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94화 (194/245)

194화

홍민이 이른 아침 우리를 불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무지막지한 마두들과 싸울 때도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는데.

한편으로는, 극악무도한 원곡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도 했다.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데,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홍민의 밀실로 향했다.

그리고 원곡을 보았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극마의 고수답게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외모의 그가 그렇게 있었다.

예쁜? 멋진?

이걸 어떻게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다.

사십 대의 미중년이랄까?

화장을 하고, 고운 옷을 입은 원곡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도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극마의 고수가 지금 우리 앞에서 너무나도 슬프게 울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극마의 고수라 다르긴 하군요. 평범한 사람은 첫날 모두 포기하고 자백하는데, 하하. 우리 예쁜 왕자님은 어제 열두 명을 받았는데도, 입을 굳게 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고문은, 옥황상제라도 사흘을 버텨 내지 못할 테니까요. 하하하! 호호호.”

무섭다.

갑자기 저 인간, 홍민이 너무 무섭다.

동시에 지금 폐관 수련 중인 천무휘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확인해 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고문하는 것인지.

“혹시 열두 명을 받았다는 말씀이……?”

“하하, 호호호. 영업 비밀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다, 마 도사님.”

“아, 네. 그렇죠. 죄송합니다.”

홍민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뭔가 섬뜩한, 본인은 나름 기쁜 의미의 미소일 텐데, 나에게는 너무나 무섭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아! 정말 뭐지?

어제 밤사이 홍민의 장원을 방문한 열두 명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무공을 익힌 자는 한 명도 없었고, 부자처럼 보이는 이도 있었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도 이십 대 초반부터 쉰이 훌쩍 넘는 자까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아! 하나 있긴 있다.

죄다 남자들만…… 젠장!

아니겠지? 아니어야 해.

그러면 아무리 원곡이 악인이라고 해도 너무 불쌍하잖아!

아! 도저히 여기 계속 못 있겠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의제, 한해북, 예지, 처선, 처호, 공손병까지 모두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얼굴이다.

그렇게 우리는 차 한 잔 마시지 않고 서둘러 홍민의 장원을 나왔다.

*

아침밥을 먹을 수 없었다.

왕대와 막영, 막웅, 막문 녀석들만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마구 밥을 먹어 댔다.

그들을 제외한 우리는, 어제 그 창가의 같은 자리에 앉아 홍민의 장원을 관찰하였다.

낮에만 네 명이 다녀갔고, 슬슬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비단옷을 입은 자, 무명옷을 입은 자.

생김새도 모두 제각각이고, 나이도 다 다르다.

하지만 역시나 모두 남자다.

대문에 붙은 홍화단 문양을 확인한 이들은, 설레는 얼굴로 또 무언가 흥분한 얼굴로 그렇게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는 모두 비슷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만족한다는…… 젠장.

더는 지켜보지 못하겠다.

우리는 순번을 정해 홍민의 장원을 새벽까지 관찰하였다.

이날 홍민의 장원을 은밀히 방문한 사내들의 숫자는 총 스물아홉 명이었다.

*

아침이 되었고, 홍민이 다시 우릴 불렀다.

장원에 들어섰고, 밀실 바로 앞까지 왔다.

하지만 차마 밀실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밀실이 문제가 아니라, 원곡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끔찍한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하여도, 하아!

그래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 형, 그래도 원곡의 상태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휴우. 그래야겠죠. 들어갑시다, 한 형.”

그렇게 밀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 새끼들.

의제와 한해북, 이 배신자 새끼들!

“한 형? 의제?”

한해북이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대표 한 명만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굳이 셋이 다 들어갈 필요는…….”

“형님, 그건 한 형 말이 맞는 것 같은…… 어험. 어험.”

둘 다 미친 척, 나만 들여보내고 자기들은 안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나, 이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단하지?

그런데 그때.

밀실의 문이 열렸다.

처선이다.

주저하던 우리보다 먼저 장원에 와 있었고, 밀실도 이미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주군.”

“오! 그래, 처선. 어때, 상황은?”

“어제와 비슷합니다.”

“뭐, 다치거나 피가 흐르고…… 그런 건 없어?”

“없습니다. 홍민 선생이 서역에서 들여 온 고급 윤활유를 방문객들에게 충분히 나눠 주어 찢어져 피가 나는…….”

“우웩! 우웩!”

처선의 설명이 이어지는 사이, 이를 내 뒤에서 듣고 있던 의제와 한해북이 동시에 토악질을 시작했다.

“휴우, 일단 들어가 보자.”

“네, 주군.”

나와 처선이 밀실로 들어갔다.

배신자 두 녀석은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안에는 이미 처호와 공손병 그리고 당연히 홍민도 있었고.

아! 우리 예지는 아예 장원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원곡은, 확실히 어제와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여전히 웃고 있는 원곡의 슬픔이 더 진하게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아픔에 대한 공감대는, 죄인이 저지른 죄와 상관없이 같은 남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아픔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컨대, 어느 한 남자가 자신의 중심부를 강하게 맞고 쓰러졌다고 치자.

당연히 소중이를 맞은 남자는 십팔 대 조상까지 찾아 가며 살려 달라 할 정도의 무지막지한 고통에 휩싸여 괴로워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다른 남자들.

고통에 휩싸인 사내와 아는 사이건 모르는 사이건 상관없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거의 비슷한 고통을 공감하며 안타까워하고 또 함께 괴로워한다.

그 고통을, 직접 당하진 않았어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원곡을 보는 내 심정이 그러한 것이리라.

그렇게 나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밀실을 나서야 했다.

아니, 막 나서려는데 원곡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막 이후 처음으로 듣는 그의 음성이었다.

“제발…… 그냥 죽여 다오.”

난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그냥 밀실 밖으로 나왔다.

*

홍민이 장담했던 사흘째다.

이튿날보다 더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들 사이 소문이라도 돈 모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홍민의 장원 건너편 객잔 이 층에서 상황을 주시 중이다.

아니, 도저히 계속 지켜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시선을 거두고, 나중에는 아예 창문까지 닫아 버렸다.

그날 우리는 늦은 시각까지 술을 마셔야 했다.

너무나도 숙연한 술자리였다.

*

나흘째 아침.

원곡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

여전히 웃으며 울고 있는 원곡이다.

하지만, 처참한 분위기는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홍민 역시 원곡 못지않게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일이…… 문제가 있습니까?”

“휴우, 죄송합니다, 마 도사님. 이렇게 대단한 놈은 정말 처음입니다.”

“극마의 고수니,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겠지요.”

“네.”

원곡의 입을 여는 일은 역시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라면 첫 번째 손님을 받았을 때, 아니 무슨 일이 생길지 직감했을 때 이미 다 실토했을 텐데 말이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상태로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원곡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심란하다.

그나저나 홍민이 포기하면 안 되는데?

천하제일 고문가가 원곡의 입을 열지 못하면, 그 누구도 원곡의 입을 열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홍민도 매우 심각한 얼굴이다.

너무 심각해서 말도 걸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내가 뭐라 힘을 북돋아 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홍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 자의 입을 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혹, 다른 방법이라도……?”

내가 조심스레 물었고, 홍민은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매우 진지한 얼굴로 눈에 힘까지 주며 답했다.

“오늘 밤부터…….”

“……?”

“단체 손님을 받겠습니다.”

*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아! 머릿속까지 새하얗게 지우고 싶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자꾸 상상이 된다.

그래서 너무 괴롭다.

왕대에게 있던 심마라는 녀석이, 나에게 찾아온 모양이다.

아! 정말.

원곡은 나쁜 놈인데.

그래서 벌을 받는 게 마땅한데.

왜 이리 놈이 불쌍한지 모르겠다.

난, 술은 물론 식음을 전폐하고 그날 온종일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해야 했다.

개불쌍하다.

상상하지 말자.

무림을 전복할 거대한 음모를 막는 일이다.

용감해져야 한다.

그렇게 계속 스스로 세뇌를 했지만.

하아! 정말 힘든 하루였다.

*

닷새째 아침.

홍민 장원의 밀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밀실 안은 난장이었다.

빈 술병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요상하게 생긴 채찍과 가면, 그리고 저건…… 저건 분명 나무를 깎아 만든 목각봉(木刻棒)인데.

길이와 굵기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어디에 쓰는 거지?

안 돼! 하지 마!

상상하지 말자.

그와 더불어 원곡의 상태도 앞의 날들과 다르게 심히 처참했다.

옷은 찢겨 있고, 곱게 했던 화장도 낙서장같이 변해 있었다.

축 늘어진 몸까지.

동공은 풀려 있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데, 이젠 눈물까지 말랐나 보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원곡이었다.

아!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진짜, 만에 하나 내가 홍민에게 고문당하는 일이 생기면, 그냥 혀를 깨물어 자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단체 손님의 효과는 확실했다.

“말……하겠다.”

결국 원곡의 입이 열렸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힘없이 말하는 원곡이었다.

드디어 무림의 흑막을 밝히게 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펄쩍 뛸 정도로 기뻐야 했는데.

나는 물론 처호, 처선, 공손병 모두 숙연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잠시 후, 여전히 어딜 쳐다보는지 모를 원곡이 풀린 동공으로 말을 이었다.

“약속해 다오.”

아니, 그 말과 함께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더불어 그의 초점이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간절한, 정말 처절할 정도로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원곡이 말했다.

“모두 자백하면…… 날 꼭 죽여 다오. 부탁……이다.”

“꼭, 그리하겠소. 내 사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이오.”

내 약속에, 원곡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았다.

죽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너무 격해져 쏟아 내는 오열이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무림의 장막 뒤에 숨은 거대한 음모의 진실을 파헤칠 시간이다.

*

“왕대 형은 장가갔소?”

“주인님께서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 수 없게 경계를 서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경계 서고 있지 않소?”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 수 없다.”

“그래 보이오. 그래서 장가는 갔다는……. 음, 됐소. 천하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무공에 심취하다 보면 혼자일 수도 있는 게 무림에선 흔한 일이니. 너무 개념치 마시오, 왕 형.”

“난 소금을 캤다. 마을을 벗어난 건 아홉 살 이후 처음이다. 주인님을 따라왔다.”

“아! 그랬소? 사실 나도 아직 장가를 안 갔소. 아니, 못 갔지. 내 동생 녀석들도 아직이오. 웅이와 문이 말이오. 그나저나 지존께서 우리 삼형제에게 했던 이야기를 왕 형도 똑똑히 들었소? 지존께서 우리에게 영웅문이라 칭해 주셨소. 하하! 얼마나 당황스러우면서도 감사한지. 감격해 울컥했지 뭐요, 하하.”

“주인님께서는 신통력이 있으시다.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과 사랑하는 착한 사람을 알고 계신다. 주인님께서 막 형제에게 영웅문이라 말씀하셨으면, 그건 진짜 그렇기 때문이다.”

“왕…… 왕 형. 아이고, 나도 주책이지. 왕 형 말에 또 감동받아서, 그만. 훌쩍.”

“적!”

“네? 갑자기 적이 어디에? 왜 그래요, 왕 형?”

쉬이이이익!

퍽!

“찌익!”

“뭐, 뭐에요? 진짜로 쥐를 잡은 거예요?”

“주인님께서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게 경계를 서라 했다. 그런데 이 쥐가 이 경계를 넘어섰다. 죽어 마땅하다.”

“아! 그, 그래요. 쥐가 나빴네요. 잘했어요.”

밀실이 있는 전각의 입구는 왕대와 막영이 경계를 서고, 뒤편은 막웅과 막문이 경계를 서고 있다.

요 며칠 꽤 친하진 네 사람이다.

어째 나보다 말도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게 철통같이 경계를 서라고 했다.

청력을 살짝 높여 들으니, 뭐 난 마음 놓고 원곡의 자백이나 들으면 될 것 같다.

예지와 의제, 한해북까지 불러 모두 밀실에 모이게 됐다.

이제부터 진실의 시간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