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95화 (195/245)

195화

“우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 소림사에 있을 때부터 말이야.”

원곡의 나이 올해로 육십구 세다.

쌍둥이인 천수신권 원욱과 동갑이니 그의 나이를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의 오십 년도 더 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지만, 원욱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모든 걸 털어놓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원무 사형은 악마였다. 매일 나와 형님을 때리고 종을 부리듯 부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나중에는 원무 사형을 보면 그 자리에서 그냥 오줌을 지렸을 정도였다. 원무 사형은 나와 형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협박하고…….”

“잠, 잠깐!”

아니, 이 인간이 미쳤나?

자기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작은 사부 흉보네?

“오, 오빠. 원무 스님이라고 하면, 얼마 전 귀정사에서 봤던 주지 스님, 그러니까 오빠의 작은 사부님께서 소림사에 계실 때 받았던 법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 맞긴 한데. 어험. 그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 이봐, 원곡! 당신 이야기를 하라고.”

원곡은 내 이야기를 들은 건지 아닌지, 표정의 변화 없이 말을 이어갔다.

얼굴로 이어지는 혈도는 이미 모두 풀린 상태다.

“하지만 진짜 악마는 원무 사형이 아닌 내 형님이었다.”

“원욱? 천수신권 원욱 말하는 거지?”

원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놀란 얼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해 봐.”

“보아하니 원무 사형에게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것 같은데, 원무 사형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그게 뭔데? 천수신권에 관한 이야기구나?”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원곡.

“내가 소림사에서 쫓겨난 이유는 여러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지만, 결국에는 장경각에 봉인된 금기 마공을 탐했기 때문이다.”

“나도 작은 사부님에게 그렇게 들었어.”

“하지만…… 그 금기된 마공을 건드린 건 내가 아니다.”

“설, 설마…… 천수신권 원욱이 그랬던 거야?”

이번엔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원곡.

다시금 밀실 안에 있는 모두가 크게 놀란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전에 저질렀던 나쁜 짓들도, 마지막에 장경각에 봉인된 금기 마공을 건드린 것도. 모두 형님이 한 짓이다.”

“그걸…… 당신한테 뒤집어씌운 것이군.”

“그렇다.”

와! 천수신권 이 인간.

진짜 악질이네.

작은 사부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크게 놀라 뒷목을 잡지 않을까 싶다.

“쌍둥이어서 더욱 가능했겠군.”

“그렇다. 거기에 당시 나와 형님은 고작 열세 살이었다. 나는 말주변이 없었지만, 형님은 말도 잘했고 원로 스님들의 신뢰와 총애를 많이 받고 있었다. 난 변론하지 못했고, 스님들은 모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형님의 이야기를 믿었다.”

“음, 그렇게 결국 당신이 쫓겨나게 된 거군. 소림사에서. 그다음에는?”

“소림사를 떠났지만 나를 감시하는 스님들이 붙었었다. 그런데 형님은 놀랍게도 나를 감시하는 스님 두 명의 눈을 피해 나에게 접근했다. 소림을 떠나고 보름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게 가능해? 그래도 소림사의 스님들인데, 고작 열세 살 아이가 그런 소림사 스님들의 눈을 피해 너에게 접근한다는 게?”

“나 역시 열세 살이었다. 스님들은 내가 어떤 큰 사고를 칠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감시가 허술했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그래서? 원욱이 왜 너에게 접근했는데?”

“사과를 하더군. 미안하다고.”

“그게 끝이 아닐 텐데?”

“장경각에서 훔친 마공서를 나에게 줬다. 나에게 익히라고 하면서.”

“아니, 잠깐. 열세 살 아이가 장경각에서 마공서를 훔쳐? 봉인된 금기 마공을? 그건 진짜 이해하기 힘든데? 말이 안 되잖아.”

“형님이라면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원무 사형이라면 가능했다.”

또 작은 사부가 거론된다.

젠장. 뭐지?

하지만 아니다. 작은 사부는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

“말 잘해. 하나의 거짓이라도 있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 당시 나와 형님은 원무 사형의 놀잇감이었고 수족이었다. 소림사에서 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소림사에서 원무 사형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소림사에서도 당시 한 알밖에 남지 않았던 대환단을 원무 사형에게 주려고 했겠는가?”

“음, 그래서?”

“장경각을 드나드는 일은 너무나 자유로웠다. 아니, 방장 스님부터 시작해 원로 스님들은 원무 사형이 장경각 드나드는 것을 매우 흡족해하며 권유하였다. 그리고 원무 사형은 자연스레 장경각에서 무공서 가지고 오는 일을 우리에게 시켰다.”

“아…….”

“장경각을 지키는 무승들도 조금도 나나 형님을 경계하지 않았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때부터는 내 집인 것처럼 그곳을 드나들게 되었다. 난, 단 한 번도 금기 마공이 봉인된 곳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군.”

“다시 내가 소림사에서 쫓겨났을 때부터의 일을 말하자면, 형님은 장경각에서 훔친 마공서와 더불어 몇 권의 소림사 비급을 필사해 주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를 감시하는 스님들의 눈을 피해 도주하는 방법, 도주로, 그리고 내가 숨을 곳까지 모두 알려주었다.”

“열세 살…….”

“가능하다. 형님은 이미 원무 사형을 따라다니며 그 어린 나이에 무림에 많은 이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또 원무 사형과 그들의 관계까지 정확히 파악했었다. 그렇게 형님은 사형의 이름을 팔았고, 원무 사형의 이름을 들은 이들은 하나 같이 치를 떨면서도 두려움에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 사부님, 사부님, 작은 사부님.

도대체 그 어린 시절 어떤 삶을 사셨던 것입니까?

얼마나 행패를 부리고 다니셨으면, 어른들이 치를 떨면서도 협박과 같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입니까?

결국은 그것이 모두 소림을 등에 없어 나온 힘이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참 그랬다.

그러고 보면 정말 우리 작은 사부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사부를 그렇게 개과천선할 수 있게 도와준 사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다.

“나는 형님이 알려 준 대로 변방에 숨어 살게 되었다. 형님이 내게 준 마공서와 소림의 비급들로 무공을 익히며, 몇 달에 한 번씩 형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형님은…… 내가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원무 사형마저 내쳐 버렸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형님이 신이 되는 줄 알았다.”

원곡에게 작은 사부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던 존재인지, 재차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좋아. 지금까지 당신 이야기는 잘 들었어. 그럼 이제부터 적사마적단과 녹주마적단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이번에도 원곡은 조금의 고심도 없이 입을 열었다.

“소림을 떠나고 홀로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후 십수 년이 지났을 때. 형님이 나를 찾아왔다. 형님이 오 년 폐관 수련을 끝마친 후였다. 나에게 형님을 위해 일을 하라고 하였다. 난, 거절할 수 없었다.”

“그게 녹주마적단과 적사마적단에 관한 일이었어? 거의 삼십 년도 전부터 준비했던 거네?”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그러한 일들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착오를 거쳐 가며 만들어진 게 녹주마적단과 적사마적단이었다. 당시 형님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키우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사람과 돈까지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보이지 않는 힘?”

원곡이 대답 대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가단이 했던 이야기. 천수신권과 무림맹주인 창궁검제가 어떠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 그것과 연관된 것이군?”

“그렇다.”

“좋아. 그럼 본격적인 질문을 해 볼까? 천수신권과 무림맹주가 지금 꾸미고 있는 일이 뭐야?”

“실추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예와 힘을 되찾는 것.”

뭐야?

제갈가단이 했던 말과 똑같잖아?

“그, 그게…… 그게 전부야?”

내 말에, 원곡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삼십여 년 전, 어쩌면 두 사람은 실제로 그러한 목표를 세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 두 사람이 그렇게 순수한 마음을 품었을 리 없으니까.”

“다른 사실이 있다는 말이군?”

“그렇다. 표면적 이유는 실추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예와 힘을 되찾는 것이었으나, 두 사람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 진짜 속마음은 무엇인데?”

“이건 내 추측이다.”

“감안하고 들을 테니, 어서 말해.”

“군림천하.”

조용했던 밀실 안에 다시금 미세한 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원곡의 말에,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재차 놀라 생긴 기의 파동이었다.

나도 예상은 조금 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원곡의 입을 통해 들으니 놀라 쉬이 다음 질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자 원곡이 스스로 말을 이었다.

“형님과 맹주는 서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서로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서로를 이용해 세력을 키우고, 종국에는 상대를 없애 홀로 천하 위에 군림하겠다는 꿈. 그것이 두 사람의 동상이몽이다. 이는 두 사람 모두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이용하기 위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 이해가 된다.

계두교의 난.

맹주가 서슴지 않고 천수신권을 배신하고 계효보에게 빌붙었던 일.

이제 확실히 이해가 간다.

단순한 이유다.

천수신권과 손을 잡는 것보다, 계효보에게 붙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하게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역시나 그때 내가 추측했던 대로, 맹주는 계두교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계두교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천하 위에 두 사람만 남을 때까지는, 그 끈끈한 동맹이 유지되겠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더 강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지금의 형님이나 맹주보다 더 이용할 가치가 있는 강력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두 사람은 서슴지 않고 배신하게 될 것이다.”

“그렇군.”

난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음 질문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예지가 나에게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오빠, 나는 조금 이해가 안 돼.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잖아. 두 사람이 왜 그런 일들을 꾸미게 됐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아니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있다.

원곡이 그렇고 작은 사부가 그랬으며, 내가 그렇다.

날 때부터 나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다 나와 작은 사부는 사부를 만나 바뀐 것이고.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예지에게 해 줄 수는 없었다.

별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묻는 예지에게, 이런 지독한 현실을 말해 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정말 궁금해졌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천하를 자기 발아래 두려는 음모를 꾸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다 두 사람은 그러한 꿈을 꾸게 된 것일까?

“이봐, 원곡. 방금 들었지? 두 사람은 어쩌다 천하를 정복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 것이지? 그런 계기가 있었나?”

예지의 순수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이 질문.

단순한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그래서 쉬이 그 답변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원곡이 처음으로 주춤한다.

뭔가 인상까지 살짝 구기며 고민하는 모습이다.

괜찮다. 이럴 때를 대비해 홍민과 말을 맞춰 놨다.

원곡을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 홍민을 향해 내가 말했다.

“홍 선생?”

내 부름에 그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곧 내 뜻을 알아채고는.

“아, 네. 지금 밖에 대기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체 손님입니다. 네 무리나 됩니다.”

단체 손님이라는 말에 고심에 빠졌던 원곡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니,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정말이다. 모두 말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하겠다. 생각을 모두 정리했다. 지금 말한다고.”

얼마나 절박했으면 극마의 고수가 저리도 다급하면서도 간절하게 말을 하는 것일까?

홍민의 고문이 정말 무섭긴 한 모양이다.

아니, 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하다.

원곡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 난 이제 말하기 싫어졌나 싶어서.”

“아니다. 절대 아니다. 말하겠다. 형님과 맹주는…… 휴우. 그러니까 이건 형님이 오 년 폐관 수련을 깨고 나에게 왔을 때 딱 한 번 해 주었던 말이다. 거의 사십 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라, 잠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다.”

“그래. 알았어. 그러니 천수신권과 무림 맹주가 천하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려고 음모를 꾸미게 된 계기가 뭔지 말해 줘.”

“그, 그게…… 실은…….”

“뭔데?”

“형님과 맹주가…… 한 여자에게 맞았다. 그것도 복날 개가 두들겨 맞듯 그렇게 마구 맞았다고 한다.”

아! 이건 또 뭐야?

천하의 어떤 여인이 감히 소림사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원욱과 당시 남궁세가의 소가주였던 남궁비혁을 때려?

무적 할매는 분명 아닌데.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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