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조용하지만 거대한 움직임.
천하 무림이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거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적지는 모두 한곳이다.
하남 허창.
탄성산이다.
우리 현화천과 십 리 거리에 소림과 무림맹을 위시한 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다시 우리 현화천으로도 사람들이 계속 집결하는 중이다.
그리고 무림맹에서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해왔다.
명분은 마교와 내통한 정황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기를 모두 버리고, 순순히 조사에 응하라 하였다.
한마디로, 날 뇌옥에 가두고 고문할 테니 순순히 말을 들으라는, 큭큭큭.
미친놈들이다.
됐다.
미친놈에게는 언제나 좋은 약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몽둥이다.
이놈들이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무림맹에서 공포한 그 날이 왔다.
현화천에서 멀리, 드넓은 광야를 사이에 두고 우리 측과 무림맹 측이 대치한 상황이 되었다.
사실 너무 긴박하게 상황이 돌아가 아직 모일 사람들이 다 모이지 못했다.
그래서 진열을 정비하는 중에도 우리도 그렇고 무림맹 측에서도 계속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난 우리 진영의 선두에 서서 무림맹 측을 관찰하였다.
천수신권과 남궁비혁이 보였고.
그 주변으로 소림과 화산, 종남, 오대세가의 고수들이 보였다.
뭐, 중심이 그렇고.
그 숫자를 수십 배나 능가하는 천하 무림의 많은 이들이 그들을 둘러싼 형국으로 진열을 갖추었다.
숫자가.
와! 이건 무슨 나라 간의 전쟁도 아니고.
끝도 없다.
셀 수가 없다. 너무 많아서.
잠시 후 공손병이 다가와 보고한 바에 의하면.
이십만 명이란다.
그것도 계속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어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뭐, 무림의 싸움은 늘 그렇듯 숫자가 중요하지는 않……기는 개뿔!
이건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나네.
좀 심각하다.
우리는 우리 현화천과 무당, 아미, 화양문, 황룡회 그리고 가신 세가까지 다 해도 오만 명이 조금 넘는데.
조금 그렇다.
뭐, 됐다. 다 때려 부수면 된다.
그나저나.
혹시나 해서 적진, 그중에서도 화산파 고수들이 있는 자리를 안력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려 다시 살폈다.
없다.
천무휘 녀석,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우리 진영에도 없고, 적진에도 없다.
마음이 아프다.
녀석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막으려던 무림의 거대한 음모.
그 속에 화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당장에라도 달려가 녀석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 한심했다.
천무휘에게 더 미안했고.
됐다. 오늘은 이 싸움만 생각하자.
송암 도장, 아미삼검, 우리 예지, 극양신장, 유령신검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이곳까지 달려와 주었다.
만검존이 내 곁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사부와 작은 사부는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하며 노구를 이끌고 나왔다.
위화궁에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알지 않은가?
나와 위화궁의 관계를.
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자격이…… 어?
“미안. 좀 늦었지?”
무적할매다.
위화궁의 고수까지 잔뜩 이끌고 왔다.
우리 향이까지 데리고 왔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어떻게 알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우리 위화궁에서 모를 줄 알았냐? 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이냐?”
“그, 그게…… 그러니까, 음…… 그렇죠! 맞다. 위화궁의 율법으로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잖아요.”
“난 율법을 어긴 적도 없고, 앞으로도 어기지 않는다.”
“그럼 여긴 왜 온 거예요?”
“율법을 지키러 왔다.”
“그건 또 무슨 궤변이에요?”
“우리 위화궁의 율법에 사랑하는 사람…… 어험. 쿨럭. 쿨럭. 그러니까, 어험. 존경하는 분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율법을 따르는 중이다.”
와!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인 율법이네.
그나저나 이 할망구가 왜 우리 사부님을 쳐다보면 얼굴을 붉히는 거야?
그만 쳐다보라고.
우리 사부님 얼굴 닳아.
“향이는 왜 데리고 왔어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먼 길을 일부러 도와주러 온 무적할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진 못할망정, 내 음성은 무적할매를 강하게 질책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 사부를 슬쩍 쳐다보며 배시시 웃고 있던 무적할매가 갑자기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 녀석아! 향이가 열일곱 살이야. 그리고 우리 위화궁에서도 이미 알아주는 고수인 향이를 왜 빼?”
“열일곱이라도 아직 어리잖아요.”
“이런 미친놈을 봤나? 현화천의 천주가 됐다고 해서, 조금은 존중을 해주려고 했는데, 아직 어린놈 태를 못 벗은 건 너야. 향이랑 가장 가깝게 지냈던 춘이라는 친구는 작년에 시집가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한 명 낳았어. 열일곱 살이 뭐가 어려?”
향이 친구가 시집을 가고 아들까지 낳았다고?
아! 갑자기 혼란스럽다.
“그, 그게…… 됐어요.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요.”
“쯧쯧, 우리 향이가 그렇게 좋냐? 큰 싸움을 앞둔 장수가 향이한테 정신이 팔려서 어떻게 싸움을 하려고. 한심한 녀석.”
“아! 쫌! 아버지 마음. 삼촌 마음으로 걱정하는 거잖아요. 됐고. 아무튼 오늘 우 여협이 나설 일은 없을 거니까, 저기 뒤로 가서 향이나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 주세요.”
그런데 이 할망구가 오늘 뭘 잘못 먹었나?
버럭 화를 낼 때는 언제고, 이제는 또 슬금슬금 웃는다.
그러다가 다시 갑자기 도끼눈을 뜨며 말한다.
“너는 말이다.”
“뭐요?”
“가끔씩 보면 나를 굉장히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어.”
“제가…… 제가 언제요?”
“됐다. 하지만 분명히 한 가지는 말해 두마.”
“……?”
“네가 진심으로 나에게 부탁한다면 말이다.”
“……?”
“저기 천수신권인지 창궁검제인지 하는 놈들.”
“……?”
“내가 다 쓸어버려 줄 수도 있다.”
이 할매, 지금 진심이다.
X팔. 갑자기 졸라 무섭네.
조금 전에 짜증 냈던 것도 무지 후회되고.
“어험, 그럴 일 없다고…… 어험,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저도 다 계책이 있어요. 그러니 염려 마시고, 저기 뒤로 안전한 곳에 가서서 제가 어떻게 적들을 굴복시키는지 구경이나 하세요. 향이 다치지 않게 보살피는 거 잊지 마시고요. 이건 우 여협이 말한 전장의 장수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무적할매가 피식 웃는다.
“녀석, 그래도 조금은 사내다워졌네. 나한테 명령이란 걸 내릴 줄 알고. 알겠습니다, 천주님. 명에 따르겠습니다, 호호호.”
무적할매는 그렇게 초향과 위화궁 여고수들을 데리고 후진으로 빠졌다.
당연하다는 듯 사부 옆에 자리를 잡는 그녀였다.
그나저나 적진도 그렇고 아군도 그렇고,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진열을 정비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도 한몫하는 중이고.
그때였다.
저 멀리서 엄청난 인파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충 봐도 이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대단한 고수라 할 만한 자는 없지만, 그래도 그 숫자만으로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들을 이끌고 온 녀석이 급히 나에게 달려왔다.
“큰형님! 아이쿠. 죄송합니다, 천주님!”
“아니야. 됐다. 일은?”
“네.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내가 시킨 일을 하고 온 것인데.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우각회의 회주 녀석이다.
의제의 의동생들 중 한 명이고.
의제와 한해북, 왕대가 일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각회 녀석들이 거의 다치지도 않고 멀쩡한 모습으로 온 것을 보니 말이다.
그렇게 우각회 회주 녀석이 물러난 뒤, 또 내 눈에 들어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차마 나에게 아는 채는 못 하고, 슬쩍슬쩍 나를 곁눈질로 보며 더없이 자랑스럽다는 미소를 짓는 녀석들이다.
우리 현화문에서 새로이 조직한 현화용봉대(玄化龍鳳隊).
화양문의 오중체, 청죽도림 표필공, 칠성검문 기월제, 아미파 임하령, 검각 반종려, 황룡회 장위지, 삼악파 허시, 독고검문의 사마준 등 우리 현화문과 동맹 문파의 젊은 고수들로 조직된 무력대다.
각이 딱 잡힌 자세로, 젊은 녀석들답게 사기충천하여 전열의 가장 선두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보고 있는 내가 다 든든하다.
그들 뒤로 청죽도림, 칠성검문, 검각, 삼악파, 독고검문에서도 각기 문파의 수장들이 문의 고수들을 죄다 이끌고 와 있다.
아! 또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냥 보고 싶지 않아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있다.
한해북의 대두장.
그 대두장의 장주와 소장주가 대두장과 복건의 고수들을 어마어마하게 이끌고 참전했다.
선두에 선 두 부자의 엄청난 대두가, 단연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고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들은 어떻게?
고작 네 명이다.
혼자 들기도 힘든 엄청난 크기의 깃발을 들고, 후미에서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을 꾸역꾸역 제치고 앞으로 나오고 있다.
어떻게든 진영의 선두에 서서 적들과 싸울 각오를 다지고 온 듯하다.
후미에 있던 이들이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오려고 하자, 몇몇 사람들이 짜증을 내고 화도 내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곧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의 여섯 글자를 보자마자, 조용히 그들 네 사람에게 길을 내주었다.
깃발에 적힌 여섯 글자는 다름 아닌.
‘현화구산사협(玄化九山四俠)’이었다.
구산사괴 녀석들,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고맙군.
네 사람은 그렇게 꾸역꾸역 결국 진영의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자, 잔뜩 긴장하면서도 비장한 얼굴로 적들만 보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결국 나와 눈이 마주친 구산사괴.
화들짝 놀라며, 또 감개무량한 얼굴로 울먹이다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후로는 다시금 정면을 주시했다.
많이 쑥스러운 모양이다.
감동도 크게 받았고 말이다.
언급한 이들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낯선 얼굴들이다.
그래도 그냥 고마웠다.
내 부름에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사람들 아니겠는가.
그래서 기필코.
오늘의 싸움 역시 완벽한 승리를 가져가야 한다.
물론, 난 그럴 것이다.
난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결의를 다지며 시선을 적진으로 향했다.
나란히 앉은 천수신권과 창궁검제.
여유롭다.
웃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더 짙은 미소를 짓는다.
내가 만반의 준비를 했듯, 그들 역시 철저히 준비했으리라.
대충 아군과 적군 모두 진열을 갖추었고.
본격적으로…… 어?
창궁검제 곁을 떠나지 않던 고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창궁검제에게 무언가를 말하는가 싶더니.
오십여 고수들을 이끌고 전장의 중심으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무림맹이 기선 제압용으로 쓸 칼을 저들로 결정한 듯합니다.”
내 옆에 있던 처호가 말했고, 곧바로 처선이 그 말을 뒷받침했다.
“본 천에서는 천주님께서 직접 조직한 현화용봉대를 내보내는 것이 접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게 좋겠군.”
첫 싸움이고 첫 대결이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긴장된 얼굴이었다.
이미 창궁검제의 최측근으로 보이는 고수들은 전장의 중심으로 나와 우리 측 사람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는 내가 그들을 상대로 누굴 내보낼지 긴장된 얼굴로 또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 시선이 닿는 아군 측 고수들 모두가 기대와 초조함이 교차하는 얼굴들이었다.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큰 싸움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무인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기회이며 가문의 영광이기에, 모두가 자신이 나서길 간절히 바라는 것일 테다.
하지만 내 결정은.
“현화용봉대!”
“추우우우우우우웅!”
내 부름에, 단숨에 사기가 하늘을 꿰뚫을 정도로 충천한 대주 오중체를 위시한 현화용봉대 대원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나아가라! 나아가 우리 현화천의 위대함을 증명하라!”
“조오오오온 며어어어어엉!”
우리 현화천의 현화용봉대 삼십 인.
우리 현화천의 현화용봉대 삼십 인.
그들이 이번 싸움의 위대한 첫 번째 승리를 위해 당당히 전장의 중심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