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소강이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멋진 협객요.”
“천무휘 대협처럼?”
“헤헤, 네. 아저씨도 천무휘 대협 알죠? 유명하잖아요. 꼭 천무휘 대협처럼 멋진 협객이 되고 싶어요.”
“천 대협도 멋진데, 내가 듣기로는 마악치 대협도 멋지다고 하던데.”
“네, 헤헤.”
반응이 뭐 이래? 그래도 마음에 든다.
아니, 만검존의 아들 녀석. 딱 제자로 삼고 싶은 그런 녀석이다.
무재도 출중해, 머리는 총명해, 생긴 건 잘생겼어, 성격도 좋아, 마음씨도 착해.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녀석이다.
거기에 아버지가 만검존이지 않나?
천하에 아직 알려지진 않았고, 맹소강 역시 아직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그래서 주저 없이 천무휘의 이름을 거론했다.
아마 몇 년이 지나서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면, 이 녀석 주저 없이 자기 아빠처럼 되겠다고 할 거다.
무엇보다 내가 이 녀석을 마음에 두는 건, 소강이 열두 살이라는 점이다.
이런 녀석이라면.
아! 갑자기 왜 이리도 속이 쓰리지?
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나와 같은 심정이려나?
그래도 도둑놈 같은 놈들에게 줄 바에야, 이 녀석이 낫겠지.
그렇다. 우리 초향이 말이다.
최소한 맹소강 정도는 되어야 우리 초향이 배필로 고려해 볼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이미 만검존의 집에 머문 지 닷새가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소한 이곳만큼은 너무 평범하고 화목한 그냥 보통의 집이다.
그래서 더욱 맹소강을 자세히 살폈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그래서 우리 초향이 배필로 생각을 하는데, 계속 속이 쓰리고 뭔가 불안하고 막 그렇다.
이 녀석이 나중에 우리 향이하고 뽀뽀할 거 생각하면…… 아오!
“나중에 커서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도 뽀뽀는 꼭 혼인한 다음에 해야 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그래야 한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
“아, 네.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어려운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너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만약에 정말 혼인도 하기 전에 우리 향이랑 뽀뽀하면, 나랑 만검존 칼부림 날 거다.
알았냐, 꼬맹아?
“아저씨?”
“어? 왜?”
“방금 뭔가 뒷골이 서늘한 기운 같은 거 안 느껴졌어요?”
“엉? 모르겠는데?”
“어, 이상하네. 난 분명 느꼈는데. 대낮부터 귀신이 나타날 리는 없고, 헤헤헤.”
이 녀석, 무재가 출중한 걸 넘어 타고난 기감까지 갖추고 있다.
대단한 녀석이다. 진짜 마음에 든다.
그래도 뽀뽀는 혼인한 다음에 해라.
너네 아빠랑 나랑 칼부림 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마 형.
한해북이다.
“소강아, 아저씨 동네 한 바퀴 돌고 올 테니까, 혼자 수련하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인사성까지 밝은 녀석 같으니라고.
*
“아직 떠나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한해북이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조회한은 무림맹 태안 지부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네? 맹묵치가 분명 떠날 거라고 했는데.”
“거짓말을 한 것 같습니다. 어젯밤 태안 지부에서 세 마리의 전서응이 서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전서구도 아니고 전서응을 세 마리나요? 그리고 서쪽 방향이면…….”
“무림맹이죠. 아마도 이게 처음은 아닌 듯합니다.”
“음…….”
“마 형, 그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오늘 아침 금 소저가 태안 지부 내원에 잠입했습니다. 조회한과 태안 지부 지부장이 나누는 은밀한 대화를 모두 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전음으로 저에게 전해 주었고,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중간에 급하게 달려온 것입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뭐죠?”
“조회한은 처음부터 무림맹에 붙어 맹묵치를 이용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확실합니다. 최근 맹묵치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사실부터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무림맹에 보고를 하고, 무림맹의 명령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급하게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뭔데요, 그게?”
“무림맹에서 우리가 산동에 넘어와 있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설마 맹묵치를 이용해 우리를 죽일 생각인 건가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역시나 무림맹주다.
개새끼.
그런데 이상하다.
만검존은 무림맹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사람 좋은 만검존이라지만, 그래도 화경의 고수다. 무림맹주의 말을 따를 이유가 없다.
절친한 친구인 조회한이 부탁한다?
아니. 며칠 안 됐지만, 내가 본 만검존은 아무리 절친한 친구의 부탁이라고 해도 사람의 목숨을 쉽게 거둘 그런 부류의 사람이 절대 아니다.
더군다나 이미 나와 만검존은 꽤 가까운 사이가 됐다.
하지만 무림맹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건, 분명 만검존을 움직여 나를 죽일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아! 광천마제 시절에도 뜬금없이 만검존을 움직여 나를 죽이려 했지.
그때 사용했던 방법을 지금 다시 사용하려는 것일 테다.
그런데 그게 뭐지? 도대체 어떻게 만검존 맹묵치를 움직여 나를 죽이게 사주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 답은, 한해북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세 마리의 전서응을 무림맹 본 맹으로 보낸 것은 고수를 요청하기 위함입니다.”
“고수요?”
“네. 그들은…… 맹묵치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맹묵치로 하여금 우릴 죽이려 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아! 찢어 죽일 새끼들.
너넨, 진짜 용서가 안 된다.
*
“마 도사님, 술도 드십니까?”
내가 대협이라는 호칭보다 도사라는 호칭이 좋다고 하자, 만검존은 그때부터 곧바로 호칭을 바꿔 부르고 있다.
참 좋은 사람이다.
“왜요? 도사는 술 좀 마시면 안 되나요?”
“하하!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하하.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우리 사부님 앞에서는 마시지 않는데, 사실 저 술 엄청 좋아해요. 고기도 좋아하고요, 하하하.”
“아, 네. 좋죠. 저도 자제하지만 술과 고기 다 좋아합니다. 하하.”
뜬금없이 술 한잔하자고 만검존을 불렀다.
마당에 차려진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술상.
만검존의 부인와 맹소강은 우리가 편히 대화를 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배려심까지 가득한 집안이다.
또한 분명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런 자리를 요청했는지 알면서도, 만검존은 먼저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런 후.
“맹 대협.”
“네, 마 도사님.”
분위기를 잔뜩 잡아 그를 불렀다.
내가 자신을 부른 이유에 대한 본론을 꺼낼 것을 눈치챈 만검존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됐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참 잘생겼다.
부럽다.
아니, 지금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난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까지 길게 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맹 대협, 혹시…… 소강이 색시감, 그러니까 맹 대협 며느릿감으로 생각해 둔 그런 여아가 있나요? 아님, 이미 정해 둔 혼처가 있다거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소강이가 이제 겨우 열두 살인데…… 하.”
“아, 그게. 혹시 무슨 태중 혼약이라든지, 점찍어 둔 여아가 있다든지, 궁금해서요. 소강이가 워낙 뛰어난 인재지 않습니까?”
“하하! 못난 아들 녀석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아! 그렇죠. 제 친구 얘기해 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무림맹에 있다는 친구요.”
“우쾌검 조회한 말씀이십니까?”
“어, 아시네요?”
“꽤 유명하더군요.”
“네. 유명하죠. 무림맹 하급 무사로 들어가, 서른다섯의 나이로 태주 지부 지부부장 자리까지 올라갔으니까요.”
“그자는 왜요?”
“아, 네. 그 친구에게 딸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해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 친구에게는 아들만 둘이 있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맹 대협. 그 조회한이라는 친구 말이에요.”
“네.”
“많이 믿으시나 봅니다.”
“어디 믿기 뿐입니까? 어렸을 적부터 한동네에서 자라 함께 수련하고, 함께 커오고, 모든 일을 함께했습니다. 제가 평치산에 은거하기 전까지는요. 평치산에서 마음 편히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저에게는 최고의 친구이자 최고의 은인입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아무래도 말로는 만검존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형.
내가 전음으로 한해북을 부르자, 한해북이 어둠을 뚫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만검존은 이미 한해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친구분이십니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에 구절협이라 알려진 대두장의 한해북입니다.”
거의 동시에 만검존과 한해북이 서로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후.
“마 형, 조회한은 이레 전 무림맹 태안 지부에 입부한 후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현재 금 소저와 곽 형이 계속 감시 중입니다.”
난 한해북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만검존을 향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이미 느낀 만검존이다.
평소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그 특유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맹 대협.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속는 셈 치고 저를 믿어 주십시오.”
“…….”
만검존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대꾸하지 못했다.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다.
그도 불안한 예감을 느낀 모양이다.
내가 다시 한번 그에게 낮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부탁입니다.”
그러자 만검존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만약…… 만약에 두 분이 하시는 일이 저를 실망하게 한다면, 다시는 두 분을 뵙지 않을 것입니다.”
목을 베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나지 않겠단다.
역시 만검존은 나와 다르게 좋은 쪽의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도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조회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우정과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와 한해북을 통해 그 불안한 예감을 아주 강렬히 감지하였다.
“가시죠, 맹 대협.”
한해북이 앞장을 서 신법을 펼쳤다.
누가 화경의 고수 아니랄까 봐, 만검존은 어둠 속 바람과 하나가 되어 우리의 뒤를 따랐다.
*
-이쪽은 아미파의 봉황금 금예지입니다.
태안 지부 내전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염탐 중인 금예지에게로 다가갔다.
한해북과 의제는 외전에 몸을 숨기고 있고.
나와 만검존만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만검존과 금예지는 서로 간단한 눈인사만을 하였다.
우리는 곧바로 내전 내부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있었다.
만검존의 친구 조회한과 이곳 무림맹 태안 지부의 지부장이었다.
“오늘 중으로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본 맹에서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더군다나 이건 맹주님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일 아니겠는가.”
“왜 안 오죠?”
“쩝, 난들 알겠나? 뭐, 곧 오겠지 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엄청난 고수들을 보내 주실 거라 그랬는데, 어험. 그나저나 준비는 다 했겠지?”
“몇 번을 물어보십니까? 계집과 애새끼를 가둘 준비는 확실히 해 뒀다고요. 염려 마세요.”
“맹묵치는 눈치채지 못했겠지?”
“아이고, 그것도 벌써 열 번도 넘게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그 녀석한테 들인 공이 얼마인데 의심을 하겠어요? 그놈은 저를 최고의 친구, 그걸 넘어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니까요.”
“그래, 그럼 됐어. 이번 일만 잘되면 알지? 내 자리는 자네가 맡는 거고, 나는 무림맹 본 맹으로 간다. 하하하.”
“제 공로 잊으면 안 됩니다, 지부장님. 맹묵치 그 녀석이 만검을 익힌다고 할 때 다들 비웃고 무시했었지만, 저만큼은 그가 만검을 대성할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래, 잊을 수 없지. 자네가 목숨까지 걸며 나에게 그리 말하지 않았나. 그래서 나도 내 자리를 걸고 맹주님께 보고한 것이고 말이야. 사실 나에게도 일생일대의 도박이었어. 그자가 만검을 대성할 것이라고는 진짜 생각하지 못했거든.”
“뭐, 불안했던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성공했으니 다행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조 부부장. 자넨 좀 그렇지 않나?”
“뭐가요?”
“아니, 불알친구 아닌가? 자네와 맹묵치 부모님끼리도 매우 가까웠던 사이라며? 그런 친구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서 협박해 부리는 일을 하는 거 아닌가?”
“원래 세상 혼자 사는 겁니다. 아시잖아요. 조금 미안하긴 해도 어쩝니까? 저도 살고 봐야 하고, 제 자식들도 좋은 자리 하나씩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저는 지금 맹에 충성하는 중입니다. 친구를 배신하는 게, 맹을 배신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것도 맞는 말이야. 아무튼 이번 일만 착오 없이 잘 처리하자고. 맹묵치를 이용해 봉황검과 현화도사라는 연놈들의 목만 베어 버리면, 우리는 탄탄대로를 걷게 될 테니 말이야, 하하하!”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멍청한 놈이라, 제 말이라면 봉황검과 현화도사가 아니라, 부처님 목이라도 따 올 것입니다. 하하하!”
만검존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