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가장 먼저 천무휘가, 그다음에는 예지가.
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쾅!
미치광이 늑대들이 우글거리는 중심으로 용과 봉황이 뛰어든 격이다.
그야말로 이건 무지막지했다.
적들을 마구잡이로 쓸어버리는 천무휘와 검에서 십여 장에 달하는 화기를 뿜어대며 적들을 섬멸하는 우리 예지.
둘만 무지막지한 게 아니다.
적들 역시 괴물들이었다.
혈광폭증단 때문인지, 주화입마에 의해 미쳐 버린 건지.
자기 바로 옆에 있는 동료가 불에 타고 목이 날아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천무휘와 예지를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마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네 이놈들!”
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형환위를 숨 쉬듯 펼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나타났다 하며 그냥 수십 명의 무시무시한 마두들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나갔다.
유령신검이다.
“나도 있다, 이놈들아!”
극양신장이다.
예지의 화기와 극양신장의 양강은 다르다.
극양신장의 쫙 펼친 두 손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이건, 광마일기에 나온 그대로다.
그냥, 그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네 사람 모두 단신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문파의 고수를 모두 이끌고 오기에는 시일이 촉박해 자신들만 먼저 온 것 같다.
그리고 네 사람이 전장에 뛰어들어 미친 듯 적들을 섬멸할 즈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만검존이 무려 극마의 고수 두 명의 목을 베었다.
실로 엄청났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극마의 고수 둘은, 마지막에 동귀어진의 수법까지 쓰며 만검존의 만검을 깨부수려 했다.
하지만 만검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엄청난 폭발은 오히려 극마의 고수 두 사람의 몸만 천참만륙 내어 시체도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끄아아아아아아악!”
왕대가.
우리 왕대가.
마교의 삼교주였던 혈수마종의 몸통을 통으로 터뜨려 버렸다.
그와 왕대가 마지막으로 부딪힌 자리는, 그곳을 중심으로 무려 일백 장이 송두리째 터져 나갔다.
한참 천무휘와 예지, 유령신검, 극양신장과 싸우던 마두 쉰 명가량이 그 폭발의 여파로 목숨을 잃었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폭발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찐 아수라혈천신공이 짝퉁을 응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슬쩍 옆을 보았다.
우리 구양봉막 노인네, 운다.
그것도 펑펑 운다.
감격이 극에 달아 우는 울음이었다.
이 양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라.
난 내 뒤에 늘어선 수천의 현화천 고수들을 향했다.
“보아라!”
“충!”
내 한마디에 거의 일만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일제히 답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장관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다.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일만에 달하는 이들 모두가 뜨겁게 달아오른 피를 주체하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영웅은 칼이 아닌 심장으로 싸운다. 저들의 타오르는 심장이 보이는가? 느껴지는가?”
“충!”
“나가라! 극악무도한 마인들에게 현화천 영웅의 뜨거운 심장을 증명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일만 명에 달하는 무인들.
지금도 계속 중원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는 무인들.
그들 모두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일말의 두려움조차 느낄 수 없는, 어쩌면 혈광폭증단을 복용한 마인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렇게 적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곧이어.
콰콰콰콰쾅!
펑펑펑펑!
채채채채챙!
“으아아악!”
“와아아아아!”
사방에서 폭발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비명과 함성이 난무하였다.
수하들이 열심히 싸우는데 어찌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한 명의 아군이라도 살리려면, 발에 부리나케 뛰어다녀야 할 테다.
“금방 다녀올 테니 그 잠깐 사이 늙어 죽지 마시오.”
나는 구양봉막을 향해 그리 말한 후 곧바로 몸을 날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구양봉막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눈물만 연신 흘려 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고정한 곳을 봤더니.
와! 우리 왕대. 나쁜 놈들 제대로 혼내 주고 있다.
만검존과 천무휘, 예지, 극양신장, 유령신검도 당연히 독보적이었지만, 왕대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오늘은 왕대의 독무대라 할 만했다.
괴물 같은 왕대에게 마인들은 유독 눈깔이 뒤집혀 달려들었고.
왕대는 그렇게 끝없이 몰려드는 무지막지한 마인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짓이겨 버렸다.
우리 왕대 최고다.
*
정오에서 조금 지난 시각에 시작한 마월성과의 싸움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끝났다.
완승이다.
송암 도장과 무당파 그리고 아미파는 다음 날 현장에 도착했다.
그날 밤에는 황룡회의 본대 역시 도착했고, 가장 먼 거리였던 화양문의 본대는 하루가 더 지나 주소수와 세 아들이 이들을 이끌고 왔다.
싸움은 끝났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혹은 소식을 접했지만 이미 먼 길을 왔기에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까지.
싸움의 수습을 하는 며칠 동안 그렇게 계속해서 천하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몇몇 마인들이 도주했지만, 사흘이 되기도 전에 모두 추살하거나 잡혀 와 처형했다.
우리의 피해는 피해라 할 것도 없었다.
죽고 크게 다친 이들이 수십 명이나 됐지만, 싸움에 참여한 일만 명가량의 숫자를 생각한다면 완승이 맞았다.
누가 뭐래도 상대는 마교의 고수들과 마두 그리고 대마두라 불리는 괴물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 싸움의 일등공신은.
뭐, 내가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왕대를 이번 싸움의 최고 영웅이라 치하하며 치켜세웠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날부터 왕대를 이리 불렀다.
시산고존(屍山高尊).
시체들의 산 위에 홀로 우뚝 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왕대가 그날 얼마나 무시무시한 싸움을 벌였는지, 별호를 통해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그의 신위가 꽤 충격적이었나 보다.
착하고 순진한 우리 왕대의 실체를 사람들이 모르기에 그리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뭐, 좀 으스스하기도 하지만 또 강해 보여서 난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마월성 싸움의 수습도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처호, 처선, 공손병을 임시 막사로 불렀다.
“무림맹주의 지금 표정이 어떨지 너무 궁금하군요.”
“이번엔 맹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죠.”
평소에도 진지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 진지했다.
난 그저 맹주의 똥 씹은 표정을 생각하니 재밌어서 그냥 던진 말인데, 처호의 반응이 그러했다.
내가 묻기도 전 처호가 말을 이었다.
“아마 이번 사태로 무림 전체의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림맹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만한 상황이니까요. 최소한 무림맹주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처호 선생?”
“첫째는 무림맹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아! 이번 일이 그렇게까지 큰일…… 아니죠. 맞아요, 처호 선생 말이. 그럴 정도로 큰일이었죠.”
“그렇습니다, 천주님. 마월성 싸움은 전 중원을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는 그들의 만행은 그 끝이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런 중차대한 일을 무림맹은 수수방관했으니까요. 아직 정보를 받진 못했지만, 무림맹 내에서도 큰 반발이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뭐죠?”
“무림맹을 보존하는 대신, 맹주 스스로 맹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지요.”
“아! 그렇겠네요. 그렇게 해서라도 무림맹을 유지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남궁비혁이라면.”
“하지만 두 번째 결단으로 일을 좋게 마무리 짓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월성은 우리 현화천에서 무너뜨렸고, 그렇지 않아도 우리에게 쏠렸던 무림의 여론은 더더욱 우리에게 힘을 실어줄 테니까요. 맹주직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쉬이 용서해 줄 만큼 무림인들은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정말로 무림맹이 해체하게 될 수도 있겠군요. 남궁비혁은 남궁세가로 돌아가게 될 테고요.”
“큰 이변이 없는 한, 저는 그렇게 추론하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어 더 커졌다.
물론 나와 우리 현화천 그리고 동맹 문파에 좋은 쪽으로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처호뿐만 아니라 처선과 공손병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어쩌면 정말로 무림맹이 해체할지도 모르겠다.
*
“마 형.”
“어? 천 형, 여기서 나를 기다렸던 거예요?”
“네.”
처호, 처선, 공손병과 회의를 마치고 나왔다.
밖에 천무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
엄청난 공을 세운 놈 표정이 왜 저런지 모르겠다.
누가 뭐래도 이번 마월성 싸움의 일등공신은 왕대고, 그다음을 말하자면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나는 천무휘가 제때에 와줘서 완벽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나를 대하는 녀석의 얼굴이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하다.
이 녀석 정말 왜 이래?
“미안해요, 마 형.”
“네? 천 형,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화산파…….”
그렇다.
마월성,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섬서와 사천, 호북의 중간 지점이다.
가깝기로 따진다면 섬서 화산파에서 가장 가깝다.
그런데 화산파에서는 단 한 명의 무인도 보내오지 않았다.
나야 당연히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실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무휘는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장문인과 장로님들을 설득했지만, 무림맹의 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고 하여……. 정말 미안해요, 마 형.”
이 녀석. 저러다 울겠다.
난 녀석을 향해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툭.
어깨를 조금 세게 쳤다.
“난 또 뭐라고, 하하. 순간 식겁했잖아요, 천 형! 아이고.”
내가 실없이 웃으며 저리 말하자, 천무휘가 주눅 든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난 천 형이 나와 의제, 그리고 한 형 몰래…… 어험. 그러니까 내 말은…… 어험. 어험. 그런 일 없죠?”
“뭐, 뭐가요?”
“우리 예지랑 각자 사문으로 돌아간다고 해 놓고, 둘이서만 따로 유람 다니고 꽁냥꽁냥…… 둘만 좋은 시간 보냈다면서 둘이 오늘부로 일일이라느니 사귀느니 어쩌느니 그 말 하는 줄 알았잖아요.”
“아니에요! 아! 진짜 그건 아니에요. 저 정말 화산에 계속 있었어요.”
“하하,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천 형이 우릴 배신할 리가 없죠?”
“그, 그게…… 그런데 마 형.”
“네? 왜요?”
“그게 말이죠. 남녀 사이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 그건 또 장담하기가…….”
“야! 의제! 한 형! 이리 와! 오늘 천무휘 다구리 한판 뜨자!”
그날 우리는 오랜만에 다섯이 모여 밤새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맛난 것도 먹고, 술도 슬쩍 곁들이고.
나와 의제, 한해북, 천무휘, 그리고 우리들의 첫사랑 예지까지.
오랜만에 정말 훈훈하고 행복한 시간……은 개뿔!
우리 네 사람은 예지를 사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을 밤새 이어 가야만 했다.
*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마월성 싸움이 있고 몇 달이 흐른 시점이었다.
마두들을 한꺼번에 소탕하고 난 덕분에 무림은 더더욱 평온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처호, 처선, 공손병이 지난날 나에게 했던 그 추측 말이다.
무림맹이 해체하게 될 것이라는 말.
그 일이 보이지는 않지만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 석 달 전 무림맹주 남궁비혁이 맹주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공손병의 보고에 의하면, 무림맹의 안과 밖에서 남궁비혁에 대한 비난과 무림맹 해체에 대한 원성은 더더욱 거세어져 가고만 있다고 하였다.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해체 수순을 밟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것이라 생각했다.
처호, 처선, 공손병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천주님.”
“무슨 일인데 다들 놀란 얼굴들이에요?”
“소림사가…… 천수신권이 움직였습니다.”
“네? 갑자기요? 무슨 일인데요?”
“무림맹의 해체를 앞두고 소림사가 천수신권을 맹주로 추대했습니다.”
“아! 그게…… 그러면…… 일이 틀어졌네요?”
“그렇습니다. 소림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지금까지 무림맹 해체를 주장하던 인사들이 죄다 소림사와 천수신권 편으로 붙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나섰습니다.”
드디어.
천수신권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