영광입니다, 하하하!”

“감당키 어렵습니다, 언 대협. 저야말로 언 대협을 만난 오늘이 일생일대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하하!”

“부대주인 제 동생 언갈이고, 이쪽은 우리 대원들입니다.”

“우리 현화용봉대의 대원들입니다. 제 친구들이죠, 하하하!”

“반갑습니다.”

“저희도 너무 반갑습니다.”

그렇다.

맹주가 야심 차게 내보낸 이들, 바로 십합단 녀석들이었다.

이제는 창궁검제의 오른팔이라 불리며,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 녀석들 말이다.

엄청난 생사 대결을 기대하던 수많은 이들이, 이 황당한 장면에 순간 넋이라도 나간 듯한 얼굴을 하였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창궁검제의 얼굴이었다.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한다.

당장에라도 몸을 날려 십합단 녀석들의 목을 베고 싶지만, 체통 때문에 그러하지도 못하고.

저러다 얼굴 터지겠다.

끝으로.

언묵이 뒤를 돌아 여전히 터질듯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창궁검제 남궁비혁을 향해 손까지 흔들며 한마디를 했다.

“어이, 남궁이! 그동안 무림맹과 남궁세가의 절기랑 영약들 고마웠어. 이건 진심이라고, 하하하하!”

그 말을 끝으로, 언묵을 비롯한 십합단 녀석들이 오중체 그리고 현화용봉대 대원들과 어깨동무까지 하고 또 큰 소리로 웃으며 우리 진영으로 들어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창궁무적대가 우리에게 투항했다!”

“창궁무적대가 우리 편이다! 와아아아!”

그들은 엄청난 환호 속에 오랜 간자의 명을 끝마치고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간 고생했을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콧잔등이 시큰했다.

“고생……했다. 나도 진심이다.”

그들이 고생했던 오랜 시간에 비하면, 너무 단출하기 그지없는 치하였다.

하지만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언묵과 언갈, 그리고 십합단 녀석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마구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나도 울컥했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아니,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목소리에 내공까지 실어 큰 목소리로 선언했다.

“대주 언묵과 대원 오십인!”

“충!”

“오늘부터 너희를 천주제검대(天主弟劍隊)로 임명한다. 이제 너희 모두가 나의 동생이며 나의 칼이 되어야 한다. 할 수 있겠나?”

“조오오온명어어어엉!”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에는 그만큼 커다란 감격의 울림이 담겨 있었다.

난 그렇게 감동한 녀석들을 바로 내 뒤에 배치한 다음, 다시 적진을 향했다.

천수신권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부처님 흉내라도 내려는 듯, 그렇게 가짜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놈이다.

남궁비혁은 여전히 화난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나 보다.

아직 화끈 달아오른 안색이 다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 년 맹주직을 내려놓지 않았던 놈이다.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천수신권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리 먼 거리지만, 나와 창궁검제는 서로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 또렷이 상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확신에 찬 미소를 짓는 그였다.

곧, 창궁검제가 자신의 왼손을 살짝 올리는가 싶더니.

쉬이이이이잉펑!

쉬이이이이잉 퍼퍼펑!

적진에서 수십 발의 붉은 폭죽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 터졌다.

지원군?

그런 듯하다.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얼마나 많은 지원군이 몰려오는 것일까?

땅이 흔들렸다.

그 진동이 실로 대단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기충천했던 아군 진영이 놀람과 두려움에 술렁일 정도로.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무림맹 측에서 부른 지원군이란 자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삼십만 명?

아니다. 조금 부족하다.

이십오만 명 정도가 되는 듯하다.

순식간에 무림맹 측 진영의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보고 있는 아군 진영의 무인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사파…… 사파 새끼들이…… 우리를 배신했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내뱉은 저 한마디.

그 말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당황하고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던 아군 진영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패배감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반대로 무림맹 측 진영은 화색도 이런 화색이 없을 정도로 기뻐하는 게 보였다.

특히 창궁검제 남궁비혁.

얼마나 좋았을까?

나를 작정하고 비웃고 있었다.

그러다 자기 흥을 주체하지 못했나 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더니.

“어서 오시오, 사도의 형제들이어! 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양팔을 쫙 펼치며, 내공이 가득 실린 음성으로 광소와 함께 그리 외쳤다.

그런데 그때.

무림맹 측으로 향해 다가가던 무려 이십오만 명에 달하던 사파인들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그냥 단순히 멈추어 서기만 했음에도, 그 어마어마한 숫자 때문에 땅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순간의 상황을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창궁검제였다.

터뜨리던 광소를 뚝 하고 멈추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사도오두, 사파의 다섯 우두머리 흑봉, 염사, 태랑, 소혼, 혈불 중.

“염사와 태랑이…… 안 보이는구나?”

혼잣말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묻기 위한 말이었을까?

창궁검제가 홀로 나직한 음성으로 그리 말했고.

염사와 태랑을 제외한 흑봉, 소혼, 혈불 사이로 다시 세 사람이 등장했다.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왕대다.

“어이, 남궁이!”

의제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남궁비혁을 그리 불렀다.

창궁검제는 무표정한 얼굴만 했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에게 배신을 사주했더군. 그런데 그거 알아?”

역시 대꾸하지 않는 창궁검제.

의제의 미소가 짙어졌다.

“우리 사파에서 다른 건 몰라도 의리 하나만큼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거든. 그래서 배신자들은 다 죽였어. 무슨 말인지 알아? 네가 돈이랑 무공, 영약으로 꼬드긴 배신자들. 다 죽었다고! 크하하하하하!”

이번엔 창궁검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지 않았다.

반대로 창백하게 변했다.

부들부들 떨지도 않았다.

미세하게, 보일 듯 말 듯 그렇게 아주 작은 떨림이 있을 뿐이었다.

의제가 몸을 돌렸다.

무려 이십오만 명에 달하는 사파인들을 향해서였다.

“사파의 형제들이어! 오늘부로 우리는 자유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이십오만 명에 달하는 이들의 함성.

한평생 정파의 위세에 억눌렸던 그것이 모두 해방되어 터지는 함성이었다.

실로 지축을 흔들고 하늘을 무너뜨릴 어마어마한 함성이 그들에게서 그렇게 터져 나왔다.

아까 우각회에서 온 녀석들 말이다.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왕대와 함께, 배신한 사파인 오만 명을 도륙하느라 늦게 온 것이었다.

뭐, 대부분 멀쩡했던 모습을 보니 그들이 제대로 활약할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계획은 아주 오래전부터 세워져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원곡을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 내었을 때.

당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광천마제 시절 나를 배신했던 사파 녀석들이, 처음부터 남궁비혁이 보내고 심어 놓았던 간자들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을 받지 않으려고 했고, 그때 처선이 그들을 먼저 받아들인 후 역으로 이용해 남궁비혁의 뒤를 치자는 계책을 내놓았다.

그때부터 꾸준히 준비해, 이렇게 남궁비혁의 뒤통수를 쳐 버린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천주제검대도 우리 편이고, 사파의 형제들도 우리와 함께한다!”

“승리는 우리 것이다!”

“와아아아아! 단숨에 적들을 물리치자!”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도 무림까지 가세하자, 우리 진영의 사기는 그냥 하늘을 뚫는 게 아니라 우주까지 꿰뚫어 버릴 정도였다.

당연히 적진의 사기는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넘어, 땅속 깊이 박히고 묻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조금 나를 놀라게 하는 게 있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이 정도면 좀 놀라고 당황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천수신권, 아니 소림사 중들 전체가 그렇다.

일말의, 아주 희박한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 여전히 여유와 자신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내가 다 놀랄 정도였다.

난 가만히 그들 면면을 살폈다.

그 유명한 사대금강이 있고, 백팔나한도 있다.

각기 네 명으로, 또 일백여덟 명으로 화경의 고수 한 명을 상대하고 압도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거기에 천수신권도 있고.

그 주변으로 거리가 너무 멀어 경지를 쉬이 판단하기 힘든 고수들도 보였다.

역시 소림사라는 말인가?

일천 년 무림사에서 굳건히 태산북두라 불렸던 저들의 자신감인가?

인정할 건 해야 한다.

그들에게선 그게 보였고, 실제 그러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나도 좀 들떴나 보다.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무림맹의 자랑, 청룡검무대와 백호백도대.

그들 역시 화경의 고수를 상대할 무력을 갖추었다.

화산파의 극혼검왕 범철승 그리고 사대금강이나 백팔나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매화삼십이수.

종남의 태을무형대.

남궁세가의 천뢰제왕대.

황보세가의 수미천왕대.

제갈세가의 와룡대.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대.

그리고 사천당가의 무인들은 죄다 소매며 옷이며 불룩불룩하다.

온몸에 독과 암기를 잔뜩 숨기고 있다.

대비야 했지만, 사천당가가 작정하고 독을 뿌려 대면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휴우.

내가 너무 자신만만했나 보다.

교만은 곧 죽음이다.

더군다나 나 하나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이들이 쓰디쓴 패배와 고통 속에 죽어갈 것이다.

정신, 바싹 차리자.

그리고 그때.

현 상황으로 인해 차갑게 분노하던 창궁검제 남궁비혁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비웃는 이는 없지만, 비웃음이 보였을 것이다.

조롱하는 이는 없지만, 그 조롱이 들렸을 것이다.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갔고,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그가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창궁검제가 검 한 자루를 들고 전장의 중심으로 나서자, 모두가 고요해진 상황.

한 사나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괴팍하고 장난기 많았던 평소와 달리, 차가운 얼굴을 한 사내였다.

유령신검 월제가, 수십 년 전 죽은 사형의 복수를 위해 나에게 온 것이다.

“천주, 부탁하네.”

“저야말로 부탁드립니다. 꼭,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사형의 복수를 멋지게 완수하십시오.”

유령신검이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창궁검제와 마찬가지로 터벅터벅.

조용히 또 천천히, 전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들썩일 정도로 함성과 환호가 가득했던 이곳에, 거짓말 같은 고요함이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이제 진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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