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97화 (197/245)

197화

유령신검의 사형?

유령신검에게 사형이 있었나?

들어 본 적 없다.

잠깐!

뭔가, 지금 뭔가 엄청나게 불길하다.

천수신권과 무림맹주가 젊은 시절 어디에서 맞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다.

그렇다는 건, 귀주에 이어서 산서까지……?

떨리는 목소리로 원곡에게 물었다.

“유령신검의 사형이라는 자, 어떻게 됐지?”

“죽었다.”

아! 결국 죽었구나.

진짜 놈들이 그런 것일까?

“어떻게 죽었는데? 그 일과 관계가 있어?”

원곡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남궁비혁이 죽였다. 남궁세가 하남 분가의 고수들을 수십 명이나 불러 엄습했다. 유령신검의 사형이 아무리 대단한 고수였어도, 고작 삼십 대 초반이었다. 남궁세가 분가에는 절정 끝자락에 다다른 노고수만 셋이 있었다. 셋 다 죽었지만, 유령신검의 사형도 살아남을 수 없었지.”

“이 일도…… 남궁세가와 소림사에서 소문을 차단한 거야?”

“차단한 정도가 아니라, 철저하게 증거와 증인들을 인멸했다. 당시 남궁세가주에게 이 보고가 들어갔는데, 세가의 명성과 소가주의 미래를 위해 세가주가 직접 소문을 차단하고 증거를 인멸했다고 하더군. 그 누구도 이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개방과 하오문이라도 말이다.”

“황룡회…… 아니, 유령문에서는? 제자가 죽었으니 유령문에서도 조사를 나갔을 거 아니야?”

원곡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남궁세가가 작정하고 나서고, 소림사에서 묵인한 사건이다. 현재의 황룡회라면 모를까, 당시 유령문 정도의 힘으로는 진실을 파헤칠 수 없었다.”

난 조심스레, 살짝 떨리는 심정으로 물었다.

“유령신검 월제가…… 이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다고?”

“그렇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다.”

“……?”

“황룡회가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가?”

난 고개를 저었다.

모르기 때문이다.

“유령신검은 당시 자신의 사형을 그 누구보다 잘 따랐다고 한다. 그러다 사형이 실종되었고, 모두가 죽었을 거라 말했다. 그 일에 충격을 받은 유령신검은, 삼십 대 초반의 나이로 유령문의 문주가 되자마자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사형의 실종을 파헤치고, 더 이상 자신의 사람이 그렇게 이유도 모르고 사라지거나 죽는 걸 막기 위해 힘을 키우려 황룡회를 만든 것이다.”

아! 참 나.

세상사라는 게, 정말 하나도 우연이란 게 없다.

모든 과(果)에는 역시나 인(因)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나저나 유령신검한테 이 이야기를 해 주긴 해 줘야 하는데, 어쩌지?

사실을 알면 곧바로 전쟁이니 뭐니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다. 유령신검이 괴팍하긴 하지만, 냉철한 사람이다.

아! 그래도 불안하네.

지금 붙으면 필패인데.

방법을 생각해 보자.

우선 원곡 얘기부터 마저 듣고.

그렇게 원곡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엔 내가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내가 변방에서 숨어 살며 무공을 홀로 익히고 있을 때 형님이 나를 처음으로 찾아왔다고 했지?”

“그랬지. 오 년의 폐관 수련을 마친 후 널 찾았다고 말했다.”

“맞다. 그게 바로 그때다. 유령신검의 사형에게 두들겨 맞은 후, 두 사람은 남궁세가 분가의 힘까지 빌려 복수를 했지만, 이미 받아 버린 정신적 충격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각자 소림사와 남궁세가로 돌아가, 약속한 것도 아닌데 똑같이 오 년간 폐관 수련을 했다.”

“음…….”

“출관을 한 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철없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모두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 불행히도 새사람이라는 것이, 좋은 의미의 새사람이 아닌 복수와 탐욕, 증오로 똘똘 뭉친 새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였지. 그렇게 두 사람은 새사람이 되어 다시 만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천하를 집어삼키겠다는 꿈?”

“그렇지. 아무도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고, 모두가 자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야 하는 세상. 자신들의 말이 곧 권위며 법이고 진리로 통하는 세상을. 자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게 그때였다. 물론, 그때도 명분은 실추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예와 힘을 되찾자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녹주마적단과 적사마적단도 그때부터 시작했고?”

“그렇다. 일을 꾸미기 위해서는 언제나 돈이 필요하지 않겠나? 나는 비단길로 이어지는 서역과 중원의 돈을 쓸어 담아 형님과 남궁비혁에게 바쳤다.”

“사람들을 죽여 가면서.”

“그렇다. 부정하지 않겠다.”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물어볼 시간이다.

“두 사람이 꾸미는 음모에, 누가 가담했지?”

“단순하지 않다.”

“나 머리 좋아. 단순하지 않아도 되니, 그냥 말해.”

“소림사는 사십 년, 아니 오십여 년 전 원무 사형이 쫓겨났을 때부터 형님이 조금씩 소림을 차지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기반을 닦은 후, 형님이 화경의 벽을 깼을 때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들어갔다. 당금의 소림은, 형님의 소림이다.”

“음, 그래. 그건 알겠고. 그다음은?”

“남궁세가는 남궁비혁이 차지하고 있다.”

“당연한 소리. 아, 무림맹은? 무림맹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단순하지 않다.”

“말했잖아. 나 머리 좋다고. 그냥 말해.”

“무림맹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아, 그래? 쩝. 그래서?”

“무림맹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언제나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견제를 튼실히 해왔다. 남궁비혁이 무림맹주 자리에 오른 게 벌써 이십칠 년이나 됐다. 무림사를 모두 찾아봐도, 그렇게 장기간 맹주 직에 머물러 있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남궁비혁에게 많이 넘어갔을 거라는 말이네?”

“그렇다. 추정치로는 절반 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절반? 그것도 많은 거야?”

“말했듯, 무림맹은 한 사람이나 세력에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견제 장치가 겹겹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음, 그렇군.”

계두교의 난 때 무림맹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선 이유가 그래서였던 거군.

무림맹의 오 할 정도가 맹주의 힘이라 보면 되겠어.

이건 거의 확실해.

“그다음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누가…… 맹주와 거래를 하고 있지?”

“질문이 틀렸다. 형님과 맹주를 따르는 세력이라고 묻는 게 맞다.”

“뭐가 있군.”

“화산파와 종남파가 형님의 뜻에 동조하고 있다.”

“둘? 둘밖에 없어? 다른 문파는?”

“원래 무당도 거의 형님 손에 들어왔는데, 네가 망치지 않았느냐?”

“설마…… 무당파의 사장로였던 칠성우사(七星遇師) 운면 도장을 말하는 건가?”

원곡이 대답 대신,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

아! 기억하는가?

무당파의 사장로 운면 도장.

우리가 죽인 제갈세가의 삼장로 제갈세진과 은밀한 거래를 하며, 무당파를 세속의 때로 찌들게 만들었던 그 도사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쁜 짓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놈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당파를 결국 천수신권의 졸개로 만드는 것이었던 것이다.

잘 죽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지금 원곡이 말하는 걸 들어 보니, 구파일방만을 말하는 것 같은데.

고작 두 개? 그것밖에 안 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원곡이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곤륜, 공동, 점창파는 변방에서도 변방. 아예 중원의 땅을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 도사들은 중원으로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아무리 형님이 그들과 무슨 거래를 하려고 해도, 얼굴을 봐야 뭘 하지 않겠나?”

“그렇지. 청해, 감숙, 운남은 멀어도 너무 멀지. 심지어 그곳 사람들은 중원 말도 못 한다고 하던데. 음, 그래. 그 세 곳은 이해가 가네. 그럼 남은 구파의 두 곳은?”

“아미와 청성. 두 곳은 사천당가와 힘겨루기를 하느라 바쁘다. 특히 아미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너무 강해 말이 안 통한다. 아미파 비구니들의 성격이 지랄맞은 건 사천당가와 쌍벽이지 않겠나? 형님이 오랜 시간 같은 공을 들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청성은?”

“청성은 아미파 눈치 보기 바쁜데, 두말하면 잔소리고. 그들은 아미파 누나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그런 멍청한 녀석들이다.”

“음, 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사천의 상황이 그러니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아! 맞다. 개방은?”

“애초에 그들을 끌어들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왜?”

“천수신권이 중원을 정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고 어디 소문낼 일 있겠느냐?”

그러고 보니, 천수신권의 꾐에 빠졌거나 또 빠질 뻔했던 무당파까지 보면 공통점이 있다.

셋 모두 중원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문파들이다.

소림사까지 합치면 넷 모두 중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개방을 뺀 나머지는 죄다 사천, 청해, 감숙, 운남이라는 변방에 위치해 있고.

아무래도 보는 것이 많고, 먹는 것이 많은 이들이 쉽게 세속적 욕망에 빠지기 쉬운 것도 있으리라.

“그렇군. 그럼…… 천수신권은 두 개가 전부야? 화산과 종남?”

“똑똑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이 인간, 단체 손님 한 무리 더 받고 나서 다시 대화를 시도할까?

말투가 점점 고깝게 들리네.

“화산과 종남은 그냥 화산과 종남이다.”

“무슨 말이야?”

“아까 내가 한 말 잊었나? 형님이 곧 소림이고, 소림이 곧 형님이라고.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정녕 모르겠는가?”

“음…….”

“무림사를 통틀어, 단 한 번이라도 소림사가 천하를 노린 적이 있던가?”

“…….”

“언제나 조용히. 숭산에 머물며 수양을 쌓는 스님들이다. 하지만 그 힘의 위대함은 일천 년이 넘는 무림사가 증명하고 있다. 한 시도 그들이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이름을 내려놓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지금, 그 소림사가 천하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다. 압도적인 힘은 둘째치더라도, 소림사의 스님들이 나서는 순간, 천하의 대부분이 그들의 말에 따라 칼을 들고 일어날 것이다.”

“소림이라…… 휴우. 됐고. 그다음은?”

“남궁비혁을 따르는 무리는 많다.”

“예상하고 있어. 천수신권과 다르게 놈은 정치질을 좋아하는 놈이니 당연히 그러겠지.”

“남궁세가, 제갈세가, 사천당가, 황보세가, 하북팽가. 오대세가라 불리는 이들이 모두 남궁비혁의 말을 따르고 있다. 거기에 더해 요녕의 모용세가, 산동의 산동악가, 섬서의 백리세가 등등. 십대세가, 이십대세가라 불리는 대부분의 세가들이 남궁비혁을 자의건 강압에 의한 것이건, 그를 수장으로 인정하고 그의 명을 따르는 실정이다.”

아! 이건 예상했지만, 좀 큰데?

문제는, 분명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난 세력 중 천수신권과 무림맹주를 따르는 세력은 이렇고. 그다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세력 중에 두 사람을 따르는 이들이 또 있을 텐데?”

“이미 오래전, 사파의 기둥이라 불릴만한 고수들과 거대한 세력들이 모두 남궁비혁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아! 씨팔.

이거, 이거 말이다.

원래 이랬던 거였어.

광천마제 시절, 수하라 믿었던 녀석들의 배신!

그게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사패천을 만들기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설마, 사패천을 만들었던 것까지 맹주의 계획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확실히 아니다.

광천마제 시절 나의 거침없는 행보는,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사패천을 만들게 할 만큼 대단한 거였다.

마교주의 목까지 베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내 힘이 너무 강해지고, 내 주위로 힘이 계속 몰리다 보니.

맹주는 자신의 힘으로 그걸 꺾는 대신, 그 힘을 이용해 나를 없애려 했던 것이다.

맞다, 그게.

사패천에 구름같이 몰려들었던 사파의 고수와 문파들 상당수가 처음부터 날 죽이기 위해 맹주가 보냈던 놈들이었다.

아! 돌겠네.

원곡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들을수록, 내가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유령신검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앞으로 내게 올 수하 중 맹주의 간자와 충신을 가려야 한다.

아!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네.

앗! 그래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당신, 그놈들 누군지 다 알아?”

“사파 쪽에서는 워낙 유명한 놈들이니, 웬만한 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내가 이끌던 적사마적단과 녹주마적단의 고수들을 파견해 놈들의 일을 도와준 적도 몇 번 있고. 반대로 손이 부족할 땐, 놈들의 수하들을 동원했던 적도 꽤 있다. 그런데…… 그건 왜?”

“적어.”

“……?”

“뭐해? 놈들 이름 죄다 적으라고. 한 명도 빼먹지 말고.”

원곡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놈들의 문파와 고수들의 이름을 죄다 불었다.

무려 한 시진이나 걸렸다.

이를 처선이 꼼꼼히 모두 기록하였다.

처호와 공손병이 종이에 적힌 명부를 모두 확인한 후, 나에게 눈짓을 주었다.

눈빛만 봐도 뜻이 통한다는 게 이런 걸 의미하는 것 같다.

일단 간자와 충신을 구분하는 틀은 대충 잡았고, 그래도 처호, 공손병과 상의해 가며 계속 조심해야겠다.

“자, 더 있지? 천수신권과 무림맹주가 숨겨 놓은 세력이나 고수. 계속 말해.”

“자잘한 놈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내가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

“이게 끝이라고?”

“마지막으로…… 형님과 맹주가 오랜 시간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한 비밀 병기가 있다.”

“비밀 병기?”

“그렇다. 아마…… 네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좌절할지도 모르겠군.”

“좌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들이 누군데? 천수신권과 맹주가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한 비밀 병기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화경의 고수가 한 명 더 있다. 또 그 화경의 고수와 형님 그리고 맹주가 천하의 신공들을 가져다 직접 가르친 아홉 명의 신진 고수들까지. 그들이야말로 형님과 맹주의 진정한 숨은 힘이라 할 수 있다.”

“음…… 혹시 비정검사 오화서랑 삼존하구룡협이란 꼬맹이들 말하는 거야?”

“허걱! 그, 그걸…… 그걸 네가 어떻게……?”

“그놈들 이미 다 뒈졌어.”

“말도 안 돼! 삼존하구룡협 아이들은 아직 어려 그렇다 칠 수 있어도. 비정검사 오화서는 이미 나를 뛰어넘을 정도의 경지에까지 올라섰는데…… 설마…… 원무 사형이 그런 것인가?”

“그런 허접한 놈을 죽이는데, 작은 사부까지 나설 필요 없지.”

“그럼 도대체 누가 그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

“나. 내가 죽였어. 살왕과 함께.”

“불가능…… 불가능하다. 그는 불사신이다.”

“응. 알아. 불사신인 거. 근데 말이야. 내가 불사신을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 그래서 죽일 수 있었어.”

원곡의 놀라움은, 오랜 시간 쉬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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