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221화 (221/245)

221화

소림사는 숭산에 있다.

숭산은 정주에 있다.

정주는 하남에 있다.

무림맹은 낙양에 있다.

낙양은 하남에 있다.

현화문은 갑돌산에 있다.

갑돌산은 허창에 있다.

허창은 하남에 있다.

현화문은 지부도 있다.

현화문 하남 지부다.

현화문 하남 지부는 탄선상 자락에 있다.

탄성산은 허창에 있다.

십간산에서 고작 십 리(3.9킬로미터) 거리다.

우리 갑돌산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다.

당연히 하남 지부 역시 허창에 포함되고, 허창은 다시 말하지만 하남에 있다.

소림사, 무림맹, 그리고 현화문 하남 지부가 뒤집어진 품(品) 자의 형태로 모두 하남에 자리한다.

광천마제 시절과 같은 형태다.

단지, 사패천이란 이름을 버리고 현화문 하남 지부라는 이름을 쓴 것만이 다르다.

나와 의제, 한해북, 천무휘, 예지, 왕대, 거기에 처호, 처선, 공손병이 그곳으로 향했다.

갑돌산 아래에 이미 달호가 말 여러 필과 화려한 마차 몇 대 그리고 마부와 호위 무사들까지 대기시켜 놓았다.

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그렇게 편히 현화문 하남 지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 사 년 사이 신도읍으로 변모했다.

논과 밭을 갈아엎어 길을 닦고 건물들을 세웠다.

처호의 말마따나 며칠 뒤 벌어질 나와 수라섬전도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대로는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만리상단의 상단주 연흥국이 확실 돈을 버는 데에는 천잰가 보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 탄성산 일대에 투자한 금액은 이미 뽑고도 남았을지 모르겠다.

뭐, 이건 시작이다.

내가 어떠한 길을 가느냐에 따라, 만리상단의 금고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새로 지어진 도읍에 들어서자 빼곡히 밀집해 있던 사람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마차 안으로 들렸다.

탄성산에 지어진 아흔아홉 채의 전각, 그 대장원의 주인일지 모른다는 소리들이었다.

맞다.

내가 그곳의 주인.

그렇게 우리는 도읍으로 들어선 후에는 천천히 이동해 현화문 하남 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현판은 걸려 있지 않았다.

개파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개파는, 역시나 당연히 내가 수라섬전도를 꺾은 후에 정식으로 개파식을 열어 달게 될 것이다.

척!

처처처처척!

“저들은 누구야? 수문 무사라기에는 분위기며 무공이며 너무 대단한 자들인데?”

내가 탄 마차에는 나와 예지 그리고 처선이 함께였다.

“독고검문에서 보내온 검객들입니다.”

독거검문 기억하는가?

독거검문의 양자로 들어가 사마준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된 된 손가락 아홉 개의 구지개.

그가 소문주로 있는 곳 말이다.

처선이 설명을 이었다.

“무당과 화양문, 황룡회 등 많은 곳에서 고수들을 보내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식 개파를 하지 않았고, 세상의 관심을 받을 때가 아니라 소수의 정예 무사만을 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중 천하에 덜 알려졌지만, 한 명 한 명 뛰어난 무위와 예법을 익힌 독고검문의 검객들을 선택하였습니다.”

“오! 잘했군. 아주 잘했어.”

“감사합니다, 주군.”

독고검문의 최정예 오십 명만을 차출하여 텅텅 빈 지부를 몇 달 동안 지켰다고 한다.

독고검문도 나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고.

더불어 정식 개파와 동시에 중원 전역에서 고수들이 몰려올 것이라고도 했다.

아니, 이미 이곳에 몰려든 수많은 군중 틈에 그들이 섞여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독거검문 검객들의 절도 있는 예를 받으며 지부의 정문을 통과했다.

대부분이 그렇듯 지부도 내원과 외원으로 나누어졌다.

외원에도 몇몇 독고검문 검객들이 기감에 잡히고 눈에 보였다.

그렇게 다시 내원으로 들어섰다.

더 이상 독고검문에서 온 검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 저분들은…….”

“구음신녀문에서 고수 열 명을 보내왔습니다. 따로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주소수 여협이 직접 의사를 밝혀 허락하였습니다.”

“음, 잘했어. 그런데 그들만이 아닌데?”

“네. 석 달 전 아미파에서 스무 명의 고수들을 파견해 내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화궁의 여고수 열다섯 명에게도 내원의 경계를 맡겼습니다.”

“무적할매, 아니 우 여협도 와 있어?”

“네. 열흘 전에 도착해 주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향이는?”

“초 아가씨도 함께 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사부님도 와 계시겠네?”

“네. 그렇습니다. 귀정사의 작은 사부님과 만검존, 그리고 그 가족분들도 와 있습니다.”

사 년 만이군, 만검존.

모르긴 몰라도 만검존은 작은 사부와 사 년을 함께 보내며 엄청난 무의 성장을 이룩하였을 것이다.

아니, 벌써 느껴진다.

저 멀리 내원 깊은 곳에 있음이 감지되는데, 그냥 용 한 마리가 떡하니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느낌이다.

아! 똬리를 풀었군.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기감에 잡혔다.

나와 예지, 처선도 마차에서 내렸다.

다른 녀석들도 마차에서 내렸고.

곧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부, 작은 사부, 무적할매, 초향, 만검존과 그 부인 그리고 소강이까지.

우리는 그날 늦은 시간까지 모두 함께하며 즐거운 해후의 시간을 가졌다.

*

작은 사부.

“악치야, 노파심에 묻는 건데.”

“뭘요?”

“설마 아니지?”

“그러니까 뭐가요?”

“하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악치지만, 그래도 이 작은 사부 체면에 구김이 가는 일을 할 리가 없지. 그렇지?”

“설마 제가 수라섬전도한테 깨질까 봐 그래요? 지금 의심하고 있는 거죠?”

“아니다. 아니야. 난 널 믿는다.”

아니, 이 양반이 의심할 사람을 의심해야지.

내 경지를 뻔히 보고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작은 사부는 끝내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나 보다.

“하하, 악치야. 그러지 말고 이 작은 사부가 몇 수 지도해 주랴? 아니, 그냥 지금까지 익힌 거 복습한다고 생각하고.”

“아이고, 사부님. 안 보여요? 지금 제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인다. 보여. 그래도…… 늙어서 그런가. 어째 계속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냐. 허허허.”

“염려 뚝. 보여 드릴게요. 천하에 제대로 증명할 거예요. 제가 작은 사부님의 제자 마악치라는 사실을.”

“그래, 그러면 됐다. 하하하하! 그런데 악치야, 방심하면…….”

“안 한다고요. 이길 거라고요. 쫌!”

“허허, 그래. 허허허. 그래야 내 제자지.”

우리 작은 사부, 날이 갈수록 걱정만 늘어 간다.

다 날 사랑해서 하는 걱정이다.

그래서 고마웠다.

*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내가 도와줄까?”

“아니야, 됐어. 나도 할 수 있어. 봐 봐, 됐지?”

“와! 예지와 인경이는 천잰가 보다. 둘 다 금방 익히네? 나는 이거 익히려고 열흘 넘게 고생했는데.”

“다음 동작도 가르쳐 줘.”

“저도요.”

“응. 우리 맹가금나수 이 초식은 이렇게 하는 거야.”

“오! 이 초식은 훨씬 더 어렵네?”

“보기에는 어려운데, 향이 너라면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인경 누이도 금방 익힐 거고. 아니, 손동작을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동작 그만!”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초향과 맹소강 그리고 국인경.

둘이 뒤뜰에서 금나수를 수련 중이다.

아니, 맹소강이 가문의 금나수를 초향과 국인경 전수해 주는 중이다.

그런데 맹소강 이 배신자 녀석!

감히! 네가 감히!

우리 향이 손을 잡아?

“어? 낭군님, 언제 왔어?”

향이가 반갑게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마 도사님, 안녕하세요.”

국대 인경도 깍듯하게 인사했다.

난 회귀 후 처음으로 향이의 말을 무시하고 곧바로 맹소강에게로 다가갔다.

“마 아저씨 오셨어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녀석 밝게 인사한다.

“방금…… 방금 어험, 뭐 했냐?”

우리 향이 손잡은 것을 따끔하게 혼내 주려고 했는데.

빤히 쳐다보는 향이와 국인경, 그리고 해맑은 표정의 소강이 얼굴을 보니, 말이 잘 안 나왔다.

“금나수 수련 중이었어요.”

“금나수 수련하는데, 어험. 그러니까…… 꼭 손까지 잡을 필요가…… 어험. 어험.”

뭐지? 왜 내가 죄를 짓는 기분이지?

아니나 다를까.

향이가 도끼 눈을 뜨고 손을 허리에 올리며 나와 소강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낭군님, 금나수 수련하는데 손을 잡지 그럼 다리를 잡아? 오늘 우리 낭군님 조금 이상하네?”

“아! 그, 그게…… 내 말은…….”

아! 내가, 내가 말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 향이와 맹소강 녀석이 잘되길 기도하고 도와줘야 하는데.

휴우. 막상 우리 향이를 소강이 녀석에게 주려니 막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나와 같은 심정이리라.

그래도 어쩌랴? 다른 놈에게 주느니 차라리 소강이 녀석에게 주는 게 나은데.

“어험, 그러니까 내 말은…… 동작을 취할 때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는 걸 지적해 주는 거야.”

“오, 그래? 역시 우리 낭군님이 고수라니까, 헤헤. 더 알려 줘.”

“어? 응. 그러니까 손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금나수의 핵심은 상대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손동작을 취하는 거야. 이렇게. 쉭. 쉭. 쉬쉬쉭. 봤지? 이렇게 하면 돼.”

“낭군님. 근데 방금 입으로 소리 낸 거야?”

“아닌데? 손에서 난 소린데?”

“입에서 난 것 같은데?”

“아니야. 손에서 났다니까. 인경이랑 소강이도 한번 해 봐.”

“네.”

“넵!”

세 아이들.

아! 우리 향이와 소강이가 벌써 열다섯 살이다. 국인경도 열두 살이고.

세월 한번 참 빠르게 지나간다.

“꺄르르르, 다음 동작도 알려 줘.”

“응. 맹가금나수 삼 초식은 조금 어려워. 잘 봐.”

“네, 오빠.”

“응. 어서 보여 줘.”

세 아이는 금세 나를 잊고 다시금 금나수 수련에 빠져들었다.

아! 내가 낄 자리가 없다.

난 아이들의 꺄르르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뒤뜰을 벗어나야 했다.

*

“사부님, 저는 착한 아이였나요? 아니면 나쁜 아이였나요?”

수라섬전도와 일전을 앞둔 바로 전날.

사부와 단둘이 꽃들이 만발한 화원에 나란히 앉았다.

“저 꽃과 같았느니라, 허허허.”

“저 머리 나쁜 거 알잖아요. 쉽게 설명해 주세요.”

“보기만 해도 행복했고, 언제나 향기로운 향이 나는 아이였단다.”

“너무 주관적인 거 아니에요? 제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착한 아이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뭐가 주관적이라는 것이냐? 세상 모두가 너를 착한 아이로 보았고, 또 그렇게 기억하고 있으니, 그게 또한 사실이고 진실 아니겠느냐?”

“사부님하고 저하고 단둘이 살았는데, 세상이 어떻게 제가 착하고 나쁜지 알아요?”

“그러니 네가 나의 세상이었고, 네게는 또 내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겠느냐?”

“아! 그건 또 말이 되네요.”

“허허허, 지금 친구들은 너를 어떻게 보느냐? 나쁜 친구라 생각하느냐? 아니면 착한 친구라 생각하느냐?”

“음, 제 속을 다 몰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저를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런 것이다. 너는 언제나 착한 아이고 착한 도사란다. 그리고 분명 미래에도 착한 사람일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하지 않는단다, 허허허.”

“사부…….”

사부의 말에 갑자기 울컥했다.

말을 이으면 괜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부는 그런 내 심정을 알았는지, 인자한 미소와 함께 말없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나 우리 손이 가장 따뜻하다.

*

그날이 왔다.

나와 수라섬전도의 대결.

이를 구경하기 위해 중원 전역에서 몰린 인파가 정말 끝도 없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화양문과 황룡회 그리고 무림맹까지.

미리 탄성산 기슭의 드넓은 평야에 좋은 자리를 차지해 화려한 천막을 치고 고수들을 배치해 세를 과시했다.

내가 산 땅은 아니지만, 내 땅이다.

만리상단의 자금을 지원받아 일대의 땅이 모두 우리 현화문에 속한 땅이 되었다.

내가 이번 대결의 당사자이기도 하고.

당연히 우리도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크고 화려한 천막을 쳤다.

대부분의 군중들은 그저 땅 위에, 또 산에 올라, 일부는 나무에까지 올라가, 나와 수라섬전도의 대결을 관찰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내게 충성을 맹세한 무문과 사람들 역시, 아직까지는 개파 전이기에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군중들 틈에 섞여 대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혹시나 했지만 수라섬전도는 역시나 우리 천막의 반대편, 무림맹 천막에 자리하였다.

뭐, 그가 무림맹 쪽에 앉아 있는 명분은 그냥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고.

상관없다.

오늘 그는 내 이름을 천하에 진동시킬 발판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 현화문의 천막에 모두가 와 있었다.

사부, 작은 사부, 무적할매, 만검존, 천무휘, 금예지, 의제, 한해북, 왕대, 처호, 처선, 공손병…… 어?

향이가 안 보이네?

맹소강이랑 국인경도 안 보인다.

뭐지?

설마…… 맹주 이 새끼,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때였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맹소강이 무엇에라도 쫓기듯 달려와 만검존과 무적할매를 향해 무언가를 다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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