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괜찮아.”
눈물만 뚝뚝 흘리며 흐느끼는 녀석의 등을 두드려 주며 그리 말했다.
오중체는 그러고도 약간의 시간 동안 더 울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우는 커다란 덩치의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짠해졌다.
녀석, 엄마한테 꽤 많이 맞고 자란 것 같다.
다 큰 녀석이 말 한마디 꺼낸 걸로 저렇게까지 우는 걸 보니 말이다.
“잠깐 앉자.”
녀석의 눈물이 그치길 기다려 그리 말했다.
표필공의 외모와 전혀 닮지 않은 예쁜 후원에서도 가장 아기자기하게 예쁜 정자에 나와 오중체가 마주 보고 앉았다.
입을 먼저 연 건 오중체였다.
아팠던 기억에 대한 슬픔이 가시자마자 궁금증이 떠오른 모양이다.
“형님,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이건 우리 화양문에서도 아는 사람이 진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최고 극비 사항인데요.”
“구음신녀문.”
딱 다섯 글자를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다시금 커다란 덩치의 오중체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니, 몸은 돌처럼 굳었지만, 그의 눈은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심하게 떨렸다.
“맞지?”
“그, 그걸…… 그걸 어떻게…….”
“궁금한 게 많아 너를 찾아온 건 난데, 질문은 계속 네가 하는구나.”
“아…… 그, 그게…….”
“맞구나.”
결국 오중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맞아요. 근데 형님, 그거는 진짜 극비 중에서도 특급 극비인데.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말 안 했어? 우리 현화문 도사들에게는 신통력이 있어.”
“에이, 저 지금 농단하는 거…… 어? 진짜예요?”
난 대꾸 대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런데 이 녀석도 진짜 믿는 모양이다.
은근히 신통력이라는 거짓말이 잘 통한단 말이야.
신기하네.
“뭐, 아까 나에게 봤던 서신에도 그리 적혀 있었고.”
“아! 그랬군요. 형님에게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응. 조금 있어. 아직 화양문에 비교할 정도는 안 되고.”
“존경합니다, 형님.”
“응. 내가 너보다 어려.”
“그래도 형님은 제 영원한 형님이십니다. 저도 꼭 형님처럼 멋진 협객이 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중체야.”
“네, 형님!”
“내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거든. 이거 무림의 명운이 걸린 아주 많이 중차대한 문제야. 이 이야기를 듣거든, 네 입을 천금보다 무겁게 지켜 줘야 해. 할 수 있겠어?”
무림의 명운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오중체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마치 자신이 무림 영웅전 속에서, 무림을 정복하려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주인공이라도 된 것과 같은 얼굴이었고 분위기였다.
그렇게 오중체가 눈을 부라리며, 또 힘을 꽉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 칼이 들어오고, 사지가 찢기는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오늘의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그래, 각오 좋네. 자!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난 오중체에게 천수신권과 무림맹주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비정검사 오화서, 그리고 용봉지회 때 만나 싸웠던 삼존하구룡협의 정체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고.
다시 원곡과 제갈가단에 관련된 이야기까지 모두 해 주었다.
내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오중체의 눈은 커져만 갔고.
종국에는 그 엄청난 이야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이, 이 모든 게…… 사실입니까?”
“나는 믿지 못해도 천무휘나 우리 예지는 믿을 수 있잖아. 수룡검하고 봉황검인데.”
“아니요. 저는 형님을 믿습니다. 믿어요. 그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군요. 형님은 그간 그런 음모를 막기 위해 계속 싸워 오고 있었던 것이고요.”
이번엔 크게 감동한 얼굴로 나를 보는 오중체였다.
“네 도움이 필요해.”
“당장! 지금 당장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해도 뛰어들겠습니다, 형님!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아니. 그거 말고, 지금.”
“네? 지금요? 적이 이 근처에 있습니까? 제가 당장 그놈들을 제 태양철장으로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아니. 야, 내 말 좀 끝까지 들어.”
“앗, 죄송합니다. 말씀하십시오, 형님.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면 네 어머니에 관해서 좀 알려 줘.”
“네? 저희 어머니요? 어…… 그게…… 무림의 평화와 저희 엄마가 무슨 관계인지…….”
“왜? 방금 너 내가 불 속에 뛰어들라고 하면 뛰어들 수 있다며? 어머니 이야기 좀 해 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네. 그게 더 어려운데요?”
“…….”
“…….”
나와 오중체는 순간 서로 당황하고 말문이 막혀, 눈만 껌뻑껌뻑하며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형님, 그냥 저에게 혼자 무림맹이나 소림사로 쳐들어가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하아, 왜? 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워?”
다시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또 눈만 껌뻑껌뻑한다.
하아! 돌겠네.
“황룡회와 동맹을 맺었어.”
“유령신검 월제 대협의 황룡회요?”
“그래. 무림맹주와 천수신권을 상대로 함께 싸우기로 했어. 그리고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너희 화양문과도 동맹을 맺기 위함이야.”
“아! 그렇군요. 그럼 아버지에 관해서…….”
“야.”
“네, 형님.”
“너 자꾸 이렇게 나올래? 그럼 앞으로 우리랑 같이 일 못 한다.”
“잠, 잠깐! 말……하겠습니다.”
이내 결단을 내린 오중체다.
그런데 녀석,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엄마가 어지간히도 무서운 모양이다.
“맞지? 화양문의 문주는 아버지지만, 그런 아버지를 쥐락펴락하는 게 어머니란 사실.”
“네. 정확히 꿰뚫고 계십니다.”
“떨지 말고 말해.”
“아, 네. 죄송합니다, 형님. 엄마 생각만 해도…… 휴우,”
“가출도 그래서 한 거고?”
“네.”
“그래, 그간 고생 많았다. 그럼 이제 내가 묻는 것에 하나도 숨김없이 다 솔직히 말해 줘. 무림을 노리는 놈들을 막을 수 있는 데에 큰 힘이 되는 일이니까.”
“네. 물론이죠. 뭐든 물어보십시오, 형님.”
“혹시…… 어머니한테 무슨 약점 같은 거 있어?”
“아니요.”
“생각 좀 하고 답을 해.”
“진짜 없어요.”
“하나도?”
“네.”
“너무 단호한데?”
“너무 확신하니까요.”
“아, 그렇구나.”
“대신 형님.”
“응.”
“엄마한테 약점 잡히면, 그거 죽을 때까지 갑니다. 절대로, 절대 약점 잡히면 안 돼요.”
“너…… 엄마한테 무슨 약점 잡혔구나?”
“그, 그게…… 그게 아니라…….”
“모두 솔직히 말한다고 했다.”
“휴우. 네, 형님. 사실…… 그거 있잖아요. 사춘기 때 남자들 다 하는 거.”
“그게 뭔데?”
“아이, 왜 있잖아요. 방에서 혼자 막 열심히 하는 거. 가끔 눈 감고도 하고, 춘화도 보면서 하기도 하고.”
“아! 그거. 알지. 큭큭큭. 허걱! 너 이 새끼! 그거 하다가 엄마한테 들킨 거야?”
오중체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새끼, 내 마음이 다 무너지는 것 같다.
난 녀석의 등을 조금 더 강하게 몇 번이나 두드려 주며 말했다.
“고생…… 그동안 고생 진짜 많았다.”
아! 쪽팔려.
나라도 가출했겠다.
아마 사춘기 때면 십 년도 더 지난 일일 텐데, 어머니가 그걸 약점 잡아서 아직까지 괴롭히나 보다.
사실 궁금해서 좀 더 묻고 싶은데, 오중체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그에 관련해 한마디라도 더 물으면, 울 것 같았다.
그래서 그건 그냥 넘기고.
“음,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지?”
내가 고심스러운 얼굴로 혼잣말을 하자, 오중체가 조심스레 나에게 말했다.
“형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를 들으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 그래. 그것도 궁금하네. 구음신녀문의 문도와 화양문의 소문주였지, 아버지가?”
“네, 맞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냥 문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떤 신분이었는데?”
“신녀였습니다.”
“신녀?”
“네.”
“그게 뭔데?”
“저도 그것까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일반 문도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고 신비한 능력까지 발휘한다고 합니다.”
“신비한 능력은 뭔데?”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이 녀석,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응. 그래. 그래서 둘이 어떻게 만났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 씨X. 한 대 때릴까?
됐다. 참자.
“그래, 차근차근 아는 것부터 말해 봐.”
“네, 형님. 우리 화양문이 원래 귀주에서는 좀 알아주는 문파였습니다. 예전부터요. 그러다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그 힘이 더 강해지며 귀양은 물론 귀주 전체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세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지금 제 나이가 되기도 전에 굉장한 경지에 올라, 주변에서는 적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음, 그 이야기는 나도 들어 봤어.”
“네. 아버지는 본 문의 구류극양신공(九流極陽神功)을 젊은 나이에 이미 상승의 경지에까지 깨달아,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 외출을 하는 구음신녀문의 문도들과 만났고, 다툼이 일었습니다.”
구류극양신공(九流極陽神功)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신공인지는 광마일이게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극양신장의 손에서 불이 뻗어 나오면, 산과 들, 보이는 곳 전체가 불바다가 된다고 써 있다.
내가 쓴 일기지만, 조금 과장이 아닐까 싶긴 한데.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때 어머니를 만난 거야?”
“아니요. 아버지께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구음신녀문의 문도들을…….”
“때렸어?”
“아니요. 아버지는 여자를 때리지 않습니다.”
“아, 그래. 응. 그래서?”
“약 올려 주셨대요. 사실 구음신녀문이 귀주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비문파인데, 본 문의 역사도 엄청나게 길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는 본 문의 역사를 배우며 구음신녀문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던 것이죠. 사실 어머니의 구음신녀문이 조금 유별나요.”
“사파 쪽에 가깝다는 뜻이지?”
“아! 그것까지 알고 계셨군요. 네. 맞아요. 그래서 외부로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 화양문과 구음신녀문 사이에 몇백 년 귀주 땅에 함께 자리하며, 많은 다툼과 불화가 있었다고 해요. 손해를 본 건 대부분 화양문 쪽이었고요.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아버지께서 일부러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 주고, 농락하셨던 거죠.”
“음, 그렇군.”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 돌아간 신녀문의 문도들이,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고했고. 아! 우리 어머니 성격이 장난 아니거든요.”
“응. 나도 대충 들었어.”
“와! 이건 진짜 아무도 모르는 건데. 다들 우리 엄마가 선녀인 줄 알아요. 두 얼굴의 사나이. 아니, 두 얼굴의 아줌마예요.”
“풉,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나서신 것이군?”
“네. 수모를 당한 문도들을 이끌고 곧장 아버지를 찾아갔대요. 그리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그날 대판 싸우셨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이겼는데?”
“그야 모르죠.”
“음, 그래.”
기대도 안 했다.
“누가 이기고 진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날 그렇게 둘이 거의 온종일 싸운 후 뭔가 통했나 봐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남녀 사이에 불꽃이 파파팍 튀며 마음이 통하고 그런 거요.”
“그렇지. 내가 연애 경험이 많아서 잘 알지.”
“존경합니다, 형님! 나중에 저에게도 연애 기술 같은 거 좀 전수해 주십시오.”
“그래, 그래. 나만 믿어. 여자 꼬시는 법은 내가 천하제일이니까, 하하하하!”
나를 보는 오중체의 눈빛에 무한한 존경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그의 눈빛을 나도 모르게 피했고.
갑자기 슬퍼지네.
“어험, 그렇게 두 분이서 연애도 하고 혼인도 하게 된 거야?”
“아니요. 가출했어요.”
“가출? 왜?”
“말씀드린 대로, 본 문과 신녀문은 역사적으로 계속 갈등이 있었고,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거기에 화양문은 정파, 신녀문은 신비문파에서도 가장 손속이 잔인한 사파로 분류되니, 당시 화양문의 문주였던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화를 내셨겠어요?”
“아! 그렇겠다. 쉽지 않군.”
“거기에 본 문의 무공은 극양계열의 무공이잖아요.”
“그렇지.”
“반면 어머니의 신녀문은 말 그대로 구음신녀문. 극음 계열의 무공을 익히고 있거든요.”
“와! 무공까지 상극이었네.”
“네, 하지만 화양문과 구음신녀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반대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어요.”
“그게 뭔데?”
“신녀는 남자와 사랑을 통하게 되면, 그 신비로운 능력이 모두 사라고 신녀의 자격까지 잃게 돼요.”
“신녀의 신비로운 능력이라…….”
아! 생각났다. 오중체가 모르는 사실.
난 안다. 광마일기에 적힌 그녀가 어쩌면 신녀였을지도 모르겠다.
난 안다. 광마일기에 적힌 그녀가 어쩌면 신녀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맞다. 그녀가 확실히 신녀였어.
아! 신녀란 게 실제로 존재했다니.
광마일기에 기록된 그것은, 내가 실제 겪었지만 지금까지도 도저히 믿기 힘든 어느 신비로움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