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맹소강에게 우리 녀석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아주 환장을 한다.
어리지만 예법도 곧잘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부끄러워한다.
좀처럼 표현은 못 하지만 내 친구들을 바라보는 맹소강의 눈에서는 연신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층 더 즐거운 밤을 우리는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신가요, 맹 대협? 아무래도 이곳에 계속 머물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일전에 제가 말한 대로 산서에 있는 저희 작은 사부에게 가 머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마 도사님. 하지만 그전에 들를 곳이 있습니다.”
“어디를요?”
“무림맹요.”
순간이었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툭 하고 끊기고 말았다.
모두가 하던 동작과 말을 멈추고, 일제히 시선을 만검존에게로 향했다.
그의 부인은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참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불안한 예감이 든 것이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림맹에는 왜요?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만검존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답했다.
“알지는 못하지만 무림맹주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맹 대협! 하지만…….”
“해야 합니다. 잘못을 했으면,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알려 주어야지요. 제가 무림맹으로 찾아가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똑똑히 알려 줄 것입니다.”
죽이겠다는 소리다.
무림맹주를.
그것도 단신으로 무림맹을 쳐들어가 무림맹주를 죽인다는 소리.
휴우, 돌겠다.
“천하 각지에서 모인 고수들만 수천 명이 머물고 있는 곳이 무림맹입니다.”
“압니다.”
“당금의 무림육대고수라는 이들도 단신으로 무림맹을 상대로 홀로 싸울 수 없습니다. 그건…… 자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검존은 또렷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내 말이 틀렸다는 것이다.
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만검존이라면.
작은 사부나 무적할매에게도 불가능하다는 그 일을, 정말 어쩌면 말이다.
만검존 맹묵치는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무림맹 전체가 아니라, 무림맹주의 목을 베어 버리는 일에만 그 목표를 세운다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었다.
이 인간, 맹묵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자다.
만검이 얼마나 무서운 무공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
만검존이 그 일을 해낼 수 있건 아니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림은 여전히 무림맹의 편이고, 무림맹주는 모든 무림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만약, 만검존이 무림맹주를 치죄한다고 해도, 그는 곧바로 무림공적이 되어 천하 무림으로부터 쫓기게 될 것이다.
만검존을 말려야 한다.
그리고 그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불가능합니다.”
“믿지 않으시는군요.”
“네. 믿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갈 것입니다.”
“보내 드리지 않겠습니다.”
만검존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말을 이었다.
“나를 꺾으십시오. 그러면 보내 드리는 게 아니라, 아예 전력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음…… 마 도사님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크고 깊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
“나를 꺾으면 보내 드린다는 말이 우선이었습니다.”
“마 도사님.”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가 조금 전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만검존도 심각한 얼굴을 했다.
“진심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와 만검존은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후.
“내일 평치산에서 어떻습니까?”
만검존이 여전히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
밤새도록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예지가 나를 말렸다.
목숨을 건 싸움도 아니고, 만검존과 내 관계가 좋기에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그들도 안다.
하지만 내가 당연히 질 것이라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되면 만검존은 무리맹으로 갈 것이고, 무림맹을 홀로 상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새 다른 방법을 찾자고 나를 말리고 설득하고, 아무튼 그랬다.
유일하게 왕대만이.
“주인님이 이긴다. 주인님은 천하제일인이시다. 다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
이렇게 말하며 나를 응원해 주었다.
아! 씨X.
사실 나도 열라게 떨린다.
일단 지르긴 했는데, 이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평치산에서 다시 만났다.
남편의 비무고 아버지의 비무다.
만검존의 부인과 아들 소강까지 평치산을 올라왔다.
큰 싸움이 될 수 있기에, 부인은 예지가 그리고 소강은 왕대가 철저히 보호 중이다.
“마 도사님,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시는 게 어떻습니까?”
만검존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저리 말하고 있다.
응, 나도 그러고 싶어. 그것도 아주 간절히.
하지만 그보다 자존심이 더 상했다.
“끝까지 저를 무시하시는군요.”
“그,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마 도사님. 오해이십니다.”
“정녕 마음으로 그리 생각하신다면, 전력으로 저를 상대해 주십시오.”
만검존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하지만 이는 잠시에 불과했다.
그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심호흡까지 길게 하였다.
나를 제대로 상대할 생각인 것이다.
“태안의 맹묵치가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께 한 수 배우겠습니다.”
포권을 하며 말하는 맹묵치.
나 역시 그와 같은 자세로 비무의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곧, 만검존의 만검이 발동되었다.
세상이 멈추었다.
예지도, 왕대도, 의제와 한해북도 모두 멈추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곧 떨어질 것 같던 만검존 부인과 울먹이는 소강이 모두 그렇게 멈추었다.
귀는 다시 먹먹해졌고, 대기는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보였다.
만검존이 천천히, 아주 느리게, 너무 느려 하품이 날 정도로 그렇게 천천히 검을 뽑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지만, 심호흡을 했다.
떨렸지만 똥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만검은, 내가 한 수 위다.
만검존이 한 걸음을 모두 떼었을 때, 나는 비로소 현화승천신공을 끌어올렸다.
만검존이 두 걸음을 떼었을 때, 나는 만검을 발휘할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곧, 내 손이 느리지만 분명 허리춤에 매달린 광천검으로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 만검존.
놀라움이 가득한 얼굴을 하였다.
나는 여전히, 천천히 또 시선을 만검존에 고정한 채 광천검을 발검했다.
만검존이 세 발을 떼었을 때, 나 역시 한 발을 움직일 수 있었다.
보였다.
그리고 느껴졌다.
만검존의 기운이 어떻게 공간을 장악했는지, 그의 기운과 결합한 대자연의 기운이 고스란히 내 온몸을 통해 감지되었다.
그가 네 발을 떼었을 때, 나는 현화승천신공을 뿌릴 수 있었다.
그가 다섯 발을 떼었을 때, 나의 현화승천신공은 대기와 결합한 만검존의 기운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가 여섯 발을 떼었을 때, 나의 현화승천신공은 일부의 만검존 기운을 대기로부터 밀어낼 수 있었다.
그가 일곱 발을 떼었을 때, 비로소 나의 현화승천신공은 절반의 대기를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엄청난 성공이었다.
현화승천신공이라는 압도적 상승의 신공과 오 갑자가 넘는 내 내공 덕분이다.
아니,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나의 만검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만검존이 이룩한 경지보다 더 지고하기에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나와 만검존의 검이 서로 부딪힌 것이다.
만검존은 경악한 얼굴이었다.
언제나 평온하고 차분하기만 한 만검존이었지만, 만검을 극성으로 발동한 자신의 검을 내가 막아 내자 그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칼과 칼이 서로 부딪혔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와 만검의 빠름이, 소리의 속도를 수십 배나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렇다.
만검은 느린 검이지만, 동시에 극쾌의 검이다.
나의 광천검과 만검존의 검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음은, 우리의 칼이 서로 맞부딪히기를 수십 합이나 지난 후에야 늘어지듯 들려왔다.
그리고 나와 만검존의 싸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아주 오래, 정말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어느새 만검존은 웃고 있었다.
나와 칼을 맞대는 것이 더없이 기쁘다는 듯 그렇게 웃으며 칼을 휘둘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기뻤다.
그래서 웃으며, 있는 힘껏 칼을 휘둘렀다.
서로에게 본 것은 다르지만, 같은 생각으로 웃는 나와 만검존이다.
만검존은 나를 통해 만검의 더 깊은 무학을 보게 되었고, 나는 만검존의 만검을 통해 내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만검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나와 만검은 어느새 이 비무가 왜 시작되었는지를 잊었다.
그저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어 만검과 또 만검을 넘어서는 무학의 교류를 갖게 된 것이다.
하루, 한 달, 아니 어쩌면 일 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시간으로야 일 다경이나 한 식경, 어쩌면 한 시진이 지났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칼을 휘두르고 있는 만검의 세계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지났다.
그리고 비무는 끝을 맺었다.
툭.
만검이 두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트는 것이 보였다.
내 정신도 이미 몰아의 세계에 절반쯤 넘어가 있다.
만검이 검을 거두었으니, 억지로 버틸 필요 없다.
나도 곧바로 만검을 풀고,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나는 그날, 만검을 통해 화경의 세계를 되찾을 수 있었다.
*
나는 보름 만에 눈을 떴다.
만검존은 나보다 사흘 먼저 눈을 떴다고 한다.
보름 내내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예지와 왕대가 나와 만검존의 호법을 서 주었다.
그리고 나 말이다.
화경의 경지를 되찾으며 환골탈태했다.
새로이 얻은 신체,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그것도 확연히.
신체도 신체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좀 그랬다.
스물일곱 번이나 죽어 가며 되찾은 경지다.
어찌 감격하지 않겠는가.
또, 화경의 경지를 되찾으며, 그간 내가 이해하고 깨달았던 무학과 무리의 세계를 한층 더 높고 깊게 보게 되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벅찬 감동이 내 온몸을 지배하는 중이다.
“형님,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마 형.”
“주인님! 우리 주인님이 천하제일이다!”
“아저씨, 축하해요.”
“마 도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경하드립니다.”
다들 화경의 벽을 깬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 예지.
뭐지? 뭐가 문제지?
쭈뼛쭈뼛.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왜 저렇게 부끄러운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눈을 뜬 후 변해 버린 예지의 이상 행동 때문에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의제가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을 해 주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축하는 방금 해 줬잖아.”
“아니, 그거 말고요.”
“그럼 뭘 축하한다는 거지?”
“내가 이걸 축하해 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욕을 한바탕해 줘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험.”
“뭔데?”
“그냥, 보쇼.”
의제가 나에게 동경을 쓰윽 내밀었다.
환골탈태를 하며 재가 되어 버린 옷은 이미 의제가 준비해 두었던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곧바로 사람들의 축하가 이어졌고, 내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동경을 볼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환골탈태 후 처음으로 보는 동경…… 허걱.
아니, 허거거거거거거거거거거거거거거걱!
나! 나 말이다.
“오징어얼굴연합회 회주 자리 은퇴를 축하드립니다, 형님. 젠장할!”
나! 잘생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