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204화 (204/245)

204화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 봐.”

“네, 형님. 그러니까 어머니가 스물한 살에 아버지와 혼인했고, 그때 신녀의 능력을 잃었어요. 현재 예순셋이 되셨으니까, 사십이 년 동안 구음신녀문에 새로운 신녀가 나타나지 않은 거네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최소한 신녀가 구음신녀문에 있어서 존립의 근간이라는 정도는 알아요. 오십 년 안에, 그러니까 앞으로 팔 년 안에 신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구음신녀문은 예언에 따라 멸문하게 된대요.”

신녀는 나타난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나타나게 된다.

광천마제 시절 내가 극양신장을 죽었을 때의 나이가 스물아홉 살이었을 때다.

그러니 최소한 앞으로 오 년 안에 신녀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아니네. 그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신녀가 나타났지만, 그 신녀가 구음신녀문에 나타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나와 극양신장 앞에 나타난 것까지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다.

당시 화양문이 멸문할 때 구음신녀문도 같이 멸문했을까?

아! 오중체 녀석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것도 의심이네.

어쩌면 당시 구음신녀문은 그냥 튀어 버렸을지도 모르겠군.

어쨌거나 신녀는 있고,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안다.

갑자기 웃음이 나네.

“형님?”

“어? 아! 갑자기 다른 생각을 좀 했어. 그런데 중체야.”

“네, 형님.”

“신녀의 능력이 정말 뭔지 몰라?”

“몰라요.”

“그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해?”

“가장 정확히 알려면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되죠.”

“어머니?”

“네. 엄마가 당대 구음신녀문의 문주니까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형님, 쉽지 않겠죠?”

“신녀를 찾는 일?”

“네. 고작 오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 문도들인데,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게 분명하잖아요.”

“방법이 있어.”

처음으로 오중체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보았다.

“너 지금 의심하는 중이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형님.”

“두고 봐라. 현화문의 신통력이란 게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 말이다.”

이 녀석, 또 눈빛이 바뀌었다.

진짜로 믿는 모양이다.

다시금 무한한 신뢰와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형님, 믿습니다. 그리고 신녀만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어머니의 마음을 얻는 일은 확실합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께서 평생의 빚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하셨거든요.”

“그 정도야?”

“네.”

“좋아. 가자! 화양문으로, 아니 구음신녀문으로. 내 당장 신녀를 찾아 줄 것이다, 하하하하!”

“형님.”

“왜?”

“그런데 가기 전에 저 몇 대만 때려 주시면 안 돼요?”

이 새끼가 갑자기 미쳤나? 아님 변탠가?

이 녀석 설마…… 홍민과 같은 과였어?

나를 존경한다는 게, 날 좋아하는 거였어? 아나!

“너…… 너 이 새끼…… 지금 그 눈빛 뭐야?”

“왜요? 제 눈이 이상해요?”

“응. 많이 이상해. 너 설마 취향이…….”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가기 전에 저 좀 때려 주세요. 형님한테 맞고 가야 그나마 엄마한테 덜 맞아요. 형님이 가출한 저를 잡고 따끔하게 혼내 줬다고 말 좀 잘해 주세요. 안 그러면 저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요. 과장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형님.”

“아! 그런 거였어? 그렇다면 얼마든지 때려 줄 수 있지. 하하하. 이리 와, 중체야.”

“넵! 마음껏 때려 주십시오, 형님!”

퍽퍽!

“으악! 으악!”

퍼퍼퍽!

“형님, 더요! 더 때려 주세요!”

퍽퍼퍼퍽

“으악! 으아악! 좀 더요. 이 정도로는 엄마한테 씨알도 안 먹혀요. 더! 더 세게!”

퍽퍽!

“으아아아아아악!”

*

척!

세 녀석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치고 이제 막 화양문이 있는 귀주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중체, 표필공, 기월제가 나란히 내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대표로 얼굴이 엉망이 된 오중체가 말했다.

“형님! 제 형제들도 대업에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너, 얘네한테 말했어? 비밀로 하라고 한 거.”

“아닙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중체에 이어 표필공이 나섰다.

“형님! 무슨 일인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꼭 형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형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분명 협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기월제도 한마디를 보탰다.

“영원히 큰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애들의 표정이 사뭇 비장해 보였다.

“힘든 일이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지옥 불에 섶을 지고 뛰어들라고 해도 뛰어들겠습니다!”

“셋 다 진심이야?”

“넵!”

셋 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런데 진지한 세 녀석의 얼굴이 너무 귀엽게 보인다.

표필공과 기월제도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느낌으로 분명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모양이다.

백만 대군을 맞아 출사표를 던지는 장수의 얼굴이 따로 없었다.

웃음이 났지만, 짐짓 진지한 얼굴을 했다.

세 녀석, 의형제를 맺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사는 것이 무림의 법도 아니겠는가.

또 그것이 소원이라면 들어줘야 도리일 테고.

물론, 이 녀석들을 지금 당장 어디에 중히 써먹을 곳은 없다.

칠룡사봉이라고 해야, 아직은 후기지수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기대에 가득 차 나를 보는 녀석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으니.

살짝, 녀석들의 기대에 부응하게 아주 조금만 과장을 보태 주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넵!”

“난…….”

녀석들 눈에서 진짜 불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난!”

“넵!”

“너희를…….”

“넵!”

“오늘부로…….”

“넵!”

“무림의 거대한 흑막을 막아 낼, 나의 비밀 병기로 삼겠다.”

순간이었다.

세 녀석의 눈에 무한한 감동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조오오오오오오온, 며어어어어어엉!”

감격에 눈물까지 쏟으며 목이 터져라 존명을 외치는 녀석들이었다.

*

귀주 화양문에 도착했다.

가출한 삼공자가 몇 달 만에 돌아왔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아니, 오중체에 대한 반응은 그러했지만, 우리의 신분을 밝혔을 때는 좀 많이 놀란 눈치였다.

우리의 화양문 방문에 관한 소문은 화양문 전체에 삽시간에 퍼졌고, 사람들의 술렁임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오중체는 곧바로 어느 여고수들에게 이끌려 그의 어머니 주소수의 내원 전각으로 끌려갔다.

우리는 잠시 녀석의 명복을 빌어 줬다.

접객당에서 약간의 시간 동안 대기를 한 후, 우리는 곧바로 화양문의 태양전(太陽殿)으로 안내받았다.

화양문의 중심이자 극양신장이 화양문의 고수들과 매일같이 집무를 보는 곳이 바로 태양전이다.

그렇게 나는 기억에도 없는 극양신장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

휴우. 사십여 년 전, 천수신권과 무림맹주가 극양신장을 보고 왜 영원히 넘지 못할 벽을 마주한 느낌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무림육대고수라지만, 무림맹주를 만났을 때와 달랐다.

또 송암 도장과도 다르다.

다시 극양신장은 황룡회의 유령신검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고수였다.

한마디로 그를 정의하자면, 절대지존이었다.

그냥 숨만 쉬고 있는데도 위엄이 철철 넘쳤다.

그 엄청난 위엄에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녀석들이 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난 그의 실체를 안다. 마누라한테 매일 맞고 사는 남자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위엄과 위압감에 감히 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광마일기에 기록한 그에 관한 나의 느낌과 평가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를 마주해 보니, 광마일기의 내 기록들이 부족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광마 시절 저런 엄청난 자를 내가 두 번이나 죽였다니.

내가 싸웠고, 내가 죽였고, 내가 광마일기에 기록했지만 실로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만큼 극양신장을 다시 만난 느낌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거기에 더해 오중체의 두 형도 만날 수 있었다.

첫째는 화양강검(火陽强劍) 오중도로 사십 세에 검법으로 완연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둘째는 천화벽도(天火霹刀) 오중대로 서른일곱 살.

오중체가 말한 대로 딱 열 살 차이다.

그는 도법을 익혔는데, 역시나 이미 초절정의 반열에 올랐다.

그 경지가 첫째에 비해 깊지 않은 것을 보니, 최근에 초절정의 벽을 깬 모양이었다.

오중체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두 형들에게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극양신장의 그 엄청난 위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몇몇 화양문의 고수들도 함께했다.

역시나, 그 군주에 그 신하라 그럴까?

오중체의 말마따나 한 명 한 명 대단한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다.

화양문의야말로, 천하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용담호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양신장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화양문의 고수들.

그날 이들은 그 존재만으로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

극양신장과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우리는 삼공자의 전각.

그러니까 오중체의 전각으로 갈 수 있었다.

돈이 많은 문파답게, 오중체가 생활하는 전각도 그냥 으리으리했다.

딸린 일꾼과 시비의 숫자만 해도 스물댓 명이 넘는다고.

전각을 지키는 무인들만 수십 명이다.

교대 인원까지 합하면, 일백 명이 넘는단다.

오중체를 호위하는 무력대는 따로 있고, 오중체가 이끄는 무력대가 또 따로 있다고 한다.

아무튼 화양문이 돈도 무지하게 많고, 어마어마한 곳이 맞긴 한 것 같다.

그렇게 주인이 없는 전각에서 시비들이 가져다주는 차도 마시고 다과도 즐기며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오중체가 돌아왔다.

내가 때렸을 때보다 몇 대 더 맞은 얼굴인데.

그냥 아주 싱글벙글이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다.

“왜 그렇게 웃어?”

“아! 형님. 하하하!”

“뭔데?”

“보세요. 하하하! 역시 형님과 함께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니까요.”

“그러니까 뭘 보고 뭐가 잘 풀렸다는 건데?”

“덜 맞았잖아요. 원래 짧아도 삼 일, 길면 보름 넘게 광에 갇혀서 맞았을 텐데. 큭큭큭. 이미 형님한테 단단히 혼나고 다시는 가출하지 않겠다고 형님과 약속했다고 하니까, 엄마가 한 삼백 대 정도 때리다가 매질을 멈추어 주셨어요, 하하하하!”

미친놈. 삼백 대나 매질을 당하고도 좋단다.

이제는 대충 오중체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의제와 한해북, 예지도 그런 오중체가 웃겼는지,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오중체는 덜 맞은 게 좋다며, 대소를 멈추지 않았다.

“아! 맞다, 형님. 어머니께서 형님과 손님들한테 식사를 대접하고 싶으시다는데, 괜찮아요?”

“물론이지. 다들 괜찮지? 예지도 괜찮아?”

“응, 나는 좋지. 살짝 무섭기는 한데, 호호.”

예지의 말에 오중체가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엄마가 외인들에게는 선녀처럼 대해 주시거든요.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금 소저.”

“네, 알아요. 호호.”

우리는 그날 저녁, 오중체의 어머니 전각으로 초대받았다.

*

“봉황검 금 소저는 정말 아름답네요.”

“과찬이십니다, 가모님. 그리고 말씀 편히 해 주세요.”

“어머, 어디 천하의 봉황검에게 그럴 수 있나요, 호호호.”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말 그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곽 대협, 한 대협. 음식이 입에 좀 맞나요? 우리 귀주 음식이 조금 매운 편이라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매운 거 좋아합니다. 그보다 그냥 오늘 음식이 너무 맛있습니다, 하하하!”

“저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입니다. 제 생일 때 어머니가 해 주셨던 음식만큼 맛있습니다, 하하.”

“네, 고마워요. 많이들 드세요. 호호. 왕 대협도…… 어, 이미 많이 드시고 계시네요. 충분히 있으니 더 드세요.”

“네, 가모님.”

우리 왕대 녀석, 우리와 함께 다닌 지 몇 달이 지났다고 이젠 제법 예의도 차릴 줄 안다.

그런데 일단 음식이 눈앞에 놓이면, 예전 배고플 때의 버릇이 계속 나온다.

허겁지겁, 누가 쫓아오고 뺏어 먹을 것처럼 그렇게 입에 마구 욱여넣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왕대의 식사 예절을 벗어난 모습에도, 주소수는 인자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말 그녀의 정체를 내가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나 역시 그녀를 선녀라고 착각했을지 모르겠다.

육십삼 세라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외모에, 그녀의 미소는 정말 보기에 인자하고 상냥함 그 자체였다.

천하가 모두 속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화양문 첫날, 웃음이 끊이지 않는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자리가 파하고.

“무슨 할 말이 있나요, 마 도사님?”

“가모님.”

“네, 마 도사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와 단둘이서요?”

“네. 부탁드립니다.”

“부탁이라뇨. 차를 준비할게요.”

“감사합니다.”

구음신녀문의 문주, 주소수.

그녀와 독대를 하게 됐다.

아니, 이건 독대가 아니라 담판이다.

화양문과 구음신녀문 그리고 무림의 명운이 걸린 담판,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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