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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222화 (222/245)

222화

“아버지, 우 여협. 향이가…… 향이가…….”

내가 서둘러 다가갔다.

“향이가 왜?”

수라섬전도의 대결보다 향이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수라섬전도와의 대결을 앞둔 내가 사색이 되어 다급히 묻자, 오히려 맹소강과 만검존 그리고 무적할매가 더 놀란 얼굴이 됐다.

“일단 진정하시지요.”

만검존이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어디 그게 쉽게 되겠나?

만검존이 맹소강을 향해 물었다.

“초향 아가씨가 어찌 됐다는 말이냐?”

“울어요.”

내가 물었다.

“응? 울어? 누가 잡아가고 그런 건 아니지?”

다시 무적할매가 끼어들었다.

“쯧쯧, 이제는 제법 똑똑해진 줄 알았더니, 마 도사는 여전하구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봐라. 귀신이 아니고서 이 자리에서 어찌 향이를 잡아갈 수 있단 말이냐? 아니, 유현 도사님께서 계시니 설마 그것이 귀신이라도 자리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해코지하지 못할 것인데.”

아! 이건 무적할매 말이 맞다.

여전히 나를 향해서 비꼬듯 말하는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맞는 말이다.

귀신이 아니라 귀신 할아버지가 와도 이 자리에서 향이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제야 놀란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래서 차분히 맹소강을 향해 물었다.

“향이가 왜 울어?”

맹소강도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또박또박 나를 향해 말했다.

“아저씨가 걱정돼서 울어요. 아저씨가 다칠까 봐 대결을 못 보겠다고 저기 뒤에서 혼자 계속 울고 있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 때문에 우는 것이었다.

그냥 아이가 우는 게 무슨 대수라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향이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수라섬전도의 대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아니, 그걸 넘어 다시는, 다시는 절대로 향이가 울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또 나 때문에 울게 만든 것이다.

내가. 내가 또 우리 향이를 울리고 말았다.

난 주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또 향이에게만 집중하자, 그제야 작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소리 죽여 흐느끼는 향이의 울음이 귀로 들려왔다.

그곳으로 향했다.

국인경의 위로를 받으며 홀로 웅크려 울고 있는 향이.

“향아.”

나직한 음성으로 향이를 불렀다.

“몰라.”

쳐다도 보지 않는다.

대결을 앞둔 나에게 자신의 눈물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리라.

난 향이의 어깨를 잡아서 몸을 천천히 돌려 나를 향하게 했다.

그런 후.

“맹세할게. 다치지 않고, 죽지도 않고, 꼭. 반드시.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올게. 믿어 줘.”

그제야 숨죽여 울던 향이가 오열을 토했다.

“으아아앙! 앙앙앙. 약속 지켜야 해. 엉엉엉.”

“응. 그래. 꼭 약속 지킬게.”

난 향이를 몇 번 더 토닥여 준 후에야 몸을 돌렸다.

향이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지만, 난 천천히 걸어 대결장으로 향했다.

향아! 걱정하지 마.

꼭 이길 거야. 그래야 네가 울지 않을 테니까.

내가 이겨야, 광마 시절처럼 네 팔이 잘리고, 온몸이 난도질당하지 않을 테니까.

나 때문에 피범벅이 되어 땅을 구르고, 적들 앞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지 않게.

내가 이겨야 네가 그렇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이 싸움, 꼭 이길 거야.

너를 위해서라도.

기억에는 없지만, 광마일기에 적힌 향이가 떠올랐다.

마치 눈앞에 그러한 나날이 그려지는 듯 스쳐 지나갔다.

나를 구하기 위해, 나를 살리기 위해 향이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오늘의 싸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앞으로 있을 싸움에서도 모두 이겨야 한다.

그것이 다시는 향이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다!”

“마 대협 만세!”

“수라섬전도도 나왔다!”

“수라섬전도 능치 대협이 이긴다!”

십만 명은 족히 넘을 것 같다.

실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였다.

그들이 질러대는 함성이 지축을 흔드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수라섬전도가 대결장의 중심으로 나섰다.

나와 열 장의 거리를 두고 멈추어선 수라섬전도.

여유롭다. 은은한 미소까지 짓고 있다.

사 년 전, 그 비굴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내가 그러했듯, 그 역시 단단히 준비하고 온 모양이다.

슬쩍 수라섬전도 저 멀리 뒤에 있는 무림맹 진영을 보았다.

무림맹주도 역시나 승리를 확신하는 듯, 미소를 짓고 있다.

아니, 나와 눈이 마주친 맹주는 노골적인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오늘 내가 죽을 것임에 이변은 없다는 확신이 그 비웃음 속에 담겨 있었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와라, 마악치.”

대기를 흔들던 함성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수라섬전도의 한마디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난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답했다.

목숨을 건 나와 수라섬전도의 대결이 시작이었다.

수라섬전도가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이 눈으로까지 보였다.

맹주의 도움을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사 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닌 듯했다.

실로 엄청난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릉.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이내, 그 먹구름 사이로 크고 작은 뇌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수라섬전도의 수라는 아수라(阿修羅)의 수라에서 따온 말이다.

그리고 섬전은 말 그대로 섬전(閃電), 천둥과 번개의 불꽃을 의미한다.

수라섬전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싸움,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것을.

동시에 대기와 하늘로 통하는 그의 기운이 더욱 강렬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수많은 군중들 사이로 두려움에 잠긴 경악성과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올 정도의 정말 무시무시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기형도를 손으로 잡았다.

천천히, 다시 천천히 그 기형도를 하늘로 치켜세웠다.

놈의 의도를 알 것 같다.

일 수(一手).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장을 볼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기형도 끝과 하늘에 몰린 먹구름, 그리고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는 섬전의 기운이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와! 씨X.

무시무시하다.

진짜 준비 제대로 했네.

광천마제 시절의 자신을 몇 수나 뛰어넘은 수라섬전도다.

저 정도 힘이라면, 무림맹주도 쉬이 그와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지금, 수라섬전도는 일 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나도 그래야 한다.

모든 것을 걸어, 놈을 죽인다.

“잘 가라, 마악치.”

하늘로 뻗었던 수라섬전도의 기형도가 일직선을 그리며 땅으로 그어졌다.

동시에 하늘에서,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에서 아수라의 형상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천둥과 번개가 일시에 몰아쳤다.

오로지 한 곳.

한 사람.

나에게 그 수십 다발의 벽력이 한 번에 내리꽂힌 것이다.

나는 여전히 검집 안에 들어가 있는 광천검의 손잡이, 검병(劍柄)을 잡았다.

수라섬전도를 노려보며, 그렇게 달렸다.

섬전은 극쾌(極快)다.

천하의 그 어떤 자가 빛보다 빨라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을 피할 수 있겠는가?

응, 있다.

내가 그렇다.

현화승천신공에 만검존의 만검까지 더해진 나.

나는 초극쾌(超極快)의 시간으로 달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내가 달리기 시작하자, 내가 지나온 자리로 연신 하늘에서 몰아친 벽력이 땅으로 꽂혔다.

벽력의 힘이란 것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로써 나를 맞힐 수는 없다.

난, 빛의 속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나는 달렸고,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벽력들은 고스란히 내가 지나간 자리만을 때렸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수라섬전도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벽력으로 나를 맞히지 못한다는 분노가 고스란히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통해 드러났다.

이제 열 발.

아니, 아홉 발.

다시 여덟.

일곱…… 한 걸음 남았다.

그리고 난, 그제야 광천검을 출검했다.

쉬이이익.

초극쾌의 속도로 검집을 벗어난 광천검.

그것이 곧바로 수라섬전도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역시 지난 사 년 동안 놈은 놀고만 있지 않았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하늘에 몰려 있는 먹구름이 아닌, 그의 기형도에서 직접 섬전이 터져 나와 나를 덮쳤다.

정말 무지막지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놈은 지난 사 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 목숨까지 건 각고의 고생을 모두 이겨 내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훌륭했다.

하지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쾅!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설명은 길었지만, 결론적으로 수라섬전도는 이 초식을 발휘했다.

나는 일 초식만을 썼다.

그리고 승부가 갈렸다.

엄청난 폭발은 그야말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폭발이 모두 사그라든 후에도, 그 여파로 땅이 쿠르르 떨리는 여진이 있을 정도였다.

나와 수라섬전도는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땅.

분명한 폭발의 여파를 보여 줬다.

수라섬전도가 선 자리의 뒷부분 땅들은 멀쩡했다.

반대로.

내가 선 자리의 뒤는 부채꼴 모양으로 촘촘히 심어 놓은 벽력탄이 일제히 터진 꼴이 되어 버렸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농사에 쓰는 소가 아닌 어디서 괴물을 소환해 부채꼴 모양의 밭고랑이라도 파 놓은 줄 알 테다.

부채꼴 모양으로 파인 땅은, 내가 선 자리에서 일백 장 너머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만큼 수라섬전도와 나 사이에서 벌어진 단 한 번의 격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였다.

하지만 땅들은 폭발의 여파만을 보여 줬지, 이번 싸움의 승패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고통에, 어쩌면 무너져 버린 자존심 때문일까?

수라섬전도 능치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찢기고 까여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보이진 않지만, 그의 내상은 이미 그가 산 사람이 아님을 나에게 전해 주고 있었다.

“잘 가시오, 수라섬전도 능 대협.”

툭.

내 말이 끝나자 수라섬전도가 그렇게 힘없이 고꾸라졌고, 곧 그의 목이 그의 육체에서 분리되어 땅을 굴렀다.

단 일 초식만으로 수라섬전도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내가.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마악치 대협이 이겼다!”

“현화지존께서 수라섬전도를 꺾으셨다!”

“와아아아아!”

“현화지존 만세!”

“현화문 만세!”

저 사람들.

나를 향해 현화지존이라며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말이다.

선도연가, 몽중방, 천검문, 숭무문, 동산파 사람들이 그 틈에 보였다.

팔적산 사건 해결 후 유령신검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봤던 내 수하들 말이다.

그들 말고도 많은 이들이 군중들 틈에 섞여 현화지존 만세를 외쳤다.

많은 이들이 나를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모두 처호, 처선, 공손병 덕분이다.

그들의 공은 나중에 제대로 치하하기로 하고.

난 시선을 무림맹 측을 돌렸다.

무림맹주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웃는다.

웃는데 눈이 실룩거린다.

억지웃음을 지으려니 눈 주위의 신경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다.

맹주가 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가짜 박수까지 보낸다.

늙은 구렁이.

속을 한 번 더 뒤집어 줘야겠다.

난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중심에 서서.

다시 여전히 시선을 무림맹주에게 고정한 채.

목소리에 내공을 가득 실어 외쳤다.

“한 달 뒤!”

내 음성이 터져 나가자 엄청났던 함성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신축(辛丑)년 경자(庚子)월 경자(庚子)일, 이곳 십간산의 첫 자락 탄성산에 새로운 문파를 개파할 것입니다! 모든 무림 동도를 개파식에 초대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현화지존 만세!”

“와아아아아!”

극양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내공이 실린 그의 음성이었다.

“우리 화양문은 꼭 참석하겠소!”

유령신검의 목소리도 들렸다.

“황룡회가 빠질 수는 없지!”

곧이어 무당의 장문인과 아미파의 장문인까지 깊은 내공을 실어 선언했다.

“무당도 함께하겠소!”

“아마도 꼭 참석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여기저기서 나의 승리와 개파식을 축하하는 함성과 선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내가 돌아왔다.

이번엔 광천마제가 아닌 현화지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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