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200화 (200/245)

200화

행악필사 귀정득생(行惡必死 歸正得生).

악(惡)을 행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고, 바른길로 귀의하면 삶을 얻을 것이다.

“뭐 해?”

황노의 호통과 같은 한마디.

여발무, 위은치, 한인심은 인상을 살짝 구기기는 했지만,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를 제치며 가슴살을 드러냈다.

중년의 사내 네 사람이 서로를 향해 맨살을 들이밀고 있는 모습이 조금 웃겨 보였다.

하지만 네 사람은 너무나 진지하게, 또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행악필사 귀정득생! 악을 피하고 올바르게 살자!”

“됐어. 옷 다시 입고 다시 자리로.”

“네, 형님.”

네 사람이 다시 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황노의 일장연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육 년 전,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이 문신이 생겼지?”

“네, 형님.”

“네가 새겼냐?”

“아닙니다.”

“그럼 너냐?”

“아닙니다.”

“그럼 내가 그랬냐?”

“아닙니다!”

“그럼 누가 그랬냐?”

“일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셨던 현화검존께서 현신하셔서 우리 몸에 여덟 글자를 새겨 주셨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했냐?”

“현화문이 있는 갑돌산을 내려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발무에 이어 위은치가 말했다.

“나쁜 마음을 버리고 착하게 살기로 맹세했습니다.”

이번엔 한인심이 답했다.

“현화문의 도사님들께서 그러하셨듯, 헌신하는 삶을 살자고 맹세했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그런 다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너희도 잘 알지 않느냐? 우리 다 예쁜 마누라 얻어 장가도 가고, 자식들도 주렁주렁 낳았고. 무관을 열었더니 관도들이 줄을 서서 찾아오고. 우리가 사는 집에 웃음이 끊긴 날이 있었냐?”

“없었습니다.”

“거봐! 이게 다 현화문의 역대 도사님들께서, 선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가 착한 일한 거에 대한 보답으로 그런 축복을 주신 거야. 내 말이 틀렸냐?”

그때 한인심이 조심스레 물었다.

“형님, 그런데 처음 이 문신이 우리 몸에 나타났을 때는, 조상님들이 찾아와 문신을 새겼다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야!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우리가 나쁜 마음 버리고, 착하게 산 이후부터 하는 일마다 잘되고, 지금 좋잖아. 안 그래?”

“그거야 그렇죠.”

“그래. 그럼, 오늘 여기 지날 거라는 그 살인마. 우리가 잡아야 하냐?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미뤄야 하겠냐?”

황노의 말에 세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거의 동시에 답했다.

“우리가 잡아야죠!”

“그래, 그거야. 앞으로도 의심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착한 일을 하다 보면, 선계에 계신 현화문의 도사님들께서 우릴 보호해 주실 거야.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살인마를 잡을지나 고민하라고. 알았어?”

“예.”

“대답에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알았어?”

“옙!”

네 사람은 그렇게 분위기를 다 잡으며 서로의 사기를 북돋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들이.

구산사괴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개과천선한 모습에, 정말이지 감개무량하여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그때 한인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근데 현화검존께서는 글씨를 정말 못 쓰시나 봐요. 이건 비뚤비뚤, 어디 발가락으로 쓴 건지 손으로 쓴 건지 모르겠어요.”

“쩝.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어디 있겠냐? 현화검존께서도…… 휴우. 글씨가 좀 엉망이긴 해. 창피해서 다른 사람하고 함께 목간도 못 가겠다니까.”

“큭큭큭, 맞아요. 진짜 글씨 너무 못 썼어요.”

아나! 이 인간들.

예뻐하려야 예뻐할 수가 없다니까.

*

“네, 이놈!”

“누구냐!”

“우리가 바로 구산사협이시다, 이 살인마 개새끼야!”

퍽퍽!

퍼퍼퍼퍽!

챙!

채채채챙!

쾅!

쿠당탕탕!

“으악!”

“형님!”

“저 새끼 잡아!”

퍼퍼퍼펑!

채채채챙!

“으아아악!”

“야! 둘이서 다리 잡아! 발무는 뒤에서 목! 목을 잡으라고 새끼야!”

“으아악!”

퍼퍼퍽!

처음에는 꽤 멋진 싸움이었다.

막상막하로, 쫓기던 살인마는 실제 꽤 대단한 고수였다.

구산사괴 네 사람이 동시에 기습을 했음에도, 쉬이 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싸움이 한 식경도 넘게 이어졌고.

결국에는 다섯 사람 모두 지쳤다.

병장기도 부러지고 깨지고 날아가 버렸고.

종국에 다섯 사람은 서로 뒤엉켜 개싸움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피투성이와 흙투성이가 된 개싸움은 다시 한 식경이나 더 지나야 끝을 맺었다.

진짜 우리 현화검존 태사조님께서 보후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마터면 질뻔했던 싸움을 구산사괴는 간신히 승리로 이끌어 냈다.

살인마는 만신창이가 되어 혼절해 흙바닥 대 자로 뻗었고.

구산사괴, 아니 구산사협도 지칠 대로 지쳐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으로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뒤로 의제, 한해북, 예지, 그리고 왕대가 뒤를 따랐다.

내공이 고갈되고 너무 지쳐 안색까지 파리했던 네 사람이지만, 우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잔뜩 경계를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 누구요?”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마음이 더 놓였다.

그들의 눈에서, 광마일기에 기록된 사악한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대들의 조부들께서 몸담으셨던 곳에서 왔습니다.”

내 말에 황노는 물론, 나머지 세 사람까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번뜩 무언가 떠올랐는지, 황노가 조심스럽게 또 크게 놀란 얼굴로 물었다.

“혹…… 혹…… 혹시 정말 그분이십니까?”

황노는 알았지만, 나머지 셋은 아직 모르는 눈치다.

우리를 경계하는가 싶다가 이내 고개까지 돌려 황노를 말없이 보았다.

하지만 황노는 여전히 눈동자까지 크게 떨어가며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가 그런 황노를 향해 더욱 짙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아…….”

그에게서 뜻 모를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는 찰나였고.

곧, 그가 정자세를 잡더니 나에게 절도 있고 또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여전히 나머지 세 사람은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눈치였고.

황노가 동시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큰 목소리지만 그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산의 황노와 세 동생이……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께 인사드립니다.”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다.

황노가 말미에는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세 동생은 경악한 얼굴을 하고 나를 보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 상태 그대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뭣들 하느냐! 마 도사님께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황노의 질책이 있은 후, 세 동생은 서둘러 실태를 깨닫고 자세를 바로잡아 나에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난 그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아 주었다.

내가 그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흠칫하며 놀라는 이들이었다.

또, 황노에 이어 세 동생도 이 상황 자체에 감격하여 울먹이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고마운 건 난데, 감격한 건 이들이 나보다 더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나는 그들에게 내 친구들까지 일일이 다 소개해 주었다.

다시금 크게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이었다.

“선계에 계신 사조들께서 그대들을 크게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사부님께서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더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현화문의 제자 자격으로, 제가 그대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구산사협이, 눈물을 훔치며 놀란 눈을 떴다.

“오늘부로 현화문은 네 분을 현화구산사협(玄化九山四俠)이라 명명하겠습니다.”

“도, 도사님…… 흑흑흑.”

“감사합니다, 엉엉엉.”

그날 구산사괴, 아니 현화구산사협의 뜨거운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

호남 구산을 떠나 귀주 귀양에 도착했다.

화양문이 있는 곳이다.

당연히 화양문으로 직행하지 않았다.

어디 장사 한두 번 하나?

오리구이 다섯 마리와 화주 열 병을 들고 인근 개방 분타를 찾았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더럽다.

냄새도 나고.

아! 거지들한테 청소도 좀 하고, 옷도 빨아 입고, 씻고 다니라고 하면 내가 나쁜 놈이려나?

됐다.

빨리 정보만 얻고 가자.

아무튼 우리가 분타 근처로 올 때부터 이놈의 거지들이 오리구이랑 술 냄새는 또 기가 막히게 맡고 모두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아니, 오리구이와 술을 맞이했다.

그나마 분타에서 조금은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분타주 움막으로 들어갔다.

그래 봐야 똥통과 오줌통의 차이지만 말이다.

오리구이 한 마리와 화주 한 병은 언제나 분타주 몫이다.

“쩝쩝. 냠냠. 맛있네. 냠냠.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화양문에 관한 정보 전부입니다, 마 대협. 뭘 이런 걸 다 사 오시고. 하하. 다음엔 그냥 오셔도 이 정도 정보는 바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혹, 화양문의 가모에 대한 정보는 더 없습니까?”

“이미 충분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냠냠. 아름답고 자상하고 상냥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여인이라고요.”

한 식경에 걸쳐 화양문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더러운 손으로 오리구이를 뜯고 술을 마시며 분타주가 직접 말해 준 정보다.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정보이기도 하다.

은자를 슬쩍 비치며 정보를 더 요구했지만, 역시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특히 가장 알고 싶었던 극양신장의 부인, 주소수에 대해선 진짜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오리구이와 화주가 다 아까워지려고 했다.

그렇게 개방 분타를 나서려는데.

“아이코! 마 대협. 죄송합니다. 제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깜빡했네요.”

“뭐지요?”

“그 삼공자 있지 않습니까? 마 대협께서 무림맹 용봉지회 때 만나셨다고 들었는데.”

“아, 오중체요?”

“네. 맞습니다. 태양철장 오중체요.”

“오중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게…… 보른 전에 가출을 했습니다.”

“가출요?”

“네.”

“오중체가 올해 몇 살이죠? 분명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스물일곱 살입니다.”

“아…… 가출요. 스물일곱 살에.”

“그게…… 하하. 가끔 있는 일입니다. 알아서 돌아올 겁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는 거고요. 오리구이 잘 먹었습니다, 마 대협.”

분타를 떠났다.

하필 우리가 찾아왔을 때 오중체가 가출을 하다니.

좀 곤란하다.

화양문에서 부탁을 해 개방에서도 찾는 중이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제대로 찾으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고.

분타주 말마따나 일 년에 한두 번은 가출을 한다니, 뭐 나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개방에선 소득이 없으니 하오문으로 가봐야겠다.

돈은 많은데, 그래도 하오문을 갈 때면 살짝 긴장이 된다.

좀체 돈을 밝혀야 말이지.

일단 가 보자.

혹시 뭐라도 건질 게 있을지 모르니.

*

청화루(靑花樓).

“여기까지가 저희 하오문에서 마 도사님께 공식적으로 드릴 수 있는 정보입니다.”

아! 하오문에서도 별 소득이 없다.

개방과 똑같은 말만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금자를 한 냥씩이나 줬는데 말이다.

오리구이 일백 마리와 화주 일백 병을 사고도 남을 돈이다.

젠장.

그렇게 내가 실망감에 빠져 있을 때.

무언가 보였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가 싶던 루주가, 눈짓으로 아래를 가리킨다.

정확히는 무릎 위에 올려진 자기의 손을 눈짓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뭔가 싶어서 봤더니.

엄지와 검지를 마구 비벼 대고 있다.

돈을 더 달란 소리다.

하! 역시 하오문이군.

그나저나 개방에서 일부러 뭘 숨기려 하는 것 같진 않던데, 개방이 모르고 얘들만 아는 정보가 있나?

모르겠다.

얘들이 돈을 무지하게 밝히긴 해도, 또 지불한 돈에 대한 값은 확실히 하는 애들이다.

청화루의 루주, 그러니까 하오문 귀양 지부장에게 슬쩍 금자 한 냥을 건넸다.

그러자.

“호호호, 역시 마 도사님께서는 소문과 같이 호탕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대되는군요. 지부장께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절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머리까지 앞으로 들이밀며 속삭이듯 말하는 지부장.

나와 우리 녀석들까지 덩달아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사실 이건 아무리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말씀드리지 않는 특급 기밀인데요.”

“특급 기밀?”

“네. 이 말이 새어 나가면 제 목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본 문과 마 도사님과의 신뢰와 화친을 위해 제가 목숨 걸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갈 일 없도록 철저히 입단속을 하겠습니다.”

“그게…… 실은, 저희 지부에 큰 문제가 있었어요.”

“어떤 문제요?”

“지금 이곳 청화루는 새로 문을 연 기루이자 하오문 귀양 지부에요. 몇 년 전까지는 청화루가 아닌 홍화루란 기루가 이 자리에 있었어요.”

“그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거죠?”

“그러니까. 홍화루 당시, 극양신장 오대극 대협께서…….”

“네.”

“홍화루의 단골손님이셨어요.”

“아! 그랬군요.”

“그건 큰 비밀도 아니에요. 진짜 비밀은…… 당시 극양신장이 홍화루를 방문할 때면 언제나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왔다는 거예요.”

“극양신장요?”

“네! 전대 지부장이 저에게 직접 말해 준 내용인데. 언제는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오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머리가 깨져서 피를 철철 흘리며 왔다는 거예요. 또 언제는 약을 발라달라며 윗옷을 벗었는데, 왜 있잖아요. 어디에 팔다리를 묶고 등에 채찍질 같은 거 하면 생기는 그런 상처요. 그게 한가득이었다고 하네요. 천하의 극양신장 등에 말이에요.”

와! 이건 내가 상상했던 거 이상인데?

갑자기 나도 좀 무서워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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