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210화 (210/245)

210화

“극음 계열의 무공을 익혔다고?”

“네, 무적할, 아니 우 여협.”

“쉽구나. 더 쉬워.”

“네? 전혀 쉽지 않던데요?”

“쯧쯧. 이리 아둔해서 어찌 무공을 익히겠다고.”

“어? 지금 저 욕하신 거예요?”

“뭐? 아둔한 걸 아둔하다고 하는데.”

“하아! 우리 사부님이 어떤 취향의 여성들에게 눈길을 조금이라도 더 주고, 조금이라도 더 웃어주는지는 덤으로 알려 드리려고 했는데.”

“마 공자!”

“어이쿠, 깜짝이야.”

“방금 했던 말 취소네. 내 잠시 자네를 오해했었네. 자네는 천재야, 천재.”

“아, 됐고. 어서 방법이나 말해 주세요. 극음 계열의 화경급 고수를 물리칠 방법.”

“그래. 그렇지. 음…… 얼음을 한번 생각해 보시게. 얼음을 깰 때 어떻게 깨는 게 가장 쉽겠나?”

“그야 얼음을 통으로 들어서 바닥에 내리치면 산산조각이 나겠죠.”

“사람이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얼음이라면?”

“쇠망치나 철곤 같은 것으로 사정없이 내리치면 깨지지 않을까요?”

“그보다 더 큰. 커다란 강이 통으로 얼었다면?”

“방법이 없죠. 아! 봄이 찾아오면 저절로 녹겠네요. 이게 답이에요?”

무적할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런 우둔한 녀석!’이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사부를 생각해 차마 내뱉지는 못하는 무적할매였다.

“한 곳만 때린다.”

“네?”

“네 말대로 완벽하게 얼어 버린 얼음이라면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화경의 고수를 얼음에 빗댄다면, 이는 불안전한 얼음이라 할 수 있다.”

이해하기 힘들어 고개만 갸우뚱했다.

“얼음은 외부적 힘이 가해지면, 그 균열이 전체로 퍼진다.”

“아! 떠올랐어요. 강물 위에 언 얼음이 쩍쩍 갈라지면, 그 균열이 강 전체 얼음으로 퍼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그의 음공에 균열이 가해지고, 곧 무공의 파훼를 뜻하는 것이니라.”

“아! 그렇군요. 결국 한 곳만 패라는 뜻이네요.”

“그렇다.”

“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어렵네요.”

“이에 대한 방법도 많다. 뭐,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머리면 머리, 다리면 다리, 그냥 한 군데만 때린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도 좋다.”

“네. 아! 그런데 우 여협, 그전에 죽으면요?”

“초절정 극상의 고수가 셋이고 절정의 고수가 둘이라 하지 않았느냐?”

“네. 맞아요.”

“그런데 왜 죽어? 일백 초식만 받아 내면 된다면서.”

“죽을 수도 있잖아요.”

“등신 머저리 바보 천치가 아니고서야 죽을 리 없지.”

아니, 이 할망탱이가 지금 대놓고 날 욕하는 건가?

아!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속사정을 다 말해 줄 수도 없고.

“그러니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묻는 거예요.”

“멍청한 놈들은 흩어질 거다. 그러면 죽는 것이지.”

“왜요? 한 사람을 상대로 다섯 명이 합격술을 펼칠 때는 흩어져서 다섯 방위를 점하는 게 더 유리한 싸움 아니에요?”

무적할매가 나를 쳐다본다.

조금 전 욕했던 등신 머저리 바보 천치가 바로 여기 있었다는 그런 눈빛이다.

뜨끔했다.

“고드름 있지 않느냐?”

“네. 겨울에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그 고드름요.”

“날카로운 송곳 같으니라.”

“그렇죠. 찔리면 아프겠죠.”

“종이 한 장으로 그것을 부수고 깨는 방법이 있다. 아느냐?”

“에이. 그건 아무리 우 여협이라도 말이 안 되는 말이잖아요. 뾰족한 고드름의 끝으로 살짝만 찔러도 종이 한 장은 뻥 뚫려 버릴 텐데요.”

또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

등신 머저리 바보 천치.

“종이를 접는다. 한 번 접고, 두 번 접고, 세 번 접고. 계속 접어서 나중에는 돌덩이같이 단단하게 만든다. 그 종이를 고드름으로 찌르면 어찌 되겠느냐?”

“아…….”

“그거다. 공격도 한 곳만 때리고, 방어도 뭉쳐서 한다. 극양계열의 무공을 익힌 자를 상대할 때는…….”

“반대로 흩어져야겠군요.”

“완전 바보는 아니었군.”

이 할매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군.

뭐, 어쩔 수 있나?

지금은 내가 아쉬운 상황인데.

“중요한 것은 초절정 고수 셋과 절정의 고수 두 명, 이렇게 다섯 사람이 얼마나 손발을 잘 맞추느냐에 달렸다. 천하에 알려진 합격진은 많고 그중에 대표적으로 이런 형식의 합격진을 논하자면 오점진(五点陣)이라고 매우 흔하지만…….”

나는 무적할매에게 극음 계열의 화경급 고수를 상대하는 방법 열여덟 가지를 배우게 됐고, 그중 첫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쿠르르르르르르.

콰콰콰콰콰콰쾅!

오십 합이 지났다.

나, 아직 안 죽었다.

아니, 멀쩡하다.

연공실 천장은 벽력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터져나가 뻥 뚫린 지 오래다.

벽도 거의 다 무너져 내렸다.

이제 이곳은 연공실이 아닌, 그냥 폐허 더미가 되어 버렸다.

“씩씩. 씩씩.”

오른쪽 어깨의 옷이 찢어지고 그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지만, 지치거나 큰 내상을 입은 게 아니다.

주소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똘똘 뭉친 우리를 노려보며 저렇게 씩씩거리고 있다.

오! 역시 무적할매는 무적할매다.

나와 우리 녀석들 모두 자잘한 생채기 정도는 있지만, 치명타는 전혀 입지 않았다.

내공도 넉넉하고.

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세를 더해 갔다.

이 상태로라면, 일백 합이 아니라 일천 합도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다.

비무에서만 이길 것이 아니라, 주소수의 마음까지 굴복시켜 버릴 테다.

*

“악치야, 혹시 극음 계열의 무공을 익힌 고수가 너를 괴롭혔느냐? 사부에게 말하면, 사부가 따끔하게 혼쭐을 내 주겠다.”

작은 사부에게 분명 화경의 고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은 사부는 상대가 시정잡배라도 되는 것처럼 저리 말하고 있다.

“아니에요, 그런 거. 그냥 이런 형식의 비무가 치러지면 어떻게 싸워야 할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냥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우리 악치가 물어보는데, 안 될 게 어딨겠느냐? 허허허. 음…… 방법은 많은데, 그렇지. 가장 단순하면서 확실한 방법은 한곳만 때리는 거다.”

작은 사부는 첫 번째 방법으로 무적할매와 똑같은 방법을 알려 주었다.

두 사람이 다른 게 있다면, 무적할매는 비꼬고 무시하듯 그 방법을 알려 준 반면, 작은 사부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는 것.

또 한 가지.

역시 소림사 출신이 뭔가 달라도 다르다.

“그렇지. 네 말대로 세상에 흔히 알려진 오점진을 쓰는 것도 매우 훌륭한 방법이다.”

“작은 사부님, 또 뭐가 있군요? 오점진보다 더 나은 합격진이요.”

“예전에 사대금강이 화경의 고수를 상대할 때 쓰던 합격진 몇 가지를 소림에서 나 역시 익힌 적이 있다.”

“어? 근데 소림사 거 쓰다 걸리면, 소림사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잡혀가는 거지.”

“아…….”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악치야. 설마 이 사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제자를 소림사에 잡혀가게 하겠느냐?”

“그렇죠?”

“내가 살짝 변형을 시키면 된다. 소림사 방장이나 사대금강이 현장에 직접 참관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소림사에서 유래된 합격진임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오! 어서 알려 주세요.”

“원래 이름은 금강음마진(金剛陰魔陣)이나, 이름도 바꿔야겠구나. 그렇지. 현화복음진(玄化伏陰陣)이라 부르면 좋겠구나.”

“아주 좋아요. 그래서 어떻게 쓰는 건데요?”

“그러니까 현화복음진의 요체는…….”

작은 사부의 현화복음진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 육체의 경지는 초절정 극상에 머물고 있지만, 내 무리만큼은 상당한 경지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작은 사부가 즉석에서 소림사의 금강음마진을 개조해 만든 현화복음진은 그야말로 무(武)에 대한 나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는 것과 같았다.

*

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콰르르르르르르.

콰콰콰콰콰쾅!

구십여 합이 지났다.

이젠 열 합도 남지 않았다.

주소수는 이미 악귀가 되어 계속 우리를 공격해 왔다.

미친년도 이런 미친년이 없다 싶을 정도로,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온몸에서 피를 뿌리면서도 우리의 오점진을 파훼하려 난리를 쳤다.

일백 합을 모두 받아 낸다고 하여도, 멈출 기세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극양신장이 말려 주겠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행동할 때가 됐다.

“현화복음진, 개진!”

내 외침과 동시에 왕대가 중간, 그리고 양옆으로 의제와 한해북이 이어지듯 그렇게 나란히 섰다.

“죽어랏!”

분명한 우리 합격진에 변화가 왔지만, 이미 이성을 상실한 주소수는 막무가내로 돌진하였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아흔여덟 합을 이렇게 막아 냈다.

소림사의 금강복마진, 아니 이제는 우리 현화문의 현화음마진은 격체전공(隔體傳功)이 가능하다.

사실 격체전공이라는 게 동질의 무공,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같은 무공을 익힌 자들끼리만 쓸 수 있는 수법이다.

다른 성질의 내공이 내 몸으로 갑작스레 들어온다면, 그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게 아니라 반발력 때문에 내상을 입어 즉사를 하거나 주화입마에 빠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체전공 자체를 시도하는 것 자체도 거의 없고, 가뭄에 콩 나듯 시도를 하는 경우를 보더라도, 대부분이 사형제 간에만 사용한다.

소림사의 사대금강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왕대는 마공을 익혔고, 의제와 한해북 역시 서로 다른 무공을 익혔다.

무림의 상식대로라면 절대로 세 사람이 격체전공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이 우리 작은 사부였다.

무적할매와 더불어 당대 천하제일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우리 작은 사부 아니겠는가.

작은 사부는 내 이야기를 정확히 들은 후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격제전공이 아닌 흡성대법이었다.

왕대의 압도적인 마공으로, 자신의 몸으로 주입되는 의제와 한해북의 내공을 순간적으로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발경하는 방식이다.

설명이 좀 길었지만, 효과만은 확실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

콰콰콰콰콰콰쾅!

검을 뻗어 세 사람에게 돌진한 주소수.

충돌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힘을 잃고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갑자기!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

땅에서, 또 대기에서.

모든 것을 태워 없애 버릴 엄청난 화기가 치솟았다.

모습을 드러낸 건, 왕대와 의제 그리고 한해북과 충돌 후 주소수가 뒤로 힘을 잃고 날아갈 때와 동시였다.

세 사람 위로 우리 예자기 몸을 날리며 검을 뻗었고, 그것은 땅과 대기를 송두리째 태워 버릴 무시무시한 화기를 뿜어 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주소수는 화경의 고수다.

왕대와 의제, 한해북 세 사람에게 큰 손해를 봤고, 심지어 정신적 충격까지 입었지만, 금예지의 화기를 자신의 음기로 소멸시켜 버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현화복음진의 묘리 두 번째.

이는 무적할매와 작은 사부가 강조한 힘을 합치는 것에 집중된 합격진이다.

당연히 왕대와 의제 그리고 한해북의 남은 힘이 예지의 화기와 합쳐진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했다.

땅과 대기, 그곳에 미쳐 주소수에게 모두 집중되지 못했던 기운들, 아니 일부러 땅과 대기에 퍼뜨렸던 기운이 현화복음진의 운행에 따라 하나가 되어 화기로 폭발한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쿠당탕탕.

산발한 머리가 절반 이상 불에 타 버렸고, 입고 있던 옷마저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그런 주소수가 땅을 정확히 뒤로 세 번 굴렀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주소수의 아흔아홉 번째 합이다.

그녀의 입에서 검은 피가 새어 나왔다.

내상을 크게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깟 내상 따위는 지금 중요치 않은 듯하다.

머리도 타 버리고, 옷도 타 버리고, 우리가 집중적으로 공격한 어깨의 옷은 해어지고, 까맣게 타 버린 얼굴의 입으로는 검은 피를 흘리는 주소수.

하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분노와 흥분, 그리고 냉철함과 살의가 공존하는 그녀의 눈빛.

그녀가 그렇게 타 버린 소매로 입가에 흐르는 검은 피를 닦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마지막 일 합.

끝을 볼 심산인 것이다.

“모두…… 죽여 버리겠…….”

그녀는 하던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대신.

“졌…… 내가 졌다.”

내 광천검이 이미 그녀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비무의 마지막 일백 합이었다.

아흔아홉 합의 싸움을 이어 가며, 단 한 차례도 흩어지지 않았던 우리.

어떻게든 더 똘똘 뭉치고 합쳐 주소수 한 명의 힘을 감당하기만 했던 우리다.

이렇게 완전히 분리될 것은, 이미 극도로 흥분해 있던 주소수의 뇌가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오점진은 완벽한 방어를 가능케 했고, 현화복음진의 반격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준 싸움이었다.

이제 화양문은 내 명령에 따를 것이고, 구음신녀문은 큭큭큭.

적과의 싸움이 시작된다면, 최전선에서 제대로 굴려 줄 테다.

물론 동등한 입장에서의 동맹이다.

세부 규약이 그렇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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