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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92화 (192/245)

192화

“만남의 기쁨은 잠시 뒤에 나누기로 합시다.”

“네? 아, 뭐. 그러시든가. 아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배움이 모자라 말투가…….”

“괜찮습니다, 막 대협.”

“어? 저 대협 아닌데요?”

“네. 그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제게는 세 분이 모두 영웅이니까요.”

내 칭찬에 세 형제는 또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리만 긁적였다.

“처호, 공손병 선생들과 만나고 싶은데, 길을 비켜 주시겠습니까?”

“아, 네. 아이쿠, 죄송합니다. 들어가세요.”

황망히 길을 비켜주는 세 형제.

난 그들에게 다시금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다관 내부로 향했다.

다관을 통으로 빌린 모양이다.

손님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처호, 공손병, 홍민의 기감은 다관 뒤편에 딸린 작은 후원에서 감지되었다.

발걸음을 옮겨 후원으로 향했다.

“주…… 주군! 와 주셨군요. 천세! 천세! 천천세!”

나를 발견하자마자 처호가 부복을 하며 천세 제창을 했다.

나는 거의 동시에 그에게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처호 선생님, 그간 저를 위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주군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나와 처호는 두 손까지 꼭 맞잡고 그렇게 뜨거운 회포를 풀었다.

공손병과 홍민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묘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 주군, 서신으로 몇 번 말씀드린 제 친우입니다.”

그리고 때가 왔다.

처호가 내게 공손병을 소개해 주는 순간이었다.

“산동의 공손병이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내게 인사하는 그의 두 손을 살포시 잡았다.

울컥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잡은 손이다.

공손병이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난 그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공손 선생님.”

“제가…… 아직 마 도사님께 어떠한 결정도 말씀드린 바가 없는데…….”

“아닙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

“미안합니다.”

광천마제 시절,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어 준 그였다.

마지막 순간 나를 떠났지만, 그건 그가 떠난 게 아니라 내가 그를 내쫓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고마웠다는 말도, 또 미안하다는 말도 광천마제 시절의 내가 그에게 하는 말이다.

“으흠…….”

그는 어느새 눈시울까지 벌게진 나를 보며 심각한 얼굴을 했다.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내 감정은 나도 어떻게 주체하기 힘들었다.

“의제.”

“네? 아, 네, 형님.”

내가 서둘러 의제를 불렀고, 의제가 허둥대며 다가왔다.

“인사해. 공손병 선생님이셔.”

의제도 또 다른 사람들도, 왜 내가 의제만 따로 불러 공손병에게 인사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괜찮다.

이해하지 못해도 다 괜찮다.

공손병이 떠나던 그다음 날, 의제는 내 집무실의 집기까지 죄다 부수며 난생처음으로 내게 화를 내고 욕지거리까지 했다.

의제의 기억 속에 그는 없지만, 의제와 공손병 역시 너무나도 각별한 신뢰와 정을 쌓은 사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곽우적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공손병이라고 합니다.”

“아, 네.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의제는 살짝 어색해하며, 또 공손병은 더없이 반가운 얼굴로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됐다.

모두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된 거다.

이제 다시는 공손병을 내 곁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눈에 고인 눈물까지 쓱싹 훔치고, 나는 한해북과 금예지, 왕대까지 모두 공손병과 인사를 나누게 했다.

천무휘와 십합단 녀석들까지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또한 괜찮다.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아니, 내가 꼭 그런 날을 만들 것이다.

“주군.”

내가 흠뻑 감상에 취해 있을 때, 적당히 인사가 마무리되자 처호가 나를 조심스레 불렀다.

“소개해 드릴 사람이 또 있습니다.”

옥면화화랑 홍민을 소개해 주려는 것이다.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그런데.

처음에도 꽤 놀란 얼굴이었던 홍민이, 이제는 놀람을 넘어…… 어?

쟤는 또 왜 저래?

감격에 겨워 울고 있다.

미친놈인가?

공손병을 만나 감격한 건 난데, 저놈은 도대체 왜 우는 걸까?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놈의 울음, 이젠 더 격해졌다.

꺼억꺼억,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쉬이 멈추지 않았다.

“마악치라고…… 하는데. 홍민 선생?”

“끄으으억. 마악치…… 엉엉. 마악치…… 곽우적. 한해북. 엉엉엉! 만나고 싶었습니다. 엉엉엉!”

아! 이 녀석.

제대로 미친놈이다.

*

다관의 깊은 곳에 자리한 내실.

그곳에 자리를 다시 잡았다.

공간이 협소했지만, 간신히 우리 모두 앉을 수 있었다.

홍민은 그사이 감정을 많이 추스른 상태였다.

아니, 아까 봤던 그 미친놈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멀쩡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때 처호의 전음이 왔다.

-주군, 우리가 한 달 넘게 여러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좀처럼 자신의 입을 열지 않던 자입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모르지만,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알겠습니다.

“일을 부탁하러 오셨다고요?”

홍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와! 근데 진짜 얘 뭐야?

아까 그렇게 꺼억꺼억 울더니, 지금은 진짜 너무 멀쩡하잖아?

슬쩍 도도해 보이기까지 한다.

“네. 최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고문 전문가요?”

“그렇습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제 손을 거쳐 지금까지 입을 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일을…… 맡아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 녀석, 진짜 미친놈인가?

대답은 안 하고 그냥 씨익 웃는다.

그러더니.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일 년 전부터 일을 그만두고 잠적하셨다고 하더니, 사연이 있으신가 봅니다.”

“네.”

“궁금하군요.”

하나도 안 궁금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일을 부탁하러 온 건 나인데 말이다.

“연인과 헤어졌습니다.”

빌어먹을 새끼.

여자 친구 있었다고 자랑하려는 걸까?

참자.

“많이 사랑했나 봅니다?”

“아니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헤어졌습니다.”

미친X!

아나! 이 새끼, 미친X 맞다.

“아! 그렇군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광명정대한 훌륭한 분이십니다. 고귀하고 멋지며 우아하기까지 하며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춘 분입니다.”

“네, 그렇군요.”

너무 성의 없이 말했나?

맘 바뀌면 안 되는데.

조금 더 성의 있게 대꾸해야겠다.

언제나 최고라는 자들은 살짝씩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해하자.

“먼발치에서 그분을 딱 한 번 뵙습니다. 우연이었지요. 하지만 그분에 관한 소문은 이미 수백 번 수천 번이나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부터 마음으로 동경하고 사랑했었습니다. 그러다 실제 그분을 보게 된 후로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녀석, 잘생겼다.

마흔세 살이라고 하는데, 진짜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거기에 입은 옷도 엄청 비싼 옷이다.

사내답지 않게 몸에 걸치고 있는 장신구도 여러 개인데, 죄다 무지막지하게 비싸 보이고.

아무래도 최고의 고문 전문가로 알려지며 돈도 엄청나게 벌었나 보다.

심지어 이 새끼, 자세히 보니 화장도 했다.

화장한 남자는 또 처음 보네.

남자들은 싫어하겠지만, 여자들은 환장하고도 남을 그런 인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혼자 끙끙 앓는 거지?

가서 고백하면 될 텐데.

설마……? 이 새끼 유부녀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건 도와줄 수 없는데?

도와줄 수 없는 게 아니라, 도와줘서도 안 되고, 그냥 욕지거리 한 마디 해 줘야 하는데.

아! 어쩌지?

“그분께서는 많은 이들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태양 아래 그분보다 빛이 나고 아름다운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그분도 아십니까? 홍 선생이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요?”

홍민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도 느끼하다.

갈수록 비호감이군.

“사천이 고향이고 그곳에 모든 기반이 있는 저는, 그분을 그날 우연히 본 이후 계속 그분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지요.”

“아! 안타깝네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좀 해 봤다.

“저는 그분을 계속 찾고 또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생각요?”

“만약, 그분을 만난다고 하여도. 감히 그분 앞에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왜요?”

“말씀드렸듯, 그분은 태양이십니다. 광명이십니다. 빛의 아름다움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두운 그늘에서 일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설마 일을 그만둔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분께 조금이라도 더 당당한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 과거 제가 했던 모든 일을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지요.”

뭐지? 일을 맡겠다는 거야, 안 맡겠다는 거야?

“제 소원은…….”

이제야 본론을 꺼내려는 모양이다.

의뢰에 대한 대가, 의뢰비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나저나 돈은 아닌 것 같은데.

짝사랑하는 그 사람과 만나게 해 달라는 건가?

아이 씨! 유부녀는 진짜 안 되는데.

설마 납치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허걱! 뭐야?

이곳으로 이사 온 게, 좋아하는 여자가 이곳에 살아서야?

그럼 설마?

일류 무사급이나 되고 돈도 많은 홍민에게 불가능한 거라면.

미친! 돌겠네.

화산파나 종남파다!

거기에 가서 누굴 납치해 와야 하는 거야?

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그것까진 아직 무린데.

“제 소원은…….”

“네, 소원이 무엇입니까?”

나는 물론 우리 모두 홍민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딱 한 번. 정말 딱 한 번만 그분을 만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나란히 길도 걷고……. 그런 평범한 연인들이 즐기는 만남을 갖는 것입니다.”

“그게…… 그게 전부에요?”

“그렇습니다.”

“뭐, 납치를 한다든가, 어험. 아이고,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왔네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연결을 해 달라든가, 혼인하게 해 달라든가.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만남을 갖게 해 달라는 거요?”

“네. 그렇습니다, 마 도사님.”

너무 쉽다.

너무 쉬워서 불안하다.

“혹시…… 어험. 그러니까 제 말은…… 오해하지 마시고 들어 주십시오.”

“네.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마 도사님.”

“혹시…… 좋아하신다는 그분이…… 유부녀에요?”

홍민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것도 큰 동작으로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혹시…… 아직 어린…… 취향이……?”

“아닙니다.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와 나이 차이가 꽤 돼지만, 제가 알기로 그분의 나이는 마 도사님과 같습니다.”

도둑놈이군.

뭐, 그래도 이 시대에 열아홉 살 차이의 색시를 데리고 오는 건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니고, 또 강제로 뭔가를 하려는 것도 아니니 넘어가고.

하나 남았다.

“혹시…… 고수에요?”

이 질문.

그리고 홍민이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젠장.

최악의 상황이다.

화산파나 종남파다.

아니지.

종남파에는 여제자가 없는데.

화산파의 어린 여도사를 좋아하는 거군.

휴우. 천예휘와 화산파가 껄끄러워, 천무휘 녀석이 아무리 보고 싶어도 화산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이거 꽤 난감한 일을 맡게 될지 모르겠다.

“화산파군요?”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홍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어쩔 수 있겠는가?

무림의 거대한 음모를 막기 위해, 똥 한 번 밟는다고 생각하고 화산파에 얼씬거려 봐야겠다.

“누굽니까? 홍민 선생이 그토록 애절히 사랑하는 분이요.”

“수룡검 천무휘 대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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