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201화 (201/245)

201화

내가 개방과 하오문에 거금을 들여 가며 정보를 캐는 이유는 이렇다.

아, 거금이라고 말할 것까진 없겠지만.

아무튼 극양신장의 황룡회와 동맹을 맺는 건 엄청난 힘을 얻는 일이다.

천수신권과 무림맹주를 상대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겠다.

이유는 또 있다. 더 중요한 이유다.

나의 업보에 관한 일이다.

유령신검과 동맹을 맺으며 광천마제 시절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훗날의 일은 예단할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 상황으로 봐선 맹주가 아무리 이간질을 한다고 하여도 쉬이 그와 내가 목숨을 걸어 가며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하나의 업보를 씻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극양신장의 업보도 씻고 싶다.

그리고 원곡의 입을 통해 그 희망을 보았다.

그렇다.

이번 내 화양문 방문의 목적은 동맹을 맺고, 동시에 극양신장과 좋은 관계를 맺어 내 업보를 씻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의 핵심은 바로 화양문의 가모, 극양신장의 부인, 오중체의 어머니, 주소수다.

화양문의 문주는 극양신장이지만, 극양신장을 지배하는 건 주소수다.

지금 내 느낌이 그렇다.

주소수를 설득하느냐 마냐에 따라 이 일의 성패가 달렸다는 뜻이다.

개방에 오리구이와 화주를, 그리고 하오문에 금자를 건넨 이유는 이미 다 아는 화양문의 기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닌, 주소수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금.

청화루의 루주이자 하오문 귀주 지부의 지부장이 주소수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극양신장이…… 누군가에게 맞아 큰 상처까지 입고 홍화루를 찾아왔다는 말이군요.”

“네. 맞아요. 저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전대의 지부장이 무림 은퇴를 선언한 후 떠나기 전, 저에게만 해 주었던 말이에요. 하오문 본문에서도 이 사실은 모르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엇? 은퇴요?”

“네, 은퇴했어요.”

“홍화루도 없어졌다면서요?”

“네. 홍화루가 없어지고, 곧바로 전대 지부장도 무림 은퇴를 선언하고 자취를 감추었어요. 당시에 있던 기녀들도 모두 떠났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거의 사흘에 한 번씩 처참한 몰골로 극양신장이 찾아왔다고 해요. 처음엔 무섭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하고 조심스러웠는데, 그 방문이 잦아질수록 전대 지부장은 친근히 그를 대해 주었다고 해요. 은밀히 의원까지 상주 대기해 놓고, 상처를 치료까지 해 주었고요.”

“그런데요?”

“어느 날. 그들이 찾아왔어요. 오십여 명의 흑의 복면인들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엄청난 고수여서, 당시 우리 하오문 귀양 지부의 무인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흑의 복면인 한 명을 감당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말 그대로 정말 엄청난 고수들이었나 보군요. 그런데 그런 고수가 오십 명이라면 이건 보통 세력이 아니라는 말일 텐데요.”

“네. 하지만 전대 지부장은 끝까지 그들의 신분을 말하지 않고 떠났어요.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말하지 않은 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흑의 복면인들이 홍화루를 찾아온 후.”

“홍화루를 부수고, 불을 질렀어요. 그런 다음…… 울고 있는 기녀들의 머리를 죄다 밀어 버렸대요.”

“네? 머리를 밀어요? 왜요?”

“겁을 준 거죠. 다시는 기녀로 일하지 말라고 하며, 머리를 밀고 고향으로 모두 돌아가라고 했어요. 그게 끝이에요. 루주였던 전대 지부장은 물론, 기녀들까지 모두 귀양을 떠나 자취를 감추었어요. 곧바로 하오문 본문의 지원을 받아 지금 이곳인 청화루를 열었는데, 극양신장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역시 주소수다.

그녀가 아니라면, 천하의 극양신장을 누가 그리 만들 수 있었겠는가?

홍화루도 역시나 주소수가 그랬을 것이고.

구 할 구 푼 구 리다.

그런데 오십 명의 고수들은 누구지?

화양문의 고수들을 이끌고 온 건가?

그건 차자 알아봐야겠다.

“그 사건 관련,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요? 정보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아…… 그게. 저도 아는 건 그게 전부에요. 그리고…… 이미 저는 제 목을 걸고 말씀드린 거예요. 돈 때문이 아니라, 마 도사님과 본 문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서요.”

응, 이미 금자 한 냥 받았잖아.

그래도 그걸 말할 수는 없고.

“아, 네. 고맙습니다.”

이제 어쩌지?

오중체를 만나야 한다.

“지부장님.”

“네, 마 도사님.”

“혹시 가출한 오중체를 잡을 수 있을까요?”

“음, 그게…… 삼공자가 워낙 가출을 자주해서.”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가출을 해도 이젠 아무도 찾지 않아요. 저희는 물론, 개방에 문의하셔도 같은 답변을 받으실 거예요.”

“아, 혹시 짐작 가는 곳이라도……?”

지부장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이 녀석을 어디서 찾지?

그런데 그때.

뒤에서 나와 지부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해북이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마 형, 오중체가 있을 만한 곳이 있습니다.

*

다시 개방 분타로 왔다.

사람 찾는 일은, 아무래도 하오문보다는 무지막지한 인해전술을 쓸 수 있는 개방이 낫기 때문이다.

한해북 덕분에 오중체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청죽도림요? 거긴 귀주와 호남 경계에 있는 곳이군요. 지금 화양문의 삼공자가 그곳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요?”

“네. 확실한 건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커서 좀 알아봐 달라는 것입니다. 그곳에도 거지, 아니 개방도는 많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왜 하필 청죽도림……. 아! 청죽도림 절죽도 표필공! 맞죠? 무림맹 용봉지회 때 친해진 칠룡사봉 중 한 명.”

“네. 맞아요. 당시 오중체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녀석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이 청죽도림의 표필공이고 한 명은 칠성검문의 기월제입니다. 칠성검문은 강소에 있어서 오가는 데만 몇 달은 걸릴 테니 아닐 것이고. 그나마 청죽도림이 가장 의심스럽네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마 대협. 곧바로 청죽도림 인근의 분타로 전서구를…… 하하. 하하하.”

“왜 웃으시죠?”

“이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얼마나요?”

“한 석 달? 아니면 넉 달?”

미친 거지!

그냥 우리가 뛰어갔다가 와도 닷새면 족하겠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게…… 헤헤. 이 미친 거지새끼들이, 전서구를 잡아먹었지 뭡니까.”

아! 돌겠다.

툭.

은자 스무 냥을 툭 하고 멍석 위에 던졌다.

“이따가 오리구이 열 마리와 화주 스무 병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니, 오리구이 대신 황구 한 마리를 보내 드리죠.”

곧바로 개방 귀양 분타주의 얼굴에서 미소가 만개하였다.

그냥 좋아 죽는다.

“사흘, 아니 내일 밤이 지나기 전에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는지 몰라서 그렇지, 일단 그 지역이 어딘지만 알면 삼공자가 갈 곳은 언제나 뻔하거든요.”

“전서구 없다면서요?”

“헤헤헤. 일단 삼양상단이나 백마상단에서 한두 마리 빌리고, 헤헤. 청죽도림이면 비둘기가 반나절이면 도착하니, 충분합니다. 헤헤. 헤헤.”

“부탁합니다.”

“네. 객잔에 머물고 계시면, 내일 중으로 제가 직접 찾아뵙고 오중체의 행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

다음 날 늦은 오후.

오중체의 행방을 찾았다.

역시 청죽도림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말을 타고 곧바로 청죽도림이 있는 청산(靑山)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청산 청죽림(靑竹林) 소연폭포다.

쾅!

콰콰콰쾅!

펑펑펑!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도검을 휘두르며 비무 수련 중이었다.

못 보던 사이 실력이 꽤 늘은 세 명이었다.

왜 세 명이냐 하면, 오중체와 절죽도 표필공은 물론 칠성검문의 칠검홍 기월제까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중체! 표필공! 기월제!”

내가 그들을 불렀다.

그러자 실전 못지않게 살벌하게 도검을 휘두르던 삼 인이 곧바로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형님!”

“형님!”

아! 이 녀석들, 셋 다 나보다 나이 많은데 여전히 나를 보고 형님이라 부른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한걸음에 달려오는 이들.

“마 형님! 우 형님! 한 형님! 다들 강녕하셨습니까? 하하. 금…… 하하. 금 누님도 오셨군요.”

“어? 저…… 스물셋인데.”

오중체가 누님이라고 부르자, 당황해 말끝을 흐리는 금예지.

하지만 뻔뻔한 오중체에게 통할 리 만무다.

“존경합니다, 봉황검 누님!”

“존경합니다, 누님!”

오중체에 이어 표필공과 기월제까지 허리를 깊이 숙여 금예지에게 인사하는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형님, 여긴 어찌 알고 오신 겁니까?”

“그런 너는 왜 여기에 있냐?”

“하하, 제가 익히는 무공이 양강계열의 무공 아니겠습니까? 수련을 하면 화기가 치솟아서, 이렇게 폭포수 아래에서 수련을 하는 게 좋습니다.”

개방에서 오중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다.

이 녀석, 가출해 어디를 가건 수련을 멈추지 않고, 또 수련을 했다 하면 꼭 폭포를 찾아가 한다고.

“아니, 폭포는 귀양에도 많잖아. 왜 이곳 청산까지 왔냐고.”

“그야…… 하하! 의형제가 있는 곳이니 왔지요.”

세 녀석.

오중체와 표필공, 기월제가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나와 의제, 한해북, 천무휘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맺은 의형제라 한다.

뭐,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게 의형제가 된 걸 한참이나 자랑하다가, 표필공이 나섰다.

“형님, 일단 저희 청죽도림으로 가시죠.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그래, 여기보단 너희 집이 낫겠다. 근데 조용히 방문할 수 있을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버지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좋아. 가자.”

*

청죽도림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규모가 큰 것도 큰 것이지만, 무엇보다 청주도림 도객(刀客)들의 분위기가 사뭇 대단했다.

한 명 한 명이 날이 잘 선 도(刀)를 보는 듯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 하여도 쉬이 무시하지 못할 고수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청죽도림이었다.

우린 림주인 표필공의 아버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은밀히 표필공의 전각으로 향해 대화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청죽도림을 찾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말고 또 다른 방문객이 있는 것이다.

의아한 것은, 그 방문객이 청죽도림을 찾아온 이유가 나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신 달호, 주군을 뵙습니다.”

“음, 그래. 여긴 어떻게 알고……. 아니, 그건 됐고. 무슨 일이지?”

“충! 공손병 선생이 긴급으로 주군께 전달하라는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 역시 공손병 선생이군. 이렇게 빠르게 알아낼 줄은 몰랐는데.”

난 곧바로 달호가 건넨 서신을 받아 내용을 확인하였다.

(상략)

그렇게 정말 우연히 주소수가 구음신녀문(九陰神女門)의 문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아낸 것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녀가 구음신녀문에서 어떤 직책이었고, 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상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구음신녀문은 신비문파의 하나로, 전설처럼 소문으로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곳이니까요.

(중략)

구음신녀문 자체도 세상에 알려진 정보가 거의 전무합니다.

다만, 천하에 알려진 신비문파도 각기 정도를 걷는 신비문파와 사도를 걷는 신비문파로 구분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비문파가 정사지간의 길을 걷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석혜 여협이 궁주로 있는 위화궁의 경우는 아미파에서도 인정하였듯 명실상부한 정파로 분류되는 신비문파의 대표입니다.

반대로 구음신녀문은 몇 안 되는 신비문파 중에서도 가장 손속이 악랄한 사도의 신비문파로 분류한다는 기록이 무림사에 여럿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략)

구음신녀문의 혀는 뱀과 같고, 구음신녀문의 칼에는 자비가 없다고 합니다.

부디 주군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공손병

공손병의 서신을 접어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런 후 시선을 오중체에게 돌려.

“잠깐, 따로 얘기 좀 할까?”

“네? 저만요?”

“응.”

“네, 형님.”

*

표필공이 홀로 지내는 전각의 작은 후원.

그곳에 나와 오중체는 잘 가꾸어진 정원을 바라보며 나란히 섰다.

표필공이 직접 가꾼 정원은 아닌 듯하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렇게 잠시 꽃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싶어 기다리던 오중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나에게 물었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저만 따로 부르시고요. 또 아까 그분이 전한 서신은 무엇이기에 서신을 읽은 후 형님 표정이 많이 어둡습니다.”

“중체야.”

“네, 형님.”

“내가 그냥 이름 불러도 되지?”

“물론이죠. 어…… 그런데 형님. 갑자기 너무 진지해지셔서…… 분위기가 평소와 사뭇 다른…… 꿀꺽. 정말 무슨 일이 있군요?”

난 녀석을 뜨겁게 바라보며 고개까지 크게 끄덕였다.

오중체도 덩달아 크게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네, 형님.”

“어렸을 적부터…….”

“……?”

“엄마한테 맞고 자랐어?”

순간. 덩치는 산만 하고 생긴 건 산적 두목 같은 녀석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내, 조금 전 도법을 수련하던 소연폭폭의 폭포수 같은 눈물이 떨구어진 그의 고개에서 마구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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